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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29화 (129/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29화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희원이 희나의 이마를 짚었다.

    “머리 아프거나 그런 건 없어? 몸은 어때?”

    막 깨어나서 넋을 놓고 있는 모습을 보니 걱정이 된 듯했다.

    “괜찮아. 몸이 좀 쑤시는 것 빼고는 멀쩡해.”

    스킬 이름이 ‘대청소’라서 그런지, 집 안 대청소를 한 다음 날처럼 온몸이 뻐근했다.

    “오빠, 걱정하지 마. 멀쩡하니까. 아흠, 그리고 진현 씨. 제가 갑자기 잠들어서 많이 놀라셨죠?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희나는 하품을 애써 삼키며 희원과 강진현을 안심시켰다. 특히 강진현에게는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등에 업혀 있던 사람이 난데없이 기절이라니…….’

    강진현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정말 많이 놀랐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 놀랐습니다.”

    역시나, 강진현은 몹시 충격을 받은 듯 눈을 촉촉하게 적시고 있었다.

    당시 그는 재빠른 상황 판단으로 희나가 능력치 소진으로 인해 혼절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즉, 시간만 지나면 눈을 뜰 것이란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머리로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마음이 그렇게 쉽게 안정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강진현은…….

    “너 포션 다섯 개는 먹었대.”

    희원이 다섯 손가락을 쫙 펴 보였다. 그러면서 희나가 먹은 건 모두 A급 이상의 최상급 포션이라고 귀띔했다.

    희나는 쓴침을 삼켰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입안이 타들어 갈 정도로 썼다.

    “어쩐지 입이 엄청 떫더라니…….”

    그게 다 포션 다섯 병 치 쓴맛이었나 보다.

    ‘그런데 A급 포션 다섯 병이면 대체 얼마야?’

    희나는 기절한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 무려 포션 다섯 병을 들이부은 강진현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아니면 그 금액에 경악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복잡하던 머리는 금세 정리됐다.

    강진현의 간절한 눈빛을 보니, 꺼낼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고마워요, 진현 씨. 진현 씨 아니었으면 이만큼 일찍 깨지 못했을 거예요.”

    무엇이든 고마움을 전하는 게 먼저였다. 어쨌든 돈 몇 푼보다(물론 강진현의 기준에서) 희나의 안위를 훨씬 우선해 주었다는 뜻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닙니다. 앞으로 이 스킬은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사용 직후 완전히 무장 해제가 되어 버리니, 너무 위험합니다.”

    강진현은 ‘대청소’ 스킬을 사용하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하지만 희나 생각은 좀 달랐다. 이건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그런 일은 절대 생기면 안 되겠지만…… 일이 꼬이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희나는 지난 몇 개월간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을 떠올렸다.

    갑자기 던전에 뚝 떨어지기도 했고, 길 가다 납치를 당하기도 했다.

    ‘물론 이번처럼 한 번 쓰고 꽥 쓰러지는 건 곤란하니, 앞으로 능력을 많이 키워야겠지만…….’

    이런 생각을 하며 희나는 슬쩍 말을 돌렸다.

    “이 스킬에 대해서는 나중에 마저 얘기해 봐요.”

    “하지만……”

    “일단 퀘스트부터 끝마치고요.”

    아직 진행 중인 퀘스트는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 주었다.

    “정말로 여기 나가면 얘기해 보는 겁니다.”

    강진현은 한숨과 함께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럼…… 퀘스트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 볼까요? 아, 저 기절한 동안 퀘스트 진행된 거 있어요?”

    희나는 최대한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종알거리며 퀘스트 창을 열었다.

    < ……

    - 튼튼한 나무 키우기 프로젝트

    ① 비실거리는 거울상 나무를 찾으세요. (완료!)

    ② 생장 연료로 사용할 보스 몬스터 마석을 구하세요. (완료!)

    ③ 거울상 나무에 D급 보스 몬스터 마석을 바치세요.

    ……>

    “세부 퀘스트가 하나 더 떴네.”

    보스 몬스터 마석을 구하는 퀘스트는 완료 상태로 떠 있었다. 새로운 세부 퀘스트도 떠 있었다.

    “음, 그리고 제가 오래 잠들어 있었던 건 아니었나 봐요. 아직 시간이 이틀 넘게 남아 있네요.”

    시간을 대충 계산해 보니 마지막 기억으로부터 약 3시간 정도 지나 있었다.

    ‘보스 몬스터를 추적하는 데 3시간이 좀 넘게 걸렸지?’

    돌아올 때도 시간이 비슷하게 걸렸다고 치면 집에 도착하자마자 일어난 셈이었다.

    희나는 여기까지 셈하다 고개를 갸웃했다.

    “그나저나 집에는 어떻게 돌아왔어요? 제가 잠들어 버려서 길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을 텐데.”

    동화 속 이야기처럼 조약돌을 뿌리며 온 것도 아닌데, 이 넓은 던전에서 어떻게 다시 ‘홈 스위트 홈’을 찾을 수 있었을까?

    의외로 강진현이 사용한 방법은 간단했다.

    “희나 씨가 가르쳐 준 길을 거꾸로 되짚어 돌아왔습니다.”

    “헉. 그게 가능해요?”

    보스 몬스터…… 그러니까 거대 모기가 이리저리 돌아다녔던 탓에 경로는 몹시 복잡했다.

    하지만 강진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왔던 길대로 돌아가면 되니 어렵지 않았습니다. 중간중간 제가 남겨 둔 표식도 있었고요.”

    “와아.”

    S급 헌터는 힘만 세면 다가 아니었나 보다.

    ‘기억력도 좋아야 하고, 길 찾기도 잘해야 어디 S급이라고 나설 수 있나 봐.’

    희나는 강진현의 초인적인 능력에 감탄했다.

    “진현 씨 천재구나…….”

    희나의 직설적인 칭찬에 강진현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천재라니요, 민망합니다.”

    그런 그의 귓바퀴가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대뜸 받은 찬사가 부끄러웠나 보다.

    ‘민망하대……. 귀엽다.’

    희나는 어쩐지 강진현의 귓바퀴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짝짝!

    한편, 두 사람은 희원의 박수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얼굴에 금칠해 주는 건 나중에 마저 하고! 희나도 깼으니 다음 퀘스트 처리하러 가야지.”

    “아, 그렇지. 그래. 퀘스트. 우리 퀘스트 중이었지…….”

    희나는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엉덩이를 뗐다.

    한쪽 손은 희원이, 한쪽 손은 강진현이 잡아 일으켜 세워 주었다.

    「느리군, 느려. 한없이 느린 필멸자들이여…….」

    검은 등껍질 달팽이가 꾸물럭꾸물럭 움직이며 사돈 남 말을 했다.

    「속.히. 꺼.져.라.」

    어쨌든 간에 희나와 그 일행이 빨리 ‘홈 스위트 홈’을 떠나서 혼자가 되길 바라는 건 확실했다.

    희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말이 너무한 거 아니야? 그래도 여긴 내 집이기도 하다며?”

    너무하다고는 했지만, 달팽이가 워낙 질풍노도의 시기를 달리는 청소년처럼 보여서 밉지는 않았다.

    그저 콘셉트가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섭리”는 거스르기 위해 있는 것.」

    「크큭……. 세상이 강제로 부과한 “의무”를 반드시 이행해야만 할까?」

    희나는 달팽이가 하는 말을 대충 흘리며 손을 흔들었다.

    “그래, 그래. 나 잠들어 있는 동안 집에 누워 있게 해 줘서 고맙고. 응.”

    「쯧.」

    말은 그랬지만 몸은 솔직했다.

    고마움의 인사를 들어서 기분이 좋아진 듯 빳빳한 안테나가 슬슬 흔들렸다.

    “안녕. 우린 다음 퀘스트하러 나가 볼게.”

    희나와 희원, 강진현은 현관을 나섰다.

    거울상 나무는 여전히 비실비실하게 서 있었다.

    ‘아니, 몇 시간 사이 더 말라비틀어진 것 같은데?’

    당장이라도 톡 치면 쓰러질 듯했다.

    “마석은 제가 회수해 왔습니다만, 어떤 식으로 바쳐야 할까요.”

    강진현이 D급 보스 몬스터 마석을 인벤토리에서 꺼내어 보여 주었다.

    마석은 피처럼 붉었다. 사람 피를 빨아 먹는 모기와 정말 잘 어울리는 색깔이었다.

    “붉고 투명하네. 굉장히 질이 좋아.”

    희원이 눈을 빛내며 마석을 살피던 도중이었다.

    푸스슥.

    발밑에서 무엇인가가 힘없이 버스럭거렸다.

    “오빠, 이거 봐.”

    희나는 땅을 손가락질했다. 흙 밑에 뭐가 있는 것처럼 들썩거리고 있었다.

    퍼스슥, 스슥, 푸스슥.

    그 무엇인가는 밖으로 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모양이 어찌나 간절하던지, 정체 모를 무엇을 응원해 주고 싶은 기분까지 들었다.

    희나와 희원, 강진현의 시선이 한데 집중되었다.

    폭!

    이내 무엇인가가 땅속에서 뿅 하고 솟아올랐다.

    희원은 농사꾼답게 그것의 정체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나무뿌리잖아?”

    아마 그들의 앞에 서 있는 ‘거울상 공간의 나무’에서 나온 뿌리인 듯했다.

    그것은 비틀거리며 땅 위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강진현의 손을 향해 뿌리를 길게 뻗었다. 매가리는 없지만 어쩐지 익숙한 모양이었다.

    이에 희나는 앞마당에서 마석을 낚아채던 나무뿌리를 떠올리곤 앗! 하고 손짓했다.

    “얘도 뿌리로 마석을 흡수하려나 봐요! 뿌리 있는 데 놓아 줘요. 많이 힘들어 보여요.”

    허공을 힘없이 더듬는 뿌리가 안쓰러워 보였다.

    희나 손의 마석을 신나게 빼앗아 가던 나무와 비교하니 더 불쌍했다.

    “여기…….”

    강진현은 한쪽 무릎을 꿇고 뿌리 근처에 마석을 내려놓았다.

    푸르르!

    나무는 몹시 감동받은 듯 가지를 파르르 떨었다.

    그러자 겨우 매달려 있던 잎새들이 한 장, 두 장, 외롭게 떨어졌다.

    이러다간 마지막 잎새까지 떨어뜨릴 기세라 희나는 손을 휘휘 저었다.

    “나무야, 그만 떨어. 기뻐서 떨려면 마석부터 먹고 떨어.”

    신기하게도 나무는 희나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떨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뿌리를 내밀어 조심스럽게 붉은 마석 위에 얹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일행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무와 마석을 바라보았다.

    우우웅!

    잠깐의 진동과 함께 마석과 뿌리가 맞닿은 곳에서 붉은 빛이 피어 나오기 시작했다.

    마석 색과 꼭 닮은 핏빛 광선이었다.

    그와 동시에 뿌리는 힘을 얻은 듯, 빠지직 소리와 함께 마석을 뱀처럼 둘둘 감쌌다.

    희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지난번처럼 그대로 끌고 들어가려나?’

    희나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뿌리는 마석을 끌고 땅속으로 돌아갔다. 더 많은 뿌리가 마석의 힘을 흡수하고 있는지, 바닥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조금씩 커졌다.

    그렇게 진동이 느껴지길 수 초.

    우우우웅!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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