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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41화 (141/228)

던전 안의 살림꾼 141화

가만히 듣고 있던 강진현이 입을 열었다.

“희나 씨 말에 틀린 부분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음.”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강진현은 무엇인가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으나,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강진현이 입을 다물자 희원이 식탁 위에 놓은 얄팍한 감정서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근데 우리한테 뭔가를 맡길 거면 상황 설명이라도 제대로 해 줘야 하는 것 아니야? 거참.”

희나도 입을 삐쭉거리며 투덜거렸다.

“왜 이렇게 일을 꼬아서 한담? 뭔가 제대로 가르쳐 주면 좋겠는데…….”

중얼거리는 순간,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대체로 그 예감은 잘 들어맞았다.

희나는 입을 뜨악 벌렸다.

퀘스트 설명은 복잡하지 않았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알아야죠!(E): 어쨌든 중요한 건 복습이죠. 복습하면서 무엇인가 새로운 힌트는 없을지 찾아봅시다.

▶필수 퀘스트 (0/1)

- 공간의 씨앗을 심고 시스템 에러 해결하기

※ 시간제한: 퀘스트 수락 시점으로부터 72시간

※ 퀘스트 불이행 시 불이익: 쪼잔한 협박이지만…… 극심한 탈모가 찾아옵니다.

※ 퀘스트 보상: 아는 것이 힘이다! 세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경험을 얻습니다.

※ 퀘스트 실패 시 불이익: 역시나 쪼잔하게도…… 극심한 탈모가 찾아옵니다.

※ 파티원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 부가 퀘스트 (0/1)

- 선생님의 깊은 말뜻을 이해하기>

설명이 다소 달라지긴 했지만 결국 지난번 퀘스트와 내용은 똑같았다.

거기다 시스템 불이행 시 불이익에 관한 멘트는, 아주 사심이 가득했다.

“쪼잔한 시스템 자식! 이젠 감추지도 않네! 대머리라니!”

희원은 길길이 날뛰었다.

예전에는 은근슬쩍 감추는 척이라도 했는데, 이제는 대놓고 협박이었다.

희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이건 할 수밖에 없겠는데요?”

* * *

희나는 거대한 토끼를 향해 신문지를 휘둘렀다.

“이야아아압!”

앞치마에, 머릿수건에, 돌돌 만 신문지……. 거기다 일견 허름해 보이기까지 하는 품새였다.

하지만 그 위력은 엄청났다.

쿠구구궁! 땅 울리는 소리와 함께 반경 20m가 초토화되었다.

더불어 집채만 한 크기의 얼룩 토끼…… 아니, 보스 몬스터 또한 묵사발이 되어 사라졌다.

왕 큰 만큼 왕 귀여운 외양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그 안에 든 건 징그러운 진흙 괴물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주저는 없었다.

“아이고, 나 죽네.”

희나는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옆구리에 차고 온 도시락 통을 주섬주섬 열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온 주먹밥을 입안에 욱여넣었다.

희나는 커다란 참외만 한 크기의 주먹밥을 두 개나 먹어 치운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으아, 좀 살겠다…….”

스킬을 시전한 후 찾아오는 탈력감을 해결하는 데는 역시 밥심 스킬이 최고였다.

‘착장 버프까지 받아서 그런가, 먼젓번보다는 훨씬 할 만하네!’

지난번 모기 던전에서는 대청소 스킬 한 번에 나가떨어졌는데, 오늘은 미리 준비를 해 둔 덕에 그나마 멀쩡했다.

“이야아아아!”

한편, 희원은 동생의 엄청난 활약에 기쁨을 참지 못했다.

저 멀리 떨어져 전투를 구경하던 그는 후다닥 다가와 희나의 승리를 축하해 주었다.

“풉……, 푸흡. 희나야, 너 되게 멋있다. 시, 신문지로, 크흐, 보스 몹을…… 풋.”

……아마도, 기쁨의 웃음일 테다.

“훌륭합니다.”

필드를 마저 정리하고 온 강진현도 희나의 활약을 칭찬해 주었다.

“여기, 마석입니다.”

그는 희나의 손 위에 반짝거리는 보석을 우수수 떨어뜨렸다.

E급 던전의 마석인 터라 작았다. 하지만 투명도를 보니 꽤 질 좋아 보이기도 했다.

“희나 씨가 잡은 몬스터니, 마석도 희나 씨 것입니다.”

“우와…….”

희나는 작게 감탄하며 손바닥 위에 소복이 쌓인 마석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잡은 몬스터의 마석이라니.’

혼자만의 스킬로 잡은 몬스터라 그럴까? 감회가 새로웠다.

“이 정도면 너 전투계로 돌려도 되는 거 아니야?”

희원이 킬킬거리며 마음에 없는 소리를 했다.

“헛소리는.”

희나는 그런 오빠를 흘기며 마석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는 자리에서 영차, 몸을 일으켰다.

“이제 거울 나무한테 마석 주러 가자.”

이제 퀘스트도 거의 마지막 단계였다.

지난번처럼 비쩍 마른 나무에게 보스 몬스터 마석을 비료로 주고,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됐다.

“아, 맞다. 마지막에는 검은 달팽이도 다시 봐야 하네. 다시 만나면 이름 지어 주기로 했는데……. 뭐로 지어 준다?”

“혈마지존 같은 이름 좋아할 것 같은데.”

오빠의 제안에 희나는 얼굴을 팍 찌푸렸다.

“윽.”

하지만 희나의 취향과는 별개로 달팽이가 그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건 절대 안 돼!”

희나는 눈을 부릅뜨며 그 이름은 절대 입 밖에 꺼내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돌풍과 함께 시스템 창이 반짝였다.

“오, 됐다.”

희원이 거울상 나무의 상태를 확인했다.

100%로 완성된 거울상 나무는 어느새 생기를 얻어 푸릇함을 뽐내고 있었다.

반대쪽 던전에서 바둑이가 키워 낸 나무와 똑같은 모양이 되었다.

“나무들의 뿌리가 이어지면서 균열을 막고, 시스템 에러를 해결해 준다…… 이 말이지?”

되뇌듯 중얼거리자 시스템 창이 떴다.

희나는 입을 삐쭉였다.

‘직접 설명해 주지도 못하는 주제에 재수 없어.’

이놈의 시스템은 날이 갈수록 못 미더워졌다.

그 뒤로 강진현이 다가왔다.

“희나 씨, 달팽이 데려왔습니다.”

그는 달팽이를 껍데기째로 들고 있었다.

껍데기 아래의 탱글탱글한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크으읏! 빛이라니!」

「어둠! 어둠이 필요하다!」

달팽이는 태양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문 앞에서 의견 충돌이 생겨 어쩔 수 없이 강압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데, 데려오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희나는 미안한 표정을 하며 검은 달팽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주었다.

「큿, 어둠…… 어둠이다!」

검은 달팽이는 섬광처럼 달려서 희나가 만든 손 그림자 아래로 들어갔다.

「나의 영원한 안식처, 어.둠.」

콘셉트 한번 확실했다.

달팽이는 뒤늦게 위엄을 차리고 안테나를 거만하게 휘둘렀다.

「인간이여, 감히 본좌를 불러낸 까닭이 무엇인가?」

“네가 우리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주는 통로를 열어 줘야 하니까. 부탁할게.”

“안 열어 주면 계속 널 귀찮게 굴 거다.”

희원이 깝죽거렸다. 어쩐지 달팽이의 동그란 머리통에 혈관이 솟은 것 같았다.

「갈! 당장 꺼져라!」

검은 등껍질 달팽이는 호방하게 본래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희나는 희원과 검은 달팽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빠랑 은근…… 죽이 잘 맞는데?’

지난번에도 희원이 약을 올리니 금세 문을 열어 주지 않았던가……?

물론 왼쪽 안테나에 흑염룡을 품은 달팽이와 수준이 꼭 맞는 게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문을 열었으니 빨리 돌아가라, 인.간.」

“응, 알았어. 이제 갈게. 대신 이거 하나만 정하자.”

「무엇을?」

“이번에 오면 네 이름 지어 주기로 했잖아. 내가 생각해 봤는데……”

“반휘혈 어떠냐? 반휘혈?”

희원이 불쑥 끼어들었다.

‘미친.’

엄청난 센스에 희나는 오소소 돋아난 소름을 쓸어내렸다.

「……그럴싸한 이름이로군.」

놀랍게도 달팽이는 반휘혈이라는 이름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아니, 달팽이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마음에 들어 할 만한 이름이긴 했다.

「마음에 드는군!」

「너는 경박한 인간이지만, 작명 하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앞으로 본좌를 반.휘.혈.이라고 부르도록.」

「큭. 핏빛 아우라가 새어 나오는군.」

“아, 안 돼.”

희나는 저도 모르게 손을 떨었다.

‘저’ 이름을 도저히 맨정신으로 부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 다, 달팽이야…….”

「반.휘.혈.이라고 불러라.」

달팽이는 의기양양하게 안테나를 뾰족 세웠다. 도무지 마음을 바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결국 희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차선책을 제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름 세 글자는 너무 기니까 두 글자만 하자.”

「두 글자라면?」

“바, 반휘라고만 부르자.”

반휘혈은 못 참아도 반휘 정도면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흠. 나는 피 혈(血) 자가 들어간 게 마음에 드는데.」

‘으악!’

희나는 울상을 지었다.

「그.러.나.」

「내면에 도사린 어둠이야말로 진정한 어둠.」

「드러난 공포는 더는 공포가 아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피를 뜻하는 ‘혈’ 자는 숨겨 마음에 품는 것이 낫다는 소리겠지…….」

절대 그런 뜻으로 제안한 건 아니었지만, 그리고 절대로 그 의견에 동의해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것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길이라면 눈 딱 감고 거짓말하는 쪽이 나을 것이다.

“어, 어……. 그래. 그러자. 네 말이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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