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안의 살림꾼-93화 (93/228)
  • 던전 안의 살림꾼 93화

    퀘스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납치범이 되자!(D): 정보상 일을 하려면 가끔 뒤 구린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는 법. 미행 상대를 납치해서 비밀을 캐내어 보자.

    ※ 퀘스트 보상: 모든 능력치 +1

    ※ 퀘스트 불이행 시 패널티: ‘진실 공방’ 스킬 소멸>

    무시무시한 내용의 퀘스트였다.

    ‘퀘스트 불이행 시 ‘진실 공방’ 스킬을 소멸시킨다니!’

    그건 절대 안 됐다.

    ‘진실 공방’ 스킬은 3분간 상대가 질문에 대해 진실만을 대답하게 하는 어마어마한 스킬이었다.

    정보상인 원덕삼의 밥줄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퀘스트를 이행했을 때의 이득도 엄청났다. 모든 스탯이 1씩 증가한다니,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것도 저 무해해 보이는 아가씨를 납치해서 정보만 캐내면 얻을 수 있는 보상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게 웬 떡이냐!’ 하고 퀘스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납치한 여자는 적당히 타일러 관련 정보만 캐낸 후 풀어 줄 생각이었다.

    분위기야 좀 잡을 필요는 있겠지만, 최대한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취조를 진행하려고 했다.

    물론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해 줄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심각한 해만 안 끼치면 되지 않겠는가?

    원덕삼은 정보상이라는 위험천만한 직군에 있었지만 비교적 평화주의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정보상 일을 안전하게 하려면 누군가에게 원한 살 만한 일은 최대한 자제하는 게 좋았다.

    대한민국은 게이트 사건이 터진 이후에도 공권력이 힘을 잃지 않았다.

    여전히 강력 범죄 검거율이 높았고, 시민들의 안전을 중시했다. 괜히 살인, 폭행, 공갈 협박이라도 저질렀다가 꼬리를 잡히고 싶지 않았다.

    그랬는데, 자신은 왜 여기 있단 말인가?

    원덕삼은 끄응, 신음했다.

    ‘그 아가씨를 납치해서 퀘스트를 이행하던 장면까지 똑똑히 기억이……. 머리가 아파서 담배 한 대를 피웠던 것 같은데.’

    이후부터는 기억이 희미했다.

    원덕삼의 ‘진실 공방’ 스킬은 3분 동안 절대적인 진실을 털어놓게 하는 대신, 패널티가 상당했다.

    엄청난 두통과 어지럼증을 수반했고, 일시적으로 전체 스탯까지 감소했다.

    [킷킷킷킷! 킷킷킷킷킷!]

    한편, 그의 회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몬스터들이 내뱉는 괴성에 간이 쪼그라들기도 바빴다.

    그는 속으로 절규했다.

    ‘……그, 그런데 내가 대체 어떻게 던전에 들어와 있는 거야?’

    던전은 정부, 헌터 협회, 혹은 불법 단체가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다.

    일반인이 우연히라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끄아아악! 끄아악!]

    몬스터들이 다시 괴성을 토해 냈다. 무시무시했고, 당장이라도 그를 갈기갈기 찢어 버릴 것 같았다.

    ‘지릴 것 같네! 젠장!’

    두려움에 의자에 묶인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데,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바둑아, 왜? 아…… 눈떴다고?”

    젊은 청년의 목소리였다.

    “젊은이! 이것 좀 풀어 주……!”

    원덕삼은 고개를 휙 돌려 도움을 요청하려다 돌처럼 쩌억 굳었다.

    “모, 모, 모, 몬스터!”

    식물형 몬스터가 그의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몬스터는 튤립처럼 생긴 꽃봉오리를 쩌억 벌려 봉우리 안에 삐쭉삐쭉 돋은 날카로운 이빨을 보여 주었다. 끔찍한 장면이었다.

    ‘……헉!’

    그제야 원덕삼은 깨어나기 직전,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해 냈다.

    여자가 공간 스킬을 사용해 어떤 문을 열었고, 그 안에서 저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몬스터는 그에게 달려들었고, 그를 가차 없이 두들겨 팼다.

    ‘그러다 정신을 잃었던가?’

    이를 딱딱 부딪치며 고통스러운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데, 몬스터 뒤로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다.

    “깨어났네.”

    커다란 삽을 어깨에 걸친 청년, 희원이었다.

    그는 식물형 몬스터를 찬찬히 쓰다듬으며 원덕삼을 아래위로 훑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저 인간을 죽일까, 살릴까?’ 고민하는 사신의 모습처럼 보였다.

    “사, 사, 살려 주십쇼.”

    원덕삼은 그의 앞에서 납작 엎드릴 기세로 빌었다. 하지만 희원의 서늘한 표정은 풀릴 기색이 없었다.

    “그건 내 알 바 아니고요.”

    그는 원덕삼이 묶인 의자를 발로 퍽 찼다.

    “으억!”

    자연히 의자는 옆으로 넘어갔고, 원덕삼은 모래사장에 얼굴을 박게 되었다. 입안에 모래가 잔뜩 들어갔다.

    “퉤, 퉤퉷!”

    까끌한 모래를 뱉어 내고 있을 때였다.

    머리 바로 옆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삽이 꽂혔다.

    조금만 빗나갔으면 머리통이 그대로 부서질 만한 위치였다. 식은땀이 피부에서 비어져 나왔다.

    “이봐요, 아저씨.”

    희원은 원덕삼의 머리 앞에 쪼그려 앉아 허공을 손가락질했다.

    그의 손끝은 하늘을 깍깍거리며 뛰노는 비행형 몬스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거, 저기 몬스터 보이죠?”

    “네, 넵! 보입니다! 아주 잘 보이고말고요!”

    희원이 ‘홈 스위트 홈’ 안전 경계선을 가리켰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안전지대라서 몬스터가 우리한테 해를 끼치지 못하는데, 저기 선을 벗어나면 그렇지 않거든요.”

    “예, 예! 그렇습니까?”

    원덕삼이 턱을 덜덜 떨며 대답하자, 희원이 팔짱을 꼈다.

    “조금 있으면 내 동생이 나와서 질문을 할 거라서. 그때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거나 험한 말 하면…… 알지?”

    그가 엄지를 들어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여기서 인생 종 치고 싶지는 않죠?”

    손짓의 의미는 아주 분명하게 다가왔다.

    대답이 시원찮으면 그대로 저기 허공을 날고 있는 몬스터 떼의 밥으로 던져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아, 아, 알겠습니다! 허튼소리는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사, 살려만 주십쇼!”

    원덕삼은 생명, 그중에서 특히 본인의 생명을 몹시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몇 번이고 진실만을 이야기할 것을 맹세했다.

    “그래요. 약속대로 잘해 보자고. 맘에 안 들면 파묻어 버리든, 몬스터한테 던져 주든 해 버릴 테니까.”

    희원은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겼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소리쳤다.

    “희나야! 납치범 깼다!”

    희나는 열어 둔 현관문 너머로 들리는 오빠의 목소리에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점심 가져갈게!”

    마요네즈에 잘 버무려 둔 달걀 샐러드를 퍽퍽 퍼서 식빵 위에 얹고, 다시 빵을 덮었다. 질긴 빵 귀퉁이는 칼로 슥슥 잘라 내고 보들보들한 흰 부분만 남겼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자 금세 먹음직스러운 달걀 샌드위치가 가득 쌓였다.

    희나는 샌드위치를 도시락 통에 정갈하게 담았다.

    던전 해변가 날씨가 워낙 좋아 피크닉 가는 기분을 내는 셈 치고 차리는 거였다.

    물론 의문의 남자에게 납치를 당한 다음 날, 피크닉 도시락을 싸는 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해야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단 말이지.’

    어쨌든 잡생각을 지우거나 기분 전환에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집안일이었다. 적어도 희나에겐 그랬다.

    희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진현 씨가 자리 비운 지 얼마나 됐다고!’

    강진현이 자리를 비운 지 딱 하루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사이 정말 많은 일이 벌어졌다. 모든 일이 노린 듯 한꺼번에 터졌다.

    일반 헌터들의 민원을 받아 접수했고, 그들을 위해 장을 보러 나온 사이 모르는 사람에게 납치당했다.

    그리고 자신을 납치한 괴한에게 오빠와 자신의 비밀을 들켜 버렸으며 가까스로 위험에서 탈출했다.

    일단 길드에는 급한 대로 뒤늦게 오후 반차를 낸 것으로 부재를 얼버무렸다.

    전속 계약한 땅콩과 관련한 일이니 이 상황을 이야기할 법도 했지만, 그건 좀 곤란했다. 희나의 ‘홈 스위트 홈’ 스킬이 탄로 날 수도 있었다.

    ‘오빠의 땅콩에 관한 비밀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길든데, 내 스킬에 대한 비밀을 제대로 지켜 준다는 법은 없지.’

    이번 일로 희나에겐 길드를 향한 불신이 생겨 버렸다.

    그래서 있는 연차와 월차를 죄 끌어모아 일주일 휴가를 냈다. 이곳저곳 멍든 몸을 회복할 시간도 필요했고, 납치자를 감시할 눈도 필요했다.

    안타깝게도 희나가 믿고 도움을 청할 만한 상대는 곁에 없었다.

    우민아는 장기 던전 공략 중이었고, 강진현도 던전 일로 부재중이었다.

    ‘일단 진현 씨가 올 때까지만이라도 잡아 둬야지.’

    그러니 당장은 납치범을 잡아 놓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오빠인 희원은 ‘던전 흙 속에 묻어 버리자.’라는 과격한 제안을 했지만, 희나는 그 의견을 우스갯소리로 넘겼다.

    “빨리 좀 와! 애간장 녹겠다!”

    잠깐 생각에 빠진 그새를 못 참고 희원이 문밖에서 희나를 재촉했다.

    「궈궈슁~ 출~바알~!」

    오색이도 안테나를 길게 뻗으며 허공에 ‘출발’이라는 글자를 그렸다.

    희나는 한쪽 어깨에 오색이를 올리고 달걀 샌드위치를 챙겼다.

    [끼릭끼릭끼릭끼릭!]

    슬리퍼를 대충 꿰어 신고 나오자 예의 비행 몬스터 울음소리가 귀청을 자극했다.

    희나는 오빠를 발견하곤 고개를 갸웃했다.

    “거기서 뭐 하고 있어, 오빠?”

    납치범을 묶어 둔 의자가 옆으로 쓰러져 있었고, 희원이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아. 이 아저씨가 몸부림쳐서 옆으로 쓰러졌길래……. 다시 제대로 세워 주려고.”

    희원은 대수롭지 않게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끙차, 하고 자빠진 납치범의 의자를 제대로 세워 주었다. 그러면서 그의 몸에 묻은 모래를 털어 주는 세심함까지 보였다.

    그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참 나. 오빠는 쓸데없는 데서 사람을 신경 쓴다니까.”

    자기 동생에게 해코지하려고 했던 상대를 저렇게 챙기는 건 이 세상에 희원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던전 안의 살림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