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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02화 (102/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02화

    차라리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호신술 강좌를 듣는 게 훨씬 도움이 될 듯했다.

    희나의 역량은 S급 헌터의 전투관을 이해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차라리 국가 대표가 갓난쟁이를 가르치는 게 더 보람 있을지도 몰랐다.

    “실력을 키우는 것보다 맞는 무기를 찾는 게 우선입니다.”

    하지만 강진현은 아주 강경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 죄송하지만, 희나 씨에겐 재능이 부족합니다. 그런 만큼 부족한 재능을 메꿔 줄 만한 도구가 필요합니다.”

    이런저런 좋은 칭찬으로 희나를 회유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는 희나의 재능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러니까…… 강진현은 희나가 소위 말하는 ‘장비발’을 세우기를 바랐다.

    “아니, 그게…… 진현 씨 눈으로 보면 세상에 전투에 재능 있는 사람이 몇 없지 않을까요?”

    어물어물 변명하였으나, 강진현은 딱 잘라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등급에 상관없이 기본적인 센스라는 게 있습니다. 희나 씨에게는 그것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오빠보단 제가 더 나을걸요.”

    희나는 괜히 발끈해서 애먼 희원을 끌고 들어왔다.

    마침 희원도 남는 시간에 강진현에게 이런저런 수련을 받고 있었는데, 그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었기에 억울했다.

    “희원 형님은 헌터 생활을 오래 하셔서 기본기는 잡혀 있습니다.”

    거기다 강진현은 조심스레 희나의 눈치를 보면서도 희원은 비전투계 각성자치고는 꽤 감각이 좋은 편이라며 칭찬까지 날렸다.

    희나는 괜히 발끈해서 소리쳤다.

    “반사 신경은 제가 오빠보다 더 좋아요!”

    나름 근거도 있었다.

    ‘지난번 ‘홈 스위트 홈’에 오류가 생겨서 벌레가 창궐했을 때 내가 오빠보다 벌레를 훨씬 많이 잡았는걸!’

    희나가 잡은 벌레를 주워 먹느라 바둑이가 얼마나 바쁘게 봉오리를 움직였던가!

    희나의 엄청난 무위를 바라보던 희원의 경악 어린 눈빛이 아직도 기억에 선했다.

    가만히 희나의 자랑 어린 설명을 듣던 강진현이 턱을 천천히 매만졌다.

    “음. 희원 형님은 프라이팬을 사용하셨다고 했고, 희나 씨는 어떤 도구를 사용하셨습니까?”

    “저요? 벌레 잡는 데는 당연히 신문지죠.”

    물론 범상치 않은 신문지긴 했다.

    에픽 보상으로 받은 SSS급 쓸모 있는 신문지였으니까 말이다.

    희나는 인벤토리에 가만히 잠들어 있던 SSS급 쓸모 있는 신문지를 꺼내어 보여 주었다.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인데, 등급만 좋지 실상은 평범한 신문지예요.”

    <쓸모 있는 신문지(SSS): 다방면에 두루두루 사용할 수 있는 몹시 쓸모 있는 신문지. 쉽게 찢어지지 않고, 구겨짐이 쉽게 회복된다. 사용자의 쓰임에 따라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부가 기능: 사용자의 상황에 따라 등급 감추기가 가능한 아이템입니다.>

    “이건…….”

    강진현은 희나의 SSS급 쓸모 있는 신문지를 받아 보고는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보였다.

    당연했다. 이렇게 하찮아 보이는 SSS급 아이템은 처음 봤을 테니까.

    “잠시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마음껏 살펴보세요. 별거 없어요. 벌레 잡는 데 좋고…… 음, 맞다. 덮고 자니까 따뜻하더라고요.”

    희나는 B급 버섯 던전에서의 노숙 경험을 떠올렸다. 얇은 종잇장 주제에 꽤 안락했던 기억이 있었다…….

    강진현은 심오한 표정으로 신문지를 접어도 보고, 펼쳐도 보고, 찢을 듯이 잡아당겨도 보았다.

    그의 힘에 엉망진창으로 찢어지고 구겨질 법도 한데 SSS급 쓸모 있는 신문지는 형태가 망가지는 법이 없었다.

    적당히 접은 평범한 모습을 유지했다는 의미다.

    심지어 그는 부싯돌을 꺼내 신문지에 불을 붙여 보고, 물통의 물을 부어 보기까지 했다.

    놀랍게도 신문지는 불 따위에 타지도, 물에 젖지도 않았다. SSS급이라더니 내구력만은 질기디질겼다.

    ‘신문지 주제에 제법 대단한데!’

    희나는 마음속으로 SSS급 신문지에 가산점을 주었다.

    “음.”

    한편, 강진현은 신문지를 이리저리 관찰하며 속 모를 침음을 내뱉었다.

    얼마나 신문지를 살펴보았을까, 그가 신문지를 둘둘 말아 희나에게 건넸다.

    “한번 휘둘러 보시겠습니까?”

    “이걸요?”

    신문지 휘두르는 일이야 방금까지 들고 있던 A급 장창을 휘두르는 것보다 천만 배는 쉬웠다.

    오색이의 표현에 따르면 이건 ‘식은 상추 먹기’보다 쉬웠다.

    휙휙, 돌돌 만 신문지가 허공을 갈랐다. 벌레 잡던 짬밥이 있어서 손목 스냅이 남달랐다.

    ‘이렇게 하는 거 맞나?’

    나름 기교를 부려 본 게 멋쩍게 느껴져서 희나는 헤헤 웃으며 강진현의 눈치를 살폈다.

    의외로 그의 표정은 몹시 진지했다.

    “좋습니다.”

    거기다 대뜸 ‘좋습니다.’라며 합격 신호를 보내오니, 희나로서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뭐가요?”

    “신문지와 희나 씨와의 합이 잘 맞습니다.”

    질문에 강진현이 희나와 신문지 사이의 궁합을 봐 주었다.

    “물론 고작 신문지를 공격용 무구로 택해야 하는 것이 아쉽긴 합니다만……. 희나 씨와 밸런스도 맞고, 강도나 내구력 따위가 트리플 S급답게 뛰어나니 충분히 무기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겠습니다.”

    나름 찰떡궁합이라는 평이었다.

    “이, 이걸요?”

    희나는 민망함에 땀을 삐질 흘렸다.

    강진현이 가지고 온 온갖 휘황찬란한 무기들을 떠올리니 민망함이 앞섰다.

    ‘그 많은 무기를 제치고, 나한테 제일 어울리는 게 고작 신문지라고?’

    전투계 능력자는 아니었지만, 희나도 멋진 무기에 대한 로망은 있었다.

    ‘그런데 신문지라니!’

    희나의 풀 죽은 기색을 눈치챘는지, 강진현이 허둥지둥 설명을 덧붙였다.

    “우선, 이건 보통 신문지가 아닙니다. 트리플 S급의 아이템입니다. 전 세계에 통틀어 몇 개밖에 없는 희소한 가치를 지닌 것이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희나 씨가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큰 장점입니다. 뭐든 손에 익은 도구가 최고인 법이니까요.”

    희나는 강진현의 말을 따라 중얼거렸다.

    “손에 익은 도구…….”

    하긴. 여태 강진현이 가져온 아이템 중에 희나가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일전에 우민아가 집들이 선물로 주었던 B급 과도조차도 발발 떨며 휘둘렀다.

    과일이나 채소를 다듬을 때는 그렇게 유용히 잘 쓰던 칼이었는데 말이다!

    ‘그럼 이건 심리적인 문제인가?’

    그랬다. 희나는 남에게 큰소리도 잘 치지 못했고, 분쟁과는 먼 삶을 살아왔다.

    그런 희나가 칼을 잡자마자 쉽게 휘두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희나 씨는 무기를 들면 주저부터 하는 편입니다.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무기를 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주눅이 드는 겁니다. 그 때문에 자꾸 실수를 하는 것이지요.”

    강진현도 비슷한 생각인 듯 같은 내용을 지적했다.

    “하지만 신문지는 제가 선보였던 무기들보다는 훨씬 일상적인 도구죠. 때문인지 희나 씨도 신문지를 휘두를 때는 주저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건 맞아요.”

    희나는 그의 말에 동의했다.

    아무리 대단해 봤자 신문지는 신문지였다. 해를 끼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벌레 정도일까? 위험하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들었다.

    “별로 안 위험해 보여서 제게 어울리는 건 맞는데, 그러면 이건 호신용 무기의 의의가 없는 것 아니에요?”

    희나의 의문은 정당했다.

    ‘몸을 지키려면 뭐든 좀 위협적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건 없어도 너무 없어 보이잖아!’

    그랬다. 신문지는 ‘무기’라고 치기에는 너무 허접해 보였다.

    어쩌면 시판용 전기 충격기나 후추 스프레이가 이보다 더 강력한 성능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의아해하는 희나에게 강진현이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이걸 위협적으로 만드는 건 지금부터 희나 씨가 해야 할 일입니다.”

    “어떻게요?”

    “희나 씨의 ‘해충 박멸’ 스킬 수련이 필요합니다.”

    “해충 박멸이요? 하지만 그건 발동 조건이 까다로운데…….”

    희나는 시스템 창을 띄워 ‘해충 박멸’ 스킬의 설명을 읽었다.

    “해충 박멸. C랭크. 가내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를 퇴치한다. 액티브 스킬.”

    해충 박멸의 발동 조건은 조금 애매했다. 이 스킬은 가내의 평화를 위협하는 수준이면 무조건 발동했다.

    희나의 ‘해충 박멸’ 스킬은 각성 후 통틀어 총 네 번 발동했다.

    첫 번째는 오색이와의 첫 만남에서였다.

    불쑥 나타난 달팽이를 집 안에 나타난 벌레인 줄 알고 후려쳐서 숙련도 –100을 받았던 추억이 있었다.

    두 번째는 희원이 강제 노역을 하던 던전에서였다.

    가족인 희원이 위험에 처하자, 시스템은 ‘가내의 평화를 위협한다’라고 느꼈는지 스킬을 자동 시전했다.

    덕분에 희나는 희원의 목숨을 위협하는 상대를 해치울 수 있었다.

    세 번째 타자로 ‘해충 박멸’ 스킬 맛을 본 건 가족인 희원이었다.

    희나의 스킬 덕에 목숨을 구한 희원이 해충 박멸 스킬에 당하다니,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스킬 발동 원인은 희원이 희나의 심기를 거스른 덕에 집안의 평화에 잠시 금이 갔던 탓이라고 추정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해충 박멸’ 스킬을 시전한 때는 비교적 최근이었다.

    홈 스위트 홈 시스템에 오류가 생겨 집 안에 벌레가 잔뜩 생겼을 때였다.

    그때 ‘해충 박멸’ 스킬은 SSS급 쓸모 있는 신문지와 환상적인 합을 이루었더랬다.

    ‘그때도 나름 가내의 평화가 무너지고 있었어. 벌레가 잔뜩 나와서 집 안이 엉망이 되었으니까 말이야.’

    헤아려 보면 이 네 가지 케이스 모두 스킬 설명대로 ‘가내 평화’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만은 명확했다.

    ‘하지만…….’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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