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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09화 (109/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09화

    “하지만 난 이 프로젝트 하고 싶단 말이야!”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치고는 태도가 아주 불량하던데?”

    톡 쏘아붙이자 그는 억울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뭐가 불량해? 일할 능력 있고, 추진력 있으면 된 거지. 설마 인사 제대로 안 했다고 꼬투리 잡는 거야? 아니면 반말했다고? 연구하는 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각자 맡은 일만 잘하면 되지! 나처럼 능력 출중한 인재를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내치려는 거야? 이해가 안 돼.”

    유한이는 엄청난 능력주의자인 것 같았다. 태도 때문에 자기가 퇴짜 맞았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상호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야 일을 제대로 하지. 능력 좋다면서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몰라?”

    희나는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말 안 통하는 독불장군 스타일과 일하면 얼마나 열 받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당사자는 편할지는 몰라도, 맞춰 주는 상대는 죽을 맛이거든!’

    거기다 저 빈정거리는 말투만 봐도 저 유한이라는 연금술사는 사회생활 능력 제로에, 성격 파탄자였다.

    동료로 삼기엔 최악의 상대였다.

    “아무튼! 인사팀장님이 처리해 주겠다고 하셨으니까 일단 짐 싸서 나가.”

    문을 가리키며 축객령을 내렸다.

    단호한 말투에 유한이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생각이 다 읽혔다. 이 일은 하고 싶은데, 자존심은 또 굽히기 싫은 게 분명했다.

    희나도 입을 삐죽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러면 끝까지 자존심 세우다가 자리 박차고 나갈 게 뻔……’

    “미안. 뭐가 그렇게 네 성미에 안 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르쳐 주면 앞으로는 안 그럴게.”

    “……어?”

    순순한 사과에 희나는 눈알을 굴렸다.

    비록 이를 악 문 말투였지만 성격 파탄자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희나의 어리둥절한 반응을 뭐라고 받아들였는지, 유한이는 뭐라 씨근덕거리다 결국 소리를 팩 질렀다.

    “귓구멍 막혔어? 미, 미안하다고!”

    미안하다는 소리를 뻔뻔스럽게 하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하지만 버릇없는 말투와 달리 귓불부터 얼굴, 목에 이르기까지 피부가 시뻘게진 걸 보니 자존심이 잔뜩 상한 건 맞는 것 같았다.

    ‘웬일이야! 오빠 시금치가 정말 궁금하긴 한가 봐.’

    희나는 피식 웃었다.

    성격 나쁜 들짐승과의 신경전에서 승리한 기분이었다. 아주 통쾌했다.

    “그렇게 나랑 같이 일하고 싶었으면 진작에 잘할 것이지.”

    “……이익!”

    한 번 더 톡 쏘아붙이니 유한이의 이마에 혈관이 툭 튀어나오는 게 보였다.

    “뭐, 하지만 사과했으니까 한 번은 봐줄게.”

    희나는 인심 좋게 그의 사과를 받아들여 주었다.

    유한이의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대신!”

    희나는 그 앞에 손가락을 세웠다.

    “2주 동안 태도 보고 나랑 안 맞는 것 같으면 다른 사람으로 바꿔 달라고 할 거야.”

    조건부 종전이었다.

    아무리 맘 좋은 희나라지만, 고작 사과 한마디 들었다고 마음을 바꿀 정도의 호구는 아니었다.

    “너야 이 일을 꼭 하고 싶겠지만, 나는 네가 아니어도 되거든. ……생각해 보니까 너 똑똑한 거 맞니? 생각이 있었으면 나한테 예의 없이 굴면 안 됐던 것 아니야? 청룡 길드원 사칭하는 것 아니지?”

    “아악! 아, 아니야!”

    놀리는 듯한 지적에 유한이가 왈칵 짜증 난 표정을 했다.

    하지만 최소한의 눈치는 있는지 무어라 반박하지는 않았다.

    대신 입 모양으로만 무어라 투덜거렸는데, 대충 ‘능력이 아닌 고작 태도 따위로 사람을 평가하다니, 보는 눈이 없다.’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것 같았다.

    ‘하여간, 답답하기는.’

    희나도 눈으로 유한이를 욕하며 인벤토리 창에서 오빠의 시금치를 한 뿌리 꺼냈다.

    유한이의 눈이 소문으로만 듣던 ‘그 시금치’에 빤히 꽂혔다. 그는 침을 꼴깍 삼키며 희나를 바라보았다.

    “그……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반말이 기분 나빴어? 그럼 존댓말 해 줄까? ……요?”

    “됐어. 동갑이라며? 이미 말 텄는데 다시 존댓말 하는 건 나도 싫어. 대신 앞으로는 꼬박꼬박 인사하고, 기분 나쁘게 말하지 마. 그리고 또…… 내 주방 더럽히지도 말고.”

    유한이가 눈을 반짝 떴다.

    “그것만 하면 계속 나랑 연구할 거야?”

    “얼마나 잘하는지는 두고 봐야지.”

    “쳇.”

    “방금 건방져서 1점 감점.”

    “야! 그런 게 어디 있어!”

    “나한테 소리쳐서 또 감점이야.”

    그러면서 단호하게 손에 든 시금치를 집어넣으려 하니 유한이가 손을 휘휘 저었다.

    “아, 갑자기 이렇게 시작하니까 당황해서 그랬지. 이제 소리 안 칠 테니까 시금치 한번 만져 보면 안 될까? 설명 창만이라도 보게 해 줘. 궁금해서 그래.”

    목소리가 제법 애절했다.

    그러나 희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시금치 구경은 어지럽힌 내 주방부터 치운 다음이야.”

    “어지럽힌 게 아니라 연구에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 둔 것뿐인……!”

    “빨리!”

    희나의 불호령에 유한이의 눈썹이 축 처졌다.

    “……알았어.”

    그는 터벅터벅 주방을 향해 걸어갔다.

    뒷모습이 몇 분 전의 기세등등한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 * *

    다음 날, 유한이는 훨씬 풀이 죽은 상태로 희나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안녕.”

    돌 씹은 얼굴로 꾸역꾸역 인사를 하는 게, 어제 한판 했던 게 효과가 있긴 한 듯했다.

    “덕분에 어제 인사과에 불려가서 4시간 동안 잔소리 들었어. 청룡 길드 가입 이래로 이런 치욕을 당한 건 처음이야.”

    그는 부루퉁한 목소리로 인사과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에 대해 투덜거렸다.

    물론 희나에게는 그 말이 전혀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쌤통이다.’

    길드가 자기편이라는 걸 확인해서 되레 어깨만 더 으쓱했다. 목소리가 한결 부드럽게 나왔다.

    “들어와. 앞으로 어떻게 일할지에 대해 얘기해 보자.”

    희나와 유한이는 어제 모양 그대로, 사무실 책상에 마주 앉았다.

    “사실 난 이런 연구 과정은 어떻게 일을 진행해야 하는지 잘 몰라. 계획해 둔 부분이 있어?”

    유한이는 어제 희원의 시금치를 보고 이렇게 효능 좋은 재료를 본 건 처음이라면서 잔뜩 흥분해서 돌아갔다.

    무언가 구체적인 역할 분담 계획을 짜 왔으리라.

    그러자 그는 이마를 작게 찡그리며 말했다.

    “음……. 우선 네 능력과 내 능력을 좀 비교해 봐야겠어.”

    “비교라니?”

    “시금치 설명 창에 특별한 손길이 닿으면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쓰여 있잖아. 그게 꼭 네 요리 스킬이라는 법은 없으니까. 내 시약 제조 스킬도 거기에 포함될 수도 있는 거지.”

    “그것도 그러네.”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희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유한이는 여전히 시건방지지만 제법 조리 있는 태도로 자기의 계획을 설명했다.

    일단 오늘 자기가 간단한 포션 제조 키트를 가져왔으니, 여기서 포션을 제조해 보겠다고 했다.

    “약식 제조 키트라 한 시간 정도면 포션을 만들 수 있어. 너는 그동안 요리를 해. 한 시간이면 뭐라도 하나 만들 수 있지?”

    “당연하지. 한 시간이 뭐야, 물만 끓으면 시금치나물 무치는 덴 10분도 안 걸려.”

    희나의 호언장담에 유한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그럼 시작하자.”

    유한이가 희나의 주방에 포션 제조 키트를 놓을 자리를 물색하는 과정 중 잠깐 소란이 일기는 했지만, 오늘은 어제에 비하면 비교적 조용하게 일이 진행됐다.

    희나는 못마땅한 눈으로 유한이의 작업을 힐끗거렸다.

    단정한 아일랜드 식탁 위에 둔탁하고 지저분한 포션 제조 장비가 놓여 있었다.

    유한이가 작업할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내준 공간이었다.

    “선 넘으면 다 버려 버릴 거야.”

    희나가 엄포를 놓았다. 희나가 양보한 건 커다란 아일랜드 식탁의 딱 절반만큼이었다.

    대신 식탁 위에 선을 딱 그어 두고 그 선을 넘으면 뭐든 내다 버리겠다고 통보했다.

    “칫. 쪼잔하기는.”

    “방금 뭐라고 했어?”

    “……연구 허락해 줘서 고맙다고.”

    유한이가 전혀 고맙지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는 희나에게서 건네받은 시금치 두 뿌리를 잘게 다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손목의 디지털시계를 확인하며 노트에 무언가를 휘갈겼다.

    짙은 색 로브를 입고 알 수 없는 기구들을 만지는 유한이는 언뜻 보면 동화 속에 나오는 사악한 마법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희나는 잠깐 그를 구경하다, 개수대에서 깨끗이 손을 씻었다.

    ‘나도 슬슬 시작해 볼까?’

    요리의 기본은 청결인 법이다. 손을 씻고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둘렀다.

    착장 버프 메시지가 눈앞에 반짝이며 지나갔다.

    “다 했다.”

    희나는 금세 세 가지 요리를 마쳤다.

    며칠 동안 반복해서 만들었던 메뉴라서 그런지 시금치 무침, 시금치 된장국, 시금치 프리타타를 만드는 데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특별한 시금치 무침(A): 특별한 손길이 닿아 조리한 시금치 무침. 섭취 시 25분 동안 근력이 19% 증가한다.>

    <특별한 시금치 된장국(S): 특별한 손길이 닿아 조리한 시금치 된장국. 섭취 시 25분 동안 근력이 11%, 민첩이 9% 증가한다.>

    <특별한 시금치 프리타타(B): 특별한 손길이 닿아 조리된 시금치 프리타타. 섭취 시 15분 동안 근력이 10% 증가한다.>

    이번에도 음식의 랭크와 효과는 제멋대로였다. 심지어 시금치 프리타타는 B등급으로 평소보다 랭크가 낮게 나오기까지 했다.

    ‘매번 결과가 오락가락하네.’

    들쭉날쭉한 결과가 나오는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증가 퍼센티지가 높거나 부가 효과가 많을수록 높은 랭크가 책정되는 건 확실해 보였다.

    ‘전부 S랭크가 떴어야 하는데. 아쉽다.’

    희나는 입맛을 쩝 다셨다.

    유한이 앞에서 콧대를 좀 높여 볼 생각이었는데, 모두 S급은커녕 B급 결과물이 하나 나와서 속상했다.

    ‘시간도 남았는데 하나 더 하지 뭐.’

    유한이는 아직 포션을 제조하느라 바쁜 듯 보였다.

    이때다 싶어 희나는 시금치를 하나 더 꺼내 시금치 프리타타를 하나 더 만들었다.

    <특별한 시금치 프리타타(S): 특별한 손길이 닿아 조리한 시금치 프리타타. 섭취 시 50분 동안 근력이 20% 증가한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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