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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05화 (105/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05화

    강진현은 희나의 질문에 빠르게 대답했다.

    “글쎄요. 임무 위험도는 가 봐야 알게 될 것 같습니다마는, 저까지 호출할 정도면 대체로 던전 게이트와 연관한 사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헉.”

    긴급한 호출 알람만큼이나 긴급한 사태에 숨을 들이켰다. 온갖 상상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설마 또 던전 게이트가 생긴 건 아니겠지? 아니면 던전 브레이크?’

    희나는 딱 일반인 정도의 던전 상식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예측하지 못한 던전 활동은 흔치 않은 일이란 사실 정도는 알았다.

    특히 던전 연구를 상당히 진행한 최근에는 예상치 못한 던전 게이트를 맞이하는 일이 거의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정부에 소속된 수많은 던전 전문가들이 게이트 생성 예상 지역과 시기를 예측하여 방비해 두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미 생성된 던전에는 각 길드를 배정해 철저히 관리하고 있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확률도 제로에 가까웠다.

    ‘……그랬는데, 또 이런 비상사태가 발생한다고?’

    희나는 몇 달 전에 각성과 동시에 휘말렸던 던전 게이트 사태를 떠올렸다.

    희나야 게이트에 휩쓸린 장본인이라 한창 정신이 없어 깊게 신경 쓸 새가 없었지만, 그때도 아무런 전조 없이 나타난 던전 게이트에 한동안 나라가 떠들썩했다.

    근래 몇 년 사이 던전 관리처에서 게이트 생성 전조를 잡아내지 못한 건 처음이었다.

    ‘첫 번째는 재수가 없어서 그랬을 수 있어. 그런데 이런 비상사태가 반년 사이 두 번이나 연달아 일어나는 건 상황이 좀 심각한 거 아닌가?’

    희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제 겨우 살 만해졌는데 설마 또 다른 재앙이 들이닥치는 건 아니겠지?’

    내심 불안감이 차올랐다. 간신히 찾은 평화로운 일상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식사는 먼저 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앞으로 이삼일 정도는 들어오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급히 전하실 말씀이 있다면 커뮤니케이션팀을 통해 연락 주시면 됩니다.”

    안타깝게도 강진현은 상황을 설명하며 워커의 끈을 조이느라 희나의 불안한 표정을 포착하지 못했다.

    하지만 현관을 나서려다가 무언가 심상찮은 기색을 눈치챘는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희나 씨,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는 이런 식의 비상사태는 비일비재합니다. 별일 아닙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는 무뚝뚝한 낯을 하고서는 희나의 불안을 기가 막히게 읽어 냈다.

    “그, 그런가요?”

    “예.”

    강진현은 단호히 대답했다. 그리고 손을 뻗어 희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무엇보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어깨에 닿는 손끝이 든든했다. 그의 손끝을 타고 뜨끈한 온기가 퍼져 나갔다.

    어두웠던 희나의 낯이 한결 밝아졌다.

    ‘하긴. 진현 씨가 곁에 있는데 뭐가 두렵겠어? 거기다 내 곁엔 헌터 일에 노련한 오빠도, 오색이도, 바둑이도 있는걸. 나도 각성해서 내 몸 하나는 지킬 수 있고. 무력했던 예전과는 달라.’

    희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장은 위험한 현장을 뛰는 강진현을 걱정하는 게 먼저였다.

    “진현 씨야말로 조심히 다녀와요. 집에 있는 우리야 위험할 일이 없죠.”

    어느새 고물고물 기어 온 오색이도 강진현을 배웅했다.

    「※안전 제일※」

    * * *

    강진현 없이 식사를 하고, 잠시 포만감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희원이 문득 입을 열었다.

    “좋은 소식 두 개가 있는데 뭐부터 들을래?”

    “아무거나.”

    희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오빠가 실없는 소리를 하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에이, 무심한 동생 같으니라고!”

    “바둑이 잔뿌리가 1cm 길어졌다, 이런 소식일 거잖아.”

    “이번에는 그런 거 아니야. 너도 확인해 봐야 할 만한 좋은 일이야.”

    희원이 느긋하게 턱을 괬다.

    “텃밭에 뿌려 뒀던 시금치 기억나지?”

    희나는 간신히 비죽배죽 솟아 있던 자그마한 이파리를 떠올렸다.

    “어……. 시금치. 힘이었나, 근력이었나 올려 주는 효능 있었던 거 말하는 거 맞지? 길드장님께 보여 줬던 거?”

    “응. 맞아. 그 시금치, 다 컸어.”

    그 소리에 희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건 정말 희소식이었다.

    “정말이야? 그게 벌써 다 컸다고? 얼마 전에 봤을 때는 정말 손가락보다도 작았는데?”

    “그래. 물 먹고 햇빛 먹고 거름 받고 그사이 쑥쑥 다 컸다.”

    희원이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무엇인가를 훌륭하게 키워 낸 농부의 웃음이었다.

    “효능은 어때? 상태 창 확인해 봤어? 응? 쓸 만한 것 같아? 길드에 말할까?”

    희나는 와다다 질문을 쏟아 냈다.

    시금치가 다 컸다니, 효능이 괜찮으면 조만간 길드장과 미팅을 한 번 더 잡을 필요가 있었다.

    희원은 희나의 호들갑이 꽤 마음에 든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면서 앞장섰다.

    “따라와서 직접 확인해 봐.”

    직접 시금치 텃밭을 보여 주겠다는 소리였다.

    희나는 오빠 뒤를 쭐레쭐레 따라갔다. 볼품없는 잡풀같이 생겼던 자그마한 시금치가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있는 힘껏 소양을 뽐내는 달팽이 한 마리도 어깨 위에 얹은 채였다.

    “우와! 엄청나게 컸잖아?”

    희나는 새파랗게 물든 텃밭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듬성듬성 자라 있던 시금치가 어느새 텃밭을 꽉 메웠다.

    “진짜로 마트에서 파는 시금치 같아! 신기해라.”

    평소 자주 먹는 채소여서 그런가? 지난번 땅콩 수확 때보다 훨씬 신기하게 느껴졌다.

    희나는 호들갑을 떨며 싱싱한 시금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상태 창을 띄워야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눈앞에 글자가 뿅 하고 나타났다.

    <시금치(A): 날것으로 섭취 시 10분 동안 근력이 9% 증가한다. 특별한 손길이 닿아 조리했을 경우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근력이 9% 증가한다고?”

    애매한 퍼센티지에 희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더 나빠진 거 아니야? 아기 시금치일 때는 근력이 +1 됐잖아. 이젠 고작 9% 증가하네.”

    지금 희나의 근력 스탯은 9였다. 다 큰 시금치를 먹고 근력이 9% 증가하면 9.81로 채 10이 안 됐다.

    근력 포인트를 1 올려 주는 덜 자란 시금치를 먹으면 곧바로 10이 될 수 있는데 말이다.

    “생각보다 별로인 것 같아.”

    아무런 효능이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10%도 아니고 9%의 애매한 숫자였다.

    거기다 고작 10분 동안밖에 효과가 지속되지 않는다니…… 아쉬운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건 땅콩만큼 값 많이 받기는 어렵겠다. 근력 증가 포션 같은 대체품도 있잖아.”

    희나는 꿍얼꿍얼 아쉬운 점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희원이 무슨 소리냐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별로긴 뭐가 별로야! 완전 대박이구먼! 조리 안 하고 이대로만 팔아도 벼락부자야!”

    「옳소옳소. 집주인 = 각성자 물정 알못.」

    심지어 오색이까지 안테나를 삐뽀삐뽀 울리며 희나의 상식을 놀렸다. 폰트가 궁서체인 걸 봐서는 진심이었다.

    희원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설명을 시작했다.

    “스탯이 1, 2, 3…… 이렇게 정수로 증가하는 건 우리같이 스탯 낮은 하급 각성자들한테나 좋은 거야.”

    “왜?”

    “생각해 봐. 너 같은 경우는 스탯이 워낙 낮아서 퍼센티지 버프를 받아도 스탯이 별 차이 없을 거야. 하지만 예를 들어 근력 스탯이 100이라고 치자. 그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희나는 속으로 가만히 셈을 했다. 숫자가 100이라 계산은 쉬웠다.

    ‘100에 9% 버프를 받으면…… 109인데.’

    실질적으로 스탯이 9포인트 증가하는 셈이었다. 덜 자란 시금치가 주는 1포인트만큼의 스탯보다 훨씬 컸다.

    무언가 머리를 반짝하고 스쳐 갔다.

    “아. 그렇구나. 스탯이 높은 고랭크 헌터들일수록 퍼센티지로 버프를 받는 게 더 도움이 되겠네.”

    희나의 혼잣말에 희원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본 능력이 뛰어난 고등급 헌터에게는 정수 증가 버프보다는 퍼센트 증가 버프가 훨씬 이득이야. 능력치가 세 자릿수인데, 고작 숫자 1, 2 증가하는 걸로는 큰 효과가 없지 않겠어?”

    “아하. 이게 다 고등급 헌터들이 좋아하는 거라 이거지?”

    그제야 쓸모없어 보이던 시금치 텃밭이 새파란 지폐 다발로 보이기 시작했다.

    던전 관련 물품은 기본적으로 값이 있는 편이었고, 그만큼 고랭크 헌터들의 씀씀이는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10분이면 충분히 긴 시간이야. 너는 짧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전투 중에는 1분 1초가 급박하거든. 보통 버프 포션의 효과도 이 정도 지속되는 편이고.”

    희원이 손가락을 꼽아 가며 시금치의 장점을 이야기했다.

    9%면 최상급 B급 포션에 필적하는 효과라는 소리도 했다.

    “B급 포션이라고!”

    하급 포션도 수백에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상황에서, 무려 B급 포션이라니.

    희나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거기다 희원이 한술 더 떴다.

    “그리고 너 포션 먹어 봤어? 포션 맛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아? 비위 약해서 포션 못 먹는 헌터들도 있을 정도거든.”

    희원의 말에 희나는 예전에 딱 한 번 먹어 보았던 회복 포션의 맛을 떠올렸다.

    ‘윽.’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맛이었다. 다시 떠올리기도 싫었다.

    “그런데 이건 시금치잖아! 생으로 먹어도 맛이 괜찮아! 심지어 네가 요리하면 훨씬 맛있어지고.”

    「효과도 좋고 맛도 좋음♬ 일석이조♪」

    옆에서 오색이가 쿵짝을 맞췄다.

    한자 성어에 맛 들렸는지 아까부터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일석이조니 말이 많았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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