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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95화 (95/228)
  • 던전 안의 살림꾼 95화

    남매의 의심은 합당했다.

    아시아를 손에 쥐고 흔든다는 정보상치고는 원덕삼의 그릇이 너무 작아 보였다.

    “그런 정보상이면 정부 기관의 기밀 같은 걸 털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 같은 사람을 납치해서 공갈 협박할 게 아니라.”

    “정보에 경중이 어디 있겠습니까? 돈이 되는 정보와 돈이 덜 되는 정보로 나뉠 뿐이지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 이 땅콩 건은 상당한 돈이 될 만한 정보였습니다!”

    원덕삼은 허둥지둥 변명했다. 그러면서 구구절절 덧붙였다.

    “사실, 아가씨를 섣불리 납치했단 사실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가씨를 납치하라는 퀘스트가 떴는데, 그걸 어떻게 안 하고 지나칩니까?”

    퀘스트 성공 시 보상도 보상이었지만, 실패 시의 패널티가 너무 치명적이었다.

    원덕삼의 밥줄이자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인 ‘진실 공방’ 스킬의 소멸을 내걸고 있었다.

    “……상황이 이래서 어쩔 수 없이 납치하게 된 겁니다. 저라고 평범한 시민을 위협하는 일을 좋아해서 했겠습니까? 구를 대로 구른 헌터들이나 상대하는 게 몇 배는 더 마음 편하지.”

    그의 말에 희나와 희원은 시선을 교환했다. 둘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스템이 퀘스트를 내려 줬다고?’

    시스템은 언제나 희나에게 호의적인 듯 굴어 왔다. 그런 시스템이 희나의 납치를 종용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시스템이 왜 저를 납치하라고 했는지는 몰라요?”

    희나가 다급하게 물었다.

    하지만 원덕삼은 이상한 걸 묻는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시스템은 그저 시스템일 뿐입니다. 어떤 의도가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미안하지만…… 아가씨는 일종의 자연재해를 당한 겁니다.”

    「개뿔주의♨ 개뿔주의♨」

    오색이는 동의하지 않는지 안테나를 비쭉배쭉거렸다.

    희나는 흥분한 오색이의 동그란 머리통을 통통 두들겨 주었다. 탱탱볼처럼 탱글탱글했다.

    “어쨌든 우리는 그쪽이 미스터 원인지 뭔지인지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어요. 그걸 확인해 줄 만한 증거가 있나요?”

    희나는 쉽게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매섭게 캐물었다.

    희나의 뒤에 선 희원이 몰래 목 긋는 시늉을 했다. 제대로 답 안 하면 죽여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원덕삼은 재빨리 눈알을 굴렸다.

    ‘뭐가 있더라……? 정부 기밀 하나를 불어 버릴까? 근데 그걸 저 사람들이 믿기는 하려나?’

    그는 자신의 신원을 증명할 만한 수십 가지의 방법들을 떠올리려 했다.

    하지만 머리 위에 끼악끼악 우는 비행형 몬스터와 눈앞에 풀 잎사귀를 말아 쥐는 식물형 몬스터를 두고 있으니 제대로 된 방법을 떠올리기 힘겨웠다.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죠.”

    먼저 선수를 친 건 희나였다.

    “마석에 맹세를 하세요. 본인이 ‘미스터 원’이라는 사람이고, 아닐 시에는 큰 대가를 치르겠다고요.”

    그러면서 앞치마 주머니를 뒤적여 주먹만 한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반짝거리는 마석들이 가득 차 있었다.

    과거에 강진현이 커피값이라며 대뜸 떠넘긴 물건이었다.

    ‘이걸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네.’

    희나는 코르크 뚜껑을 열어 마석 한 줌을 손바닥 위에 털어 올렸다.

    루비처럼 붉은 것, 에메랄드처럼 녹색을 띤 것, 사파이어처럼 푸른 것 등등이 손에 집혔다. 모두 투명도는 꽤 좋았지만 색이 진하고 크기가 작아 고등급 판정을 받지 못한 마석들이었다.

    아이템의 재료가 되기에는 적절치 못했으나 ‘맹세’를 하기엔 적합했다.

    “할 수 있습니다!”

    원덕삼은 퉁퉁 부은 얼굴을 아래위로 끄덕거렸다. 표정에 절실함이 넘쳤다.

    희나는 원덕삼의 묶인 손안에 마석 하나를 쥐여 주었다.

    “제 말을 따라서 맹세하세요.”

    “예, 예에. 알겠습니다!”

    “앞으로 나는 ‘홈 스위트 홈’ 구역 안에서 진실만을 말할 것이며, 만약 거짓을 말한다면 그 즉시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잃게 될 것이다.”

    “……앞으로 나는 ‘홈 스위트 홈’ 구역 안에서 진실만을 말할 것이며, 만약 거짓을 말한다면 그 즉시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잃게 될 것이다.”

    원덕삼은 희나의 말을 더듬더듬 따라 읊었다.

    절대 거짓말을 못 하게 한다니, 입으로 먹고사는 그에게는 거의 폭력적이기까지 한 맹세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보다는 목숨이 중요하지.’

    이내 마석을 쥐고 있던 그의 손가락 틈 사이에서 약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석이 사라지며 계약이 체결된 것이다.

    희나는 확인 삼아 질문 한 가지를 던졌다.

    “그쪽 이름과 나이는 어떻게 되죠?”

    “제 이름은 원덕삼이고, 나이는 올해 마흔 됩니다.”

    성이 원씨인 걸 보면 ‘미스터 원’이 맞는 듯했고, 살짝 노안이긴 했지만 나이와 외모도 얼추 맞아떨어졌다.

    “당신 정체가 정말 정보상 미스터 원이 맞나요?”

    “맞습니다! 제가 바로 정보상 미스터 원입니다! 한 치의 거짓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 보면 그의 이야기는 진실이 분명했다.

    희나는 그를 심문하며 몇 가지 묻고 싶었던 것을 더 물었다.

    “배후에 세력이 있나요?”

    “없습니다. 저 혼자 꾸민 일입니다.”

    “주변에 이 정보를 흘린 적은요?”

    “그 또한 없습니다. 저는 정보는 독식해야 한다는 주의라 그런 거 남들한테 안 가르쳐 줍니다…….”

    정보를 이야기할 때 얼굴에 욕심이 슬그머니 떠오르는 걸 보니 더욱 신뢰가 갔다.

    “그럼 그쪽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추적해 올 일은 없다는 거죠?”

    “네. 가족도 없고 혼자 일해서 딱히 찾을 사람도 없고…….”

    원덕삼은 조금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털어 냈다.

    “……뭐, 그렇습니다. 하지만 다른 놈들도 저처럼 땅콩에서 돈 냄새를 맡고 아가씨를 추적해 올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만큼 재빨리 정보를 캐내지는 못할 테니 시간이 한참 걸리겠지만요.”

    원덕삼은 가르쳐 주지 않은 사실까지 술술 털어놓았다.

    “흠……. 오빠, 어쩌지? 정말로 길드에 도움을 청해야 하나?”

    희나는 골치 아픈 표정을 했다.

    이 원덕삼이라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그와 같은 납치범들이 또 등장할 수도 있었다.

    “그러게. 이건 우리 힘만으로는 처리하기 힘든 일 같은데.”

    남매는 쑥덕거리며 의논했다.

    “일단 진현 씨 올 때까지는 기다려 보자. 진현 씨에게 좋은 방법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진현이 올 때까지 휴가로 버텨.”

    “알았어. 나도 그럴 생각이야.”

    잠시 희나의 음식을 간절히 기대하던 일반 헌터들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내 복지보다는 자신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내가 멀쩡히 살아 있어야 음식도 해 주지.’

    그렇게 납득하고 있을 때였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원덕삼이 시끄럽게 입을 놀렸다.

    희나와 희원 남매의 시선이 순간 집중되었다.

    “뭘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데요?”

    희나가 캐묻자 원덕삼이 몸을 들썩거리며 제안했다.

    “우선 저를 절대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시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원덕삼 씨, 지금 당신 무슨 상태에 처해 있는지 알죠? 이 와중에 거래를 하자는 말이 나옵니까?”

    희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쏘아붙였다.

    희원의 뒤에 얌전히 앉아 있던 바둑이도 덩달아 아그작 아그작 이 가는 소리를 냈다.

    원덕삼의 퉁퉁 부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 아니, 그래도 제 목숨 하나 보장해 달라고 애원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많은 건 안 바랍니다. 멀쩡히 살려만 보내 주시면 뭐든 다 해 드리겠습니다.”

    어찌나 그 모습이 간절하던지, 손이 묶여 있지만 않았다면 싹싹 빌었을지도 몰랐다.

    희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리고 희원과 무어라 귀엣말을 나누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원덕삼의 표정이 불안해졌다. 이미 그의 등 뒤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제발…… 살려 주십쇼.”

    오빠와 한참 대화를 나누던 희나가 몸을 돌려 앉았다.

    “……그럼 이렇게 하죠. 우리 남매는 그쪽을 살려 줄 거예요. 그 대신 몇 가지 조건이 있어요.”

    그리고 손가락 세 개를 꼽아 세웠다.

    “첫째, 일주일 동안 내 공간인 ‘홈 스위트 홈’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건 남매를 도와줄 강진현이 도착하기 전에 원덕삼이 도주해 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건이었다.

    “둘째,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남매와 오색이, 바둑이에게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

    두 번째 조건은 희나네 식구의 안전을 위한 조건이었다.

    강진현이 올 때까지 적어도 일주일 동안 그를 집 안에 가두어 두어야 하는데, 남매의 상식상 상대를 이대로 묶어만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를 풀어 줄 경우를 대비해 안전책을 마련한 것이었다.

    그리고 희나는 마지막 조건을 읊었다.

    “셋째, 원덕삼 씨는 우리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기로 한다. ……이렇게 세 가지 조건을 지켜 준다면 우리 집에 있는 일주일간은 그쪽에게 손대지 않고 살려서 풀어 주도록 할게요.”

    물론 가장 중요한 말은 쏙 빼먹은 채였다.

    ‘우리는 손 안 대겠지만, 풀어 준 후에 문제가 생기면 진현 씨나 길드 측에서 대신 처리해 줄 수도 있으니까.’

    눈치 빠른 원덕삼은 이 거래의 허점을 금방 눈치챘다.

    “그건 좀 불공평한…….”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희나 남매가 절대적인 갑이고, 원덕삼은 을에 불과했다.

    당장 죽지 않고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한 상황이었다.

    “이의 있으신가요? 저희야 믿을 구석은 더 있어요. 꼭 그쪽이 해결해 주지 않아도 돼요.”

    희나가 블러핑을 날렸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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