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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24화 (124/228)

던전 안의 살림꾼 124화

“‘홈 스위트 홈’ 근처라고?”

“응. 점이 거의 붙어 있으니까 이 정도면 바로 앞에 있는 건데…….”

희나는 더듬더듬 주변을 방황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고 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다!”

“뭐, 뭐? 어디?”

희원은 희나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어? 이게 언제부터 있었지?”

아무것도 없는 풀숲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붉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홈 스위트 홈’의 안전지대를 표시하는 붉은 금이었다.

붉은 선을 의식하고 나니, 그 너머로 현관문도 보였다.

희나는 감탄하며 안전지대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집이 확실히 안전하기는 하네. 지도가 없었으면 절대 못 찾았을 것 같아.”

“나는 네 말 아니었으면 절대 못 찾았을 것 같아. 지금도 안전선이 보였다 말았다 해.”

“저도 그렇습니다. 위치를 아는데도 느끼기 어렵군요.”

희원과 진현의 말을 들어 보니 아무래도 ‘홈 스위트 홈’은 집주인인 희나의 눈에만 간신히 보이는 듯했다.

이렇게 바깥에서 직접 느껴 보니 몬스터들이 어째서 희나네 집을 인식하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희원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여기가 거울 세계야? 그냥 던전 아닌가?”

그도 그럴 게, 이곳은 희나네 앞마당과 똑 닮았다. ‘거울 세계’라는 신비한 이름을 가지기에는 영 부족해 보였다.

“음, 퀘스트 창 확인해 보자. 그럼 알겠지.”

세 사람은 퀘스트 창을 띄웠다.

< ……

③ 거울 세계로 출발! (완료!)

④ 주택 관리자에게 환영 인사를 받으세요!

……>

어느새 새로운 상세 퀘스트가 떠 있었다.

‘D등급 퀘스트라서 그런가? 정말 하나하나 떠먹여 주듯이 가르쳐 주네.’

이걸 귀찮다고 해야 할지, 편하다고 해야 할지.

“주택 관리자는 오색이를 칭하는 호칭이 아닙니까? 무언가 이상하군요.”

“방금 헤어지자마자 다시 만나서 오색이한테 환영 인사를 받으라고? 거참 이상한 퀘스트네. 똥개 훈련도 아니고…….”

강진현은 의문을 품었고, 희원은 투덜거렸다.

“그만 투덜거리고 오색이 찾으러 가자.”

희나는 두 사람을 향해 손짓했다.

이러나저러나 오색이를 찾으려면 집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철컥.

“어?”

“음…….”

현관문을 열자마자 펼쳐지는 집 안 광경에 일행은 얼굴을 굳혔다.

희나 또한 떨리는 눈동자로 집 안을 둘러보았다.

“여기…… 우리 집 맞나?”

집이 텅 비어 있었다.

집 구조가 눈에 익은 걸 보아 분명히 희나네 집이 틀림없는데, 안에 가득 들어차 있던 가구가 모두 사라져 있으니 엄청난 위화감이 느껴졌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넓은 집 안에 아무것도 없으니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시스템이 또 이상한 시련을 내린 건가? 아니면 오색이 마음이라도 상했나?’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역으로 아주 침착해졌다.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아니면…… 정말 이곳은 다른 세계일까? 오색이가 없는 거울 세계 말이야.’

강진현 또한 뛰어난 기감으로 무엇인가를 느낀 듯, 비슷한 말을 했다.

“무엇인가…… 이상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공간이 아닌 듯하군요.”

“저도 그래요. 퀘스트에 적힌 대로 정말로 여긴 다른 세계인 걸까요?”

희나는 거기까지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다 머리를 흔들었다.

생각만 해서는 상황을 알 수 없었다. 행동이 우선이었다.

“우선 오색이부터 찾아보도록 해요. 일단 우리 집처럼 생긴 곳이긴 하니까…….”

희나는 삐걱거리며 팔다리를 움직였다.

“오색아! 어디 있냐!”

희원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오색이를 불렀다.

“오색아, 사고 친 거 있어도 화 안 낼 테니까 우선 나와 봐. 대화부터 해 보자. 응?”

희나도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어딘가에 있을 달팽이를 얼렀다.

가구 없는 집 안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달팽이를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50평대의 집은 생각보다 넓었다.

‘이러다 퀘스트 허탕 치는 거 아냐? 이 뒤에 할 메인 퀘스트도 두 개나 더 있는데! 대머리 되기는 싫어!’

조금씩 짧아지는 퀘스트 시간을 바라보며 한숨 쉴 때였다.

“저기, 뭔가가 움직입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집 안 구석구석을 탐색하던 강진현이 세탁실 한구석을 가리켰다.

세탁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불이 꺼져 있는 채로, 내부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여기 있니, 오색아……?”

희나는 세탁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불 꺼진 세탁실은 잔뜩 그림자가 져 있어서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그러나 강진현의 말대로 작고 까만 형태가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만은 확실히 분간할 수 있었다.

아마 시력이 뛰어난 강진현이 아니었다면 한참 동안을 헤매야 했을 거다.

“어휴. 오색아. 내가 뭐라고 할 것 같아서 이렇게 구석진 곳에 숨어 있었던 거야? 괜찮아, 괜찮아. 가구는 다시 사면 돼. 우리 이제 돈 많거든. 대신 상황 설명만 좀 해 줘 봐.”

희나는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며 오색이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오색이는 희나를 본체만체하며 계속 벽만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근데, 뭔가 이상한데?’

희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가까이 갈수록 낯선 느낌이 들었다.

“어두우니 불 켜겠습니다.”

순간 강진현이 세탁실 불을 탁, 하고 켰다.

반짝하며 세탁실이 환하게 밝아졌다. 덕분에 희나는 뒤돌아 앉은 오색이를 똑똑히 살필 수 있었다.

“……어?”

그리고 오색이의 등껍질을 확인한 희나의 눈이 커다래졌다.

“오색……이가 아니야?”

옅은 상아색을 베이스로 하여 오색으로 반짝거리던 등껍질 색이 새카매져 있었다.

희나의 뒤에 따라오던 희원과 강진현 또한 이를 보고 한마디씩 던졌다.

“아까 그 시커먼 구멍 연 일로 너무 무리해서 그런 거 아냐? 사람 얼굴빛 죽는 것처럼?”

“달팽이는 기분에 따라 등껍질 색이 달라지는 습성이 있었던가요?”

내용이 어떻든, 목소리엔 걱정이 스며 있었다. 그들도 엉뚱하고 유쾌한 달팽이에게 상당한 정을 주고 있었던 터다.

그 순간이었다.

뒤돌아 앉아 있던 달팽이가 꾸물꾸물 움직였다.

동시에 동글동글한 머리통 위로 메시지가 뿅 하고 떠올랐다.

「하나는 맞췄고, 나머지 둘은 틀렸어.」

「형편없군.」

희나와 희원, 강진현은 쪼르르 거실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 앞에는 검고 영롱한 등껍질을 가진 달팽이 한 마리가 몸을 빳빳이 세우고 있었다.

「혼자 있고 싶으니 이 집에서 나가.」

달팽이는 망설임 하나 없이 축객령을 내렸다.

하지만 냉랭한 축객령은 형편없이 무시됐다.

“우리 오색이, 오색이는 어디 있어?”

“주택 관리자라는 호칭을 가진 달팽이가 하나 더 있다니……. 기분이 이상한걸. 희나야, 네 스킬도 유일무이한 게 아니었나 봐.”

“하지만 말버릇은 오색이와는 몹시 다르군요.”

셋은 검은 등껍질 달팽이를 앞에 두고 한참을 쑥덕거렸다.

마침내 검은 달팽이는 폭발하고야 말았다.

「오색이라는 유치한 이름은 그만 말하도록!」

「멀쩡한 주택 관리자를 앞에 두고 쑥덕거리는 게 집주인의 예의인가?」

예상 못 한 단어 선택에 희나가 되물었다.

“집주인?”

「그래. 집주인. 그쪽, 인간 살림꾼 말이다.」

“잠시만, 이거 상황이 어떻게 된 거지?”

희나는 잠시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짚은 채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 이내 낯빛이 창백해졌다.

“그러니까 네가 나를 집주인이라고 부른단 말은 여기가 내 집이란 뜻인데……”

「그렇다.」

“하지만 내 주택 관리자는 오색이인걸? 오색이는 어디 가고 네가 여기 있어? 혹시 우리 오색이 잘렸니? 아니면 네가 몰아낸 거야?”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오색이가 집에서 사라져 버리고 웬 다른 달팽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건 엄청난 사건이었다.

‘집밖에 모르는 앤데. 쫓겨나서 울고 있으면 어쩌나?’

걱정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오색이’란 건 그쪽 주택 관리자를 이르는 명칭인가 보군.」

“응. 물고기 비늘처럼 희게 반짝거리는 등껍질을 가진 달팽이 말이야. 말대답도 잘하고, 이상하고 철 지난 유행어도 많이 알고 있는 단답형 달팽이!”

검은 등껍질 달팽이는 안테나를 빳빳이 세우고 희나의 열변을 들었다.

「흠. “주택 관리자”다운 위엄이라고는 한 톨도 느껴지지 않아.」

「정신없어. 엉망이야.」

달팽이의 표현처럼 마침 희나의 머릿속도 뒤죽박죽이었다.

난데없는 퀘스트에, 공간 이동에, 거울 세계에, 텅 빈 집안.

‘그리고 사라진 오색이…….’

마치 이상한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진짜로 이거 꿈인가?’

희나는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볼을 꽉 꼬집었다.

아팠다.

‘꿈이 아니네.’

눈을 끔뻑거리고 있는데, 조심스러운 손길이 와 닿았다. 동시에 피부 위로 시원한 감각이 돌았다.

“이런……. 희나 씨, 뺨이 붉어졌습니다. 피부가 상하겠습니다.”

흠칫 놀라 곁을 보니, 강진현이 희나의 뺨을 쓰다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뭔가를 발라 주고 있었다.

“뭐, 뭐예요?”

“포션입니다.”

“예? 포, 포션이요?”

멍하니 묻자, 강진현은 신중한 손길로 희나의 볼을 토닥였다. 그리고 몇 초 후에야 이제 됐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설명했다.

“희나 씨 뺨이 부어올랐지 않습니까. 앞으로 자해는 절대 안 됩니다.”

“그냥 이게 꿈인지 잠깐 꼬집어 본 것뿐인데요. 자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

“희나 씨는 자기의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야 합니다. 저 같은 상급 헌터와는 달리, 일반인들은 작은 상처에도 크게 다쳐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까?”

“저도 각성잔데…… 나름 C급 살림꾼인데…….”

“맨손으로 돌도 부수지 못하는 허약한 몸 아닙니까?”

‘보통 그런 건 못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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