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안의 살림꾼-70화 (70/228)
  • 던전 안의 살림꾼 70화

    ‘윽.’

    강진현의 지적에 속이 뜨끔했다. 출퇴근 시간을 빼면 정말로 조용하긴 할 거다. 이 집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으니까.

    “진현 씨가 S급이라서 혹시 스킬이 먹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조용하다니 다행이에요.”

    “여러모로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니에요. 이건 이웃 간의 에티켓이잖아요. 하하. 하.”

    희나는 어색하게 하하 웃으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나름 자연스럽게 밑밥 깐 거 맞겠지……?’

    초조한 그 속을 어떻게 파악했는지, 우민아가 때맞추어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그런데 집 되게 잘 꾸며 놨다. 강진현네랑 구조만 반대지 똑같은 집일 텐데, 분위기가 훨씬 인간적인걸.”

    “그래요? 신경 써서 꾸몄는데, 언니가 알아봐 주니까 기분이 좋네요.”

    자기도 질 수 없다 생각했는지 강진현도 끼어들어 칭찬을 늘어놓았다.

    “저도 집의 분위기가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희나 씨.”

    두 사람의 칭찬을 듣자 눈앞에 상태 창이 반짝하며 떴다.

    <▶ 부가 퀘스트 (1/1)

    - 이웃을 불러 새집 자랑하기 (100/100%)

    ※ 부가 퀘스트 완료 시 추가 보상 아이템 지급 (B등급 이상의 방어 아이템을 보장함)>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강진현은 희나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기민하게 눈치챘다.

    “아, 그게…….”

    희나는 슬쩍 주변의 눈치를 봤다. 오빠인 희원과 청룡 길드의 간부인 우민아, 강진현까지.

    ‘이 정도는 얘기해도 되겠지?’

    보통 사람들에게 B급 이상의 방어구는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을 테지만, 우민아와 강진현은 좀 달랐다.

    우민아는 B급 과도를 집들이 선물로 내놓았고, 강진현도 고등급으로 보이는 로브 아이템을 거침없이 박박 찢어 대지 않았던가?

    그들 앞에서는 퀘스트 보상으로 고등급의 방어구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꺼내도 될 것 같았다.

    마침 둘은 고위급 헌터이기도 하니, 이런 아이템의 사용법에 대해 조언해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희나야?”

    우민아마저 희나의 상태를 살펴 오기에, 결국 희나는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사실 이번에 두 분을 초대한 건 퀘스트 때문이었어요.”

    “퀘스트 말입니까?”

    “집 꾸미기 관련으로 퀘스트가 떴는데요, 그중 하나가 ‘집들이하기’였거든요.”

    “독특한 퀘스트입니다.”

    흔치 않은 퀘스트 내용에 강진현이 흥미를 비추었다.

    “너는 스킬도 특이하고, 퀘스트도 특이하네.”

    우민아도 신기해했다.

    희나는 그들을 향해 헤헤 웃어 보였다.

    “마침 이번 퀘스트 보상이 B급 이상 방어구거든요. 그래서 그런데 보상받은 것 좀 봐 주실 수 있으세요?”

    * * *

    “초대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또 초대해 줘. 재미있었어.”

    희나는 강진현과 우민아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와 주셔서 고맙고, 선물도 고마워요. 다음에 또 초대할게요. 그때는 빈손으로 오셔도 돼요.”

    희원도 떠나는 손님들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덕분에 오래간만에 왁자지껄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저녁 시간 내내 강진현을 슬쩍슬쩍 째려보던 주제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싹 안색을 바꾸는 게 좀 가증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조심히 가세요.”

    남매는 손님을 배웅하고는 현관문을 쾅 닫았다.

    “오빠는……!”

    막 잔소리를 퍼부으려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보단 희원이 한발 먼저였다.

    “야. 신상 방어구 꺼내 보자. 아까 나는 제대로 못 봐서 궁금하네.”

    그랬다. 희나는 ‘모델 하우스를 만들자!’ 부가 퀘스트를 완료하며 보상으로 방어구를 지급받았다.

    무려 A급 방어의 팔찌였다.

    <방어의 팔찌(A): A급 이하 몬스터의 공격을 세기에 상관없이 최소 1회에서 최대 3회까지 100%의 확률로 방어해 준다. (소유주: 이희나)>

    강진현과 우민아의 말에 의하면, 이건 엄청난 기능을 가진 아이템이었다.

    상대 몬스터가 A급 이하기만 하면 온갖 몬스터들에게 각각 최소 한 번씩 얻어맞아도 살 수 있는 의미라고 했다.

    거기다 A급을 넘어서는 몬스터는 손꼽을 정도로 적으니, 이건 사실상 무적이나 다름없는 방어구였다. 경매에 올리면 최소 시작가만 해도 수백억일 거라고 했다.

    다만 문제라면 이 팔찌가 귀속 아이템이라는 사실 정도? 즉, 이건 희나만이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뜻이었다.

    “이게 그 돈 덩이구나.”

    희원이 방어의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이리저리 살폈다.

    팔찌는 몹시 가늘고 소박했다. 은빛 체인이 얇게 한 줄 있었고, 오색으로 반짝이는 보석 하나가 티끌만 하게 박혀 있었다.

    길 가다 흔히 살 수 있는 얼마 안 하는 팔찌처럼 보였다.

    “평범해 보여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커다란 보석이 잔뜩 박혀 있었으면 평소에 끼고 다니지도 못했을 텐데.”

    희원은 희나에게 다시 팔찌를 넘기며 중얼거렸다.

    “이왕 좋은 아이템 생긴 거 잘 끼고 다녀.”

    희나도 그럴 생각이었다.

    어차피 남에게 넘기지도 못할 아이템이었다. 인벤토리에 고이 모셔 놓는 것보다야 팔목에 끼고 다니는 편이 훨씬 가치 있을 거다.

    “팔찌 능력 쓸 일이 없으면 좋겠네.”

    희나는 간절히 기도하며 팔찌를 팔목에 찼다.

    5. 산책하는 살림꾼

    “희나! 이희나! 일어나!”

    “어으…….”

    호들갑스러운 목소리에 희나는 몹시 괴로워하며 눈을 떴다.

    휴대전화를 더듬거리며 시간을 확인하니, 6시 39분이었다. 부지런한 희나에게도 꽤 이른 아침이었다.

    어제, 토요일에는 집들이 준비를 하느라 온종일 바쁘게 지냈다.

    거기다 새로 생긴 A급 방어의 팔찌 덕분에 심장이 벌렁거려서 평소보다 한참 늦은 시간에 잠들었다. 아직 피로가 덜 풀린 상황이다.

    “뭐야? 지금 아침 7시도 안 됐어……. 일요일인데…….”

    하품을 쩍 하며 이불을 다시 둘러쓰려는데, 머리를 받치고 있던 베개가 휙 하고 빠져나갔다.

    덕분에 희나는 침대 매트리스에 가볍게 머리를 콩 하고 박았다.

    “야! 이희원!”

    오빠의 짓궂은 장난에 희나는 벌떡 일어났다.

    이런 장난은 10년도 전에 졸업한 사인데, 갑자기 나이를 거꾸로라도 먹은 걸까?

    “드디어 일어났네.”

    희원은 희나의 베개를 껴안은 채 씨익 웃었다. 그 또한 깨어난 지 오래되지 않았는지, 머리가 까치집이었다.

    “새벽 나절부터 대체 왜 이래?”

    직장인의 휴일을 방해하다니, 희원은 벼락을 맞아도 쌌다.

    “미안. 그런데 보여 줄 게 있어서……. 마음이 급했거든.”

    희원이 희나의 팔을 붙잡고 영차,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등을 떠밀어 거실로 내몰았다.

    “그래도 내 잠 깨운 건 용서 안 할 거야…….”

    구시렁거리며 눈곱을 떼고 있는데 희원이 앞을 보라며 손짓했다.

    “저기 봐. 저기!”

    “내 잠을 깨울 만큼 대단한 게 아니면 오늘 밥은 없을 줄…….”

    오빠에게 무시무시한 협박을 내뱉던 희나는 눈앞의 광경에 순간적으로 말문을 잃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약 5초간의 정적이 흐른 후, 희나가 멍하니 물었다.

    “……이 풀? 아니, 나무는 뭐야?”

    희나의 물음에 희원이 대답했다.

    “얘? 바둑이. 하룻밤 사이에 엄청 컸지?”

    그랬다. 거실 한복판에 약 2m가량 되어 보이는 커다란 식물 하나가 잎사귀를 팔랑거리고 있었다.

    오므라든 꽃봉오리 하나에, 사람 팔 같은 풀 잎사귀, 흐느적거리며 움직이는 뿌리……. 이 모습만은 부정할 수 없는 바둑이였다.

    다만 그 크기가 엄청나게 커졌다는 점만이 달랐다.

    「변신!」

    「지난밤, 압도적 크기 변화.」

    어느새 다가온 오색이가 뭐라 뭐라 말을 붙였다. 대충 하룻밤 사이에 바둑이가 굉장히 성장했다는 말인 것 같았다.

    세상에, 죽순도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자라진 않을 텐데. 희나는 잠시 자기가 꿈을 꾸고 있나 뺨을 꼬집어 봤다.

    ‘아프네.’

    꿈이 아니었다.

    대체로 요즘 꿈이길 바라는 순간들이 모두 꿈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드는 건…… 희나의 착각일까?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희나는 바둑이 발치에 놓인 깨진 화분 조각을 봤다.

    바둑이는 여전히 자기가 화분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건지, 화분 안에 뿌리 잔털을 잔뜩 욱여넣은 채였다.

    “나도 몰라. 밭에 물 주려고 일찍 깼는데, 이렇게 커 있더라고.”

    희원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대답했다.

    “바둑이 키우기 퀘스트에서 성장률이 갑자기 25%로 오르긴 했어. 그동안 무지하게 천천히 올랐는데.”

    “이렇게 커졌는데 25%밖에 안 자란 거라고? 완전히 커지면 대체 얼마나 커진다는 거야? 5m? 10m? 그러면 바둑이, 우리 집 안에선 못 기르겠는데?”

    희나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바둑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꽃봉오리에 어두운 그림자가 졌다.

    “애 기죽게 왜 그런 소리를 해?”

    자칭 ‘바둑이 아빠’인 희원이 동생을 나무랐다. 그러면서 어느새 자기보다 커진 바둑이를 우쭈쭈 했다.

    “바둑아, 지금 당장 내보낸다는 뜻 아니야. 밖에서 혼자 지내기는 무섭지? 우리 바둑이는 아직 25%밖에 안 자란 아간데 말이야.”

    ‘오빠가 미쳤나 봐.’

    희나는 속으로 잠깐 오빠를 욕했다.

    “아무튼, 오빠가 상황 설명 좀 해 줘. 나 자다가 방금 일어나서 머리가 띵해.”

    주방에서 차가운 물을 한 컵 떠 와 테이블에 앉았다. 그사이 희원은 바둑이를 요모조모 살폈다.

    “잎맥도 선명하고, 줄기도 튼튼해 보이고……. 반질반질 윤기도 나고, 뿌리도 잘생겼네. 아이고 예쁘다, 아이고 잘생겼다.”

    끝없는 칭찬에 바둑이의 어깨(?)가 한없이 으쓱거렸다.

    “팔불출 짓은 그만하고 이리 와서 좀 앉아 봐. 자초지종 좀 들어 보자.”

    던전 안의 살림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