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안의 살림꾼-67화 (67/228)

던전 안의 살림꾼 67화

“알다시피, 오늘 강 헌터 스캔들이 터졌어요. 언론 쪽에서 상대는 잡아내지 못한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그 사람은 이 팀장인 것 같고.”

희나는 길드장이 날린 공에 맞아 윽, 하고 심장을 부여잡는 상상을 했다. 직구를 던져 포인트를 제대로 짚었기 때문이다.

“일단 호들갑스런 기사는 내리라고 조치해 두었고, 길드 차원에서 따로 공식 입장을 표명하진 않을 생각이에요. 적당히 시간 지나면 묻힐 테니까. 이런 건 공식 입장 나오면 더 시끄러워지기 마련이거든. 솔직히 말해서, 남 연애 얘기가 제일 재밌잖아.”

김규희 길드장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이 아주 의미심장해서 입안이 말랐다. 희나는 마른침을 꼴딱 삼켰다.

‘그럼 나랑 진현 씨는 왜 부른 거지? 상황 완료됐는데?’

의문을 갖자마자 김규희 길드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일은 대충 처리한 것 같은데 왜 나를 불렀나, 하는 생각도 들 거예요. 내가 여러분을 부른 이유는 정확한 상황 파악을 위해서입니다. 그래도 내가 여기 길드장인데, 알 건 알아야 하지 않겠어? 그것도 우리 길드 얼굴마담의 스캔들이라면 더더욱 알아야겠지.”

희나는 민망함을 참지 못하고 먼저 나섰다.

“길드장님, 이건 다 착오입니다……!”

길드장이 진정하라는 듯 손바닥을 올려 보였다.

“이 팀장, 우리 청룡 길드는 사내 연애를 금지하지 않아요. 아주 자유로운 기업 문화를 가지고 있죠.”

정말 당혹스러운 오해였다. 희나는 극구 부인했다.

“아니, 정말로 우연일 뿐이에요. 강진현 헌터님께서 제 스킬을 마음에 들어 하셔서 좋은 말씀을 해 주셨을 뿐이에요. 그게 조금 와전된 것 같습니다.”

“이 팀장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김규희 길드장이 희나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눈빛이 날카로웠다.

길드장과 눈을 마주칠 때면 매번 속내를 완전히 읽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희나는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길드장님께서 의심하시는 일은 절대 일어날 일 없을 거예요!”

“나는 그런 일 일어나도 상관없는데…….”

길드장이 작게 중얼거리며 다리를 꼬아 앉았다. 희나는 손을 휘휘 저었다.

“정말이에요.”

물론 희나도 눈이 있는지라 강진현이 멋지고 잘생겼다는 생각을 하긴 한다.

하지만 그게 연애 감정과 이어지는 건 별개였다.

강진현은 연애 상대로 보기엔 너무나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이었다. 아예 종이 다른 어떤 생명체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희나에게 강진현은 보기 좋은 그림의 떡 같은 사람이었다는 의미다.

“……흠. 그렇군요.”

아쉽다는 듯 탄식을 내뱉은 김규희 길드장은 이번에는 강진현을 바라보았다.

“강 헌터는 어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번 스캔들에 대한 소회가 어떤지 궁금한데.”

“굳이 제가 입으로 직접 말씀드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자기가 직접 말해 줄 필요가 있느냐니?

김규희 길드장이 사람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다소 건방지게 들리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김규희 길드장은 강진현의 말버릇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럼. 직접 듣고 싶어서 불러다 놓고 묻는 것 아니겠어? 강 헌터는 이번에 스캔들 터지고 무슨 생각이 들었지?”

이에 강진현은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가 입을 열었다.

“잘못했다가는 희나 씨가 몹시 곤란해질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긴 알았구나.’

물론 강진현이야말로 이 모든 소동의 주범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생각해 주었다니 고맙긴 했다.

하지만 김규희 길드장에게는 부족한 대답이었나 보다. 그녀는 강진현을 다그쳤다.

“그 외에는 뭐, 더 없어?”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강 헌터 눈은 더 많은 걸 얘기하고 있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둘은 잠시 의미 모를 눈싸움을 했다.

강력한 헌터들의 신경전이라 그런지 희나의 피부가 저릿저릿해질 정도였다.

‘으. 기분 이상해.’

희나가 몸을 부르르 떨자 두 상급 헌터들은 대치를 멈추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탁, 하고 풀렸다.

“쯧쯔……. 힘이 그렇게 강하면 뭐 하나, 이렇게 둔해서야.”

김규희 길드장은 뭐가 그리 아까운지 혀를 찼다. 그녀는 중얼중얼 무어라 더 혼잣말을 하는가 싶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어쨌든, 둘 사이의 견해 차이는 잘 확인했어요. 흥미롭군요.”

뭐가 그리 흥미로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길드장의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으니 다행이었다.

“용건은 이제 다 끝났으니 둘 다 나가 봐도 좋아요. 바쁜데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하고.”

그녀는 희나를 급작스럽게 불러냈던 것처럼 급작스럽게 축객령을 내렸다.

꽤 대단한 일이 터진 만큼 적어도 30분 넘게 붙잡혀 있을 각오를 했는데, 30분은커녕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 그럼 일어나 보겠습니다.”

희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강진현 또한 깍듯이 인사하고는 척척 걸어가 희나와 발걸음을 맞추었다.

김규희 길드장이 떠나는 두 사람의 등 뒤로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잘 가요. 길드장실은 언제나 열려 있어요. 어떤 고민이라도 환영이니까 어렵게 생각하지들 말고.”

희나는 절대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길드장실을 떠났다.

“어휴.”

길드장실에서 한참 멀어지고 나서야 희나는 참았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 저 때문에 불편한 일을 겪으신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강진현이 흘긋흘긋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누가 본다면 깜짝 놀랄 만한 장면이었다.

천하의 S급 헌터 강진현이 누구 눈치를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짓다니!

역시 재워 주고 밥해 주는 사람의 위력이 대단하긴 했다. 희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제 이름이 나간 것도 아니고, 진현 씨만 곤란하게 되신 것뿐인걸요.”

“한숨을 쉬시기에 제게 화가 나신 줄 알았습니다…….”

강진현이 약한 소리를 했다. 한숨 한 번 더 쉬면 희나의 발치에 배를 까고 누워 낑낑거리기라도 할 것 같았다.

“화가 날 리가요. 사장님, 아니, 길드장님 만났던 게 긴장돼서 그랬어요.”

“그러십니까?”

“네. 사장님이잖아요. 당연히 쫄리죠.”

어쨌든 나쁜 상상을 잔뜩 하면서 올라갔는데, 아무 소리 안 듣고 와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긴장한 건 긴장한 거였다.

김규희 길드장은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녀 앞에서 무엇을 감추더라도 무용지물이 될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들었다.

때맞춰 강진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하긴. 길드장님의 능력을 생각하면 그러실 만도 합니다.”

“어? 길드장님의 능력이요?”

의아해서 묻자, 강진현이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일반 대중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능력입니다만, 길드장님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스킬이 있습니다.”

“예에?”

희나는 거의 용수철처럼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강진현은 그런 희나의 어깨를 잡아 토닥여 주었다.

“정확한 능력의 깊이는 알 수 없습니다만, 제 속내까지 읽어 낼 정도니 꽤 강력한 스킬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헉. 그럼 D급, 아니, C급인 제 마음을 읽는 것 정도는 식은 상추 먹기보다 쉽겠네요?”

흥분한 희나는 저도 모르게 오색이의 말버릇을 따라 했다.

강진현이 논리의 오류를 지적했다.

“상추는 언제나 식어 있습니다만…….”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럼 길드장님이 제 생각을 다 읽으셨다는 거네요? 아! 어떡해!”

길드장과의 대담을 하나하나 짚어 보자니, 찔리는 게 꽤 많았다.

특히 강진현을 깨운답시고 뺨 때린 일을 회상했던 게 가장 걸렸다.

‘어쩐지! 그 생각하자마자 뜬금없이 웃음을 터뜨린다 싶었어!’

길드장은 희나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똑똑히 읽고 있었던 것이다.

‘으아악! 진현 씨에게 미안하고, 부끄럽고…… 아악!’

생각을 읽혔다는 건 생각보다 상당히 수치스럽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머리를 쥐어뜯는 희나를 향해 강진현이 물었다.

“해서는 안 될 생각이라도 하셨습니까?”

“……몰라요.”

희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강진현에게는 절대 말해 줄 수 없었다.

‘내가 자기 멱살 잡고 뺨 때렸다는 소리를 어떻게 해?’

물론,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비상 상황에서 사람을 살리려고 깨운 건데!

“걱정 마십시오. 길드장님은 눈을 마주쳐야만 속을 읽어 낼 수 있으니, 모든 속마음을 읽힌 건 아닐 겁니다. 거기다 길드장님께선 희나 씨를 꽤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사람들의 비밀은 퍽 잘 지켜 주시는 편이죠.”

강진현은 희나가 무슨 일 때문에 찔린 건지도 모르면서 온 힘을 다해 위로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위로는 꽤 도움이 됐다.

“……어쨌든, 그래서 면담이 빨리 끝난 거네요. 속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까 복잡하게 뭘 캐낼 필요가 없었겠어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희 둘 사이의 견해 차이가 있다니, 그건 무얼 이야기하신 건지 모르겠네요. 짚이는 부분이 있으세요?”

이에 강진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얼버무리는 것처럼 보였다.

“글쎄요. 저도 딱히…… 짚이는 부분이 없습니다.”

“음. 그래도요. 진현 씨는 길드장님을 오래 보아왔잖아요.”

희나는 제법 매섭게 강진현을 추궁했다.

그는 이상하게 희나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시선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그, 원체 속 모를 말씀을 자주 하시는 분입니다. 단순하게 받아들이거나 대강 넘기는 편이…….”

“에이.”

아쉬운 듯 작게 투덜거리니 강진현이 급하게 말을 붙였다.

“희나 씨, 라면 한 그릇만 얻어먹고 갈 수 있겠습니까?”

대화를 나누면서 오다 보니 벌써 희나의 사무실 앞이었다.

“예?”

희나의 사무실 앞에 도착해서도 떠나지 않고 서성거리더니, 역시 꿍꿍이속이 있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말 돌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설마, 아니겠지.’

던전 안의 살림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