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안의 살림꾼 149화
“인간형 몬스터로군요.”
강진현이 작게 속삭였다.
“일단 몬스터를 파악해 보아야 하니…… 다녀오겠습니다.”
그는 순식간에 튀어 나가 몬스터를 터뜨려 죽였다.
“으, 엄마…….”
잔인한 광경에 아이가 울먹였다.
“쉿. 소리 내면 안 돼.”
부모는 그런 아이를 꽉 안아 주었다.
“일단 가까운 곳에는 이 한 마리뿐입니다.”
강진현은 금세 몬스터 몇 마리를 해치운 후 돌아왔다.
심지어 방금 몬스터를 터뜨려 죽인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굉장히 산뜻한 낯을 하고 있었다.
“어둠에 취약하고 소리에 예민합니다.”
그는 짧은 전투에서 많은 정보를 얻어 냈다.
“적어도 어두운 밤에는 크게 위험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척까지 접근해도 소리가 나지 않으면 상대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 보였습니다.”
짧은 브리핑에 희나가 되짚어 물었다.
“그럼 조용히 지나가기만 한다면 저 좀비…… 몬스터는 별로 위험하지 않다는 뜻이겠네요?”
“그럴 겁니다. 대신 빛 자극에는 예민하게 반응할 것 같군요. 랜턴은 여태 그랬던 대로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어휴. 아까 랜턴 켰던 거, 잘못됐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네.”
희원이 뒤늦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때였다.
“그리고.”
강진현이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서 흐리게 빛이 보입니다. 사람 목소리도 들리고요.”
“빛이 보인다고요? 아, 그러게요.”
희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강진현이 손짓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저 멀리서 무엇인가 희미하게 반짝이는 것 같았다.
아마도 캠핑장의 커플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
“목소리가 들린다니 아직 무사한가 봐요. 다행이네요.”
……여기까지 이야기하다 희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화들짝 놀랐다.
“그런데 빛이랑 사람 목소리면 위험한 거 아니에요?”
아까 강진현의 말에 따르면 좀비 형태 몬스터는 빛과 소리에 민감한 것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주변에 있는 몬스터가 몰려들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생각해 보니, 방금 강진현이 처리했던 몬스터도 어느 곳인가를 향해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게 두 사람의 목소리와 불빛에 이끌린 거라면?’
등 뒤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빨리 가 봐야겠군요.”
강진현 또한 상황의 심각함을 느꼈는지 땅을 박차고 나가려다, 아이들이 섞인 일행을 보고 멈칫했다.
“일단 주위에 환영의 마석 가루를 뿌려 놓겠습니다. 몬스터들의 인지를 흐트러뜨리는 데 사용하는 가루입니다. 이 안에서 조용히 있으면 적어도 여섯 시간 정도는 몬스터가 달려들지는 않을 겁니다.”
“진현아, 그럼 우린 여기서 짐을 풀고 있을게. 지대도 평탄하고, 야영하기 나쁘지 않아 보여.”
희원은 아예 이곳에서 야영할 것을 제안했다. 아이들이 몹시 지쳐 보였던 탓이다.
강진현 또한 희원의 의견에 동의했다.
“예. 그럼 부탁합니다, 희원 형님.”
“여기 정리는 내가 맡을 테니 빨리 다녀와.”
두 사람의 대화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저.”
희나는 눈치를 보다 강진현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진현 씨, 저도 데려가요.”
“……위험한데요.”
“저기에 좀비들이 잔뜩 모이고 있잖아요. 정말 상황이 다급하다면, 진현 씨가 힘을 쓰는 것보다 제가 대청소 스킬로 단번에 쓸어버리는 편이 나을 수도 있어요.”
“그건.”
논리가 제법 그럴싸했다. 강진현의 낯에 갈등이 스쳤다.
희나는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제가 위험한 게 걱정되는 거면, 진현 씨가 지켜 주면 되잖아요? 평소처럼.”
“제가…… 말입니까?”
강진현이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광대가 붉게 달아오른 탓이다.
결국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등급보다는 쪽수가 더 문제인 상황일 수도 있을 테니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희나 씨가 함께 가는 게 낫겠군요. 등에 업히십시오.”
“네!”
희나는 강진현의 넓은 등에 매달렸다.
이제 그의 등에 업히는 것도 제법 익숙했다.
“출발하겠습니다.”
강진현의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주변의 풍광이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을 뛰었을까, 정말로 사람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썅! 오냐! 네가 죽나 내가 죽나 두고 보자!”
……생각과는 좀 다른 과격한 내용이었지만, 어쨌든 사람 목소리였다.
강진현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희나는 아주 인상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뻐어어억!
몬스터가 주먹에 맞아 튕겨 나갔다.
개애애액!
연이어 내지른 발에 또 다른 몬스터가 괴성과 함께 뒤로 자빠졌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희나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상황을 지켜보았다.
“야! 덤벼! 덤비라고!”
산발한 여자가 살기 가득한 눈으로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수십의 몬스터가 도미노처럼 우르르 쓰러졌다.
아니, 가을바람의 낙엽처럼 쓸려 나간다는 표현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몬스터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기에 얼핏 보면 일 대 다수의 패싸움처럼 보이는 장면이었다.
희나는 강진현의 귓가에 조심스럽게 속닥거렸다.
“저분도 각성자……인가 봐요.”
사실 눈구멍이 아닌 콧구멍으로 봐도 각성자인 상황에서, 강진현은 그 사실을 지적하는 대신 담백하게 답했다.
“예. 그렇게 보이는군요. 상황도 제법 비등비등하고요. 최악은 아닌 듯합니다.”
희나와 강진현이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여자는 조금씩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점점 많아지는 몬스터들을 막아 내기엔 역부족이었던 탓이다.
하지만 여자는 포기하지 않고 쉼 없이 팔다리를 움직였다.
“악! 절대 안 진다! 내가 우리 자기는 살리고 만다!”
그녀의 등 뒤에 연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급작스레 달려드는 몬스터의 모습에 깜짝 놀라 혼절해 버리고 만 그녀의 연인…….
용감한 사람인 척하지만 사실은 심약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하나뿐인 사랑…….
‘여기서 나가 봐! 목숨 구해 줬으니까 결혼해 달라고 우기고 만다!’
여자가 이를 악물며 다시 정신을 가다듬을 때였다.
새카만 그림자가 날아와 그녀 옆에 안착했다.
“뭐, 뭐야?”
여자는 몹시 놀라 본능적으로 주먹을 갈겼다. 하지만 상대는 손쉽게 그녀의 공격을 피해냈다.
“적이 아닙니다. 도우러 왔습니다.”
“네! 도와드리러 왔어요!”
뭔가 익숙한 낯을 한 잘생긴 남자 하나와, 그의 등 뒤에 업힌 여자 하나.
여자는 그 둘을 경계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뭐 하는 사람들이지?’
일단 도움은 받겠지만, 정체가 영 심상찮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수십 수백의 몬스터를 앞에 둔 채 이렇게 태연할 수 있는 사람들은 흔치 않았다.
‘전투 파트너인가?’
여자가 둘의 정체에 대한 의문점을 풀거나 말거나, 강진현은 희나를 내려놓고 전투 이론을 빠르게 설명했다.
“희나 씨, 몬스터가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잘 보면 패턴은 단순합니다.”
이 김에 전투 경험을 조금 늘려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희나는 그의 속내를 잘 알아듣고는 강진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하……. 동작이 커지는 순간 빈 곳을 찾아 때리라고요?”
“예. 몬스터가 인간 형태를 하고 있으니, 어느 부분을 공격해야 치명적일지는 감이 올 겁니다.”
“머리, 명치, 가랑이, 이런 곳 말씀하시는 거죠?”
“예. 맞습니다. 그곳을 중심으로 가격하십시오.”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여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배우고 있네……. 그럼 파트너는 아니고. 전투팀 사수랑 부사순가?’
그렇다기엔 사수가 부사수를 바라보는 눈빛이 영 불순해 보였다.
‘아무리 봐도 사심이 섞여 있는데.’
“……저것들은 희나 씨 몸에 손끝 하나 대지 못할 테니 마음껏 공격하셔도 좋습니다.”
대사도 묘하게 의미심장했다.
마침내 여자는 저 둘의 사이를 정의 내렸다.
‘커플이네.’
남자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등 뒤의 연인을 지키고 싶은 제 마음과 별다를 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야, 좋을 때다.’
그녀는 잠시 급박한 상황조차 잊은 채 감탄했다.
그 탓일까, 순간적으로 여자의 시야 한구석이 비었다.
캐애애액!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몬스터가 달려들었다.
여자는 이를 한 박자 늦게 깨닫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 좆 됐다!’
눈은 감지 않았다. 전투 중에 눈을 질끈 감는 건, 그대로 ‘내 목숨을 가져가쇼’ 하고 소리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다가올 고통을 각오할 때쯤이었다.
퍼버벅! 펑!
새카만 기운이 뿜어져 나와 달려드는 몬스터의 머리통을 터뜨렸다.
“전투 중에는 절대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됩니다. 저렇게 공격당하거든요.”
“네네!”
“특히 희나 씨 같은 초보자는 절대로 경계를 늦춰선 안 됩니다. 다른 사람 목숨보다 내 목숨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전투에 임하십시오.”
“네네!”
커플로 추정되는 두 사람은 코치와 선수라도 되는 것처럼 말을 주고받았다.
‘뭐야, 저 남자?’
여자는 눈을 크게 뜨고 강진현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검은 기운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뱀처럼 은밀하게, 하지만 채찍처럼 가차 없이 다가오는 몬스터를 쳐 냈다.
공격 범위 자체는 넓지는 않았지만, 그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남자 쪽은 최소 A급은 되는 헌터다. 나는 잠깐 빠져도 되겠군.’
여자는 판단을 마치고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이 이상 체력을 낭비하면 피로가 쌓여 짐만 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도우러 온 이 두 남녀의 실력을 믿으며 힘을 회복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었다.
키이이이!
그오오, 그륵.
그와 동시에 여자가 막고 있던 공간이 비며 방죽이라도 터진 것처럼 몬스터들이 밀고 들어왔다.
때맞춰 강진현의 전투 강의도 끝이 났다.
“제가 잘 보고 있을 테니 희나 씨도 몬스터를 한 마리씩 차례대로 상대해 보십시오.”
“알았어요!”
희나는 돌돌 만 신문지를 움켜잡고 결의에 찬 표정을 지었다.
썩은 시체 꼴을 한 몬스터들은 정말로 징그러웠지만, 그런 이유로 전투에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한동안 이 던전에서 버텨야 할 텐데 진현 씨 등 뒤에서 발만 동동 구를 수는 없지!’
그렇지 않아도 어깨가 무거울 강진현에게 부담을 더 지우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익숙한 등짝부터 갈기자!’
몬스터가 좀비, 그러니까 사람 모양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희나는 얄미운 오빠를 향해 신문지를 휘둘렀던 경험을 살려 샥샥 팔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