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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31화 (131/228)

던전 안의 살림꾼 131화

‘이번에는 복잡한 설명을 들어야 하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야. 말 그대로 환영 인사만 받으면 되는 거였구나.’

「뀨웅 ′ㅅ′」

퀘스트를 하러 떠났던 희나가 제법 걱정이 되긴 했는지, 오색이는 동그란 머리통을 흔들거리며 평소에 잘 보여주지 않던 귀염까지 부렸다.

“역시 우리 오색이가 제일이야.”

희나는 시니컬했던 검은 등껍질 달팽이를 떠올리며 오색이를 품에 안아 둥가둥가 했다.

“……드디어 퀘스트 최종 완료 떴다.”

강진현이 건넨 물로 입을 헹궈 낸 희원이 몹시 지친 어조로 중얼거렸다.

고된 임무 때문이 아니었다. 이 피로의 9할 9푼은 공간 이동 때문이었다.

희나도 퀘스트 창을 띄워 그 내용과 완료 여부를 찬찬히 살폈다.

<즐거운 거울 세계 탐방!(D): 짝을 찾지 못한 불쌍한 ‘공간의 나무(50%)’를 완전하게 만들어 주고 싶지 않나요? 끊어진 두 거울 공간을 이어 줍시다.

선행도 하고 거울 세계도 탐방하고! 그야말로 일석이조! 파티원을 모아 함께 퀘스트를 즐기는 것도 가능합니다.

(파티원: 이희나, 이희원, 강진현)

▶ 필수 퀘스트 (3/3)

- 거울 세계로 떠나기 (완료!)

- 튼튼한 나무 키우기 프로젝트 (완료!)

- 원래 세계로 귀환하기 (완료!)

▶ 부가 퀘스트 (1/1)

-즐겁게 거울 세계 탐방하기 (대성공!)>

모든 필수 퀘스트와 부가 퀘스트에 완료 표시가 떴다.

덩달아 축하 메시지가 뾰롱뾰롱 올라왔다.

“와, 정말 귀찮고 번거로운 데다가 보상까지 쓰잘 데기 없는 퀘스트였다.”

희원은 성격 좋은 그답지 않게 퀘스트를 혹평했고.

……시스템 창은 이상할 정도로 흥이 나 보였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촌스럽고 이상한 구호까지 외쳤으니까.

“그래도 퀘스트 기간 사흘 준 것치고는 엄청 빨리 끝냈어. 아침에 출발했는데, 아직 저녁 시간도 안 됐잖아.”

희나는 그나마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어쩔지 몰라서 회사에 연차 써 뒀는데, 이 정도면 그냥 취소하고 출근해도 되겠다.”

그러면서 다음 날 출근까지 계획했다.

강진현은 회사원 생활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지만, 희나의 태도가 괴이하다는 사실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아닙니다, 희나 씨. 쉬어야 합니다.”

“하지만 멀쩡한걸요?”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네가 지금 멀쩡하지 않다는 뜻 아닐까?”

희원도 옆에서 강진현을 거들었다.

그도 부지런 하면 어디에 내놔도 빠지진 않지만, 출근을 기껍게 여길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그런가……? 오빠랑 진현 씨 말대로 며칠 쉴까?”

희나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요즘 희나는 회사 가는 게 부쩍 재미있었다.

과거의 자신에게 ‘넌 앞으로 회사 다니는 걸 즐기게 될 거야.’라고 이야기해 준다면 아마 과로에 치이다 못해 미쳐 버린 사람 취급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은 적성에 맞고, 업무량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나를 좋아해 주는 회사 사람들이 있는걸.’

커다란 개인 사무실과 작업실이 있는 것도 좋았다.

거기다 작은 호의에도 뛸 듯이 반가워하는 헌터들을 보면 절로 뿌듯함이 차올랐다.

특수 농작물 연구 개발도 적응하니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아무튼, 지금 직업 만족도 최상!’

근면 성실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오는 즐거움과는 또 다른 기쁨이었다.

“새 스킬을 사용하다 한 번 혼절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회복 추이를 확인해야 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저도 희나 씨 출근할 때까지 안 나갈 겁니다.”

하지만 강진현이 아주 강경하게 출근을 반대했기에, 희나는 결국 항복 깃발을 흔들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이틀 휴가 생긴 셈치고 푹 쉬어요, 그럼.”

「♤참 잘했어요♠」

오색이도 이제야 안심이라는 듯 살랑살랑 안테나를 흔들었다.

* * *

10여 년 전, 게이트 사건이 터지기 이전에는 모든 자원이 수도인 서울에 몰려 있었다고 한다.

인구에서부터 인프라, 인적 자원까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지방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그 사건’이 일어난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수도권에 집중된 인구는 조금씩 분산되기 시작해서, 10년가량이 지난 지금에서는 불균형의 차이가 다소 메꾸어진 상태였다.

게이트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생겨났고, 게이트가 있는 곳엔 헌터가 모였다.

그리고 헌터들이 모인 곳에서 하나둘, 길드가 생겨났다.

길드에 가까이 위치할수록 게이트 발생 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이는 엄청난 메리트였다.

자연히 길드를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되고, 상권이 재개발되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밤바다 길드’는 내실 있는 중견 길드였다.

일찍이 여수 인근에 터를 잡은 터줏대감으로, ‘여수’ 하면 사람들은 자연히 ‘밤바다 길드’를 떠올릴 정도였다.

이 밤바다 길드가 관리하는 수많은 던전 중 하나가 바로 D급 비충류 던전.

온갖 날벌레 형체를 한 몬스터들이 산재한 탓에, D급이라는 비교적 낮은 등급에도 불구하고 공략 시 많은 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번거로운 던전이었다.

이 던전의 게이트 활성화 주기는 약 3개월.

즉, 한 분기에 한 번씩은 던전 클리어를 해 주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오늘은 D급 비충류 던전, 속된 말로 날벌레 던전이라 부르는 이곳의 던전 공략일이었다.

공략팀 멤버에는 던전 특성상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마법 계열 능력자가 다수 포진해 있었다.

그중 팀 리더는 C급 풍계 마법사인 황인하였다. 등급은 썩 높은 편은 아니지만 노련한 실력과 뛰어난 리더십을 지닌 헌터였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맡은 임무를 포기한 적이 없었고, 팀원을 두고 도망간 적도 없었다. 흔치 않은 의인이었다.

그런 황인하가 던전 공략을 떠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길드로 되돌아왔다.

“D급 비충류 던전 공략 최단 시간은 78시간이야. 거기다 길드에서 던전까지 오가는 거리만 해도 왕복 3시간인데…… 어떻게 벌써 돌아왔지? 임무에 차질이라도 생겼던가?”

길드장인 박웅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물었다. 임무를 중시하는 황인하답지 않은 처사였던 탓이다.

박웅의 물음에 황인하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게이트에 이상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박웅의 기세가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D급 비충류 던전은 생성된 지 5년이 넘은 던전으로, 활성화 주기가 국내에서 가장 안정적인 곳 중 하나로 꼽혔다.

그러니까 이말인 즉슨, 급작스러운 던전 브레이크를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다?’

제법 심각한 소식이었다.

‘최근 이상 사태가 속속들이 벌어진다는 자료를 받긴 했는데……. 이렇게 안정화한 던전에서까지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깊이 상념에 빠져든 박웅을 깨운 건 황인하의 단조로운 목소리였다.

“던전에 입장했습니다만, 이미 완전히 클리어된 상태였습니다.”

“던전 재활성화가 아직 덜 된 건 아니고?”

“아닙니다. 길드장님도 이틀 전 비충류 던전 활성화 관련하여 서면으로 보고받으시지 않으셨습니까?”

“음…….”

박웅은 침음을 흘렸다. 그는 기억력이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황인하가 한 말이니 틀린 소리는 아니리라.

“그럼 이틀 사이 마석과 부산물을 노린 누군가가 활성화한 던전에 침입해서 클리어했을 가능성은?”

“그 가능성 또한 없습니다. 던전 입구 CCTV를 모두 확인해 보았는데, 활성화 이후 외부인의 출입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녀의 단언에 박웅이 끄응, 머리를 짚었다.

“으음. 이게 무슨 일일꼬……? 일단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주변 경계를 강화해 둬.”

“알겠습니다.”

황인하는 깍듯이 고개를 숙인 후, 길드장실에서 벗어났다.

홀로 남은 박웅은 까슬까슬하게 수염 난 턱을 쓱쓱 문질렀다.

“이 건은 던전 관리청에 보고를 올려야겠어. 아무래도 헌터 생활 10년 동안 이런 일이 있었던 건 처음이란 말이지.”

9. S급 헌터와 살림꾼

“으! 배고파!”

희나는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시간이……?’

침대맡 디지털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막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헉. 엄청나게 잤잖아?”

퀘스트를 마무리한 후 집 안에 돌아와 잠깐 쉰다고 방에 들어왔는데, 그 뒤로 기억이 없었다. 그대로 잠든 듯했다.

‘대청소 스킬 쓰고 그대로 쓰러져 3시간이나 잤는데, 피로가 덜 풀렸었나 봐.’

아니면 정신적 피로라도 쌓여 있었던 걸까? 아무튼 강진현이 고급 포션을 다섯 병 먹인 보람이 없었다.

희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부엌으로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밤에 뭐 먹으면 안 되는데…….”

하지만 이것도 입으로만 하는 소리였다. 퀘스트 때문에 온종일 굶은 셈이라서 뭐라도 반드시 먹어야 했다. 적어도 희나는 그랬다.

때가 늦더라도 끼니를 거르는 것만은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 귀찮아.”

극한의 귀찮음이 희나의 발목을 잡았다.

찬밥조차 없는 데다 때맞춰 똑 떨어진 반찬. 뭘 먹으려면 번거롭게 불을 켜야 했다.

심지어 간편 야식의 대명사, 라면을 먹으려 해도 물을 끓여야 했으니…….

“누가 뿅 하고 밥 차려 주면 좋겠다. 라면이면 더 좋고.”

한숨과 함께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을 때였다.

“희나 씨?”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힉!”

크게 비명을 지르지 않은 건 순전히 상대의 잘생긴…… 아니, 상대를 안심시켜 주는 믿음직스러운 외양 덕분이었다.

“지, 진현 씨?”

아마 오빠인 희원이었다면 침착이고 뭐고, 손바닥부터 날아갔을 테지.

“미안합니다. 기척을 냈어야 했는데, 놀라셨겠군요.”

편한 티셔츠를 걸친 강진현이 미안한 듯 양손을 들어 보였다.

희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괘, 괜찮아요. 많이 안 놀랐어요. 그나저나 설마 저 때문에 깬 거예요? 완전 새벽인데.”

“아닙니다. 깨어 있었습니다.”

희나는 자기가 먼저 뻗어 버리는 바람에 강진현의 침상에 스킬을 써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 못 주무신 거구나! 침대에 스킬 걸어 드릴게요. 주무세요.”

허둥지둥 강진현을 끌고 그의 방으로 향하려 하던 그때.

꼬르륵.

텅 빈 위장이 아우성쳤다.

그 우렁찬 소리를 강진현 또한 못 들었을 리가 없다.

그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떤 라면, 좋아하십니까?”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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