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안의 살림꾼 110화
이번에는 대성공이었다!
S가 뜬 시금치 프리타타를 흐뭇하게 내려다보고 있는데,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다 만들었어.”
때맞춰 유한이도 포션 제조를 완료한 듯했다. 그는 완성한 액체를 작은 유리병에 쪼르르 옮겨 담았다.
“식탁으로 가져와서 비교해 보자.”
희나는 식사용 식탁에 조리한 음식을 옮기며 턱을 까딱까딱했다.
B등급이 나온 프리타타는 은근슬쩍 조리대 위에 감추어 놓고 왔다.
희나와 유한이는 각자 서로의 완성품을 살폈다.
‘색이 예쁘네.’
시금치로 만든 포션을 마주한 첫 감상은 ‘예쁘다’였다. 연한 녹색이 도는 투명한 액체는 굉장히 상큼해 보였다.
감탄을 멈추고 포션에 정신을 집중하자 이내 아이템 설명 창이 떴다.
<근력 포션(B): 섭취 시 20분 동안 근력이 9% 증가한다.>
“응? 9퍼센트?”
볼품없는 효과였다. 희나는 실망해서 에엥, 하고 탄식했다.
‘이 정도면 그냥 생시금치랑 효과가 별반 차이 없는 것 아니야?’
혹시나 기억이 잘못됐나 하여 시금치를 꺼내 보았지만, 역시나였다.
<시금치(A): 날것으로 섭취 시 10분 동안 근력이 9% 증가한다. 특별한 손길이 닿아 조리했을 경우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근력 버프는 늘기는커녕 9%로 동일했고, 10분이었던 지속 시간이 20분으로 늘어난 것뿐이었다.
“뭐야, 이건 망친 B급 프리타타보다 효과가 별로잖아?”
형편없는 결과물에 실망하고 있을 때였다.
“이건 대체 뭐야? 어떻게 한 거야!”
창백한 유한이의 얼굴이 불쑥 가까워졌다.
그는 몹시 놀란 듯 입을 쩍 벌리고 식탁 위에 놓인 희나의 요리를 손가락질했다.
“여기에 무슨 첨가물 넣었어?”
“첨가물? 화학 조미료는 딱히 안 넣었는데.”
얼떨떨하게 대답하자, 유한이가 가슴을 치며 따져 물었다.
“아니, 그런 의미의 첨가물이 아니라! 포션이나 다른 특수 작물을 넣었냐는 질문이야!”
“그냥 평범한 재료 넣었는데. 마트에서 산 계란이랑, 애호박이랑, 두부랑, 참기름, 소금, 된장……. 아, 전부 국내산이긴 하네.”
희나는 음식에 들어간 재료를 하나하나 꼽아 주었다.
유한이는 그 대답에 펄펄 날뛰었다.
“으아악! 그 말이 아니라고! 어떻게 특별한 첨가제 없이 원재료의 효능을 이렇게 증폭시킬 수가 있지? 심지어 민첩까지 증가라니? 이건 본 재료에는 없던 효과잖아! 너 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 이거 어떻게 했어? 어?”
창백한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고함을 버럭버럭 지르는 모습은 보기에 썩 좋지 않았다.
희나는 얼굴을 들이미는 유한이의 어깨를 밀어냈다.
“부담스러우니까 좀 떨어져 줄래? 너야말로 유능하다고 큰소리 뻥뻥 치더니 고작 9%에 20분짜리 포션 만든 게 다야? 얼마나 실력이 대단해야 이렇게 당당하게 구나 했는데…….”
희나는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면서 잘난 척을 했냐’라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그러자 자존심이 상했는지, 유한이의 눈꼬리가 사납게 올라갔다.
“‘고작 9%에 20분짜리’가 아니거든! 최적화 스크리닝 과정 없이 처음 다루는 재료 가지고 이만큼이나 성과 낸 것 자체가 내가 천재라는 의미거든! 어중이떠중이들은 효과 추출조차 제대로 못 해낸다고. 그러니까 내가 무능한 게 아니라 네 기준이 이상한 거야!”
그는 몹시 억울한 듯 가슴을 퍽퍽 쳤다.
희나는 그 모습을 보며 팔짱을 끼었다.
“그래? 네 능력이 멀쩡한 거라면 내 요리 스킬로 만든 결과물이 더 좋은 거네. 설명 창에서 말하는 ‘특별한 손길’이란 게 나한테만 한정됐다고도 볼 수 있는 거고.”
예상한 부분이기는 했다.
희나와 희원은 남매였고, 그래서 그런지 살림꾼과 농사꾼은 서로 연관된 부분이 많았다.
즉, 농사꾼인 희원의 손에서 자란 작물이 살림꾼이 아닌 다른 손길에 반응할 거란 생각은 별로 해 본 적이 없었다.
몇 분 후, 마침내 유한이는 굉장히 인정하기 싫은 표정으로 웅얼거렸다.
“……그런 것 같네. 최적화한 시약 제조 방법을 찾아낸다 해도 이 음식만큼 좋은 성과를 낼 자신은 없어.”
자존심은 대단하지만, 결과에는 승복하는 타입인 듯했다.
하지만 잠시 수그러들었던 자존심은 엄청난 자기애로 다시금 활짝 피어났다.
“하긴. 그러니 내게 이 프로젝트가 내려왔겠지. 이런 어려운 상황을 올바로 헤쳐 나갈 만한 인재는 길드에 나밖에 없으니까!”
‘별꼴이야.’
희나는 대놓고 질린 표정을 했다.
“그럼 ‘특별한 손길’이 어떤 것인지 확인했으니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를 하자.”
유한이는 빈 노트를 가지고 와서 볼펜으로 무엇인가를 박박 써 댔다.
“뭐 해?”
“이 연구로 알아내야 할 사항들…… 브레인스토밍 좀 해 보려고.”
희나는 노트 위에 무작위로 갈겨지는 단어들을 훔쳐보았다.
대충 이런 것들이 쓰여 있었다.
- 시약 제조 스킬과 요리 스킬의 차이점 확인
- 조리법 체크하기 (최적화한 조리법?)
- 유효한 결과값 출력을 위해 필요한 시금치 성분의 최저 용량은 얼마인지?
- 어디까지가 조리의 개념인지? → 확인 필요
- 음식물 섭취 및 휴대 용이성?
등등…….
유한이의 글씨체는 악필인 데다 전문 용어가 많이 섞여 있어서 읽기 어려웠다.
거기다 줄임말을 잔뜩 쓰는 게, 흥분했을 때의 오색이 말투 같기도 했다.
희나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리스트들을 구경하다가 눈을 슬쩍 흘겼다.
‘이제 좀 연구원처럼 보이네.’
첫인상이 최악이라서일까, 그동안은 뭘해도 재수 없는 사람이란 감상이 더 컸는데 이제야 뭘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엔 뭘 해야 해?”
묻자, 유한이는 고개를 홱 들어 대답했다.
“우선 네 능력에 대해서 파악해야 해. 어디까지 얘기해 줄 수 있어? 참고로 이 일은 대외비라 외부에 발설하지는 않을 거야. 마석에 대고 맹세했거든.”
곧바로 희나는 ‘이 맛이 바로 손맛’ 스킬의 설명 창을 띄웠다.
<이 맛이 바로 손맛(C): 최고의 MSG를 맛보게 해 준다. 그것은 바로 손맛. 액티브 스킬.>
성의 없는 설명이었으므로 딱히 힌트를 얻을 만한 여지는 없었다.
스킬 창을 그대로 읽어 주니, 유한이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그가 듣기에도 별 볼일 없는 설명이었나 보다.
“스킬 설명이 정말 그게 다야? 부가 설명도 없어? 숨기거나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응. 이게 다야. 아, 그리고 이거랑 같이 숙련도 오르는 패시브 스킬이 있긴 해.”
유한이는 건방진 태도로 요구했다.
“그것도 설명해 봐.”
마치 자기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모습에 조금 배알이 꼴렸지만, 희나는 꾹 참고 순순히 대답했다.
“‘야무진 손끝’이라고, 솜씨가 필요한 일에 도움을 주는 패시브 스킬이야.”
마침 ‘야무진 손끝’ 스킬은 얼마 전 스킬 랭크가 B로 오른 참이었다. 매일같이 바지런하게 움직인 덕이었다.
<야무진 손끝(B): 야무진 솜씨로 모두에게 만족감을 부여한다. 패시브 스킬.>
유한이는 ‘이 맛이 바로 손맛’과 ‘야무진 손끝’ 스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둘 다 손재주에 관련한 스킬이군. 네 손을 어떻게든 직접 거쳐야만 시금치의 효과가 증폭된다는 의미겠고.”
그러면서 그는 혼잣말을 중얼중얼했다.
“어느 수준까지 손을 타야 스킬이 발현하는지도 알아봐야겠네. 씻고 다듬는 수준의 손길만 필요한지, 불이 닿아야 하는지, 아니면 이름이 있는 구체적인 요리를 만들어 내야 하는지…….”
유한이는 볼펜 꼭지를 잘근잘근 씹으며 수많은 물음을 던졌다.
‘이렇게 궁금한 게 많을 수도 있구나.’
짧은 스킬 설명문을 듣고 뭔가를 오목조목 따져 대는 게 신기했다.
‘연금술사들은 다 이런가? 아니면 각성자들은 원래 자기 스킬을 이렇게 분석해야 하는 걸까?’
이론형이라기보단 실무형에 가까운 희나에겐 신기한 사고방식이었다.
희나는 스킬이 있으면 냅다 이용하면서 실전으로 익혔으니 말이다.
“우선 네가 요리하는 방법부터 봐야겠어.”
어느새 머릿속으로 정리를 끝낸 유한이가 희나를 향해 손을 턱 내밀었다. 뭔가 내놓으라는 듯한 손 모양이었다.
“왜?”
“실험 노트 줘. 아니, 이 경우에는 요리 노트인가?”
“난 레시피북 잘 안 봐.”
희나의 대답에 유한이가 목소리를 좀 더 높였다.
“레시피북이 아니라! 요리하면서 순서나 특이 사항 같은 거 기재해 두는 노트, 없어?”
“없는데.”
재료가 있고, 도구가 있고, 주방이 있으면 그냥 할 수 있는 게 요리였다.
거기다 희나는 대단히 복잡한 요리를 하는 편도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이 자주 접하는 평범한 음식을 만들었다.
하지만 유한이에게는 희나의 상식이 비상식으로 다가온 듯했다.
“세상에. 실험 노트가 없다고? 말도 안 돼. 그럼 각 실험마다 달라지는 요인들은 어떻게 확인하는데? 기록은 중요하다고! 연구의 핵심이 바로 실험 노트인데!”
그는 품에서 노트 하나를 꺼내어 펼쳤다. 아까 시약을 만들면서 열심히 쓰던 그 노트였다.
노트에는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야, 이것 봐.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 그날 날씨는 어땠는지, 온도, 습도는 어땠는지 기입하고 각 단계별로 어떻게 진행했는지 적어 놔야지. 온도는 몇 도에서 가열은 몇 분 몇 초간 했고, 교반 속도는 몇 rpm인지, 시료는 몇 센티미터 단위로 커팅했는지, 주성분은 몇 그램을 사용했는지…….”
주절주절 이어지는 잔소리에 희나는 손을 휘휘 저었다.
“무슨 요리를 그렇게 까다롭게 해? 대강 순서 알고 감으로 하면 되는 건데.”
상대의 시큰둥한 반응에 유한이가 절규했다.
“대강? 감으로? 용납할 수 없는 단어야! 어떻게 이렇게 안일한 마음으로 연구에 임할 수 있어?”
던전 안의 살림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