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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28화 (128/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28화

    “던전 주먹왕 퀘스트…… 완료?”

    “아, 정신이 들었습니까?”

    강진현이 희나를 반겼다. 그리고 제법 들뜬 듯한 목소리로 퀘스트 완료를 축하해 주었다.

    “퀘스트도 완료했다니 잘됐습니다. 그동안 희나 씨가 바빠 해충 박멸 스킬 수련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김에 퀘스트까지 모두 해결하게 된 셈이군요.”

    “그, 그런가……?”

    곧이어 희나의 눈앞에 퀘스트 보상이 하나둘 뜨기 시작했다.

    “……추가 보상으로 새로운 스킬 해금?”

    기존 스킬 랭크를 올려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기인데, 새 스킬까지 하나 더 얻다니…… 놀라운 보상이었다.

    ‘뭘까?’

    희나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시스템은 언제나 그랬듯 중요한 상황에서 잔뜩 뜸을 들였다.

    얼마 후, 마침내 시스템 창이 또롱 하고 글자를 띄웠다.

    희나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시스템창을 따라 읽었다.

    “……대청소라고?”

    곧이어 스킬 설명창이 떴다.

    <대청소(B): 청결이야말로 살림의 기본 중 기본. 반경 20미터 이내의 오염물을 싸그리 제거한다. 그러나 대청소는 품이 많이 드니 가끔씩만. 액티브 스킬. (현재: 스킬 사용 가능)>

    희나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반경 20미터 이내의 오염물을 싸그리 제거한다고……?’

    이제 희나도 어리바리한 초짜 티는 좀 벗었다. 문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는 지났다는 의미다.

    스킬 설명은 최대한 유연하게 사고하여 해석할수록 사용에 유리했다.

    ‘음……. 여기서 오염물은 꼭 먼지나 쓰레기 같은 것만을 뜻하진 않을 거야. 내가 받아들이기에 더럽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겠지?’

    어쩌면 거기엔 몬스터도 포함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해충 박멸도 꼭 벌레에게만 통하는 스킬은 아니잖아? 해충처럼 유해한 상대에게도 시전할 수 있으니까.’

    그러면 이 ‘대청소’ 스킬의 효과는 대충 이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반경 20미터 이내의 적들을 한꺼번에 제거할 수 있다는 뜻인가 봐.’

    이건 전투 센스가 발달하지 않은 희나가 생각하기에도 꽤 사기적인 스킬이었다.

    일 대 다수의 전투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능력 아닌가!

    ‘그래서 횟수 제한이나 기한 제한 같은 게 있나 보네.’

    마지막 문구를 보면 한도 없이 쓸 수 있는 스킬은 아닌 듯했다. 아직 한 번도 써 본 적 없어 한계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참에 한번 써 볼까?’

    호승심 어린 호기심이 희나의 간을 불쑥 키웠다. 평소라면 절대 떠올릴 리 없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 새로운 스킬을 얻었다는 설렘이 안전주의자 희나의 눈을 가렸다.

    거기다 강진현이 여유롭게 전투를 컨트롤하고 있는 상황.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큰일은 나지 않을 듯했다.

    희나의 중얼거림을 어찌 들었는지, 강진현이 몬스터 수십여 마리를 한꺼번에 쳐 내며 물었다.

    “새 스킬을 얻었습니까?”

    “네. ‘대청소’라는 스킬이고, 전투에도 활용 가능한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그런데…… 한번 써 봐도 될까요?”

    “여기에서 말입니까?”

    “네.”

    강진현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였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런 전투 상황에 스킬을 곧바로 적용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겠지요.”

    속닥거리며 결론을 내릴 때쯤이었다.

    -애애애애애앵!

    고막이 얼얼할 정도로 시끄러운 진동 소리가 울렸다. 그건 마치 사이렌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몹시 거슬리는 소리였다.

    “이게 무슨 소리지?”

    묘하게 익숙했다. 동시에 살의에 가까운 짜증이 치밀었다.

    ‘대체 뭐야?’

    희나는 이런 격한 감정에 익숙하지 않았다. 후하후하 심호흡을 하며 콩닥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저기 있군요. 보스 몬스터인 듯합니다. 드디어 나타났군요.”

    강진현이 벌레 머리통을 밟고 뛰어오르며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수많은 날벌레가 무엇인가를 둥글게 감싸며 날고 있었다.

    내부는 벌레들의 잔상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한가운데에 자리한 몬스터의 형체가 몹시 거대했기에 희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어림잡아 추측할 수 있었다.

    “……대왕 모기?”

    -애애애애앵! 애애애앵! 애앵, 애애애앵!

    대왕 모기…… 아니, 보스 몬스터는 희나의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요란하게 날갯짓했다.

    그것은 당장이라도 인간들의 피를 빨아 먹고 싶다는 듯 주둥이에 달린 대롱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그 모습은 징그럽게 느껴지기보다는…… 희나에게 분개를 일으켰다.

    ‘모기…… 이 요망한 벌레 같으니라고!’

    모기야말로 인간의 주적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매해 여름, 모기에게 시달리며 밤잠 설쳤던 나날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손에 든 신문지가 부르르 떨렸다.

    당장이라도 모기를 때려잡고 싶다는 파괴적인 욕구가 솟아올랐다.

    희나는 비로소 자신의 새 스킬을 누구에게, 어떻게 사용할지 마음을 정했다.

    “진현 씨, 제가 선공할게요.”

    “예. 엄호하겠습니다.”

    강진현은 희나를 말리지 않았다.

    고작 D급 보스이니, 희나의 공격이 실패하여도 그가 처리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희나 또한 그를 믿고 호기롭게 공격을 나서는 것이었고.

    -애애애애앵! 위이이이잉!

    희나의 살기 어린 시선을 느낀 것인지, 거대 모기는 맹렬히 날갯짓을 시작했다.

    주변을 맴도는 날벌레들의 속도도 점점 빨라져 거의 회색 구름으로 보일 정도였다.

    -우우웅!

    벌레들의 날갯짓 소리에 공기가 울렸다.

    희나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이제 공격하겠구나!’

    몬스터들이 자신을 덮치리라는 사실을!

    그와 동시에 희나는 신문지를 크게 휘둘렀다.

    “모기는! 살아 있을! 가치가! 없어!”

    진심 5만 퍼센트의 외침이었다.

    신문지에서 날카로운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아니, 날카로웠지만 동시에 청량하기도 한 기운이었다.

    파아아앗!

    희나를 중심으로 대기에 파문이 일었다. 주변을 찢어발길 듯 공기가 진동했다. 자그마한 손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파동이었다.

    ‘대청소’ 스킬은 순식간에 공기를 타고 퍼져 나갔고, 희나를 향해 돌진하던 한 무리의 몬스터들을 모두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파스슷, 스스스스!

    아니, 그 힘은 종래에는 가루조차 남기지 않고 반경 20미터 이내의 모든 것들을 전멸시켰다.

    심지어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인 거대 모기마저도!

    -애애애애ㅇ……!

    집채만 한 크기의 모기는 아련한 날갯짓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파스스 지워졌다. 모기가 있던 자리에는 주먹만 한 보석만이 남아 바닥으로 추락했다. 보스 몬스터의 마석이었다.

    “와…….”

    희나는 자신의 손끝이 만들어 낸 엄청난 광경에 입을 쩍 벌렸다.

    ‘사기 스킬 아냐?’

    스킬 설명을 보고 혹시나 하고 사용해 본 건 맞았다.

    하지만 고작 살림꾼의 스킬인데, 얼마나 강력하겠냐는 의심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 장면은 강진현에게도 상당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는 굉장히 놀랐다.

    “대단합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상급 전투계 마법 능력에 필적하는 스킬입니다. 몬스터의 시체까지 완전히 없애 버렸……, 희나 씨?”

    그러나 희나는 강진현의 칭찬을 끝까지 경청할 수 없었다.

    ‘아…… 피곤해. 기력이 쪽쪽 빠진다. 배…… 배고파.’

    ‘대청소’ 스킬의 후유증인 듯,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기 때문이다.

    “지, 진현 씨, 저 배고파ㅇ……”

    그 말을 마지막으로 희나는 까무룩 잠들고야 말았다.

    “으으……. 아이고.”

    입이 이상할 정도로 떫었다. 희나는 끄응, 하는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어! 희나야? 깼어?”

    “희나 씨!”

    눈을 뜨자마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한쪽은 지긋지긋한 오빠의 얼굴이었고, 한쪽은 잘생긴 강진현의 얼굴이었다.

    미모 레벨 차이는 현격했지만, 둘 다 걱정을 흠뻑 머금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뭐야, 무슨 일이 있었죠? 내가 왜 누워 있지?”

    희나는 좀 더 누워 있으라는 두 남자의 만류를 거절하며 몸을 일으켜 두리번거렸다.

    익숙하면서 낯선 장소였다. 가구 하나 없는 텅 빈 ‘홈 스위트 홈’이었다.

    「혼자 있고 싶으니 모두 나가.」

    저 멀리에서는 검은 등껍질 달팽이가 시니컬한 어투로 고독을 곱씹고 있었다.

    그제야 기억이 차근차근 짜 맞추어지며 여기가 어딘지 떠올랐다.

    “거울 던전의 ‘홈 스위트 홈’이네. 이상하다……. 난 진현 씨랑 보스 몬스터 잡으러 갔는데, 왜 여기에 누워서……?”

    혼자 중얼거리다 보니 직전의 상황이 차근차근 떠올랐다.

    ‘아, 맞다. 퀘스트 하나 완료해서 스킬 하나 얻었고…… 그걸로 보스 몬스터를 잡았지? 엄청났는데.’

    마침내 희나는 자기가 스킬을 쓰고 탈진하여 기절했던 일까지 완전히 기억해 냈다.

    ‘내가 설명에서 뭔가 빠트리고 이해했나?’

    희나는 재빨리 스킬 창을 띄웠다.

    <대청소(B): 청결이야말로 살림의 기본 중 기본. 반경 20미터 이내의 오염물을 싸그리 제거한다. 그러나 대청소는 품이 많이 드니 가끔씩만. 액티브 스킬. (현재: 스킬 사용 불가)>

    현재 상태가 ‘스킬 사용 불가’ 상태로 바뀌어 있었다.

    ‘대청소는 품이 많이 드니 가끔씩만……이라는 설명은 능력치를 많이 소모하니까 자주 사용하지는 못한다는 의미였나 봐.’

    스킬의 위력을 떠올려 보면 자신이 혼절한 까닭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사실 이렇게 대단한 걸 연달아 여러 번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건 밸런스 패치가 망한 거지.’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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