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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21화 (121/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21화

    강진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수없이 많은 마물들과 아이템을 보아 왔던 그지만, 이런 문구는 처음 보았던 까닭이다.

    ‘특정 클래스에게만 내용이 공개된다고.’

    물론 설명 창 내용이 소실되어 알아볼 수 없는 몇몇 던전 산물은 기존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특정 클래스에게만 선택적으로 정보를 오픈하는 경우는 없었다. 적어도 그의 경험 안에서는.

    ‘희원 형님의 텃밭에서 바둑이의 기운을 받아 자란 나무이니, 평범한 나무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제법 수상해.’

    강진현은 이 기현상을 알리기 위해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희나가 강진현 옆으로 불쑥 다가와 중얼거리는 게 먼저였다.

    “공간의 나무, 50%?”

    이에 강진현은 깜짝 놀라 희나를 내려다보았다.

    “희나 씨. 방금 시스템 설명 창을 읽은 겁니까?”

    “네. 와, 그런데 이거 특이하네요. 손을 가까이 대지도 않았는데 설명 창이 확 떴어요. 보통은 집중해야 창이 보이는데.”

    “……이게 보인단 말입니까?”

    희나는 설명 창을 마저 읽으려다 강진현의 경악 어린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강진현이 제법 당혹한 기색을 풍기고 있었다.

    대체로 잔잔한 호수처럼 구는 그였다. 흔치 않은 모습이었다.

    “왜요? 진현 씨한테는 뭐라고 보이는데요?”

    “보이지 않습니다.”

    “……예?”

    “제겐 이 나무의 상태 정보가 보이지 않습니다.”

    희나는 눈을 굴려 설명 창을 힐끗 바라보았다.

    깨알 같은 크기로 박혀 있는 글자들은 분명히 한글이 맞았다. 의아했다.

    “제게는 설명 창의 내용 중 극히 일부분만이 보입니다. 나무와 50%라는 글자 외에는 모두 빈칸으로 뜨고, 그나마 확인할 수 있는 문장이라고는 ‘특정 클래스에게만 공개된 정보’라는 설명뿐입니다.”

    “어라? 이상하네. 나한테도 멀쩡히 보이는데?”

    강진현의 말에 희원도 설명 창이 보인다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특정 클래스에게만 공개된 정보라는데, 그게 오빠랑 나인가 봐. 농사꾼이랑 살림꾼 말이에요.”

    “너한테 보이는 건 ‘홈 스위트 홈’ 과금으로 생긴 씨앗이라서 그렇고, 나한테 보이는 건 내가 얘를 심고 키워서 그런 걸까?”

    희원의 추측도 꽤 그럴싸했다.

    “하긴. 어떻게 보면 여긴 나랑 오빠만의 구역이니까.”

    희나는 오빠의 가설에 동의하며 다시 설명 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일단 상황 파악을 하려면 내용을 좀 살펴봐야겠네. 우선 설명부터 마저 읽어 보자.”

    <공간의 나무(50%): 올바른 장소, 비옥한 토양, 세심한 관리, 적절한 시기 등 대단한 우연이 겹치고 겹쳐 가까스로 자라난 공간의 나무. (참고로 공간의 나무는 특정 던전 하나에 하나밖에 싹을 틔우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알아 두자!)

    그러나 거울상 공간에 대한 싱크가 끊긴 형태로, 완전한 합일을 이루지 못했다. (참고로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일단 읽어는 두자!)

    거울상 반대편의 기운이 쇠약하여 거울상 나무의 뿌리가 이어질 정도로 완전히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공간의 나무는 두 그루의 뿌리가 이어져야만 비로소 완전한 한 그루의 나무가 된다!)

    반쪽짜리 공간의 나무가 안쓰럽게 느껴진다면, 모두 함께 힘을 합쳐 도움을 주는 것은 어떨까? (참고로 두 나무의 연결을 위해서는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특정 클래스에게만 공개된 정보입니다. (참고로 이 글을 읽을 줄 아는 당신들은 선택받았다고 볼 수 있다!)>

    설명이 빼곡하게 벽돌처럼 들어차 있었다.

    “윽……. 눈알 빠지겠네.”

    희나는 뻑뻑해진 눈을 손등으로 비볐다.

    간단한 정보만 기재하는 시스템답지 않은 길디긴 설명문이었다.

    이걸 작성한 존재는 누군지 몰라도 투 머치 토커가 분명했다. 글자를 보는데 귀가 아픈 기분이 드는 건 또 처음이었다.

    ‘어떻게 문장 한 줄마다 사족이 붙을 수가 있지?’

    심지어 줄글이 길고 장황한 것에 비해 이해가 갈 만한 정보는 아주 빈약했다.

    중간부터는 이상한 용어들이 잔뜩 나와서 이게 한국어인지, 외계어인지 알아보기조차 어려웠다. 내용이 두루뭉술하고 난해했다.

    “이게 무슨 말이야?”

    희원 또한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지 설명 창이 띄워져 있을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남매가 똑같은 표정으로 인상을 쓰고 있는 까닭이 궁금했는지 강진현이 슬쩍 물어 왔다.

    “설명 창에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어……. 간추려 설명하긴 어려우니까 여기에 쓰여 있는 것 그대로 읽어 드릴게요.”

    “예.”

    희나는 설명 창에 쓰인 글자 그대로 또박또박 내용을 읊었다.

    “음……?”

    줄글을 읽어 갈수록 강진현의 표정도 점점 이상해졌다.

    그는 마지막 한 문장까지 빠짐없이 듣고는 이렇게 평했다.

    “내용은 둘째 치더라도, 시스템 설명 문구치고는 굉장히 경박……스럽게 들리는군요.”

    “맞아요. 좀 이상해요. 왜 이렇게 정신없이 흥분해서 쓴 글처럼 보일까요? 설명도 어영부영하고.”

    거기다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일단은 읽어는 두자!’라니…….

    ‘뭐 이런 글이 다 있담?’

    얕게나마 남아 있던 경계심이 탁 풀릴 정도로 어처구니없었다.

    희나는 대충 이해한 대로 중얼거렸다.

    “거울상 공간에 거울상 나무는 또 뭐고……. 일단 얘 이름 뒤에 50%가 뜨는 이유는 다른 나무 한 그루랑 이어지지 못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싱크는 또 무엇이고, 뿌리를 잇는다는 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에 빠져 있는데, 오색이가 끼어들어 안테나를 삐뽀삐뽀 내밀었다.

    「하나가 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란다.」

    “뭐래?”

    「모두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거야.」

    평소와는 말투가 사뭇 달랐던 오색이의 대사는 깨끗하게 묻혔다. 원체 뜬금없었기 때문이다.

    희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의아해할 때였다.

    “그나저나 마지막은 왜 권유하는 청유형으로 끝나지? 꼭 퀘스트 같네.”

    때맞춰 남매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반짝거렸다. 퀘스트 알림이었다.

    희나와 희원은 동시에 중얼거렸다.

    “이게 뭐람?”

    “에잉?”

    시스템 창은 띠롱띠롱 퀘스트 내용을 줄줄이 허공에 띄웠다.

    <즐거운 거울 세계 탐방!(D): 짝을 찾지 못한 불쌍한 ‘공간의 나무(50%)’를 완전하게 만들어 주고 싶지 않나요? 끊어진 두 거울 공간을 이어 줍시다. 선행도 하고 거울 세계도 탐방하고! 그야말로 일석이조! 파티원을 모아 함께 퀘스트를 즐기는 것도 가능합니다.

    ▶필수 퀘스트 (0/3)

    - 거울 세계로 떠나기 (세부 내용은 퀘스트 수락 후 확인 가능합니다.)

    - ???? (선행 퀘스트 완료 후 확인 가능합니다.)

    - ???? (선행 퀘스트 완료 후 확인 가능합니다.)

    ※ 시간제한: 퀘스트 수락 시점으로부터 72시간

    ※ 퀘스트 불이행 시 불이익: 해당 상황에 대한 깊은 호기심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 퀘스트 보상: 아는 것이 힘이다! 세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경험을 얻습니다.

    ※ 퀘스트 실패 시 불이익: 극심한 탈모가 찾아옵니다.

    ※ 살림꾼과 농사꾼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 부가 퀘스트 (0/1)

    ※ 즐겁게 거울 세계 탐방하기>

    뭐 이런 이상한 게 다 있지? 싶어 희나는 콧잔등을 구겼다.

    “오빠, 오빠도 떴어?”

    “즐거운 거울 세계 탐방?”

    “응……. 같은 거 떴네.”

    남매의 대화 사이에 강진현이 끼어들었다.

    “두 분께 무언가 또 떴습니까?”

    그에게는 퀘스트 창이 뜨지 않은 듯했다.

    “네. 퀘스트 창이 떴어요. 이름은 ‘즐거운 거울 세계 탐방’이고, 자세한 내용은…… 일단 퀘스트를 수락해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희원이 키 작은 나무를 턱짓했다.

    “일단 저 공간의 나무랑 연관이 되어 있는 것 같지? 거울상 세계니 뭐니 하는 걸 보니까.”

    “맞아. 타이밍도 수상할 정도로 맞아떨어지고.”

    이에 강진현이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두 분에게 보이는 게 제게는 보이지 않으니, 굉장히 갑갑하군요. 무엇이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말인데요.”

    “괜찮아요. 거절해도 퀘스트 불이익도 없는 것 같아 보이고……. 안 하면 되죠.”

    희나는 대수롭지 않게 손을 휘휘 저어 보였다. 그리고 희원에게 되물었다.

    “나는 안 하고 싶은데, 오빠 생각은 어때?”

    “나도 안 하는 거 찬성. 퀘스트 내용도 제대로 안 밝히는 거 보니까 뒤가 구려.”

    희원도 희나의 말에 적극 찬성했다.

    “내용은 모르지만, 일단 저도 안 하는 쪽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요.”

    강진현까지 한몫 거드니, 그야말로 만장일치였다.

    「ㅎㅅㅎ」

    그 와중에 오색이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이모티콘을 띄울 뿐이었다.

    “그럼 퀘스트 거절하자. 나랑 오빠 둘 다 거절하면 되는 거겠지?”

    때맞추어 퀘스트 수락/거절 창이 뿅 하고 떴다. 누가 말이라도 듣고 있다가 시스템 창을 띄워 주는 게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였다.

    ‘어쨌건 이번에는 거절할 수 있는 퀘스트라서 다행이야.’

    희나는 안심하며 시스템 창을 응시했다.

    “당연히 아니오지!”

    “뭐? 이게 무슨 시스템 창에서 에러 뜨는 소리야?”

    희나는 다시금 눈앞에 뜬 팝업 창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살펴보니 Yes, No 선택지에서 무언가 이상한 게 보였다.

    “N에 붙은 가로줄은 뭐지?”

    No, 그러니까 ‘아니오’를 뜻하는 알파벳 N에 아주 미세하게 얇은 가로줄이 쳐져 있었다.

    ‘……마치 글자를 썼다 지운 것처럼.’

    스멀스멀 불안한 예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희나는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오빠를 관찰했다.

    희원은 허공에다 대고 계속 ‘아니오!’를 외치고 있었다.

    “희나야, 이거 시스템 창, 나만 이상해? 계속 유효하지 않은 경로라는데?”

    “나도 그래.”

    ……말하는 걸 들어 보니 희원의 시스템 팝업 창도 희나와 별다를 건 없어 보였다.

    ‘이거 왠지…….’

    어쩐지 이 상황, 기시감이 들었다.

    희나는 본능적으로 어깨에 올라탄 오색이를 홱 바라보았다.

    「;;;」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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