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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89화 (89/228)

던전 안의 살림꾼 89화

그것도 심지어 평수는 20평대나 늘어난 확장이었다. 공간의 조각의 조각치고는 굉장한 효과였다.

연달아 띠용띠용 뜨는 나머지 잡스러운 아이템 보상들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사람 세 명에 달팽이 하나, 식물 하나 살기에 딱 좋았기 때문이다.

“퀘스트 보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강진현이 조심스럽게 물어 오기에, 희나는 손을 내저었다.

“아뇨. 오래간만에 대박 뽑았어요.”

정말로, 대박이었다.

* * *

강진현이 던전 공략을 떠났다.

그는 떠나기 전, 자신의 제안을 진지하게 생각해 달라고 청했다.

던전 산책 퀘스트 완료로 인해 끊겼던 이야기…… 그러니까 희나의 집에 머무르는 건에 관한 이야기였다.

희나는 사무실에 홀로 앉아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한다?’

사실 생판 남인 강진현을 집에 더 들여 둘 필요는 없었다. 거기다 둘은 이웃 사촌지간이니, 굳이 함께 살지 않아도 충분한 교류를 나눌 수 있었다.

“당연히 우리 집에서 더 지내게 할 이유가 없는데…….”

그런데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째서일까? 강진현이 너무 좋은 하우스 메이트였기 때문일까?

“에이, 모르겠다. 일단 진현 씨 없는 동안 천천히 생각해 봐야지. 오빠랑 상의도 해 보고.”

복잡한 상념을 애써 털어 내고 있을 때였다.

쾅쾅!

때맞춰 사무실 문이 쿵쿵 소리와 함께 진동했다. 소리는 노크라기엔 주먹질에 좀 더 가까웠지만, 아무튼 노크는 노크였다.

“누구……세요?”

조심스럽게 대꾸하니 문 너머에서 씩씩한 목소리가 우렁우렁 들려왔다.

“날세!”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바닥에 흥건하게 고일 정도의 대답이었다. 이름도 밝히지 않고 다짜고짜 ‘날세!’라고 대답하다니…….

하지만 희나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 것 같았다.

“……상훈 아저씨?”

문을 빼꼼 열어 주자, 커다란 덩치를 가진 중년인이 불쑥 몸을 들였다.

“그래, 희나야. 잘 지냈냐?”

그는 껄껄 웃으며 희나의 손을 잡아 악수했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중년인의 이름은 최상훈으로, S클래스의 감정사였다. 참고로 S클래스의 감정사는 전 세계에 단 세 명 뿐이었다.

그리고 감정사란, 던전 아이템 등의 자세한 쓸모와 기능을 확인할 수 있는 비전투계 각성자 클래스를 뜻했다

최상훈은 희나가 권한 자리에 털썩 앉더니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이야. 팀장이라더니, 좋은 곳 받았네. 삐까번쩍하구먼.”

“아, 네. 아저씨는 처음 오시죠?”

“그래. 그동안 좀 바빠 가지고 바깥에 정신을 못 뒀다.”

최상훈과의 인연은 꽤 오래되었다면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희나는 그와의 첫 만남을 잠시 회상했다.

일반인 휴게실 청소를 맡고 있을 때, 희나의 ‘안락한 침상’을 시전한 침대가 감정이 되지 않는다며 난동을 부리던 사람이 바로 최상훈 감정사였다.

‘마지막엔 내 스킬로 그대로 잠들어 버렸지…….’

제법 강렬한 첫 만남이었다.

최상훈과의 두 번째 만남은 희나가 각성자 휴게실까지 맡게 된 직후에 이루어졌다.

그는 첫 만남에서 보였듯 다혈질에 괴짜였지만, 한편으로는 성격이 시원시원해서 다른 사람들과도 퍽 잘 어울렸다.

‘아가씨, 그때는 미안했소. 내가 너무 흥분했어.’

최상훈은 두툼한 손을 내밀며 희나에게 사과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를 편하게 ‘상훈 아저씨’라고 부르라며 크하하 웃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말을 트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상당한 친분을 쌓았다.

비전투계 각성자라 던전 공략을 나가는 법이 없어 매일같이 휴게실에 들락날락하다 보니 유독 친해진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상훈 아저씨는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어요? 연구실에 계시지 않고요?”

희나는 최상훈이 좋아하는 믹스 커피를 한 잔 타서 건네며 물었다.

최상훈은 자기 연구실과 휴게실 외에는 거의 출몰하는 법이 없었다.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여 희나의 사무실에 방문한 연유가 궁금했다.

“아. 그게 말이다…….”

최상훈은 뜨거운 믹스 커피를 단숨에 마셔 버리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건네러 온 사람 같았다.

“……그게, 너한테 부탁이 있어서 왔단다.”

“저한테 부탁이요? 피곤하세요? 연구실에 잠자리 펴 드릴까요?”

희나가 생각하기에 자기에게 부탁할 만한 일은 그 정도밖에 없었다. 전 세계에서 손꼽는 능력자인 최상훈이 자기에게 아쉬울 게 뭐가 있겠는가?

거기다 최상훈은 강진현처럼 예민하지도 않았다. 머리만 대면 잘 잤고, 돌도 씹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식욕도 왕성했다.

“크흠, 흠.”

최상훈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뭔가 민망한 이야기를 꺼내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지금 청룡 길드의 다른 헌터들을 대표해서 온 거다. 나 원 참……. 이런 일을 내가 다 맡아서 하게 되다니.”

“예. 말씀하세요.”

희나는 자세를 바로 해서 앉았다.

무려 청룡 길드의 헌터를 대표해서 왔다니, 보통 일이 아닌 게 틀림없었다.

물론 어째서 인사팀장인 강목현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희나와 접촉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희나야.”

최상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즘 네가 각성자 상태 관리팀장이 돼서 나간 이후로 일반 헌터들 사이에선 불만이 여간 아니야.”

“불만이요…….”

희나는 최상훈의 말을 되뇌었다.

‘하긴. 뭣도 아닌 C급 살림꾼이 갑자기 팀장으로 진급해서 편히 지내고 있으니…… 남들에겐 눈엣가시처럼 보였을지도 몰라.’

겉으로는 희나의 진급을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축하해 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그걸 아니꼽게 느끼는 사람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했던 바였지만, 이런 이야기를 넌지시 전해 듣자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자연히 낯빛은 어두워졌고, 이를 본 최상훈이 화들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니! 나쁜 뜻이 아니야! 당연히 네가 잘돼서 나간 건 축하할 일이지. 어떤 새끼가 그걸 아니꼽게 여기겠어?”

“괜히 좋게 말씀해 주실 필요는 없어요. 다른 헌터님들 사이에서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면서요……?”

최상훈은 사무실 안이 우렁우렁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아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불만이 아니야. 절대로!”

“그럼 뭔데요?”

“……그 헌터 관리라는 거 말이다. 강진현한테만 말고 우리도 좀 해 주면 안 되겠냐?”

“예?”

생각도 못 한 이야기였다.

“안 그래도 다른 놈들이 몇 번이나 강목현 팀장한테 건의했는데, 너 일 많아진다고 쥐뿔도 안 들어준다더라. 제 동생 관리 소홀해질까 봐 그런 게지. 쳇……. 거기다 강 팀장 성격 알지? 보통 아닌 거. 애들이 탈탈 털려서 돌아오는데…… 쯧. 당하다 못해 너한테 직접 와서 얘기 꺼낼 생각도 못 하기에 내가 대신 나섰다.”

최상훈은 투덜거리며 강목현 인사팀장의 싸가지에 대해 논했다.

강진현은 그래도 귀여운 맛이라도 있지 강 팀장은 귀여움의 ‘ㄱ’도 없는 놈이니, 능력에 따라 헌터 차별하는 놈이니 하는 욕이 줄줄 이어졌다.

“……저기, 상훈 아저씨?”

희나의 부름에 최상훈은 뒤늦게 아차, 하고 정신을 차렸다.

“아차, 그래. 하던 얘기 계속하마. 아무튼, 지금 헌터 놈들의 불만은 이거야. 각성자 상태 관리팀이 아무리 명목상 이름이라고 하더라도 그 혜택이 강진현 혼자에게만 집중되는 건 불공평하다, 이 말이지.”

간단히 말하면 다른 헌터들도 희나의 손길을 몹시 바라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말에 희나는 조금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자주 내려가서 안락한 침상도 시전해 드리고 하는데…….”

희나는 넉넉한 일정 사이사이 헌터 휴게실에 내려가 안락한 침상을 시전하고 오곤 했다.

스킬 숙련도를 올리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동안 정든 휴게실 헌터들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뭔가를 더 바라고 있다니, 당황스러운걸.’

헌터들이 이 이상 얼마나 더 해 주길 바라고 있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아 작게 콧잔등을 찌푸렸다.

그러자 최상훈이 큼큼, 목을 가다듬으며 넌지시 속내를 비추었다.

“물론 강진현에게 해 주는 것 같은 케어를 바라진 않아. 그러다간 네 몸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대신, 가끔 내려와서 김밥 좀 싸 주고, 땅콩 같은 것도 좀 주고 하면 안 되겠냐? 자주는 안 바란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면 돼. 값도 따로 치르마.”

듣자 하니, 헌터들은 희나의 김밥을 줄곧 그리워하고 있었던 듯했다.

그러던 와중에 희나의 손길이 스친 볶은 땅콩을 먹게 되며 희나 요리에 대한 갈망이 폭발한 것이다.

“괜히 양 많이 준비할 필요도 없다. 적당히 만들어 두고 순서 세우면 되는 거니까.”

그 이후 일은 놈들이 싸워서 빼앗든 말든 알아서 하겠지……라며 이어지는 말에 희나는 허허 웃었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실은 진담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얘기는 잘 알아들었어요, 상훈 아저씨.”

“어쩌다 보니 구구절절 이야기하게 되었다만, 부담스러우면 거절해도 된다. 안 해도 되는 일을 굳이 고생해 가며 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최상훈이 뒤늦게 겸양을 차렸다. 희나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저씨 얘기 들으니까 제가 다른 헌터님들한테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강진현만을 위해 만든 팀이라지만, 어쨌든 희나는 ‘각성자 상태 관리팀’의 팀장이었다.

이름만 보면 청룡 길드의 모든 각성자의 상태를 관리할 의무도 있었다.

‘뭐…… 시간은 넉넉하니까.’

희나는 각성자 상태 관리팀장이 된 이후의 스케줄을 차근히 떠올려 보았다.

아주 한가롭다 못해 지루할 정도였다. 강진현의 식사와 잠자리만 책임지면 되었다.

거기다 이번처럼 강진현이 던전 공략 따위로 자리를 비울 때면 완전히 할 일이 전혀 없었다. 이 정도면 휴가나 다름없었다.

“좋아요. 마침 저도 시간이 남아서 심심했는데, 잘됐네요.”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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