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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40화 (140/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40화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네요. 공간의 조각이 우리랑 연관되어 있다는 것 하나만 확실하게 알아낸 거고.”

    별것 아닌 정보처럼 보였지만, 나름 진전이라면 진전이었다.

    공간의 조각에 대한 의심이 확신이 되었으니까.

    그야말로 헌터넷의 정보를 주무르는 원덕삼 아니면 절대 내려 줄 수 없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다.

    ‘좀 더 정보가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에 입술을 비쭉이는 희나의 모습에 원덕삼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대, 대신! 제가 그 ‘공간의 조각’이라는 것을 찾아왔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남매의 고개가 퍼뜩 올라갔다.

    눈이 별처럼 초롱초롱 반짝이고 있었다.

    “오호?”

    “그런 중요한 말을 이제 하면 어떻게 해요!”

    * * *

    오색이는 희나를 따라다니며 재촉했다.

    「유료!!! 재화!!!」

    「과금을 허락하라! 허락하라!」

    「쑈 미 더 머니!」

    정확히 말하자면, 오색이는 바둑이를 올라타고 말처럼 부리며 희나를 쫓아다녔다.

    「이랴!」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한푼만~ 한푼만~!」

    그러면서 공간의 조각을 조르는 일도 잊지 않았다.

    남매는 탐욕스러운 달팽이의 모습을 뜨악하니 바라보았다.

    “오색아! 진정 좀 해! 진정!”

    “저거에 꿀 발라 뒀나?”

    하긴, 생각해 보면 처음으로 공간의 조각을 보았을 때도 그랬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라도 발견한 것처럼 온 힘을 다해 기어가 공간의 조각을 사수하지 않았던가!

    “꼭 당장 사용할 필요는 없잖아. 이것도 감정 좀 받아 보고 쓰자, 응?”

    「……ㅇㅋ」

    희나의 간곡한 설득에 오색이는 넘어가는 듯 보였다.

    「아니 근데!」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으애애애애애앵! 못 참겠음( ˃̣̣̥᷄⌓˂̣̣̥᷅ )」

    달팽이는 한참 동안 텍스트로 울부짖었다.

    듣는 게 아니라 보는 건데도, 이상하게 고막이 아팠다.

    “크흠, 흠.”

    희나는 오색이의 칭얼거림을 애써 외면했다.

    그러면서 나머지 한 손에 든 은빛 동전을 내려다보았다.

    <공간의 조각(Hidden): 인맥으로 얻어 낸 공간의 조각. 과금의 짜릿함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소유주: 이희나)>

    이전 내용과 별다를 바 없는 설명 창이 떴다.

    참고로 희나에게 귀속되기 전에는 별다른 설명도 안 붙어 있었다.

    <공간의 조각(???): 공간의 조각.>

    이름을 제외하면 아무런 정보값도 나와 있지 않은 이런 불친절한 설명이 다였다.

    보고 있자니 원덕삼의 생색 어린 목소리도 떠올랐다.

    ‘인도네시아에서 힘들게 공수해 온 겁니다. 상부 기관에 맡긴다는 거, 겨우 설득했다는 사실 정도만 알아주시면 됩니다. 헤헤.’

    일단 급하게 수소문해 구할 수 있는 건 이거 하나였고, 나머지도 힘써 보겠다고 손바닥을 싹싹 비볐다.

    희나는 콧잔등을 긁적였다.

    ‘아저씨 없었으면 힘들 뻔했어.’

    희원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유의 미확인 던전 부산물은 국가 간 거래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일단 공식적인 루트로는 말이다.

    당연히 원덕삼은 비공식적인 방식을 사용하여 공간의 조각을 구해 왔다.

    비공식적인 방식이라니!

    그러니까 불법 밀수라니!

    원래의 희나였다면 깜짝 놀라 손을 덜덜 떨었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희나는 크게 놀라지 않고 공간의 조각을 받아 들었다.

    몇 개월 사이 쥐똥만 하던 담력이 개똥만 하게 커졌는지도 몰랐다.

    * * *

    희나는 공간의 씨앗에 이어 공간의 조각을 최상훈에게 맡겼다.

    이 또한 비밀리에 감정을 진행할 것을 요청해 두었고, 최상훈은 흔쾌히 희나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정확히 말하면 희나가 준비한 3단 도시락에 홀랑 넘어가 버렸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심지어 최상훈은 도시락을 한 번 더 싸 준다면 두 물건의 감정 결과를 일주일 안에 알려 주겠다는 파격 제안을 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희나는 도시락을 한 번 더 싸 주고, 최상훈에게 감정서를 전해 받았다.

    “이거예요.”

    희나는 밀봉한 서류 봉투를 식탁 위에 탁, 내려놓았다.

    희원과 강진현의 시선이 모였다.

    「과금! 과금! 과금!」

    “오색아, 얌전히 있어야지.”

    「알겠…… 으아니! 과금!」

    오색이는 공간의 조각 앞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해롱거렸다.

    “바둑아, 오색이 데리고 앞마당 50바퀴만 돌고 오자.”

    희원의 말에 바둑이는 오색이를 낚아챘다.

    「깜놀!」

    「놓아라! 무엄!」

    오색이는 발버둥 쳤지만, 그래 봐야 달팽이였다. 움직이는 식물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챱챱챱! 타다닥!

    「끼-오-오-…….」

    결국 오색이는 바둑이의 잎사귀에 안겨 아련하게 멀어졌다.

    ‘우리 오색이, 과금 앞에서는 정신 못 차리는구나…….’

    희나는 오색이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다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럼 이제 펼칠게요.”

    빳빳한 서류 봉투에서 감정서를 꺼냈다.

    두툼한 봉투에 들어 있던 것치고는 감정서의 쪽수는 몹시 적어 보였다.

    “에이, 너무 적은 거 아니야?”

    희원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희나도 콧잔등을 찡그렸다.

    “꼬박 이틀 밤낮을 할애했다고 했는데…….”

    서류 봉투 넘겨줄 때, 눈가가 떨렸던 까닭은 피로 때문이 아니었던 걸까?

    ‘양심의 가책 때문인가?’

    그런 의심을 품을 찰나, 강진현이 나서서 설명했다.

    “아닙니다. 일반적인 아이템의 경우, 정보값을 많이 뽑아낼 수 있지만, 급수가 높아질수록 뽑아낼 수 있는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듭니다. 역시, 쉽지 않은 시도였나 봅니다.”

    희나는 ‘hidden’이라고 붙어 있던 공간의 조각 정보 창을 떠올렸다.

    “히든급이라서 더 정보가 적은 건가……?”

    “그런 듯합니다. 해석해 보면 S급보다 더 비밀스러운 등급이니까요.”

    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애당초 평범한 감정이 가능했으면 헌터넷에 이미 정보가 풀렸을 테다.

    S급 감정사의 도움을 받아 이 정도 정보라도 얻어 낸 게 다행이었다.

    “그럼 어디 한번 볼까요?”

    희나는 스스로 위안하며 감정서를 펼쳐 훑었다. 희원과 강진현도 희나의 양옆에 바짝 붙어 열심히 시선을 움직였다.

    설명 앞부분은 희나가 볼 수 있던 상태 창 내용 그대로였다.

    빠르게 시선을 내려 추가된 문장들을 읽어 내렸다.

    우선 공간의 조각에 대한 추가 설명은 이랬다.

    [공간의 조각은 부족한 것을 채워 보수하는 성질이 있다. 특히 고질적 시스템 에러를 해결하는 데 좋다.]

    이 조각이 시스템 에러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소리였다.

    여기서 시스템 에러란, 희나의 홈 스위트 홈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뜻하는 것 같았고.

    “흐음.”

    희나는 눈을 내려 공간의 씨앗에 대한 설명을 마저 읽어 내렸다.

    [공간의 씨앗은 ‘공간의 조각’의 정수라고 볼 수 있다. 씨앗을 올바른 방법으로 키우면 ‘공간의 나무’가 자라난다. 공간의 조각으로 주택을 보수했던 것처럼, ‘공간의 나무’는 차원 간 시스템 에러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사실 썩 새로운 내용들은 없었다.

    원덕삼의 정보와 마찬가지로, 이미 눈치챈 내용을 확실히 해 주는 정도였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긴 해. 추측이랑 확신은 다르니까.’

    희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그 아래 문단을 손으로 짚었다.

    “이건 처음 보는 내용이네요.”

    ‘시스템 에러’에 대한 부가 설명이 쓰여 있었다.

    [시스템 에러는 균열과 손실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작게는 한 공간에 단순 이상이 생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며, 시스템 균열이 커질수록 그 문제는 심각해진다. 특히, 균열 틈새로 차원 바깥의 괴생명체가 유입되는 경우에는 □□□ □□□…….]

    “음.”

    “흐음…….”

    “이건.”

    셋은 각자 신음을 내뱉었다.

    파르르, 감정서가 흔들리며 종이 위에 붙어 있던 노란색 포스트잇 한 장이 팔랑팔랑 떨어졌다.

    포스트잇에는 힘 있는 필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미안하다. 이게 내 최선이었다. 이 뒷부분은 내게도 표시되지 않는구나. 내용을 추측해 함부로 채워 넣을 수는 없어 빈칸이 보이는 대로 입력해 두었다.]

    그랬다.

    감정서의 뒷부분은 빈칸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앞부분 설명을 제외하면 빈칸만 가득했다.

    무슨 글자가 있긴 하나, 감정사인 최상훈이 읽지 못하는 부분이라는 의미였다.

    “으아아…….”

    희나는 머리를 쥐어 잡았다.

    제일 중요한 부분이 공란이라니!

    그런 희나를 위로하듯 강진현이 어깨를 조심스레 토닥였다.

    “하지만 새 키워드는 얻었습니다. 시스템 에러와 균열.”

    비록 그 설명이 몹시 모호한 데다가 뒤가 끊겨 있긴 했지만…….

    ‘이 정도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

    희나는 금세 정신을 추스르고 가장 중요해 보이는 구절을 짚었다.

    “균열 틈새로 차원 바깥의 괴생명체가 유입될 수 있대요. 이 뒤는 알아볼 수 없지만, 이건 좀 위험해 보이네요.”

    “그렇습니다만…… 이 괴생명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희원이 음, 하고 턱을 짚었다.

    “벌레 같은 거 아닐까? 우리 지난번에 해충 방제 시스템 빵꾸 나서 날벌레들이 잔뜩 날뛰었잖아.”

    하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벌레들이 집 안을 어지럽혔다.

    희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미간을 찡그렸다. 조금 무서운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말도 그럴싸해. 그런데…… 이거 우리 집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던전에도 해당하는 거라면?”

    “던전?”

    “우리 지난번에 퀘스트로 갔던 던전 있잖아. 그때 시들시들한 나무에 마석 바쳤더니 시스템 메시지가 많이 떴었는데…… 그때도 균열이니, 구멍이니 하는 소리가 나왔던 것 같아.”

    그러면서 나무뿌리가 균열을 막았다는 설명도 나왔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대충 보고 넘겼는데, 지금 와서 보니 조금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했다.

    “두 개의 거울 던전 사이에 균열이 있어서 문제가 생기니까 우리한테 해결시키려고 시스템이 퀘스트를 내린 거네.”

    확실한 부분만 정리하니 이 정도였다.

    이를 듣던 희원이 불쑥 중얼거렸다.

    “천하의 시스템이 쪼잔하게, 탈모로 협박을 한다고?”

    “요즘 시스템 하는 것 보면 그럴 만도?”

    “……그러게.”

    희원은 시스템의 순 양아치 같은 행태를 떠올리고는 금방 납득했다.

    그러자마자 뭔가 허공에 빈 창이 반짝인 것 같았지만…… 착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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