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안의 살림꾼-123화 (123/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23화

    희원은 멋모른 채 강진현을 따라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바닥에서부터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무엇인가 길쭉한 것이 흙바닥에서 몇 개 더 꿈틀하고 튀어나왔다.

    눈을 댕그랗게 키운 채 강진현의 가슴에 등을 기대고 있던 희나가 중얼거렸다.

    “……저건, 촉수? 아니, 뿌린가?”

    뿌리처럼 보이는 무엇인가가 지표면을 뚫고 나와 D급 마석을 둘둘 말아 감싸고 있었다.

    정황상 이건 공간의 나무에서 뻗어 나온 뿌리인 듯했다.

    이내 뿌리는 꿈틀거리며 D급 마석을 완전히 감쌌다. 그리고 옅은 보라색 빛을 발하는가 싶더니, 다시 얌전히 땅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와 동시에 세 사람의 눈앞에 퀘스트 완료 창이 떴다.

    희나가 중얼거렸다.

    “……이게 퀘스트 과정이었구나.”

    희원도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서 뺨을 긁었다.

    “거참 마석도 요상한 방법으로 가져가네. 땅속에서 꿈틀거리면서 튀어나오는 뿌리라니, 섬뜩하구먼. 그렇지, 바둑아?”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바둑이가 봉오리 부분을 격렬하게 끄덕였다.

    뿌리로 걷는 거대 식물과 그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 보이기에는 영 적절치 않은 반응이었지만, 본인들은 어색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싶었다.

    예의 바르게도 강진현은 그 사실을 지적하는 대신, 다음 해야 할 말을 했다.

    “그럼 다음 단계를 확인해 보도록 하죠.”

    “네! 퀘스트 다음 단계가 열렸겠네요. 확인해 볼까요?”

    희나는 퀘스트 창을 띄웠다. 물음표로 표시되어 있던 두 번째 단계가 나타나 있었다.

    < ……

    ▶필수 퀘스트 (0/3)

    -거울 세계로 떠나기

    ① ‘공간의 나무’에 D등급 이상의 마석을 바치세요. (완료!)

    ② 주택 관리자의 공간 활용 능력을 이용하여 거울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여세요.

    ③ ???? (선행 퀘스트 완료 후 확인 가능합니다)

    ……>

    두 번째 퀘스트 내용을 읽자마자 세 쌍의 눈빛이 오색이에게로 향했다.

    오색이는 텃밭 멀찍이 떨어져 서서 몸을 둠칫거리고 있다 안테나를 빳빳하게 세웠다.

    「……본 달팽이에게 용건 있을 유?」

    하는 말을 보니, 자기가 무얼 해야 하는지는 모르는 것 같아 보였다.

    “오색아, 퀘스트에 ‘주택 관리자의 공간 활용 능력을 이용하여 거울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여세요.’라고 쓰여 있거든.”

    「ㅇㅎ!」

    희나의 설명에 오색이가 알았다는 듯 안테나를 기역 자로 꺾었다.

    「가능. 가능. SSAP가능.」

    다행히 ‘공간 활용’이라는 능력을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는 알고 있는 듯했다.

    다만…….

    “……근데 너 그런 표현은 대체 어디서 배워 오는 거니?”

    「비밀 있을 유」

    “…….”

    오색이는 동그란 머리통을 유쾌하게 흔들며 공간의 나무를 향해 전속력을 다해 기었다. 달팽이의 기준으로 치자면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이 달리기를 가만히 지켜만 보는 건 바둑이에게 제법 고역이었나 보다.

    챱! 타탁, 탁!

    바둑이는 팔랑거리는 이파리로 오색이를 집어 나무 밑동에 탁 올려 주었다.

    「?」

    오색이는 순식간에 바뀐 위치에 의아해했으나, 금방 상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평소처럼 몇 마디 덧붙이는 대신 곧바로 집중하여 공간 활용 능력을 펼쳤다.

    오색이의 머리 위로 문자열이 뜨기 시작했다.

    「‘공간 활용 마법사’를 실행합니다.」

    「…… (로딩 중) ……」

    「……용량 부족! ‘균열 조각 모음 프로세스’를 진행합니다.」

    「…… (진행 중) ……」

    「0%…… 13%…… 38%…… 67%…… 99%」

    「……100% 완료!」

    오색이는 오래된 컴퓨터 시스템 언어 같은 소리를 연신 띄웠다.

    「적절한 틈새를 확보했습니다. ‘공간 활용 마법사’를 재실행합니다.」

    마침내 ‘공간 활용 마법사’라는 것을 재실행하자, 오색이의 등 껍데기가 화려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오색영롱하던 껍데기는 이젠 마치 별빛이 깃든 것처럼 반짝였다.

    그렇게 10여 초 가량이 지났을까, 자그마한 나무 바로 옆에 마치 컴퓨터 그래픽처럼 허공에 새카만 구멍이 생겼다.

    성인 한 사람 정도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였다.

    「‘공간 활용 마법사’ 실행 완료!」

    「적절한 틈새 공간을 확보하였습니다!」

    오색이는 자기 옆에 생긴 구멍을 확인한 후 잔뜩 으쓱거렸다.

    「본 주택 관리인, 매우 유능!」

    「첫 시도, 완벽한 성공!」

    오색이가 기고만장하게 안테나를 휘두름과 동시에 세 사람의 눈앞에 퀘스트 완료 창이 떴다.

    < ……

    ▶ 필수 퀘스트 (0/3)

    - 거울 세계로 떠나기

    ① ‘공간의 나무’에 D등급 이상의 마석을 바치세요. (완료!)

    ② 주택 관리자의 공간 활용 능력을 이용하여 거울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여세요. (완료!)

    ③ 거울 세계로 출발!

    ④ ???? (선행 퀘스트 완료 후 확인 가능합니다)

    ……>

    “거울 세계로 출발이라고?”

    희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들 앞에 생긴 검은 구멍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 시꺼먼 구멍 안으로 들어가라는 건 아니겠지?”

    “뭐야, 지금 시스템이 나 조롱한 거야?”

    희원은 지난 저녁부터 부쩍 시건방져진 시스템 창이 거슬린 듯했으나, 그보다는 코앞에 닥친 문제가 더 급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여기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 같은데. 이거 안전한 거 맞나? 희나야, 너 괜찮겠냐?”

    그리고 혈육은 혈육이라고, 희나부터 챙기고 들었다.

    “나도 불안하긴 한데, D급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희나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오빠를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이왕 시작한 퀘스트를 무를 수는 없었다.

    아니, 무를 수는 있겠지만 그러려면 극심한 탈모라는 잔혹한 시련을 마주해야만 했다.

    강진현은 그런 남매를 번갈아 보다가 제안했다.

    “공간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니, 제가 가장 먼저 입장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차례로 손을 붙잡고 들어가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좋은 생각이에요.”

    “순서는 저, 희나 씨, 희원 형님 순이 좋은 듯합니다. 아무래도 희나 씨가 가장 위험에 취약할 테니까요.”

    “좋아. 나는 찬성이야.”

    한시도 낭비할 시간이 없었으므로 결정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발밑을 조심하십시오. 비상사태가 일어나더라도 침착하게 상황에 대응하십시오. 제가 곁에 있으니까요.”

    강진현의 침착한 목소리는 몹시 든든하게 느껴졌다.

    희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대답했다.

    “네!”

    세 사람은 검은 구멍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들의 등 뒤로 오색이의 걱정 어린 메시지가 삐용삐용 허공에 일렁였다.

    「♨안전제일♨」

    순간적으로 위아래, 좌우가 반전되는 느낌이 들었다.

    눈앞에 번쩍 창이 뜨면서 희나는 극심한 어지럼증을 겪었다.

    “……헉!”

    “괜찮습니다. 진정하십시오.”

    강진현은 그대로 휘청하면서 발이 꼬여 비틀거리는 희나를 부축했다.

    “아이고, 속 메스꺼워라! 우웁!”

    그 뒤로 희원이 헛구역질을 하면서 들어왔다.

    강진현은 한 손으로는 희나를 붙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희원의 등을 툭툭 쳐 주었다.

    그의 배려 덕분일까, 남매가 정신을 차리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휴. 살겠네.”

    희원이 손등으로 입술을 닦아 내며 폭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옆에 쪼그려 앉아 어지럼증을 회복하고 있던 희나도 머리를 꾹꾹 누르며 중얼거렸다.

    “나도 이제 좀 정신이 든다.”

    “한결 괜찮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강진현은 남매에게 차례로 물을 권했다.

    희원은 물을 마시면 토할지도 모른다며 거절했고, 희나는 수통을 받아 꼴깍꼴깍 마셨다.

    “……고마워요, 진현 씨. 그나저나 진현 씨는 괜찮아요?”

    희나는 수통을 건네며 잠시 잊고 있던 안부를 챙겼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는 낯빛 하나 바뀐 데 없이 아주 멀쩡해 보였다. 희나는 그 의연한 모습에 감탄했다.

    “역시 S급은 기본 바탕부터가 다른가 봐요. 저는 세상이 빙빙 돌다 못해 머리가 아플 정도였는데…….”

    “맞아. 나도 멀미 나서 속 완전히 뒤집히는 줄.”

    희원이 맞장구치며 쪼그려 앉은 희나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대머리 안 되려면 이렇게 노가리 깔 시간 없어. 빨리빨리 움직여야지.”

    엔간히도 탈모가 싫긴 싫었나 보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일행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풀숲이 잔뜩 우거져 있는 평지였다.

    검은 구멍 너머의 공간은 생각 외로 평범했다.

    ‘아니, 평범이라기보다는 좀 더…….’

    어렴풋하게 드는 기시감에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침 희원도 한마디 덧붙였다.

    “여기, 우리 집 앞마당처럼 생기지 않았어?”

    희원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풍경이 집 앞마당에서 바깥 보는 거랑 비슷한 것 같은데……. 거기다가 이 풀들도 익숙해. 텃밭 개간할 때 질리도록 뽑았던 거라고.”

    매일같이 던전 텃밭에 나가 농사일을 하는 희원이 이렇게 주장하니 꽤 그럴싸했다.

    “맞습니다. 그나저나 여기도 던전처럼 보이니 희나 씨 스킬을 한번 사용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내 집은 어디에’ 스킬 말입니다.”

    강진현의 영리한 제안에 희나는 옳다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네요.”

    ‘내 집은 어디에’ 스킬은 던전 약도를 볼 수 있는 능력이었다.

    희나의 집 현관문, 보스 몬스터,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게이트 입구, 이 세 가지 포인트를 개략적으로 표시하여 띄워 주었다.

    “어디 볼까……?”

    스킬을 시전하자, 조잡한 지도가 눈앞에 뿅 하고 나타났다.

    희나는 지도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깜짝 놀라 고개를 뒤로 젖혔다.

    “뭐야?”

    “무슨 일입니까?”

    두 남자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한쪽은 잘생겼고, 한쪽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희나는 희원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철푸덕 밀어내며 외쳤다.

    “여기, 우리 집 현관문 바로 근처인데?”

    던전 안의 살림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