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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50화 (150/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50화

    짝, 짝! 짝!

    그어어억!

    차진 소리와 함께 희나에게 얻어맞은 몬스터 한 마리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동시에 희나의 눈에도 보일 만한 커다란 틈이 생겼다.

    ‘머리통! 한 방에!’

    희나는 있는 힘껏 팔을 스윙했다! 해충 박멸을 시전한다는 시스템 창이 반짝였다.

    뻐억! 소리와 함께 몬스터의 머리통이 날아갔다.

    홈런이었다.

    케에에에…….

    아련한 울음소리와 함께 머리통이 시야 너머로 멀어졌다.

    한편, 어깨 아래로 남은 몬스터의 몸통은 힘을 잃고 그대로 털썩 쓰러졌다.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보아 완전히 죽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공격 기능은 거의 상실한 듯 보였다.

    “해, 해냈다.”

    희나는 힘을 꼴깍 삼키고 자세를 바로 했다.

    한 사람 몫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선, 강진현의 조언대로 방심하면 안 됐다.

    “하아압!”

    희나는 힘찬 기합과 함께 두 번째 몬스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밀려오는 몬스터를 해치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진현은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처리했고, 희나는 무려 여섯 마리나 되는 몬스터의 몸과 머리통을 분리해 주었다.

    강진현은 희나가 마지막 한 마리의 머리를 날려 버리는 장면을 확인했다.

    “잘했습니다. 대충 정리가 다 되었군요.”

    그의 시선에 대견함이 가득했다.

    어둠 속에서도 다정한 눈빛이 느껴졌다. 희나는 얼굴을 살풋 붉혔다.

    “헤헤.”

    강진현은 희나를 따라 작게 입꼬리를 올렸다가 금세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저벅저벅, 한구석으로 걸어 나가 환하게 켜져 있던 손전등 불을 탁, 하고 껐다.

    꺼어어.

    그르르륵.

    랜턴의 불빛이 꺼지자마자 저 멀리서 불빛을 따라오고 있던 몬스터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마치 가수면 상태에 빠진 듯 제자리에서 꺽, 꺽, 몸을 흔들거렸다.

    “저기에 좀비들이 남았는데, 그건 안 잡아요?”

    희나의 물음에 강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근방 몬스터를 모두 끌고 와 개체 수를 확 줄여 두었으니, 우리 야영지 주변도 한결 안전해졌을 겁니다. 희나 씨 경험도 적당히 쌓았고요.”

    손전등 불빛을 곧장 끄지 않고 허공을 계속 비추는 이유가 무엇인가 했는데, 강진현은 다 계획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희나와 강진현의 등 뒤에 털썩 주저앉아 있던 여자가 벌컥 소리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내가 켜 둔 손전등 불빛이 몬스터를 불러들이기라도 했다는…… 으아악! 그랬구나!”

    여자의 커다란 목소리에 얌전히 서 있던 좀비 몬스터가 크르릉, 하며 반응했으므로 희나는 헐레벌떡 그녀를 조용히 시켰다.

    “쉿! 저 몬스터들, 소리에도 반응해요.”

    “악, 그래요? 싸울 때 소리도 오지게 질렀는데…… 이것도 내가 매를 번 거구나!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여자는 크허엉, 하면서 코를 먹었다.

    “아이고, 눈치코치 없는 것 같으니라고. 이러니까 맨날 몸빵밖에 할 줄 모르는 탱커라는 소리만 듣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어 보니 제법 가녀려 보이는 몸집과 달리, 여자는 육체 강화계 헌터인 듯했다.

    “일단 진정하시고요. 저쪽에 우리 일행이 있는데, 같이 가시겠어요?”

    “당연하죠. 이제 밤눈이 좀 익었는데, 지금 당장 출발할까요?”

    희나의 제안에 여자는 벌떡 일어서 자빠져 있는 남자를 안아 들었다.

    쓰러진 남자의 체구가 꽤 돼서 강진현이 업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여자는 당연하다는 듯 남자를 공주님 안기 했다.

    ‘역시 각성자라 그런지 일반인 남자 정도는 가뿐하게 들어 올리는구나.’

    여자를 힐끔거리는 희나 앞에 강진현이 무릎을 꿇고 등을 내밀었다.

    “희나 씨도 업히십시오. 산길이니 제가 업고 가는 편이 훨씬 안전하고, 빠릅니다.”

    이렇게 말하니 희나로선 네에, 하고 그냥 업힐 수밖에.

    “꽉 잡으십시오, 희나 씨. 그리고 그쪽은 제 등 뒤를 바짝 붙어 쫓아오십시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강진현은 산길을 박차고 내려갔다.

    “으악, 이건 너무 빠르잖아요!”

    여자 또한 헐레벌떡 그 뒤를 따랐다.

    * * *

    사람들은 강진현이 뿌려 둔 환영의 마석 가루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희원이었다.

    “불이라도 켤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랬다가는 좀비들이 몰려올 테니 불편하더라도 참아 봅시다. 일단 달빛이 밝으니까, 어느 정도 앞뒤 분간은 할 수 있으시겠죠?”

    “네…….”

    다들 반쯤 넋이 나간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개중엔 나름 팔팔한 사람도 하나 끼어 있었는데, 바로 몬스터와 다대일 전투를 하던 여자였다.

    “일단 구해 주셔서 고마워요. 감사 인사가 늦었죠?”

    그녀는 무릎에 얹은 남자 친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여자의 인사에 무언가를 느꼈는지, 아이를 안고 있던 아빠도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 고맙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우리 가족 모두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강진현은 고개를 저었다.

    “민간인을 지키는 건 헌터의 기본 사명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도 정말로 감사합니다.”

    길어지는 대화에 희나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감사 인사는 여기까지 나누고…… 일단 저희 통성명부터 할까요? 이름부터 알고 상황을 파악해야 할 것 같아서요.”

    “맞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요.”

    다들 희나의 제안에 동의한 듯 낮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저는 이희나고, 여긴 우리 오빠인 이희원이에요. 그리고 이분은…… 얼굴 보면 다들 아시겠지만, 강진현 헌터님이에요. 저희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함께 놀러 온 사이고요.”

    희나의 소개에 각성자 여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헉, 어쩐지 얼굴이 익숙하다더니…… 강진현 헌터님이었구나! 우와, 유명인!”

    헌터인데 강진현의 얼굴을 못 알아보다니, 아무래도 굉장히 눈썰미가 안 좋은 사람인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잠깐의 소란이 지나가고, 다시 자기소개 시간이 이어졌다.

    “저는 권준용이고 여기는 애 엄마인 이정화, 우리 딸 다혜랑 아들 환웅입니다. 여름휴가철이라 가족 여행 겸 캠핑 왔습니다.”

    권다혜는 열네 살로 중1이었고, 권환웅은 열 살로 초등학교 3학년이라고 했다.

    남매는 희나와 희원처럼 꼭 네 살 차이가 났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 적 우리처럼 느껴지네.’

    희원 또한 희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동생을 힐끗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남매의 시선이 마주쳤다.

    ‘얘네는 부모님이랑 꼭 나가게 해 주자.’

    ‘다 같이 살아 나가는 거야.’

    남매가 조용히 다짐하는 사이, 소개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저는 김수나고요, 여기 누워 있는 사람은 정수원이에요. 사귀는 사이예요. 기념일이라서 여기 왔는데, 이런 일이 생겼네요.”

    “헌터, 맞죠? 아까 전투하시던 것도 그렇고, 혼잣말로 탱커라고도 말씀하셔서…….”

    희나의 물음에 자신을 김수나라고 밝힌 여자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아, 사실 이거 자기한테 비밀인데……. 네, 맞아요. 저 헌터예요.”

    “비밀이라뇨?”

    “사실 그게……”

    그녀가 무엇인가 설명하려는 차, 기절해 있던 남자가 으으, 신음을 내뱉었다.

    “……으으.”

    “자기? 정신이 들어? 괜찮아? 응?”

    김수나는 애틋하게 연인의 뺨을 쓸어 주었다.

    그 다정한 손길에 남자, 정수원은 천천히 눈을 떴다.

    “수나야…… 여기가 어디야?”

    “음, 여긴…….”

    “그나저나 이상한 꿈을 꿨어. 우리가 던전에 떨어져서 좀비들이랑 만난 거야. 나는 깜짝 놀라서 뒤로 자빠졌는데…… 마지막 장면이 되게 이상해. 네가 좀비를 맨손으로 잡아 허공에 집어 던지고 있더라? 정말 이상한 꿈이지?”

    정수원은 중도에 기절했다는 것치고는 상황을 아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하. 벌레 한 마리도 못 잡는 네가 좀비를 어떻게 때려잡겠어?”

    “…….”

    김수나는 침묵했고, 희나는 그녀가 날리던 힘찬 주먹질을 떠올렸다.

    그리고 예쁜 입에서 나오던 걸쭉한 욕설도…….

    ‘내외를 좀 하는 커플이네.’

    자기가 헌터라는 사실은 그렇다 쳐도, 의외로 꺼벙해 보이는 성격도 내보이지 않았나 보다.

    김수나는 정수원을 붙잡고 차근차근 상황 설명을 시작했다.

    “자기야, 놀라지 말고 잘 들어. 자기가 기억하는 건 꿈이 아니라 진짜야.”

    “……뭐?”

    정수원은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우습게도 그중 그를 가장 혼란스럽게 하는 건 자기 여자 친구의 정체인 것처럼 보였다.

    “허, 헌터라고? 각성자?”

    “으응. 나 B급 헌터야.”

    “그냥 회사 다니는 회사원이라면서?”

    “평범한 길드에 다니는 평범한 헌터 중 하나일 뿐이야.”

    “그럼 그동안 외국 출장 나갔던 건……?”

    “던전으로 출장…….”

    “그래서 출장 나갈 때마다 연락이 안 됐던 거였구나.”

    일행은 잠시 위험한 상황도 잊은 채, 이 커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3년 동안이나 사귀었는데, 왜 말 안 해 줬어? 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나도 언젠간 얘기하려고 했어……. 그런데 자기가 폭력적이고 힘만 넘치는 멍청이들은 싫다면서?”

    김수나가 우물쭈물했다.

    “……사실 나도 그런 사람인데, 솔직히 말하기엔 자기가 너무 좋고, 헤어지기도 싫었거든.”

    진심 어린 고백에 정수원은 잠시 침묵하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김수나를 안아 주었다.

    “자기랑 헤어지기 싫은 건 나도 마찬가지야. 어떤 모습이라도 좋으니까, 앞으로는 나한테 아무것도 감추지 말아 줘.”

    “자기야…….”

    “사랑해.”

    “나도!”

    감동적인 결말이었다.

    ‘아주 정열적인 커플이네.’

    희나는 속으로 짝짝 손뼉을 쳤다.

    한편 아이들의 아빠, 권준용이 조심스럽게 둘만의 세계에 끼어들었다.

    “그나저나 이제 좀 현실적인 얘기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장 코앞에 닥친 일이 있으니까요.”

    이정화도 남편의 말에 적극 동의했다.

    “맞아요.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살아 나갈 수는 있겠지요?”

    그녀의 물음에 여섯 쌍의 눈동자가 희나 일행에게로 쏟아졌다.

    이에 강진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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