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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27화 (127/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27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어, 이제는…… 저쪽으로 방향이 바뀌었어요!”

    강진현의 등 뒤에 업힌 채 어느 한 방향을 손가락질했다.

    그러자 강진현이 희나의 손이 가리킨 곳을 향해 방향을 틀어 뛰었다.

    빠르게 시야가 바뀌었다. 흔들림은 거의 없었지만, 탑승감은 좋지 않았다.

    바위와 나무 같은 장애물을 건너뛸 때마다 명치가 울렁울렁했다.

    ‘윽, 멀미 나…….’

    그러나 티는 낼 수 없었다. 고작 멀미 따위에 발목을 잡힐 수는 없었다.

    희나는 창백한 얼굴로 입을 틀어막았다.

    ‘대머리는 안 돼!’

    그랬다.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는 퀘스트가 먼저였다.

    “진현 씨, 방향 바뀌었어요! 이번엔 우측 길로 쭉!”

    “알겠습니다.”

    지금 그들은 ‘내 집은 어디에’ 스킬을 사용하여 실시간으로 보스 몬스터의 동향을 추적하고 있었다.

    대체 이 던전에는 무슨 몬스터가 있는지, 던전 내부를 활개 치는데도 몬스터의 ‘ㅁ’ 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정신없이 사방팔방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코빼기 하나 안 보인다고?’

    이건 던전 공략 초짜인 희나가 생각하기에도 이상했다.

    “D급 던전이라도 보스 몹의 위치가 일정하지 않으면 공략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집니다. 다수의 헌터를 파견하여 던전 전체를 수색해야 하기 때문이죠.”

    강진현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듯, 열심히 달리는 와중에도 간단 지식을 전파했다.

    사람을 등에 업고 초인적인 속도로 뛰고 있는데도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조금씩 가까워지고는 있어요. 조금만 더 힘내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희나는 조악한 ‘내 집은 어디에’ 스킬 지도를 보며 강진현을 격려했다.

    보스 몬스터의 위치는 이리저리 바뀌었지만, 어느새 처음의 절반가량까지 거리가 줄어든 상태였다.

    희나의 재빠른 방향 지시와 강진현의 초인적인 육체 능력 덕분이었다.

    “이대로라면 한 시간 안엔 보스 몬스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럼 조금 더 속도를 내 보겠습니다.”

    “으아아……!”

    여기서 속력이 더 빨라질 줄은 몰랐다.

    희나는 강진현의 등에 매미처럼 딱 달라붙었다.

    눈도 감고 싶었지만 지도를 봐야 하기 때문에 차마 그럴 순 없었다.

    ‘뭐라도 도움이 되어야지!’

    소심하더라도 악바리 근성은 있었다. 어지럼증 좀 난다고 포기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 못 했다.

    ……그리고 아마 그건 두피에 매달린 머리카락들도 허락하지 못할 테다.

    “이번엔 저기로요! 11시 방향으로 꺾어서!”

    희나를 업고 한참을 뛰던 강진현이 어느 방향을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공교롭게 그곳은 희나가 손짓하려던 방향이었다.

    “……찾은 것 같군요. 기척이 잡힙니다. 지금부터는 말씀해 주시지 않아도 제가 찾아갈 수 있을 듯합니다.”

    강진현은 신속하게 이동했다.

    발걸음 발걸음마다 한 치의 망설임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진짜 기척을 제대로 잡았나 봐.’

    희나는 지도 화면을 힐끗거렸다.

    지도에는 간단한 지형지물과 함께 ‘홈 스위트 홈’ 현관문, 게이트, 보스 몬스터, 그리고 희나의 위치가 각각 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희나를 뜻하는 점은 보스 몬스터를 향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얼마 후 마침내 희나와 보스 몬스터의 점이 겹쳤다.

    희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 있지?”

    보스 몬스터를 곧바로 발견하지 못한 걸 보면 어설프게 그려진 동그란 점은 오차 범위가 꽤 넓은 듯했다.

    한편, 강진현은 어느 공터 한가운데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허공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귀찮게 됐군요.”

    희나는 강진현이 보는 곳을 따라보았다.

    하지만 평범한 시력을 가진 희나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진현 씨, 거기에 뭔가 있나요?”

    “예.”

    “날아다니는 몬스터예요?”

    “그렇습니다. 비행형입니다.”

    “그럼 이제 어떻…… 으얽!”

    희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으려다 그만 혀를 씹을 뻔했다. 강진현이 허공으로 급작스레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그의 등 뒤에 업힌 희나는 목구멍 안으로 비명을 삼켰다.

    ‘으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강진현이 서 있던 자리에 투두두둑! 하고 무엇인가 회색 형체들이 거칠게 내려앉았다.

    희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으악! 저게 뭐야!”

    “급작스럽게 이동해서 죄송합니다. 몬스터들이 저희를 인식한 듯, 갑자기 하강하는 바람에.”

    희나는 숨을 들이켜며 강진현의 어깨를 꼭 끌어안았다.

    “히익.”

    갑자기 움직여서 혀 깨물 뻔한 게 문제가 아니었다. 방금 본 장면이 문제였다.

    “저거 벌레 아니에요?”

    “예. 빠르게 움직이는 날벌레 형태의 몬스터로 보입니다. 각 개체의 위력은 강하지 않지만, 떼를 지어 움직이기 때문에 처리하기가 좀 귀찮지요.”

    강진현은 대수롭지 않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중형견 크기만큼이나 커다란 날벌레와 모기와 파리가 허공에 붕붕 날아다니는데도!

    희나는 보통 사람치고는 벌레를 썩 무서워하는 편은 아니었다.

    어지간한 벌레는 별 감흥 없이 잡을 수 있는 담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 벌레가 수십, 수백 배로 확대된 크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왕 커서 왕 징그러워!’

    다리에 숭숭 달린 털, 유리알 같은 겹눈, 단단한 키틴질 껍질까지…… 무엇 하나 소름 끼치지 않는 게 없었다.

    ‘아니 내가 저렇게 징그럽게 생긴 벌레들을 맨손으로 잡았단 말이야?’

    날벌레 따위는 신문지, 휴지조차 쓰지 않고 턱턱 손을 휘둘러 잡았더랬다.

    하지만 저들의 커다란 모습을 보고 만 지금, 앞으로는 절대 맨손을 휘두르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강진현은 뒤통수에 눈알이 없었으므로 희나의 패닉 어린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몬스터들을 가볍게 피하며 희나에게 말했다.

    “희나 씨, 아무래도 제 등에 계속 업혀 계셔야 할 것 같데, 괜찮겠습니까?”

    “예? 예! 저, 절대 안 떨어질 거예요!”

    희나는 그의 목을 조를 기세로 꽉 끌어안았다.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진현 씨랑 떨어졌다가 저 벌레들과 일대일로 붙게 되면…… 윽! 상상도 하기 싫어!’

    자신의 등에 찰싹 붙어 오는 희나를 어찌 생각했는지, 강진현이 낮게 웃었다.

    “조금 어지러울 수도 있습니다.”

    희나는 허겁지겁 대답했다.

    “괜찮아요!”

    토 쏠리는 건 꾹 참기로 했다.

    “무기로 쓸 SSS급 신문지는 꺼내어 쥐고 있는 편이 나을 겁니다. 어지간한 공격은 희나 씨가 착용한 방어구로 무효화할 수 있겠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네넵! 신문지, 꺼낼게요!”

    희나는 강진현의 말대로 신문지를 꺼내어 돌돌 말아 쥐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허접해 보이는 신문지 뭉치지만, 손에 익은 무기를 들고 있으니 마음이 한결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그래! 내 스킬은 해충 박멸 스킬이야! 저까짓 날벌레 따위는 신문지로 다 터뜨려 죽여 버리면 돼!’

    희나는 몇 달 전 있었던 ‘홈 스위트 홈’ 해충 방제 사건을 떠올리며 마음을 굳게 다졌다.

    저깟 벌레 따위야 신문지로 한 대 치면 한 방에 퇴치 가능할 거다.

    “그럼, 뛰어오르겠습니다.”

    예고와 함께 강진현이 발을 굴렀다.

    ‘끼아아악!’

    희나는 속으로 비명 질렀다.

    고작 발을 한 번 굴렀을 뿐인데, 강진현은 마치 로켓처럼 하늘을 날았다.

    ‘으악!’

    그는 허공에 뜬 벌레들을 밟으며 더 높고 높은 곳으로 뛰어올랐다. 마치 날개가 달린 사람 같았다.

    얼굴에 부딪히는 던전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질 법도 하건만, 희나는 차마 이 상황을 즐길 수 없었다.

    퍽! 퍼퍼펑! 펑!

    때맞춰 강진현의 손에서 흘러나온 검은 기운이 커다란 날벌레들을 사정없이 터뜨렸기 때문이었다.

    그 장면에 강진현은 뒤늦게 희나의 정신 건강을 떠올렸는지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보기 좋지 않을 테니, 눈을 감고 있는 편이 나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희나의 눈과 뇌는 벌레의 사체로 더럽혀져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꺄악! 벌레!’

    징그러운 광경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무의식이었다.

    희나는 저도 모르게 SSS급 신문지 뭉치를 불끈 쥐고 풀 스윙으로 휘둘렀다.

    “죽어!”

    그와 동시에 눈앞에서 시스템 창이 반짝, 떠올랐다.

    시스템 창이 어쩐지 신나 보이는 건, 착각일까?

    뻥!

    막무가내로 휘두른 신문지에 똥파리처럼 보이는 몬스터 한 마리가 큰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갔다.

    똥파리는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 채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다.

    “……희나 씨?”

    여유롭게 주변의 몬스터들을 상대하던 강진현은 희나의 일격에 놀란 듯 작게 입을 벌렸다.

    살기 어린 손속이 평소의 희나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꺅! 죽어! 죽어!”

    하지만 무아지경(?)에 들어선 희나의 귀엔 강진현의 부름 따위는 스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강진현은 이 상황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그는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며 잔챙이 한두 마리 정도는 희나의 곁으로 접근하도록 했다.

    ‘어차피 해충 박멸 스킬 수련도 해야 하니, 이 김에 연습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는 기회를 포착할 줄 아는 제법 좋은 선생님이었다.

    희나는 손 닿는 대로 뻥뻥 벌레들을 잘도 쳐 냈다.

    <될 수 있다! 던전 주먹왕!(B): 스스로의 힘으로 몬스터를 때려잡는 기쁨을 느껴봅시다. 고렙 버스를 타도 좋습니다. 실전 경험의 짜릿함과 더불어 랭크 업까지!

    ▶ 필수 퀘스트: ‘해충 박멸’ 스킬을 사용해 몬스터 50회 퇴치 (50/50)

    ……>

    눈앞에 퀘스트 완료 창이 난데없이 번쩍일 즈음에야 희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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