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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86화 (86/228)
  • 던전 안의 살림꾼 86화

    희나는 투덜거리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공간의 조각을 썼는데도 방이 하나 더 생기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그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됩니다.”

    강진현은 아주 저돌적이었다. 붉은 천을 향해 달려가는 한 마리 황소 같았다.

    “그저 나쁜 제안만은 아닐 겁니다. 집에 하숙인 하나 들인다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하숙비도 내겠습니다. 그리고 전력 복구를 위해서는 마석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하셨지요? 이 또한 충분히 지원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희나 씨에게 곤란한 일들이 많이 닥칠 수 있을 텐데, 제겐 도움을 드릴 만한 능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식물형 몬스터의 산책길이 좀 더 안전해질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릴 수 있겠지요.”

    그는 자기 PR을 아주 잘했다. 희나가 만약 면접관이었다면 손뼉을 치며 합격 목걸이를 걸어 주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우리 집에 들어오겠다니…….’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희나는 손에 든 공간의 조각과 강진현, 저 뒤에 숨은 바둑이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머리가 복잡했다.

    많은 생각이 오갔다.

    강진현은 아주 완고해 보였고, 바둑이는 포기하기엔 너무 중요한 존재였다.

    그리고 새로 얻은 공간의 조각으로는 강진현이 지낼 만한 방 한 칸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떠오르는 답이라고는 하나뿐이었다.

    “……알겠어요. 일단 공간의 조각으로 방이 하나 더 나오면 진현 씨를 하숙생으로 들이도록 할게요. 대신 방이 안 나오면, 이건 없던 일로 쳐주셔야 해요.”

    꽤나 강경한 조건이 붙었지만, 강진현은 몹시 만족한 듯 작게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그 말대로 하지요.”

    “그리고!”

    희나는 큰 소리로 한 가지 조건을 더 덧붙였다.

    “그래도 진현 씨 집이 있는데, 완전히 우리 집에 들일 수는 없어요.”

    “그럼 지금 가지고 있는 집을 전부 처분할까요?”

    강진현이 또 허튼소리를 하기에 희나는 손을 휘휘 저었다.

    “아뇨! 그 소리가 아니라……. 만약 진현 씨가 우리 집에 살게 되는 일이 생긴다면 적어도 기한을 두자는 말이에요.”

    일정 기간만 자기 집에 머무른 후 떠나 달라는 희나의 제안에 강진현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저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만.”

    “제가 그러고 싶어요! 안 그러면 저도 이거 못 해욧!”

    희나는 펄펄 날뛰었다. 어찌나 흥분했던지 얼굴이 빨개져서 당장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대체로 침착한 편인 희나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으므로, 강진현은 어쩔 수 없이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알았습니다. 일단 희나 씨 제안부터 들어 보고 정하도록 하죠. 기한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에 희나는 옆에 뿌리를 꿇고 앉아 있는 바둑이를 척 가리켰다.

    “……바둑이 던전 산책 퀘스트가 끝날 때까지만요. 그 이후에는 저도 던전 나갈 일이 없어질 테니까, 진현 씨가 걱정하실 만한 위험한 행동도 안 할 거예요.”

    “음.”

    강진현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거기까지가 희나 씨의 마지노선인 듯하니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물론 진현 씨가 준 공간의 조각으로 집이 확장되지 않으면, 이 약속은 모두 꽝인 거예요!”

    희나는 단호하게 못 박았고, 강진현은 슬그머니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 *

    순간적으로 어지럼증이 들더니, 공간이 바뀌었다.

    <홈 스위트 홈(B): 스킬 시전자에게 집을 제공한다. 액티브 스킬. (현재 상태: ‘방3 화2 30평대 아파트’ Lv. 16)>

    “진짜로 됐네…….”

    희나는 한층 넓어진 집 안을 둘러보았다. 30평대의 방 3개, 화장실 2개짜리 아파트 구조였다.

    연식 있었던 지난번과 달리 상태가 꽤 좋았다. 더불어 상태 창에는 레벨 업 보상을 뽑을 것이냐는 문구들도 띠롱띠롱 떴다.

    희나는 레벨 업 뽑기 보상 창을 전부 닫아 버리고 띵한 머리를 부여잡았다. 희원이 그런 희나의 곁에서 속닥거렸다.

    “야, 진짜로 들일 거야?”

    있었던 일을 대강 설명해 주었는데도 희원 또한 이 상황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듯했다.

    ‘하긴. 동생 회사 동료가 갑자기 집에 들어와 살겠다고 하는데, 누가 안 놀라겠어?’

    당사자인 희나조차 얼떨떨하니, 희원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마석 걸고 계약까지 했어. 못 물러.”

    강진현과 희나는 마석을 걸고 약속을 했다.

    공간의 조각으로 방이 하나 더 나오면 강진현을 하숙생으로 들이고, 방이 안 나오면 그가 이번 일에 대해서 입을 닫아 주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진짜로 나와 버렸네……. 랭크도 오르고, 집도 업그레이드됐잖아?’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이긴 하지만, 한숨이 절로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휴.”

    이런 상황에서 태연한 건 강진현뿐이었다.

    “희나 씨,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귀찮은 일은 없을 겁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희나에게 잘 부탁한다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까까지 바둑이를 가지고 협박하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예의 발랐다.

    희나는 그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며 입술을 내밀었다. 아주 골치가 아팠다.

    ‘S급 헌터를 하숙으로 들이게 되다니. 일이 대체 어떻게 꼬여 가고 있는 거야?’

    어쩐지 앞길이 파란만장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6. 새 손님들과 살림꾼

    [헌터넷 – 익명 자유 게시판]

    [제목: 지난번에 소량 유통되던 땅콩]

    내용: 더 찾을 수 없을까?

    얼마 전에 누가 아무 설명 없이 거래 게시판에 ‘신기한 땅콩’이라며 뭘 올려뒀길래 재미 삼아 사봤음. 재밌어 보이면 뭐든 한 번씩 사고 보는 게 내 취미임ㅋㅋ

    그런데 이게 물건이더라고. 땅콩 주제에 던전 부산물인지 인벤토리 창에 보관이 됨.

    신기해서 넣어놓고는 잠깐 잊고 있었지…….

    그리고 이제부터가 본론임.

    이번에 흰개미굴 던전 들어가서 길잃어서 죽을뻔했거든.ㅇㅇ

    내 랭크가 좀 높은 편이라 일개미 몬스터는 문제가 안 됐는데 문제는 식량이었음. 비상식량이 며칠 치 없었음. 덕분에 길 찾다가 굶어 죽기 직전까지 갔음.

    그랬는데 재미로 사둔 땅콩 다섯 알이 내 목숨을 살렸음.

    물배라도 채울까 싶어 포션이라도 먹을까, 고민중이었는데 인벤토리 한구석에 땅콩 넣어둔 게 보이더라고.

    마침 잘됐다 싶어서 한 알 먹으니 포만감이 가득 찼다는 시스템 문구가 뜸.

    쪼개서 먹으면 하루에 한 알까지로도 간당간당 버틸 수 있겠더라고.

    그렇게 다섯 알로 닷새 더 버텨서 겨우 흰개미굴 빠져나옴. 파티원들은 나 뒈진 줄 알고 지들끼리만 보상 나눠먹었더라ㅋ 난리쳐서 내 몫 겨우찾음ㅋㅋㅋ

    아마 이 글 보는 놈 중에 속 찔리는 녀석들 있을 거다.

    아무튼 썰이 좀 길었는데 결론은 이거임.

    그때 그 땅콩 팔던 아이디 아는 사람 있냐? 귓이라도 해보려고 거래내역 확인해봤는데 삭제된 아이디라고 뜨네.

    만일 보고 있다면 그때보다 값은 세 배 이상 쳐줄 수 있으니까 연락 바람.

    (댓글)

    - 나도 그거 샀었는데 더 구할 길이 없음ㅠㅠ 판매글도 몇 시간만에 갑자기 싹 다 사라지고 뭐 남은 흔적 자체가 없음.

    └ 거대 세력이 뭐 은폐하려고 그런 거 아님? 안그러면 이렇게 싹 사라질 이유가 없잖음

    └ 음모론자는 꺼지시고요ㅋ

    웹 페이지를 꼼꼼히 살피던 눈이 뱀같이 가늘어졌다.

    “인벤토리에 소지 가능한 데다 특수 효과가 붙은 땅콩이라…….”

    남자는 수염이 까슬하게 돋아난 턱을 천천히 쓸었다.

    “……흥미롭군.”

    그의 눈동자가 흥미로 번뜩거렸다.

    남자는 돈 될 만한 정보는 기민하게 찾아내곤 했다.

    그가 아시아 제일의 정보상이 된 데는 그의 각성 스킬도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돈 앞에서 여지없이 발휘되는 감이야말로 가장 중요했다. 남자는 돈 냄새 맡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

    “이거, 잘만 하면 돈맥이 그대로 굴러들어 오겠는데?”

    그리고 그런 남자의 기민한 레이더에 ‘땅콩’ 두 글자가 걸려들었다.

    “어디 한번 꼬리를 쫓아 볼까……?”

    그는 핏줄 선 눈알을 굴리며 컴퓨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 * *

    “좋은 아침입니다, 희나 씨, 희원 형님.”

    강진현이 인사를 건넸다. 옷차림은 편안한 트레이닝복이었고, 막 씻었는지 머리끝은 젖어 촉촉했다.

    희나와 희원 남매도 새 하숙인에게 익숙하게 아침 인사를 했다.

    “진현 씨,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 진현이 잘 잤어?”

    「굿모닝♬♪」

    희나 곁에서 고물고물 기어 나온 오색이도 반갑게 안테나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강진현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바둑이는 어디 있습니까? 보이지 않는군요.”

    “아. 걔는 마당 뛰어다니고 있어. 아침부터 좀이 쑤시나 봐.”

    희원은 희나가 만들어 둔 소시지볶음을 맨손으로 집어 먹다가 등짝을 얻어맞았다.

    강진현은 점잖은 표정을 하고 식탁 위에 수저를 놓았다.

    “고마워요, 진현 씨.”

    희나는 뜨거운 된장찌개를 대신 들어 옮겨 주는 그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이에 강진현은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작게 저었다.

    “식사합시다!”

    찬 수가 많지는 않지만 알차게 차린 아침상 앞에서 모두 잘 먹겠습니다, 하고 인사했다. 아침인데도 다들 입맛이 좋았다. 말없이 그릇을 비워 가는 속도가 상당했다.

    「방금 뭐가 지나갔냐? ??」

    S급 헌터가 보여 주는 현란한 젓가락질에 오색이의 안테나가 빙글빙글 돌았다.

    그 모습에 희나는 밥을 먹다 말고 키득키득 웃었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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