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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26화 (126/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26화

    “주택 관리자에게 환영 인사받기 퀘스트 완료……. 이걸로 첫 번째 필수 퀘스트는 전부 완료했네.”

    주택 관리자인 검은 등껍질 달팽이에게 환영 인사 비스무리한 것조차 받은 기억이 없건만, 시스템은 퀘스트 완료 창을 띄워 주었다.

    검은 달팽이는 상황을 파악하고는 코웃음 쳤다.

    「크큭. 시스템 자식……. 역시 내게 복잡한 설명을 모두 떠넘겨 버리려는 속셈이었군.」

    「나는 고독과 자유를 즐기는 달팽이……. 외부인 따위 환영해 본 적 없ㄷr,,,」

    이러다 곧 왼쪽 안테나에 흑염룡이 깃들었다고 할 기세였다.

    “그래……. 그렇구나.”

    희나는 모른 척 양쪽에 앉은 희원과 강진현에게 눈짓했다.

    새로운 창이 떴기 때문이다.

    첫 번째 필수 퀘스트를 마무리하자 두 번째 퀘스트가 열렸다.

    < ……

    ▶ 필수 퀘스트 (1/3)

    - 거울 세계로 떠나기 (완료!)

    - 튼튼한 나무 키우기 프로젝트

    ① 비실거리는 거울상 나무를 찾으세요.

    ② ???? (선행 퀘스트 완료 후 확인 가능합니다)

    ……>

    “거울상 나무를 찾는 건 쉬울 듯하군요.”

    내용을 확인한 강진현이 지체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희나에게도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웠다.

    희원조차 인지 못 할 정도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장본인인 희나도 강진현의 손을 잡고 일어나는 게 어색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여긴 우리가 원래 있던 공간과 거울처럼 꼭 닮은 장소라고 했으니까……. 거울상 나무는 아마 이 앞마당에 있겠죠?”

    “그럴 것 같네.”

    희원도 동생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럼 검은 달팽이야, 우리는 시간이 급하니까 먼저 가 볼게. 언제 다시 볼지는 모르겠지만 잘 지내.”

    희나는 머리를 바짝 쳐들고 있는 검은 등껍질 달팽이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달팽이는 일행이 떠나가는 걸 퍽 반가워했다.

    「혼자 있고 싶으니 모두 나가 주면 좋겠다.」

    「고독은 나의 벗…….」

    첫 만남부터 그림자 속에 숨어 축객령을 내린 몸다웠다.

    역시 오색이와 생긴 것만 똑 닮았지, 성격은 전혀 달랐다.

    “그래. 고독이란 친구랑 잘 지내보고.”

    희원의 작별 인사를 마지막으로 세 사람은 재빨리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거울상 나무를 찾는 데는 채 1분도 소요되지 않았다.

    “여기 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텃밭 한구석에 자그마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희원은 농사꾼답게 나무를 보자마자 이리저리 돌아가며 살폈다.

    “……그런데 어째 애가 비실비실하다? 거울상이면 모양도 비슷해야 하는 거 아냐? 얘는 왜 이리 비쩍 곯았대?”

    희나도 오빠의 의견에 동감했다.

    “그러게. 얘는 생긴 게 영…….”

    그도 그럴 게 희나의 집에서 바둑이가 키워 낸 나무는 한여름의 나무처럼 풀잎이 새파랗고 무성했던 반면, 이곳의 나무는 한겨울 나목처럼 생겼다.

    ‘그것도 영양 부족으로 말라비틀어져 죽기 직전의 나무.’

    퀘스트에 쓰여 있는 대로 ‘비실거리는’이라는 표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사람도 아닌데 왜 이렇게 짠해 보이냐……?”

    혀를 쯧쯧 차고 있는데, 퀘스트 알림이 떴다.

    “똥개 훈련도 아니고, 이곳저곳 자잘하게 오라 가라 하는 데가 많네.”

    희원이 김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D급 퀘스트라 그런지 어려운 건 전혀 없었고, 발품 파는 일이 더 많았다.

    “퀘스트 난이도가 계속 이 정도라면 진현 씨 없이 우리 둘이서만 했어도 충분히 할 수 있었겠다.”

    희나는 태평한 소리를 하며 다음 세부 퀘스트 내용을 확인했다.

    < ……

    - 튼튼한 나무 키우기 프로젝트

    ① 비실거리는 거울상 나무를 찾으세요. (완료!)

    ② 생장 연료로 사용할 보스 몬스터 마석을 구하세요.

    ③ ???? (선행 퀘스트 완료 후 확인 가능합니다)

    ……>

    “엥?”

    또박또박 쓰여 있는 퀘스트 문구에 희나는 눈을 비볐다.

    “보, 보스 몬스터 마석을 구하라고?”

    ‘쉽다’라는 말이 시스템의 화를 불러오기라도 한 걸까?

    퀘스트 난이도가 수직 상승했다.

    “갑자기 이렇게 급발진한다고? 시스템 미친 거 아냐? 보스 몬스터 잡는 퀘스트에 D등급을 부과했다고? 밸런스 패치 미친 거 아니야?”

    희원은 시스템에게 격렬히 항의했다.

    그러자 시스템은 대답이라도 하듯 메시지를 띄웠다.

    얄미울 정도로 발랄한 대답이었다. 지극히 사무적인 메시지만 띄우던 시스템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일행 중에서 침착한 건 단 한 사람뿐이었다. S급 헌터인 강진현이었다.

    “D급 던전 몬스터라면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겠군요.”

    그는 D급 보스 몬스터를 잡는 일을 마치 동네 편의점에서 과자 하나 사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희나는 예전에 보았던 강진현의 강력한 무위를 떠올렸다.

    ‘하긴, B급 보스 몬스터도 어렵지 않게 해치웠으니까…….’

    희나와 희원의 기준이 아니라 강진현 기준으로 치면 이건 정말 D급 퀘스트가 맞았다.

    “아까 한 말 취소해야겠어요. 진현 씨 없었으면 우리 큰일 날 뻔했네요.”

    C등급 이하의 살림꾼, 농사꾼이 D등급 보스 몬스터를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적어도 상식 선상에서는 그랬다.

    보스 몬스터면 최소 동급의 헌터 열 명은 붙어야 큰 사상자 없이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게 정설이었다.

    “제가 보스 몬스터를 잡아 올 테니, 희나 씨와 희원 형님은 여기에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그편이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을 듯합니다.”

    강진현이 계책을 냈다. 낮은 등급의 비전투계 각성자 둘을 보호하며 전투하는 것보다 혼자 몬스터를 해치우는 편이 더 낫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 괜히 따라가서 네 발목 잡을 수는 없다.”

    희원은 그의 판단을 받아들였고, 희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위험한 곳에 진현 씨 혼자 내보내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우리는 몸 지킬 능력도 부족하니까 없는 편이 훨씬 낫겠지.’

    하지만 상황은 정한 대로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내 집은 어디에’ 스킬을 사용하여 보스 몬스터의 위치를 확인하던 희나가 콧잔등을 찌푸렸다.

    “보스 몬스터가 사방팔방으로 움직여요!”

    강진현에게 보스 몬스터가 있는 위치를 알려 주어야 하는데, 몬스터가 너무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던전 크기가 상당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던전을 이렇게 빠르게 오갈 정도라니…….

    ‘대체 어떤 능력을 가진 몬스터인 거야?’

    그동안 텃밭만 가꾸었지 이 던전에 어떤 몬스터들이 있는지는 한 번도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터다.

    그 사실이 뒤늦게 후회가 되었다.

    강진현도 낭패한 듯했다.

    “이런……. 보스 몹을 찾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할애하게 되면 곤란한데 말입니다.”

    던전 공략에서 전투만큼 힘겨운 부분이 있다면, 바로 보스 몬스터 수색이었다.

    내부 지형이 어느 정도 알려진 던전이면 그나마 쉬웠다. 보스 몬스터가 대체로 어디에 서식하고 있는지 또한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초행인 던전일 경우에는…….

    “보스 몹은 한자리에 박혀 있어도 찾기 힘든데, 이리저리 움직이기까지 한다고? 이러다 잡기는커녕 찾기도 전에 대머리 되는 거 아니야?”

    희원은 머리털을 구겨 잡으며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다.

    희나도 대머리는 되기 싫었기에 끙, 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진현 씨, 저 데리고 가세요.”

    “위험합니다.”

    “퀘스트 깨려면 내비게이션 역할 해 줄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안 됩니다.”

    “저도 위험하고 무서운 건 싫어요. 하지만 D급이잖아요. 진현 씨는 충분히 저 지켜 주면서 보스 몹도 잡을 수 있을 거예요.”

    희나는 끈질기게 강진현을 설득했다.

    ‘내 발로 던전에 들어가겠다고 나서게 될 줄이야…….’

    세상사 참 요지경이었다.

    “진현 씨는 얼굴이 잘생겨서 대머리여도 괜찮겠지만, 우리 오빠는 아니에요. 정말 큰일 나요.”

    희나는 슬프지만 그 무엇보다 정확한 팩트까지 집어 말했다.

    “야! 그게 너 걱정하고 있는 오빠한테 할 말이냐!”

    옆에서 희원이 반발하는 건 모른 척 무시하면 됐다.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진실을 이야기한 거였으니까.

    “그리고 오빠도 문제지만, 대머리 되기는 저도 싫거든요. 그리고 진현 씨가 저 하나 못 지켜 주실 분도 아니고요.”

    간곡한 설득에 마침내 강진현이 고집을 꺾었다.

    “……알겠습니다.”

    희나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D급 보스 몹은 희나를 지키지 못할 만큼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거기다 시간마저 부족하니 희나의 도움을 받는 편이 모두를 위해 나았다.

    다만 강진현은 만에 하나 사고라도 생길까 봐 반사적으로 반대를 외친 것뿐이었다.

    “나도 따라가고 싶은데, 나까지 가면 더 부담만 되겠지?”

    희원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동생이 걱정되어서 같이 가고 싶은데, 자기가 끼어 봤자 강진현의 짐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오빠는 여기서 나무 잘 지키고 있어. 진현 씨는 이것보다 훨씬 등급 높은 던전도 혼자 다니는 사람이야. 걱정 안 해도 돼.”

    “여차하면 제가 희나 씨를 들고 도망가면 됩니다.”

    마침내 희원은 불안을 가라앉혔다.

    “그러게. 내가 코앞에 S급 헌터를 두고 별걱정을 다 했네.”

    희나는 이때다 싶어 강진현의 팔꿈치를 톡톡 쳤다.

    “이제 우리 가요. 한시가 급하잖아요?”

    “그러도록 합시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대머리가 되고 말 테니까.

    희나와 강진현은 옷차림을 다시 한번 완벽히 정비한 후, ‘홈 스위트 홈’ 안전지대를 벗어났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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