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안의 살림꾼-133화 (133/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33화

    “아무튼, 이 집을 마석 먹는 하마로 만들 수는 없다 이 말이에요.”

    「따하윽.」

    희나는 이상한 문자열을 날리는 오색이의 머리통을 통통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진현이 입을 열었다.

    “그럼 남은 방법은…….”

    “네.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죠. 공간의 조각으로 홈 스위트 홈 하자를 완전히 고치는 선택지 말이에요.”

    “공간의 조각은 던전에서 우연히 얻은 거잖아? 우리가 원한다고 그게 막 나오나?”

    희원이 묻기에 희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하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우선 공간의 조각에 대해 좀 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정하는 건 어때?”

    목표 기한은 마석 서비스가 끝나기 전, 그러니까 넉넉잡아 넉 달가량.

    희나는 그 안에 최대한 정보를 얻어 무엇인가 방도를 찾아낼 예정이었다.

    「따흐……!」

    “쉬, 조용히 하자. 오색아.”

    「……흡.」

    이대로 오색이도, 집도 잃기는 싫었으니 뭐라도 노력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얼마 후, 희나는 정보상 원덕삼에게 연락했다.

    - 여보세요? 희나 아가씨,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원덕삼은 호들갑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희나가 먼저 연락을 해 온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씀하십시오! 이 미스터 원! 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무엇이든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아, 요새 같이 일하는 동료분 성격이 썩 좋아 보이진 않던데…… 주먹맛 좀 호되게 보여 줄깝쇼? 물론 이건 무료 서비스입니다.

    그는 친절한 어조로 뒤 세계 사람다운 섬뜩한 소리를 했다.

    “아, 아뇨. 그럴 필요까진 없어요. 제가 왜 사람 때리라고 시키겠어요!”

    희나는 원덕삼이 유한이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신변을 가까스로 지켜 냈다.

    원덕삼은 순식간에 말을 바꿔 허허 웃었다.

    - 하하, 농담으로 꺼낸 말이었고말고요. 하긴 저 같은 놈 목숨까지 살려 주셨던 분이 폭력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역시 물에 빠져도 입은 동동 뜰 것 같은 타입이다.

    희나는 그의 수다를 대충 잘라 내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 의뢰할 게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원덕삼이 뛸 듯 기뻐했다.

    - 오! 드디어 제가 무언갈 해 드릴 수 있게 되었다니! 기쁩니다!

    그는 줄곧 자신의 ‘쾌변의 수호자’에게 무언가를 해 주지 못해서 안달이었으니까…….

    “뭘 좀 찾아 주셨으면 해서요. ‘공간의 조각’이라고, 은색 동전 모양의 던전 부산물이에요.”

    - 음. ‘공간의 조각’이라니, 처음 들어 보는 물건이군요.

    희나는 공간의 조각에 대해 아는 만큼 설명했다.

    던전에서 얻을 수 있고, 희나의 홈 스위트 홈에 필요한 일이 생겨서 찾게 되었다…….

    “……이 정도예요.”

    - 아. 그, 그 정도입니까?

    원덕삼이 말을 좀 더듬었다. 정보가 생각보다 많이 부족했나 보다.

    ‘그나마 아저씨가 내 홈 스위트 홈 스킬을 알고 있으니 이 정도라도 얘기했지, 아니었더라면 말해 줄 수 있는 게 거의 없었겠는걸.’

    희나는 그에게 공간의 조각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 정보를 싸그리 모아 달라고 했다.

    “물론 공간의 조각을 직접 얻을 수 있다면 더 좋아요.”

    그래 준다면 화장실 사용권을 추가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하니 원덕삼의 목소리에 영혼이 실렸다.

    -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방문 횟수를 열흘에 한 번 정도로 제한하고 있었는데, 역시 변비인에겐 턱도 없이 부족한 횟수였나 보다.

    “기한은 한 달 정도 드릴게요. 좀 부탁드려요.”

    - 그럼요. 이 미스터 원을 믿으십시오!

    이렇게 통화는 마무리되었다.

    * * *

    희나가 원덕삼에게 공간의 조각 정보를 의뢰하는 동안, 희원은 던전 앞마당에 나와 흙을 뒤집어 팠다.

    “찾았다, 희나야!”

    희원이 □□□ □□, 아니, ‘씨앗’ 하나를 찾아 흔들었다.

    공간의 조각을 사용하면 씨앗 하나가 생겨났다. 그리고 이 씨앗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 □□: 씨앗.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일단 땅에 심어 볼까? (능력치 부족으로 정보를 완전히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름도, 정확한 정체도 알 수 없었다.

    과거 희원은 설명 창의 지시에 따라 씨앗 두 개를 차례로 던전 앞마당에 심어 둔 바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바둑이의 금가루를 맞아 성장해 공간의 나무가 됐고, 나머지 하나는 싹이 트지 않았다.

    희나 남매는 그것을 기억해 내고 남은 씨앗 하나를 찾아 마당을 뒤졌다.

    공간의 조각에 대한 정보가 조금이라도 더 필요한 지금, 어쩌면 그 씨앗도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으리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공간의 조각을 사용하고 남은 찌꺼기니까 뭔가 연관이 있겠지.’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씨앗을 찾아냈다.

    “설명 창 좀 보자.”

    희나와 희원, 강진현은 머리를 맞대고 모여 씨앗의 설명 창을 확인했다.

    남매의 능력치가 예전보다 올라서 그런지 이번에는 설명이 제대로 떴다.

    <공간의 씨앗: 공간의 조각을 사용한 후 생성된 씨앗. 적절한 던전 토양에 심고 적절한 영양을 공급하면 싹을 틔운다.

    *던전 정보값: (37.631748, 127.108197)>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강진현도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셋은 흙투성이 씨앗을 거실로 가지고 들어와 수군수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생각엔 주어진 정보값에 해당하는 던전 토양에 이 씨앗을 심어야 싹이 튼다는 의미 같습니다.”

    희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난번 공간의 나무 설명은 이런 식으로 쓰여 있었어요. 굉장한 우연으로 적절한 토양에 심어져 싹틀 수 있었다고요.”

    씨앗을 우연히 정보값에 맞아떨어지는 던전에 심었다, 이 말이었다.

    정말로 대단한 우연이었다.

    아마 희나의 행운 스탯이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확률의 농간!

    “아무튼, 그럼 설명 부분은 해결했고.”

    희나는 끙, 하고 설명 창을 뜯어보았다.

    37.631748, 127.108197이라는 숫자가 나열되어 있었다.

    “이 이상한 숫자는 뭐람? 좌표인가?”

    희나의 중얼거림에 곰곰이 생각에 빠져 있던 강진현이 고개를 퍼뜩 들었다.

    “그렇군요. 좌표……, 좌표인 듯합니다.”

    “좌표?”

    남매의 시선이 강진현에게 쏠렸다. 설명을 해 달라는 의미였다.

    “위도, 경도 조합으로 지구상 위치 정보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의 설명에 희원이 맞장구를 쳤다.

    “진현이 말이 그럴싸하네. 그나저나 위치는 어떻게 찾지? 이런 숫자로 위치 찾는 법은 모르는데…….”

    이에 희나가 휴대전화를 들고 흔들었다.

    “한번 검색해 볼까?”

    올바른 현대인이라면 정보의 바다에 기꺼이 뛰어들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삼십칠 점 육삼……일칠……사팔. 그리고 백이십칠 점 일공팔……일구칠.”

    희나는 휴대전화를 들어 숫자를 입력한 후, 검색 버튼을 눌렀다.

    검색 결과는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이네! 이거 지도 좌표였나 봐요!”

    결과는 딱 하나 떴고, 그건 지도상의 어느 위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희나는 흥분해서 휴대전화 디스플레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여기가……. 음. 지명을 보니까 한국이네.”

    근처에 태릉이라는 지명이 보였고, 뭔가 넓은 공터 한복판에 있어 위치를 어디라고 딱 집어 말하기엔 애매했다.

    “태릉이면 아주 옛날에 선수촌 있던 데 아닌가?”

    희원이 까마득한 옛 기억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건 세상에 ‘게이트’가 나타나기 전의 이야기였다.

    예전엔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지금은 뭐가 있지? 근처에 시가지도 별로 안 보이고…… 비어 있는 구역 같은데.”

    한편, 희나 옆에 앉아 지도를 뚫어져라 보고 있던 강진현이 불쑥 입을 열었다.

    “……태릉 부근에 유명한 던전이 하나 있습니다. 위치를 보니 그곳인 듯합니다. 아니, 그곳이 맞습니다.”

    “진현 씨 아는 던전이에요?”

    “예. 희나 씨도 아는 던전입니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도 아는 던전이라고요?”

    “예. 혹시 토끼 던전, 기억하십니까?”

    “……네.”

    희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푸르른 동산에서 귀여운 토끼를 후려치고 다녔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했다.

    ‘귀여운 토끼가 순식간에 징그러운 진흙 몬스터로 변하던 장면도 생생하게 기억나.’

    희나의 해충 박멸 스킬 퀘스트를 위해서 강진현과 함께 자주 들락날락했던 던전이었다.

    “거기가 여기, 태릉 던전이었어요?”

    물음에 강진현이 그렇다고 대답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국내에서 가장 안전하기로 손꼽히는 던전 중 하나입니다. 보스 몹 활성화 주기가 2개월인 데다가 공략이 쉬워 초보 헌터들의 연습터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요?”

    계속 말을 이어 가다 멈칫하기에, 그 까닭을 물으니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말이 헛나왔습니다.”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순간이었지만 희나는 상황을 매너 좋게 모른 척 넘겨 주었다.

    “알았어요. 그럼 그 토끼 던전에 이 씨앗을 심고 바둑이가 비료를 주면 나무가 자란다, 이 말이겠네요?”

    “그랬다가 또 대머리 되는 퀘스트를 받을 수도 있겠지.”

    희원이 또다시 걱정하기에,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오색이가 그를 위로해 주었다.

    「대머리가 어때서~ 맨들맨들 시원키만 하다~」

    ‘어떻게 보면 달팽이도 대머리는 대머리지…….’

    희나는 모른 척 시선을 돌렸다.

    “아무튼 그건 나중 일이고……. 일단 심어 보기보단 감정부터 받아 보자.”

    애당초 공간의 조각 때문에 공간의 씨앗을 조사해 보기로 한 것이니, 심는 것보다는 정보를 캐내는 게 우선이었다.

    조사 방법은 미리 논의해 두었다. 청룡 길드의 최상훈 감정사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내일 출근해서 상훈 아저씨한테 부탁해 볼게.”

    강진현의 말에 따르면 최상훈은 입이 무거운 사람이었다. 전 세계에 단 세 명뿐인 S급 감정사였다.

    그는 자기의 한마디가 얼마나 무게 있는지 아는 사람이므로 아무에게나 허튼 말을 흘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하는 것도 좀 미안하긴 한데…….’

    하지만 민망하다는 이유로 집 문제를 눈감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거기다 나도 이 상황을 좀 파악해야겠어! 매번 시스템한테 휘말리는 느낌이야.’

    뭣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것도 한두 번이었다.

    이제는 공간의 조각이 뭔지, 또 공간의 씨앗은 또 무엇인지 알아내어 휘둘리더라도 뭐라도 좀 알고 휘둘리고 싶었다.

    시스템이 희나 남매에게 끊임없이 이상한 계약과 에러, 퀘스트를 넘기는 이유도 있을 테다.

    던전 안의 살림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