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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25화 (125/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25화

    강진현은 이상한 기준을 내세우며 희나를 설탕 조각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취급했다.

    “대체 뭘 썼길래 피부가 이렇게 좋아지지?”

    희나는 얼얼함이 사라지다 못해 매끈매끈해진 뺨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비밀입니다.”

    강진현은 끝까지 포션의 급수가 얼마나 됐는지, 포션의 가격이 얼마짜리였는지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A급짜리 회복 포션을 자신의 볼에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면 희나가 얼마나 놀랄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포션을 이런 데에…….”

    “괜찮습니다.”

    잠깐 둘의 대화가 끊어진 사이, 검은 등껍질 달팽이가 이 상황에 대한 간단한 감상평을 남겼다.

    「염병.」

    상상도 못 한 엄청난 어휘 사용에 희나는 포션 가격을 묻는 일조차 잊은 채, 입을 쩍 벌렸다

    “……뭐?”

    「반대쪽 주택 관리자는 이런 염병을 다 보고 견뎌 주고 있었던 건가?」

    “여, 염병……. 푸, 푸흡.”

    희원 또한 충격을 받았는지 입을 가리고 끅끅 숨을 참았다.

    “크흡, 흐, 흐흐…….”

    ……아마도 충격일 것이리라. 희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튼 간에 희나는 검은 등껍질 달팽이의 나쁜 말본새 덕분에 패닉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덩달아 머리도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잠시만! 반대쪽 주택 관리자, 라니. 그럼 오색이는 이곳과 다른 진짜 우리 집에서 안전하게 잘 있다는 뜻 아냐?’

    희나는 슬쩍 질문했다.

    “……여기는 ‘원래’ 내 집이 아니야. 그렇지? 오색이는 거기에 있고?”

    「눈치가 영 없진 않군.」

    오색이의 안전을 확인하자 소란했던 마음이 급속도로 차분해졌다.

    “넌 정말로 우리 오색이와 많이 다르구나? 오색이는 그런 나쁜 말 안 하는데.”

    「큭, 그럼 염병을 염병이라고 말하지,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쪽 주택 관리자는 어휘력이 굉장히 부족한 듯하군.」

    밉상인 게 어쩐지 어떤 비쩍 마른 동갑내기 연금술사를 떠올리게 했다.

    ‘무시하자, 무시해. 우리 오색이는 안전하고, 저 달팽이는 유한이 같은 녀석이고.’

    희나는 저런 성격의 페이스에 휘말리면 될 일도 안 된다는 사실을 경험하여 잘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너는 대체 누구야? 아니, 여긴 어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은 희나가 살던 ‘홈 스위트 홈’이 아니었다.

    구태여 생각해 보자면 이곳이 거울 세계이니, 여기는 거울 나라의 홈 스위트 홈 정도가 아닐까…… 추측하는 정도.

    희나는 짐작한 내용을 이야기하며 차근차근 따져 물었다.

    그러자 검은 등껍질 달팽이가 안테나를 굽혀 머리통을 긁적긁적 긁었다.

    「오,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나 보군. 시스템이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던가?」

    “퀘스트 내용 말고는 제대로 전달받은 사항이 없는데.”

    「빌어먹을 시스템. 자동화 시스템만 제대로 돌아가지, 수동 시스템은 제대로 돌아가는 법이 없다니까.」

    검은 등껍질 달팽이는 제법 무섭게 안테나를 휘둘렀다.

    「용.서.못.한.다.」

    ……하지만 시스템을 욕하는 모습을 보니, 이 달팽이 또한 제멋대로인 시스템의 피해자로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희나는 먼저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귀띔해 주었다.

    “참고로 우리는 지금 여기 퀘스트 때문에 들어온 거야. 주택 관리자의 환영 인사를 받기 위해서.”

    「퀘스트? 주택 관리자의 환영 인사?」

    「크윽! 젠장할…….」

    그 설명에 달팽이의 기분이 더더욱 나빠졌는지 그렇지 않아도 시꺼멓던 등껍질이 혼탁하니 우중충해졌다.

    「환영 인사 퀘스트라니……. 내게 상황 설명을 전부 맡겨 버릴 생각이었던 거군! 빌어먹을 시스템 같으니라고!」

    이 달팽이는 귀여운 오색이와 같은 종류의 달팽이라기엔 너무나…… 어둠의 흑염룡이 깃든 듯한 대사를 쳤다!

    희나는 당혹을 애써 삼키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시스템이 우리에게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는 거지? 부족한 부분은 네게 들으면 되는 거고? 그럼 빨리 좀 설명해 줘.”

    “대머리 안 되려면 사흘 안에 퀘스트 끝내야 하거든.”

    희원이 슬쩍 끼어들며 검은 등껍질 달팽이를 독촉했다.

    「하아……. 번거로운 일을 맡게 됐군.」

    달팽이는 마치 인간이 얼굴을 쓸어내리듯 한쪽 안테나를 내려 머리통 있는 부분을 쓰윽 문질렀다.

    「큭, 그래. 사실 시스템의 성향을 생각해 보면 이 정도 상황은 사실 감안해 두었어야 했다.」

    「집주인 일행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 보이니 처음부터 설명해 주도록 하겠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니, 집중해서 잘 듣도록 해라.」

    “네네.”

    왠지 어조가 비장하여 허리를 쭉 펴고 귀를 쫑긋 세우게 됐다.

    달팽이 한 마리는 세 명의 인간을 앞에 두고 위엄 있게 설명을 시작했다.

    「이곳은 집주인 일행 기준으로 ‘거울 던전’인 곳이다.」

    “거울 던전? 여기서는 거울 세계라고 했는데?”

    희원이 고개를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달팽이의 호된 질책이 따라왔다.

    「중요한 설명을 하고 있는 달팽이의 말에는 함부로 토 다는 게 아니다.」

    “아, 예…….”

    「아마 거울 세계라는 표현은 겁쟁이들을 속이기 위해 은근슬쩍 표현을 바꾸어 적은 듯하군.」

    시스템에게 또다시 은근한 사기를 당했다는 뜻이다.

    「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니 너무 억울해하지는 말아라, 겁쟁이 인간들.」

    달팽이는 설명을 이어 갔다.

    「기초적인 개념부터 이야기하겠다.」

    「던전은 하나이되 하나인 공간이 아니다.」

    “엥.”

    기초적인 설명이라는데, 과할 정도로 형이상학적이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도 이보다 더 구체적이리라.

    「크큭……. 아둔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본좌가 다시 설명해 주겠다.」

    검은 등껍질 달팽이는 큭큭 웃으며 머리통을 씰룩거렸다.

    소리가 아닌 문자로 ‘크큭’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걸 보니 소름이 돋았지만, 희나는 모른 척 닭살을 쓸어내렸다.

    「던전은 마치 쌍둥이처럼 한 쌍이 존재한다.」

    「이 한 쌍의 던전은 서로 거울상을 하고 있는 정반대의 세계다.」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희나 일행이 의심해 왔던 부분들과 결합하니 감이 잡혔다.

    희나는 음, 하고 고민하다가 작게 손을 들었다.

    달팽이가 선심 쓴다는 듯 안테나를 까딱거렸다.

    「집주인의 발언을 허락하겠다.」

    “그러니까 네 말은, 여기는 원래 우리가 살고 있던 ‘홈 스위트 홈’이 아니라 거울상의 다른 던전 안에 있는 ‘홈 스위트 홈’이라는 거지? 그래서 내가 채워 넣었던 가구도, 오색이도, 바둑이도 없는 거고?”

    「오호라……. 그렇게 보이진 않았는데, 이해력이 제법이군. 긍정한다.」

    희원도 한마디 얹었다.

    “그럼 우리 애들은 전부 원래 세상에 그대로 있으려나?”

    「반대 던전에서 잘 지내고 있을 거다.」

    희나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바가 있었으나, 확답을 들으니 훨씬 안심이 됐다.

    “다행이야. 그럼 네가 바로 이 거울상 던전에 있는 ‘홈 스위트 홈’의 주택 관리자란 뜻이지? ”

    「옳다. 본좌가 이곳의 주택 관리자다.」

    달팽이는 조금 거만……하다기에는 다소 질풍노도의 청소년 같은 어조로 계속 말을 이었다.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용어부터 정리하겠다.」

    「집주인과 인간들이 본 생활을 하는 세상은 ‘본 세계’, 집주인의 ‘홈 스위트 홈’과 오색이라는 주택 관리자가 있는 던전은 ‘던전’, 이곳은 ‘거울 던전’이라고 칭하도록 하겠다.」

    물론 이 검은 등껍질 달팽이 기준으로는 이곳이 본 던전이고 오색이가 있는 던전이 거울 던전이겠지만, 편의상 그렇게 지칭하기로 한 듯했다. 달팽이 나름의 배려로 보였다.

    달팽이는 제법 논리정연하고 깔끔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말투가 문제지만…… 약간의 닭살 정도는 감안하고 들어 줄 만하네.’

    설명에 따르면, 지금 희나와 일행이 있는 곳은 ‘거울 던전’이었다.

    마치 일란성 쌍둥이처럼 동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어떠한 공간적 구성이 완전히 대칭이라서 거울 던전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서로의 시공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거울상의 성질을 지녔다고도 하지.」

    「더 쉽게 말하면 현실의 내가 옷을 갈아입으면 거울 안의 나도 똑같이 옷을 갈아입은 모습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존재는 일대일 대응을 하여 존재한다.」

    그래서 희나가 살던 던전에 오색이가 있듯이, 이곳 거울 던전에 검은 등껍질 달팽이가 존재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색깔이랑 성격은 정반대인데…… 그런 사소한 건 상관이 없나 보네.’

    희나가 귀염성 넘치는 오색이를 그리워하는 사이, 강진현이 입을 열었다.

    “우리의 거울상이 되는 존재 또한 있는가?”

    「없다.」

    “어째서지?”

    「당신, 인간들은 던전에 속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세계에 속한 자이니, 거울상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아리송한 대답이었지만 어렴풋이 이해는 갔다.

    ‘그러니까 원래 던전 안에 속한 것들만 똑같이 복사되어 있다는 뜻인 거지?’

    희나는 복잡한 개념을 머릿속에 차근차근 정리했다.

    강진현은 계속 질문을 이어 갔다.

    “그럼, 이곳에 있는 무언가가 사라진다면 반대편 던전에서도 그것이 똑같이 사라지나?”

    그러자 달팽이는 광소했다.

    「크하하하하! 파.괘.한.다.」

    「네게서 피 냄새가 나더라니, 역시 본좌의 눈썰미는 틀리지 않았구나.」

    ‘파괘가 아니라 파괴인데…… 그리고 대체 콧구멍이랑 눈구멍이 어디 있다고 피 냄새를 맡고, 눈썰미를 운운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야말로 잠깐이었다. 검은 달팽이가 제법 섬뜩한 예시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곳의 내가 사라지면, 그곳의 주택 관리자 또한 사라지지.」

    강진현은 낯색 하나 바뀌지 않고 질문을 받아쳤다.

    “그럼 오색이가 사라지면 너 또한 소멸하는 것인가?”

    「그렇다.」

    오색이가 사라진다니! 참을 수 없이 괴로운 상상이었다.

    희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결론을 내렸다.

    “말 그대로 두 던전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은 공간이란 거구나…….”

    그 말이 끝나자마자 띠로롱 하고 세 사람 앞에 시스템 알림 창이 연달아 떴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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