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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78화 (78/228)
  • 던전 안의 살림꾼 78화

    희나의 질문에 길드장의 뒤에 서 있던 인사팀장 강목현이 불현듯 입을 열었다.

    “이 부분은 제가 대신 설명하겠습니다.”

    “네에, 인사팀장님.”

    “이 팀장님이 가져오신 땅콩은 여느 땅콩과는 다른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땅콩의 경우 섭취했을 시 포만감이 상당히 오르는 걸 확인했습니다. 실제로 상태 창에 포만감이 오른다는 설명이 뜨기도 했고요.”

    “아, 맞아요.”

    희나는 문득 생땅콩을 잔뜩 먹었던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포만감이 올랐다는 요지의 창이 떴었다. 배가 부를 정도로 먹었으니 당연히 상태 창이 떴구나, 생각하여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긴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

    “각성자의 신체에 유효할 정도의 영향을 끼치는 섭취물은 많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포션류 정도가 전부라고 할 수 있겠죠.”

    포션은 체력과 스태미나, 마력 등을 올려 준다거나 상처를 치료하는 데 쓰는 약물이었다.

    참고로 연금술사가 직접 제작하거나 던전에서 직접 수급해야 하는 물건이었으므로 가격이 매우 비쌌다.

    강목현 인사팀장은 희원이 기른 땅콩을 그런 포션에 빗대어 비유하고 있었다.

    “시스템이 반응한다는 것은, 그만큼 각성자의 육체에 확실한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입니다. 허기를 해결해 주고, 상당한 포만감을 제공해 주죠. 거기다 휴게실에 비치한 볶은 땅콩은…… 이건 희나 씨가 직접 볶았다고 했나요? 이건 땅콩 한 알에 6시간분의 열량을 제공합니다. 그동안은 배고프지도, 에너지가 부족해지지도 않습니다. 휴대 식량으로서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피가 적고 충분한 열량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허기 문제까지 해결해 주지 않습니까? 눈치 좋은 헌터들이 희나 씨에게 몰려든 건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설명을 하던 강목현의 손 위에 불현듯 땅콩 몇 알이 생겼다.

    “어?”

    “……이렇게, 인벤토리 창에 보관이 가능합니다. 보통의 작물이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죠.”

    인벤토리 창에 들어갈 수 있는 건, 던전 부산물이 들어간 물건뿐이었다.

    그래서 던전 바깥에서 만든 식량 같은 경우에는 인벤토리에 보관하지 못하고 따로 상비해야만 했다.

    “B급 땅콩이라는 상태 설명 창도 뜹니다.”

    “헉.”

    인벤토리에 들어가는 데다, 설명 창까지 뜨다니.

    당연히 평범한 작물이라고 생각했기에 주의 깊게 살펴본 적이 없는 게 패착이었다. 시스템 설명 창은 사용자가 확인하고자 할 때만 떴으니까.

    ‘으으……. 이거 던전 토양에서 기른 땅콩이라서 그런가 봐.’

    희나는 여기까지 생각했다가 또다시 헙, 소리를 내며 길드장의 눈치를 보았다.

    던전 토양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사실, 던전 토양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던전에는 어떻게 들어가는지는 모두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몹시 당황한 희나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일생일대의 위기라고 할 법했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시선을 눈치챈 길드장이 피식 웃었다.

    “이희나 팀장이 계속 내 편에 있어 준다면, 이 팀장의 비밀은 유지될 거야. 비밀을 더 캐내지도 않을 거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입이 무거운 편이거든.”

    그 어조가 매우 의미심장했다.

    애당초 청룡 길드의 길드장을 배반할 일은 없을 테지만, 희나는 앞으로 영원히 청룡 길드의 편을 들 것을 속으로 약속했다.

    ‘어떻게 쟁쟁한 헌터들을 휘어잡고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를 꾸려 냈는지 알 것 같아.’

    왠지 모를 중압감에 한숨을 폭 내쉬었다. 김규희 길드장은 희나 같은 범인이 상대하기엔 벅찬 상대였다. 조금씩 알아 갈수록 더 그랬다.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길드장이 손뼉을 짝짝 쳤다.

    “아무튼. 그래서 이 팀장의 땅콩을 우리 청룡 길드가 매입하고 싶다는 얘기예요, 이 팀장. 물론 대체 식량으로서의 가능성만 확인했고, 나머지 몇 가지 사항들은 확인해 보아야 하겠지만……. 이 땅콩의 가치는 충분해.”

    길드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인사팀장 강목현이 곧바로 말을 받았다.

    “개인 대 개인으로 거래하는 것보다 우리 길드와 거래하는 편이 훨씬 안전할 겁니다. 이 팀장의 형제가 재배했다는 땅콩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 상황이 조금 복잡해질 수도 있습니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지만, 그만한 리스크도 안게 되겠지요.”

    그는 은근히 희나의 불안을 자극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희나는 약한 사람이 독특하고 유용한 스킬을 가지고 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우민아에게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들은 바 있었다.

    그건 희나의 ‘홈 스위트 홈’ 스킬에 대한 잔소리였지만, 희원의 농사꾼 스킬에도 해당할 수 있을 테다.

    ‘소문이 잘못 퍼지면 납치당해서 농노처럼 땅콩 농사만 짓게 될 수도 있어.’

    “우리 길드와 일한다면 이 팀장과 오빠분에게 불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깔끔히 조치해 드리겠습니다. 이미 회사 인트라넷에 퍼진 땅콩 관련 정보는 모두 차단하고 삭제해 두었고요.”

    인사팀장 강목현은 희나의 걱정을 콕콕 집어 긁어 주었다.

    거기다 희나를 만나러 오기 전에 소문이 더 퍼지지 않게 하기 위해 미리 조치를 해 두었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물론 꼭 그런 좋은 의도만 있었던 건 아니었겠지만.’

    희나도 마냥 순진하지만은 않았다.

    청룡 길드에서 이렇게 나온 건 100% 호의 때문은 아니었을 거다.

    희원이 수확한 땅콩의 가치가 높다는 것을 알아보고, 정보와 물량을 독점하기 위해서 이렇게 나온 것 아니겠는가? 가격 경쟁을 붙이면 가치가 상당할 게 분명했다.

    희나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불쑥 욕심이 솟았지만, 담대한 계획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안전한 게 최고지.’

    사실 과할 정도의 풍작이 아니었다면 농작물을 밖에다 내다 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다.

    아무리 가치가 높다지만, 고작 땅콩이었다. 땅콩 때문에 복잡하고 위험한 상황에 놓이고 싶지 않았다.

    이미 희나는 집도 세 채,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네 채나 있고, 저금하기에도 차고 넘치는 월급과 인센티브를 받고 있었다.

    이제 필요한 거라곤 가족의 건강과 안녕뿐이었다.

    굳이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가장 중요한 가족의 안전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진현 씨가 청룡 길드에 계속 있는 한, 나는 이곳과 계속 인연이 끊기지 않을 테니까 두 번째 계약도 청룡 길드와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야.’

    희나의 눈을 바라보고 있던 김규희 길드장이 빙그레 웃었다. 희나가 머릿속으로 내린 결론을 읽어 낸 것이다.

    “이 팀장, 잘 생각했어요. 우리 길드가 책임지고 있는 이상, 이 팀장과 이 팀장 가족의 신변에 위협이 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면서 당장이라도 계약서를 가지고 와서 지장을 찍으라고 할 것 같은 분위기라, 희나는 황급히 덧붙였다.

    “그런데 일단 저는 동의하지만, 오빠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거든요. 오빠와 마저 상의해 보고 자세한 논의는 나중에 할 수 있을까요?”

    어쨌건 이건 생산자인 희원의 의사가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그럼. 되고말고.”

    길드장이 호쾌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희나는 얼떨결에 그 손을 부여잡고 탈탈 흔들렸다.

    “피차간에 아쉬운 일 없이 대가는 넉넉하게 지불할 테니까 걱정은 마요. 맘 정하면 오빠 되는 분이랑 같이 찾아와요. 길드장실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까.”

    그녀가 눈웃음 지으며 속삭이기에, 희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희나는 헐레벌떡 집에 돌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희원 탓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니, 명색이 농사꾼이면 자기가 키운 땅콩이 어떤 건지는 알아야 하는 것 아냐?”

    “어쩐지 네가 며칠 동안 입맛이 없더라니. 그나저나 난들 알았겠냐? 땅콩 효능이 이런 거였는지.”

    “오빤 헌터 생활도 해 봤으면서 눈치 못 챘어? 수확한 땅콩을 좀 더 유심히 살펴봤으면 진작……”

    “너도 이런 효능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잖아. 나라고 달랐겠냐?”

    희나의 잔소리에 희원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나는 그냥 첫 수확물이라 기분만 좋았지. 그 이상 생각하지는…….”

    “하여간, 천하 태평하기는!”

    “좋은 게 좋은 거지.”

    희원은 원래도 좀 무딘 성격이긴 했지만, 어쩐지 농사를 지으면서 더 태평해진 것 같았다.

    관심이 다 땅과 식물로 쏠려서 그런 걸까?

    “그래서 오빠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뭐, 나야 내가 키운 걸 좋은 가격에 사 줄 거라는데 나쁘지 않지. 안 그래도 네가 이거 다 못 팔면 직판장에라도 나가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거든.”

    “청룡 길드에 납품하는 게 아니라 헌터 마켓에다 내다 팔면 더 큰돈이 될 수도 있어. 위험할 것 같아서 나는 별로 원하지 않지만…… 오빠가 키운 거니까, 최종 결정은 오빠가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희나는 솔직히 자기 생각을 말했다. 자기야 지금 상태가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지만, 희원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었다.

    ‘오빠도 오빠 재산을 불리고 싶을 수도 있잖아.’

    지난 10년 동안 희나네 살림을 부양한 건 거의 희원이었다. 그래서 희나는 자기가 버는 돈을 공동 재산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오빠가 고생한 돈으로 먹고살았으니 이젠 내가 오빠를 부양할 차례야.’

    하지만 희나에게 부양을 받는 입장인 희원은 그걸 짐처럼 느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냐. 물건을 뭐 그리 귀찮게 파냐? 청룡 길드에 직접 납품하는 게 제일 편할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희원은 돈을 벌고 싶은 욕구보다는 귀찮음이 더 큰 것 같았다. 던전 농사일에 신경이 온통 쏠려 있어 다른 일들을 벌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왕 계약하는 거, 다른 작물들도 납품하는 조건으로 하면 안 되나?”

    심지어 앞으로 나올 생산 품목까지 도매급으로 넘겨 버릴 심산인 듯했다.

    오빠의 제안에 희나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하긴. 오빠가 키운 땅콩만 특별하란 법은 없지. 다른 작물들도 독특한 효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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