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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30화 (130/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30화

    앙상했던 나무 주위로 붉은 기운이 맺혔다.

    나무에 생기가 피어올랐다. 붉은 기운이 나무의 물관을 타고 뻗어 나갔다.

    말라비틀어졌던 가지가 건강하게 뻗쳐오르고, 우울하게 처져 있던 나뭇잎은 싱그럽게 고개를 들었다.

    시들시들했던 나무가 완연히 피어오르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건강해졌네.”

    “힘도 넘쳐 보여!”

    “거울상 나무라더니, 과연 생김새도 같군요.”

    나무는 일행의 대화에 화답하듯 잎사귀 무성해진 나뭇가지를 하늘하늘 흔들어 보였다.

    퀘스트 완료 창도 팟 떠올라 반짝였다.

    “이제 다음 퀘스트를…….”

    희나는 퀘스트 창을 띄워 다음 퀘스트를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선수를 친 건 시스템 메시지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메시지가 이어졌다.

    그와 함께 나무를 중심으로 강한 돌풍이 불었다.

    쏴아아!

    바람이 사정없이 머리카락을 헤쳐, 희나는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마침내 바람은 멈추었고, 눈앞에 커다란 메시지가 번쩍 튀어 올랐다.

    “공간…… 보수…… 완료?”

    알 듯 말 듯 아리송한 문구였다.

    희나는 본능적으로 거울상 나무에 손을 뻗어 설명 창을 확인했다.

    <공간의 나무(100%): 올바른 장소, 비옥한 토양, 세심한 관리, 적절한 시기 등 기적 같은 우연이 겹치고 겹쳐 자라난 공간의 나무.

    쌍둥이 나무의 뿌리가 이어지며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 나무의 뿌리는 거울상 공간 사이에 뚫린 혼돈 구멍을 메꾸어, 고질적인 시스템 에러를 처리한다.>

    구구절절하던 설명이 한층 간단해져 있었다. 특정 클래스에게만 공개된다는 주의 문구도 사라졌다.

    ‘여전히 내용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지만…… 이젠 적어도 무슨 의미인지는 알아볼 수 있겠어.’

    이로부터 알게 된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뿌리가 끊겨 50%로 반 토막 나 있었던 공간의 나무가 100%로 완전해졌다.

    둘째, 두 그루의 쌍둥이 나무의 뿌리가 이어지며 시스템 문제 사항(아마 혼돈 구멍이라고 부르는 것)을 메꾸어 고쳤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은…….

    ‘이 모든 상황은 우리가 퀘스트를 통해 바친 D급 보스 몬스터 마석의 에너지 덕분에 해결되었다는 것?’

    강진현도 비슷한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시스템은 우리를 통해 던전에 생긴 오류를 해결하려 했던 듯하군요.”

    “어쩐지 이것저것 귀찮은 걸 많이 시키더라. 시스템 주제에 주절주절 할 말도 많아 보였고.”

    일행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나름의 결론을 도출하는 사이, 새로운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즐거운 거울 세계 탐방!(D): 짝을 찾지 못한 불쌍한 ‘공간의 나무(50%)’를 완전하게 만들어 주고 싶지 않나요?

    끊어진 두 거울 공간을 이어 줍시다. 선행도 하고 거울 세계도 탐방하고! 그야말로 일석이조! 파티원을 모아 함께 퀘스트를 즐기는 것도 가능합니다.

    ▶ 필수 퀘스트 (2/3)

    - 거울 세계로 떠나기 (완료!)

    - 튼튼한 나무 키우기 프로젝트 (완료!)

    - 원래 세계로 귀환하기

    ① 주택 관리자의 공간 활용 능력을 이용하여 원래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여세요.

    ② ???? (선행 퀘스트 완료 후 확인 가능합니다)

    ……>

    ‘원래 세계로 귀환하기’ 퀘스트!

    본격적인 퀘스트가 전부 종료되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니, 그야말로 반가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검은 등껍질 달팽이가 우리를 도와줄까?”

    헤아릴 수 없는 검디검은 어둠에 물든 ‘홈 스위트 홈’ 주택 관리자가 과연 이 과정을 기꺼이 진행해 줄지 여부였다.

    갑자기 숙연해진 분위기에, 희원이 손을 들며 나섰다.

    “얘들아, 이건 내가 한번 처리해 볼게.”

    「본좌의 능력을 좌시하지 말라.」

    「큭……. 본 달팽이를 과/소/평/가하다니.」

    「광오하다!」

    검은 등껍질 달팽이를 설득하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과소평가라니, 그런 뜻은 아니야.”

    「본 달팽이에게 정면 도전하겠다는 의미인가?」

    “그냥 우리 오색이는 하는 걸, 너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지.”

    희원이 달팽이의 성질을 살살 긁었다.

    달팽이는 말을 나눈 지 채 3분도 지나기 전에 퀘스트 내용을 수락했다.

    ‘생각보다 다혈질인 달팽이구나.’

    절로 오색이가 떠올랐다. 오색이도 가끔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면이 있었으니까.

    ‘홈 스위트 홈 주택 관리자들은 원래 성격이 좀 드라마틱한 부분이 있나 봐.’

    희나는 두 달팽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생각하며 밖으로 나섰다.

    검은 달팽이는 팔팔해진 공간의 나무 밑동에 몸을 세우고 ‘공간 활용 마법사’를 실행했다.

    「‘공간 활용 마법사’를 실행합니다.」

    역시나 이 달팽이도 오래된 컴퓨터 시스템 언어 같은 소리를 계속 띄워 댔다.

    그리고 검은 등껍질을 흑요석처럼 영롱하게 빛내길 수십여 초.

    「‘공간 활용 마법사’ 실행 완료!」

    「거울상 공간으로 통하는 통로를 확보하였습니다!」

    나무 옆에 새카만 구멍이 열렸다.

    여전히 성인 한 사람 정도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에 불과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것처럼 새까만 구멍이 불길해 보일 법도 했다.

    하지만 희나와 일행은 이 구멍이 원래 세계로 통하는 통로라는 사실을 알았다. 저건 퇴근길이었다!

    다음 퀘스트도 열렸다.

    <……

    - 원래 세계로 귀환하기

    ① 주택 관리자의 공간 활용 능력을 이용하여 원래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여세요. (완료!)

    ② 원래 세계에 도착하여 주택 관리자의 환영을 받으세요.

    ……>

    거울 세계로 향하는 통로를 이용하여 집에 돌아가라는 퀘스트였다. 이어지는 세부 퀘스트도 없었다.

    이제 정말 퀘스트도 끝이라는 의미였다.

    “드디어 집에 간다! 대머리도 탈출!”

    희원이 몹시 즐거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떠나라, 반대 세계의 침입자들이여.」

    검은 달팽이도 고물고물 기며 안테나를 빳빳하게 세웠다.

    “돌아가도록 할까요?”

    강진현이 희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기에 왔을 때처럼 강진현, 희나, 희원 순으로 손을 잡을 셈인 것 같았다.

    “잠시만요. 몇 초만 주세요.”

    희나는 허둥거리며 손을 휘저었다.

    “달팽이야!”

    「……훗. 번거롭게 하는군.」

    검은 등껍질 달팽이는 몸을 틀어 뒤를 돌아보았다. 폼을 잡는 게 아주 몸에 배어 있었다.

    “검은 달팽이야, 만나서 반가웠고 문 열어 줘서 고마워.”

    「크큭. 은혜를 아는 인간이군.」

    “뭐…… 그으래. 그렇다고 치자.”

    희나는 하하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번에는 이렇게 헤어지지만, 만약 나중에 또 만나게 된다면 네 이름을 지어 줘도 될까?”

    「……이름?」

    “응. 이름. 계속 너를 검은 달팽이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

    어쩐지 이 달팽이, 그러니까 거울 세계 던전의 주택 관리자를 또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럴싸한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강렬한 예감이 느껴졌다.

    “다음에는 네게 어울릴 만한 멋진 이름 후보들을 가져올게.”

    「실없는 짓이다.」

    “그냥 내 느낌이 그래. 네가 싫어하지만 않으면 됐어.”

    희나는 달팽이의 대꾸를 유쾌하게 받아쳤다. 그리고 담백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럼 우리는 이만 가 볼게. 외롭지 않게 잘 지내고 있으렴.”

    「……“고독(孤獨)”이야말로 나의 진정한 벗이다.」

    달팽이의 콘셉트는 마지막까지 확고했다.

    ‘다음에 만났을 때도 여전히 질풍노도의 시기를 달리고 있으려나?’

    희나는 키득거리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두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사이 쟤랑 정이라도 들었나 봐?”

    “그럴지도. 아무튼 간에 오색이랑 닮기도 했고…… 나름 귀엽잖아.”

    “너도 참 속 좋다.”

    희원과 속닥거리는데, 강진현이 희나의 손을 슬그머니 잡아 왔다. 뜨끈하고 단단한 손바닥이 희나의 손등을 감쌌다.

    “그럼 이제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아, 그럼요!”

    희나는 재빨리 남은 한 손으로 희원을 붙잡았다.

    “입구, 진입하겠습니다.”

    “넵!”

    일행은 순서대로 검은 문 안으로 들어갔다.

    공간이 일그러지는 느낌과 함께 극심한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검은 통로를 지날 때 느끼는 멀미는 여전했다. 아니, 한층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우웁! 우우욱!”

    “으아아아…….”

    남매는 무덤에서 갓 일어난 구울처럼 싱싱하게 울부짖었다.

    사람치고는 힘없었고, 시체치곤 힘이 넘쳤다는 의미다.

    이 중 유일하게 두 다리로 우뚝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인 강진현은 둘의 등을 토닥거렸다.

    “진정하십시오. 포션 몇 모금 드릴까요?”

    “으어어어니……. 머, 먹으면, 토, 토할, 것…… 우에에엑.”

    희원은 마침내 맑은 물을 토해 내고야 말았다.

    희나는 어지럼증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더러운 오빠에게서 엉금엉금 멀어졌다.

    “더, 더러워…….”

    남매가 난리 블루스를 추고 있는 사이, 익숙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챱챱, 챱챱챱챱!

    바둑이의 방정맞은 풋 스텝 소리였다.

    “바둑아!”

    희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로 힘없이 손을 흔들었다.

    바둑이의 잎사귀 위에 올라탄 오색이가 희나와 희원의 상태를 걱정했다.

    「상태 메롱. 아 유 오케이?」

    “안 오케이.”

    「ㄴㄴ! 올바르지 않은 대답!」

    「국룰 = 아임 파인 땡큐, 앤 유?」

    오색이는 남매의 쾌유를 강요했다.

    열렬한 응원 덕분인지, 희나와 희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기력을 차렸다.

    “어휴, 이제 좀 살겠다.”

    기지개를 켜며 끙차, 몸을 일으키자 그제야 오색이가 환영 인사를 건넸다.

    「방가방가^^)/」

    그와 함께 퀘스트 완료 창이 반짝, 하고 떴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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