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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46화 (146/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46화

    ‘반경 20m 이내의 오염물을 싸그리 제거한다잖아.’

    그리고 결과는…… 역시나였다.

    집안은 먼지 한 톨, 얼룩 한 점 없이 아주 완벽하게! 청결해졌다.

    심지어 빨래도 깨끗해졌다.

    희나의 머릿속 ‘오염물’ 카테고리 안에 있는 건 죄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집 안의 청결도 지키고, 내 몸도 지키는 일석이조의 스킬이었다.

    “읏차, 이제 몸도 회복됐고…… 아, 진현 씨! 혼자 일하지 말아요! 마석 같이 챙겨요!”

    희나는 강진현을 도와 바닥에 떨어진 마석을 회수했다.

    동굴 안이 어두웠으므로 가져온 플래시 라이트를 켜고 바닥을 꼼꼼히 살펴야 했다.

    ‘대청소 스킬 덕분에 동굴 바닥도 깨끗하게 변해서 다행이야.’

    축축하고 미끌거리던 동굴 내부는 드러누워도 될 만큼 뽀송해졌다.

    덕분에 미끄러질 걱정 없이 보스 몬스터가 있던 동굴 안을 쏘다닐 수 있었다.

    얼마 후, 희나는 숙였던 허리를 펴며 기지개를 켰다.

    “찾을 만한 건 다 찾은 것 같죠?”

    “예. 그런 듯합니다.”

    강진현이 다가와 희나의 손바닥 위에 마석을 후두둑 떨어뜨렸다.

    희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 진현 씨가 눈이 좋아서 그런가? 제가 주운 것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데요?”

    강진현이 주워 온 마석들은 유독 색이 선명하고 반짝거렸다.

    “……그런가요? 제가 보기엔 별반 차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는 태연한 낯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서 마석을 빨리 인벤토리 안에 수납하라며 재촉했다.

    “희원 형님이 홀로 기다리고 계시니까요.”

    “하긴. 너무 늦으면 엄청 툴툴거리겠네요.”

    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석을 인벤토리 안에 넣었다.

    마음 같아선 희나를 업고 이동하고, 보스 몬스터를 잡은 강진현에게 절반을 떼어 나누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강진현은 절대 필요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할 게 분명했다. 지난번에도 그랬으니까.

    희나는 틈만 나면 옷 사이로 마석 소매 넣기를 하는 청룡 길드 사람들을 떠올렸다.

    ‘헌터들은 원래 이런 작은 마석들은 마석 취급도 안 하나?’

    굉장한 착각이었다.

    하지만 그 착각을 정정해 줄 사람은 아무 도 없었다.

    * * *

    이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희나 일행은 시들시들해진 이끼에 보스 몹 마석을 바쳐 시스템 에러를 해결했고, 반휘의 도움을 받아 원래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지난 두 번의 던전 안정화 때와는 달리 세상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듯 보였다.

    지이잉.

    희나는 부르르 울리는 휴대전화를 곧장 집어 들었다. 기다리던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 어때요?”

    평소라면 안부라도 잠깐 물었을 희나였지만, 오늘은 마음이 급했다. 다짜고짜 용건부터 물었다.

    - 던전 브레이크로 게이트 밖을 활보하던 몬스터들이 싹 사라졌다고 합니다.

    역시, 던전이 안정화한 모양이었다.

    “그리고요?”

    - 자연히 몬스터에 의한 인명 피해도 완전히 사라졌고요.

    희나는 속으로 ‘야호!’를 외치며 주먹을 꽉 쥐었다.

    - 이번에도 비활성화 관련 이슈군요.

    원덕삼이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 솔직히 희나 아가씨가 이 일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굉장히 궁금합니다만…… 묻지는 않겠습니다.

    “그래요? 궁금하실 것 같은데요.”

    - 어차피 바깥에 팔지도 못할 정보, 괜히 알고 있다가는 위험하기만 합니다.

    얼마 전 비데를 사용하러 왔을 때, 원덕삼은 마석에 맹세를 하나 더 했다.

    희나의 의뢰 관련한 정보는 모두 비밀에 부쳐 주기로 한 것이다.

    물론 100% 자율적인 선택이라고 하기에는…… 강진현의 손에 어린 검은 기운이 빠른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 정도만 언급하는 게 나을 것이다.

    - 뭐, 솔직히 말하자면 궁금하긴 합니다만 저를 못 믿으실 건 아니까 아예 듣지 않겠다는 겁니다.

    원덕삼은 낄낄거리며 말을 이었다.

    - 그러니까 이건 희나 아가씨를 배신할 생각이라곤 절대 없다, 라는 의지의 표명으로 알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정보상이 정보를 캐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원덕삼 씨 말이 사실이면 좋겠네요.”

    - 정말입니다. 정보 몇 줄보다야 목숨과 건강이 더 중요하지요. 저는 이제 비데 없이 못 삽니다. 똥독 올라 죽습니다.

    목소리에 진정성이 넘치다 못해 뚝뚝 떨어졌다.

    희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쨌든, 앞으로 이런 식의 부탁을 자주 드릴 수도 있어요.”

    - 예에, 예. 희나 아가씨 부탁은 얼마든지 들어드릴 수 있지요.

    희나는 태평양 섬의 근황을 알 수 있어서 좋았고, 원덕삼은 원활한 비데 사용을 다시 한번 확인받아서 좋았다.

    덕분에 양측은 모두 만족스럽게 통화를 마무리했다.

    * * *

    그날 저녁, 희나는 수육을 잔뜩 삶았다.

    좋은 소식을 들었으니 잔칫상을 차려야 했고, 모름지기 잔칫날에는 덩어리진 고기를 먹어야 하는 법이니까.

    따끈따끈, 푹 익은 통삼겹은 칼을 댈 때마다 스윽스윽 부드럽게 잘려 나갔다.

    썬 단면으로 보이는 촉촉한 살코기와 비계의 비율이 환상적이었다. 입에 넣으면 살살 녹아내릴 게 분명했다.

    수육과 함께 곁들일 부추 겉절이를 무쳤다. 알배추 잎도 소금에 살짝 절여 두었다. 수분이 조금 빠져나가 아작아작하게 씹는 맛이 좋을 것이다.

    ‘음…… 그리고 새콤하게 입맛 돋울 면류도 하나 있으면 좋겠지.’

    당첨된 건 쫄면이었다.

    삶은 쫄면 위에 채소를 잔뜩 썰어 넣고 되직하게 된 새빨간 양념을 부었다.

    그대로 조물조물 무쳐 접시에 올린 후 통깨를 살살 뿌려 주니 반지르르하게 윤기가 돌았다.

    “식사해요!”

    희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상을 닦고, 그릇을 놓으며 눈치 보고 있던 두 남자가 후다닥 자리에 앉았다.

    “와, 침 나온다.”

    고기와 면의 아찔한 조화에 희원이 침을 꿀떡 삼켰다.

    “…….”

    강진현은 이미 숨이 반쯤 넘어간 지 오래였다. 눈빛에 초점이 없었다.

    “맛있게 드세요!”

    희나의 인사와 함께 식사가 시작되었다.

    고기는 세 사람이 배 터지게 먹고 남을 정도로 준비해 두었다.

    마음껏, 얼마든 원하는 대로 먹기만 하면 됐다.

    짭짤한 새우젓과 함께 고기 본연의 맛을 즐겨도 됐고, 쌈이나 겉절이와 함께 즐겨도 됐다. 매콤 새콤한 쫄면을 돌돌 감아 먹어도 좋았다.

    희원이 입안의 음식을 꿀떡 삼키고는 중얼거렸다.

    “이건 진짜로…… 미쳤다, 정말.”

    강진현도 극구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희나 씨 음식은 언제나 맛있지만, 오늘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희나의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듯,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희나도 스스로의 실력에 엄지를 척 내세웠다.

    “고마워요.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오늘따라 음식이 무지 잘됐어요!”

    이건 자만해도 좋을 만한 맛이었다.

    그야말로 행복의 맛이었다.

    “이제 배 좀 채웠으니까 짠, 해요! 짠!”

    희나는 신이 나서 맥주잔 두 개를 꼴꼴 채웠다.

    “좋은 날에는 술이 있어야지!”

    희원은 맞장구쳤고, 강진현은 의아하게 물었다.

    “희나 씨, 제 잔은 왜 안 따라 주십니까?”

    “진현 씨는 술 약하잖아요. 탄산음료 마셔요.”

    희나의 다정한 배려에 강진현의 눈 밑이 움찔거렸다.

    “저……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진현 씨, 지난번에 몇 잔 못 마시고 취해 버렸잖아요.”

    “제가 몇 잔 못 마신 게 아니라 희나 씨가 너무…….”

    “제가, 뭘요?”

    강진현은 어쩐지 몹시 억울한 듯 무어라 입을 뻥긋거리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아닙니다. 탄산 주십시오.”

    “잘 생각하셨어요.”

    “……고맙습니다.”

    쨍!

    잔 세 개가 맑은 소리와 함께 부딪쳤다.

    “크!”

    희나는 맥주 한 잔을 단박에 비워 냈다. 그리고 맥주잔을 식탁 위에 내려놓고 활짝 웃었다.

    “아까 소식 전했지만! 박쥐 던전이 정리됐고, 던전 브레이크도 해결됐대요! 이제 민간인 사상자도 더는 없고요.”

    희원도 기쁜 낯을 했다.

    “잘됐어. 이제 거기도 맘 놓고 살 수 있겠지. 보고서 보니까 몬스터들 때문에 육지와 교류도 거의 못 하고 있던데 말이야.”

    “히히.”

    잠깐의 변덕에 가까운 마음으로 결정한 던전 안정화였다.

    아마 공략이 조금이라도 까다롭거나 던전 등급이 높았다면 선택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등급과 공략법이 날파리 던전이랑 같았지.’

    그 덕에 스스럼없이 던전 공략에 도전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전력인 강진현이 희나의 뜻에 기껍게 따라 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고마워요. 진현 씨 없었으면 일을 시작도 못 했을 거예요.”

    희나는 고마움을 담아 강진현의 빈 잔을 채워 주었다.

    “천천히 마셔요. 오늘은 많이 마시는 날 아니니까.”

    탄산을 따라주며 선심 쓰듯 말해 주자, 강진현의 어깨가 시무룩하게 내려갔다.

    그는 묘하게…… 애석해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몬스터를 해치우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두 분의 능력이 없었다면 던전 안정화는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에이, 뭐 이런 거 서로 공을 따지고 그래? 우리 셋 다 잘한 거지!”

    희원이 낄낄거리며 절인 알배추 잎을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어느새 희원의 웃음이 전염된 듯, 희나도 따라 큭큭 웃었다.

    강진현 또한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던전 클리어는 수도 없이 해 보았는데, 이렇게 개운한 기분이 드는 건 처음이군요.”

    “그런가요?”

    “예. 사실 대부분의 헌터들은 끊임없는 쳇바퀴를 도는 기분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아무리 애를 써서 던전을 클리어해도, 다음 주기가 되면 또다시 같은 전투를 치러야 하니까요.”

    “아…….”

    “하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우리가 클리어한 던전은 다시 리셋하는 일이 없겠죠. 갑갑한 고리를 완전히 끊어 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요?”

    “알 것 같아요.”

    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언제까지 아등바등 던전에, 몬스터에 시달리며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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