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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22화 (122/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22화

    달팽이의 반질반질한 머리통에 커다란 땀방울이 맺혀 보이는 건 희나의 착각일까?

    마침내 오색이는 안테나를 비비 꼬다가 무언가 떠올린 듯 황급하게 문자를 띄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희나는 오색이를 손바닥 위에 얹어 놓고 추궁했다.

    “오색이! 너! 뭔가 이 일과 관련돼 있지?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좀 이상했어!”

    「현 상황은 본 달팽이와는 무관함을 밝힘;」

    “무관한데 안테나는 왜 이렇게 불안하게 비비 꼬고 있어?”

    「ㄴㄴ! 심증일 뿐! 본 달팽이, 억울;」

    “지금 시스템이 대답 No를 회피하는 게 ‘홈 스위트 홈’ 강매할 때랑 비슷하다고 느끼는 건 나뿐인가? 응?”

    「다소 당혹스러운 이슈입니다^^;」

    “그럼 계속 아까부터 세미콜론으로 땀은 왜 흘리고 있는데?”

    집요한 추궁에 마침내 오색이는 한 쌍의 안테나를 추욱 늘어뜨렸다.

    「……해당 퀘스트: 거절 불가.」

    “그런 것 같았어. 선택지가 Yes밖에 안 남았잖아. 네 짓이야?”

    이에 희원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오색이를 내려다보았다.

    “오색이가 이런 짓을 했다고?”

    그러자 오색이는 소스라치듯 놀라 안테나를 쭉 펴 엑스 자 표시를 만들었다.

    「극 구 부 정! 절 대 아 님!」

    “그럼 이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

    “우리 좋은 말 할 때 대화로 끝내자, 오색아.”

    「……해당 퀘스트: ‘홈 스위트 홈’ 관련 시스템 메인 퀘스트.」

    「본 달팽이, 주택 관리인 자격으로 시스템 의도 파악함.」

    대충 알아들은 바로는, 지금 뜬 이 퀘스트가 ‘홈 스위트 홈’과 연관된 퀘스트라 이게 어떻게 흘러갈지 알았다는 내용 같았다.

    “그러니까 너는, 어떻게 해서든 시스템이 이 퀘스트를 수락하게 만들려고 하는 걸 알았다고?”

    「ㅇㅇㅠ. NO거짓부렁NO. ♨완전진담♨」

    “흐음……. 그래. 넌 사실을 감추는 타입이지, 거짓말을 하는 달팽이는 아니니까. 믿을게.”

    「ㅠ억울」

    “넌 이미 전적이 있어.”

    참고로 오색이는 ‘홈 스위트 홈’ 택지가 던전 안이라는 사실을 감추었던 바가 있었다.

    「그땐 유감. 몹시 유감.」

    “흥.”

    두 안테나를 빌듯이 싹싹 비비는 오색이를 보고 흥, 하고 콧방귀를 끼었다.

    그런 희나에게 두 남자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강진현은 매끈한 턱을 쓸며 생각에 빠졌다.

    “시스템의 저의를 알 수 없군요. 희나 씨에게 유독 호의적으로 구는 듯하면서도…… 위험 속으로 떠미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희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저도 지금 이 상황이 잘 이해가 안 되긴 해요. 그래도 확실한 거 하나는 알아요.”

    “무엇입니까?”

    “여기서 선택지 ‘No’는 없다는 거. 제가 이 집 계약할 때도 그랬거든요. 우리가 아마 ‘Yes’라고 대답할 때까지 창을 없애 주지 않을걸요.”

    때맞춰 팝업 창이 다시 떠올랐다. 이제 시스템은 속내를 감출 생각조차 안 했다.

    “이야……. 이거, 진짜네. 선택지에서 ‘No’가 완전히 사라졌어! 이거 순 사기꾼 아니야?”

    희원이 어처구니없어 탄식했다. 희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어쩔 수 없지. 하는 수밖에.”

    “의외로 쿨하다? 호들갑 떨면서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집주인 간, 다소 팽창한 것으로 보임.」

    한 사람과 한 달팽이가 신랄한 평가를 날렸다.

    “아니 나를 대체 뭘로 보고……! 일단 D급 퀘스트라잖아. 그래 봤자 얼마나 어렵겠어?”

    “오올.”

    “거기다가 파티원도 추가해서 데려갈 수 있다고 하니까, 진현 씨랑 같이 가면 되지. 그럼 괜찮지 않을까?”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S급 헌터가 함께하는데, 설마 D급 퀘스트를 깨지 못할까?

    강진현에 대한 희나의 믿음은 아주 단단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희나 씨를 돕겠습니다.”

    강진현도 희나를 돕겠다며 나섰다. 검은 눈동자가 희나를 지키겠다는 의지로 이글거렸다.

    그 모습은 희원이 보기에 퍽 마음에 들었다.

    “이야, 우리 강 헌터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니 걱정 없겠구먼.”

    “맡겨만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희나가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 손뼉을 짝짝 쳤다.

    “그럼 퀘스트는 이대로 받아들이는 걸로 하자.”

    “지금 당장 예스 할까?”

    희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지금 시간도 늦었고 피곤하니까 내일 아침에 하자. 시야가 갑갑하긴 한데…… 하룻밤 정도는 참지 뭐.”

    그 제안에 희원이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급하게 시작해 봤자 일만 꼬이지. 그럼 내일 아침 든든하게 먹고 오케이하는 걸로?”

    “그러자!”

    속 시원한 결정이었으나, 시스템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시스템은 남매의 눈앞에 창을 띄우고 또 띄웠다.

    문구가 신경질적으로 느껴지는 건 착각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희나와 희원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자! 그럼 들어가서 씻고 쉽시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요!”

    희나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텃밭을 짜랑짜랑 울렸다.

    나무 주위를 빙글빙글 돌던 바둑이는 그제야 멈추어 서서 경례하듯 이파리 한쪽을 꽃봉오리 위로 척 올렸다.

    「ㅇㅋㄷㅋ」

    오색이의 대답과 함께 일행은 휴식을 취하러 ‘홈 스위트 홈’에 돌아갔다.

    상황 정리는 깔끔했고, 남은 건 시스템의 절규뿐이었다.

    * * *

    “음. 퀘스트 기한은 사흘짜리니까 일단 회사에 연락해서 연차 좀 쓰고…… 진현 씨도 요 며칠은 딱히 스케줄 없죠?”

    희나는 아침 내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팝업 창을 애써 무시한 채 대화를 이어 나갔다.

    “없습니다.”

    “그럼 진현 씨도 연차 쓰시면 되겠네요.”

    “헌터는 연차 개념이 없습니다. 임무 호출 리스트에서 빠지면 됩니다.”

    “아, 그랬구나. 그럼 진현 씨도 스케줄 빼는 거 좀 부탁드릴게요.”

    “예.”

    대화 당사자 중 그 누구도 중요한 임무를 제외하면 거의 붙어 다니다시피 하는 두 남녀가 같은 날에 휴가를 쓰면 무슨 소문이 돌지에 대한 자각은 전혀 없었다.

    이후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면 그저 안타까울 정도로.

    “희나야. 짐은 다 챙겼지? 방어 아이템이랑, 그 SSS급 신문지 이런 거.”

    한편, 희원은 오래간만에 작업복을 벗고 가벼운 테크 웨어를 걸쳤다.

    희나도 강진현이 어디에선가 구해다 준 활동성 있는 옷을 입었다. 수수해 보이지만, 모두 수십억 원대의 고급 아이템들이었다.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대처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준비한 거 맞지?”

    “예. 이 정도가 최선인 듯합니다.”

    “그럼 이제 퀘스트 수락하자, 희나야.”

    “알았어.”

    희나는 희원과 동시에 퀘스트를 수락했다.

    시스템 문구에서 다소간의 앙심이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그 정도는 가뿐히 무시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곧이어 파티원 추가 메시지가 떴다. 희나는 고민 없이 강진현의 이름을 읊었다.

    “진현 씨도 파티원으로 추가해 줘.”

    “응. 다음 단계로 넘어갈래.”

    희나의 대답에 바로 퀘스트 창이 떴다. 그중 가려져 있던 필수 퀘스트의 세부 사항이 일부 오픈된 것이 보였다.

    하지만 세 사람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건, 퀘스트의 세부 사항이 아니었다.

    희원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퀘스트 실패 패널티?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항목이잖아?”

    그도 그럴 게, 말도 안 되는 항목이 은근슬쩍 덧붙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 퀘스트 실패 시 불이익: 극심한 탈모가 찾아옵니다.>

    그것도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살아가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는 부분을 인질 삼은 항목이었다.

    “뭐 이런 양아치가 다 있어?”

    시스템은 퀘스트 창 어딘가에 이 문구가 작게 숨어 있었다며 우겼다.

    “허…….”

    눈 뜨고 코 베인 셈이었다.

    세 사람은 잠시 망연히 서 있다가 금세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지. 퀘스트 시작했으니까, 사흘 안에 완료하려면 지금부터 서둘러야 해.”

    “그러게. 대머리 안 되려면 후딱 해치워야겠다.”

    “……두 분 의견에 동의합니다.”

    다들 한마디씩 꺼내며 눈앞에 뜬 퀘스트 창을 마저 읽었다.

    어쨌거나 머리털은 소중했고, 허공을 향해 화를 내는 데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으니까.

    < ……

    ▶필수 퀘스트 (0/3)

    -거울 세계로 떠나기

    ① ‘공간의 나무’에 D등급 이상의 마석을 바치세요.

    ② ???? (선행 퀘스트 완료 후 확인 가능합니다)

    ……>

    “공간의 나무에 마석을 바치라고 뜨는군요.”

    강진현이 퀘스트를 읽어 내렸다. 파티원으로 등록하며 그에게도 퀘스트가 오픈된 것 같았다.

    “D급 마석은…… 진현 씨가 줬던 마석 조각으로 하면 되겠네요.”

    희나는 재빨리 방에 들어가 마석 조각을 담은 유리병을 가져왔다.

    그리고 병 안에 손을 넣어 뒤적이다 그중 하나, 보랏빛의 길쭉한 마석을 집었다.

    “어디 보자. 여기 있네요, D급 마석.”

    「궈궈싱↑」

    신이 나서 출발 신호를 연호하는 오색이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섰다.

    바둑이도 쭐레쭐레 희원의 뒤를 따랐다.

    “음. D급 마석까지는 준비했는데, 이걸 어떻게 바친담?”

    요리조리 공간의 나무 주위를 살피고 있을 때였다.

    “희나 씨, 조심하십시오.”

    강진현이 갑자기 어깨를 낚아채 감싸는 바람에 손에 들고 있던 마석을 놓치고 말았다.

    “앗, 마석!”

    그와 동시에 방금까지 희나가 서 있던 자리 바로 앞에서 무엇인가가 불쑥 흙을 뚫고 나타났다.

    상황 판단은 찰나에 이루어졌고, 그는 희나를 품에 안고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희원 형님, 뒤로 물러서십시오!”

    “뭐야, 무슨 일이야?”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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