던전 안의 살림꾼 151화
* * *
“후방, 비었습니다. 집중하십시오!”
강진현이 등 뒤를 향해 소리쳤다.
“으아아아아! 다 죽여 버려!”
김수나가 주먹을 휘둘렀다.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좀비 몬스터들이 우수수 쓰러져 나갔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몬스터들이 팔다리 없는 몸을 가지고 벌떡벌떡 일어나고, 바닥을 기었다.
그르륵, 그륵.
케에에…….
그 모습은 정말로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아오, 씨! 이것들은 지치지도 않나!”
김수나는 욕설을 지껄였고, 곁에서 그녀를 돕던 희나가 속삭였다.
“수나 씨, 흥분하지 말고 머리를 쳐요!”
좀비 몬스터들은 머리를 없애지 않는 이상 계속 살아 움직였다.
“아는데요! 떼거리로 몰려드니까! 아오! 성질이!”
김수나는 지겨운 듯 이를 갈았다.
그럴 만도 했다. 그들은 벌써 이틀째 벌 떼처럼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었으니까.
환영의 마석 가루?
‘가루는 하루 하고도 반나절 만에 모두 동이 났지.’
그 이후로는 주욱 이런 상태였다.
낮에는 사탕 앞의 개미 떼처럼 몰려드는 수백, 수천의 좀비 몬스터들과 싸웠다.
밤에는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컴컴한 산길을 걸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있다 보니 한곳에서 구조대를 기다리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희나와 강진현은 기를 쓰고 일행의 이동을 독려했다.
구조대를 기다리면서 생존하는 것보다 보스 몬스터를 해치우고 이곳을 탈출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건 표면적 이유였다.
이들의 실제 목적지는 ‘홈 스위트 홈’ 안전지대였다.
‘거기 가면 안전도 보장되고, 음식도 조달할 수 있어.’
그게 식량이 서서히 떨어져 가는 지금,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였다.
‘피곤해.’
희나는 퀭한 얼굴로 김수나를 도왔다.
김수나는 행동거지가 크고 호탕한 만큼 빈틈이 자주 뚫리는 편이었고, 희나와 희원은 그런 그녀의 허점을 방어해 주는 보조 역할을 했다.
그러니까 이건 비전투계 각성자인 희나와 희원이 전투에 투입될 만큼 지금의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의미기도 했다.
‘진현 씨가 힘내 주고 있긴 하지만…….’
천하의 S급 헌터와 함께 있는데 무엇이 두렵냐, 할지도 모른다.
사실 혼자라면, 혹은 지켜야 할 인원이 소수라면 강력한 힘으로 무작정 뚫고 지나가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강진현이 지켜야 할 일행은 한 명이 아니었다.
B급 헌터인 김수나를 제외하면 비전투 인원이 일곱 명이었다.
희나와 희원도 각성자라 민간인보다 신체 능력치가 높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전투에 참여할 만한 실력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행 모두를 살피며 이끌어 가야 하니, 공격 중심의 전투 스타일을 가진 강진현은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사람이었다.
낮에는 쉴 새 없이 달려드는 몬스터를 처리하고, 밤에는 틈틈이 보초를 섰다.
피로가 쌓이지 않는 게 이상하리라.
‘하지만…… 이 속도로 사흘, 아니, 나흘만 더 가면 홈 스위트 홈 안전지대에 들어갈 수 있어!’
희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꽥 소리쳤다.
“우리 힘내요! 얼마 안 남았어요! 조금만 더 버텨요!”
“여보! 힘내!”
정수원도 김수나를 응원했다.
처음에는 몬스터만 봐도 혼절할 듯 심약하게 굴더니, 이제는 두 눈 똑바로 뜨고 연인을 응원할 정도의 수준이 됐다.
그 또한 아이 아버지인 권준용과 함께 2차 방어선을 이루고 있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강진현이 나누어 준 무기를 들고서 아이들을 지키는 것이다.
희나의 외침과 함께 전방을 지키던 강진현의 신형이 순간 흐려졌다.
팟! 퍼버벙!
그리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좀비들의 머리가 으스러졌다.
머리가 있던 자리에는 검은 자취만이 남아 그의 손길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순식간에 100여 마리에 가까운 좀비 몬스터가 행동 불능 상태가 되었다.
“얼마 후면 다시 몰려오겠지만 잠시 시간을 벌었습니다. 휴식하고 계십시오.”
강진현이 무뚝뚝하게 일행을 살폈다. 그 자신은 여전히 경계 상태인 채였다.
“어휴. 이제 잠깐 쉬겠네.”
김수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B급인 김수나 혼자 후방을 거의 도맡다시피 했으니 기진맥진한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수나야! 괜찮아?”
정수원이 호다닥 뛰어와 김수나의 얼굴을 감쌌다.
김수나는 방금 몬스터의 머리통을 깨부숴 더러워진 양손을 등 뒤에 감추었다.
“아, 어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정수원의 어깨에 머리를 살포시 기대는 것도 잊지 않았다.
“힘들지? 나도 도움이 되면 좋을 텐데…….”
“아니야. 자기까지 전투에 끼어들면 내가 집중을 못 할 것 같아. 자기 다치는 거, 나는 못 봐.”
“그런 마음인 건 나도 마찬가지야!”
“천하의 김수나 자존심이 있지. 평생 자기 손가락에 피 한 방울 안 닿게 해 줄게.”
……어쨌든 이 와중에 닭살 행각을 벌일 정도의 기력은 남았다니 다행이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강진현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피곤하지는 않으십니까? 뭐, 어지럽다거나 그런 건……?”
이에 희나는 딱 잘라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는 괜찮아요. 저야 옆에서 김수나 씨 보조만 하는 정돈데요, 뭘.”
다들 힘든 상황에서 우는소리를 해서 사기를 저하시킬 순 없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잠깐 어디에라도 기대어 편히 쉬시는 건……?”
“아니에요! 잠깐 짬 났으니까 제 일을 해야죠!”
희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중간중간 전투 보조만 해서 그런지 체력이 꽤 남아 있었다.
“하, 하지만…….”
“필요한 거 있으세요, 진현 씨?”
“……아닙니다.”
희나의 씩씩한 대답에 강진현은 어쩐지 실망하는 듯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희나는 덤불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물 뜯기’ 스킬로 떨어져 가는 식량을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몬스터 몰려오기 전에 빨리, 빨리…….”
먹을 수 있는 풀, 먹을 수 없는 풀, 먹으면 죽는 풀, 맛있는 풀 등등…… 수많은 정보가 눈앞에 뿅뿅 떴다.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죄다 채집했다.
그륵, 그르륵.
중간중간 쓰러진 좀비의 시체를 발로 퍽퍽 차 밀어내기도 했다.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어서일까? 평소보다 더 씩씩하고 용감하게 행동하게 됐다.
“……어라?”
희나는 주변을 뒤지다 풀숲 사이에 감추어져 있던 굴을 찾아냈다.
“여기에 뭐가 있어요!”
“어? 그러게요. 이걸 어떻게 발견 못 했지?”
어느새 다가온 김수나가 어깨 너머로 굴 입구를 확인했다.
“일단 기척은 안 느껴지는데…….”
굴 안으로 손전등을 비추니, 제법 넓은 공간이 보였다.
“아무것도 없네요.”
강진현 또한 흥미로운 눈길로 희나가 발견한 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굴 주변을 이리저리 짚고 확인하더니 흠,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인가 결정을 내린 듯했다.
“안전해 보입니다. 다들 연이은 강행군에 지친 듯하니, 여기서 하루 쉬는 건 어떻겠습니까?”
지친 일행에게는 꽤 반가운 소리였다.
* * *
“어두운 데에서 불 켤 수 있는 게 이렇게 고마운 일인 줄은 몰랐네요.”
타닥타닥, 타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이정화가 말했다.
아들인 권환웅은 이미 엄마의 무릎을 베고 곯아떨어진 상태였고, 딸인 권다혜도 그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아늑한 분위기였다.
굴은 제법 깊었으므로 불을 피워도 바깥에 티가 나지 않았다. 환기도 잘됐다.
‘오래간만에 따끈한 밥 먹으면 좋겠네.’
그동안 희원의 땅콩이나 차가운 통조림 등으로 끼니를 때웠으니, 불을 피운 김에 따뜻한 밥을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뭘 하면 좋을까?’
희나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당장 가진 재료도 얼마 없었고, 대단한 요리를 하기엔 상황도 여의치 않았다.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만큼 고민은 금세 끝났다.
‘주먹밥 만들어야겠다.’
희나는 백팩을 뒤져 즉석 밥을 꺼냈다.
‘한국인은 역시 밥심이지!’
따끈한 밥이라면 사람들의 피로를 사르르 녹여 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진현 씨, 물 좀 끓일까요?”
“알겠습니다.”
강진현이 급수 아이템을 사용해 냄비에 물을 채워 주었다. 상당한 고가의 제품으로, 이번 던전 사태에서 굉장한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이렇게 혼란한 상황에서 물까지 부족했다면…….
‘으, 상상하기도 싫네.’
희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즉석 밥 몇 팩을 데웠다.
채집한 산나물(?)도 데치고 잘게 썰었다.
밥과 나물을 한데 모아 넣고, 소금과 참기름을 쳤다.
다행스럽게도 게이트에 휘말린 첫날 수색을 꼼꼼히 한 덕분에 어지간한 재료는 다 갖춰져 있었다.
깨끗이 씻은 손으로 밥을 조물조물 무쳤다.
“맛있겠다. 빨리 먹고 싶어. 밥 먹은 지 너무 오래됐다.”
곁에서 구경하던 희원이 군침을 꿀떡 삼켰다. 다른 일행들도 숨죽이고 앉아 희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먹밥은 그릴에 한 번 구울 거야. 바삭바삭하고 따끈따끈하게.”
희나는 석쇠 위에 주먹밥을 올려 살살 굴려 가며 구웠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굴 안에 솔솔 퍼지기 시작했다.
“맛있는 냄새…….”
그 냄새가 어찌나 먹음직스럽던지, 쿨쿨 잠들어 있던 권환웅까지 비척비척 눈을 뜰 정도였다.
“이리 와서 하나씩 드세요. 양이 많지는 않아도, 허기 가실 정도는 될 거예요.”
희나는 구운 주먹밥을 건넸다.
밥은 적었고 사람은 많았기에 고작 어린애 주먹보다 조금 큰 크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조차도 반갑게 받아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얼마 만에 먹는 따듯한 음식인지 모르겠네요.”
“맛있을 것 같아요.”
다들 한마디씩 건네며 주먹밥을 베어 물었다.
희나도 합, 하고 밥을 한 입 작게 씹어 삼켰다.
그 순간이었다.
눈앞에 띠롱, 하고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