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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63화 (63/228)
  • 던전 안의 살림꾼 63화

    * * *

    “아구구, 삭신이야.”

    희나는 우득거리는 관절을 붙잡고 청룡 길드에 출근했다.

    전날 저녁에 있었던 날파리와의 혈투가 남긴 흔적이었다. 잔뜩 긴장한 채로 안 쓰던 근육까지 써서 온몸이 다 쑤셨다.

    쑤시는 어깨를 통통 두드리며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밥 두 솥을 먹고 잤는데, 얼굴은 안 부었네.’

    어제 능력치를 얼마나 소모했던지, 희나는 밥 두 솥을 퍼먹어야만 했다. 동생의 엄청난 먹성에 희원이 경악하는 눈초리를 신경 쓸 새도 없었다. 당장 밥을 먹지 않으면 졸도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자신의 한도 이상으로 능력치를 소모했을 때 나타나는 에너지 드레인 현상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포션을 마시지 않으면 상태 불능에 빠져 며칠간 자리보전을 해야만 했다.

    희나는 다행스럽게도 ‘밥심’ 스킬을 가져서 기적적으로 에너지 드레인 현상을 비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한번 기력이 쪽 빠졌던 건 어쩔 수가 없어서, 평소보다 힘이 없었다. 희나는 비척거리며 회의실 문을 열었다.

    “……이희나 팀장?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안색이 평소보다 좋지 않았던지 강목현 인사팀장이 희나에게 인사를 건네려다 안부를 물어 왔다.

    “아. 어제 집에 벌레가 나와서 잡느라 좀…….”

    희나의 대답에 강목현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아파트에서 벌레가 나왔다고요? 그럴 리가 없는데…….”

    사실 새 아파트가 아니라 ‘홈 스위트 홈’에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희나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글쎄요. 갑자기 뜬금없이 나타나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이런, 당장 전문 업체를 불러 드리겠습니다.”

    강목현의 제안에 희나는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에요. 벌레 잡고 사후 조치까지 다 끝냈어요. 한동안 다시 나타날 일은 없으니 안 그러셔도 될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강목현 인사팀장은 깔끔하게 수긍하고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선 이희나 팀장이 맡게 될 각성자 상태 관리팀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부터 하겠습니다.”

    그는 각성자 상태 관리팀의 팀장이자 유일무이한 팀원이 된 희나가 할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사실 말이야 거창하지, 희나가 해야 할 일은 크게 두 가지밖에 없었다.

    첫째, S급 헌터 강진현의 식사를 준비한다.

    둘째, S급 헌터 강진현의 수면을 돕는다.

    결국 밥해 주고 재워 주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살림꾼 클래스인 희나에게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임무였다.

    “그럼 저는 강진현 헌터님의 자택으로 출퇴근해야 하나요?”

    열심히 설명을 듣던 희나는 손을 들어 가장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그러자 강목현이 몸을 일으켜 희나에게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아닙니다. 그전에 우선 보여 드릴 게 있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아, 넵!”

    희나는 군말 없이 강목현의 뒤를 졸졸 따랐다.

    각성자 상태 관리팀장이라는 거창한 직책을 달게 되었지만, 희나의 정신 상태는 여전히 을인 부분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회사에선 윗사람이 까라면 ‘넵, 네에, 네! 넵넵!’ 하는 직장인 필수 응대를 하면서 군말 없이 까야 하는 법이다.

    희나는 강목현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잘 오가지 않는 곳인지 복도가 아주 고요했다.

    ‘개인 사무실이라도 주려는 걸까?’

    “여기입니다.”

    고민할 때쯤 강목현이 어느 문 앞에 멈추어 섰다. 문 옆에는 ‘각성자 상태 관리팀, 팀장 이희나’라는 명패가 달려 있었다.

    “앞으로 이희나 팀장이 사용할 공간입니다.”

    희나는 강목현이 열어 준 문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희나는 체면도 잊고 입을 딱 벌린 채 감탄했다. 방 안의 모든 것들이 완벽했다.

    “이희나 팀장이 휴가를 보내는 동안 내부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조금 급하게 처리한 감이 없잖아 있어, 부족한 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말씀해 주시면 차차 보완하도록 하겠습니다.”

    강목현이 진심인지 생색인지 모를 이야기를 하며 공간 내부를 손짓했다.

    희나의 개인 오피스는 방 한 칸으로 이루어져 있던 우민아의 사무실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쪽 면이 탁 트인 통창으로 이루어져 있어 뷰가 좋다는 것만 같았지, 그걸 제외하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사무실은 두 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희나가 서류 업무를 볼 수 있는 개인 사무 공간과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주방이었다.

    사무 공간은 평범했다.

    적당히 편안해 보이는 의자와 책상이 놓여 있었고, 손님을 맞을 수 있게 테이블과 작은 소파들도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하지만 작은 가벽 너머에 있는 주방은 달랐다.

    “너무 예쁘다!”

    성큼 걸음을 옮겨 주방으로 들어가자, 널따랗고 세련된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주방은 인테리어 잡지에 나오는 화보의 한 장면처럼 차분하고 예뻤다.

    싱크대는 원목으로 만들어 포근한 결이 보였다. 잘 정돈된 짙은 나무색 컬러 덕분에 전체적인 주방의 분위기가 정갈했다.

    반대로 천장은 부드러운 흰 톤으로 칠해서 너무 무거워 보이지 않기도 했다.

    싱크대 위에 달린 수전도, 싱크대 손잡이도,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세련되고 예뻤다.

    기역 자 모양으로 꺾인 아일랜드형 싱크대 위에는 귀여운 통에 담은 조미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 옆으로는 작은 원형 테이블과 의자도 마련해, 간단한 식사 정도는 할 수 있게 해 두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소품 덕분에 마치 작은 카페처럼 보이기도 했다.

    원래의 희나라면 곁에 있을 강목현 인사팀장의 눈치를 보았을 거다.

    하지만 살림꾼 된 본분으로, 완벽한 주방을 눈앞에 두고서 희나는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오……. 조리 도구랑 식기까지 전부 갖춰져 있네요?”

    희나는 단박에 주방으로 달려가 싱크대 문을 하나하나 열어 보았다.

    싱크대를 열 때마다 가지런하게 정리된 냄비, 프라이팬, 접시, 뒤집개, 칼 등등이 튀어나왔다. 척 보기에도 전부 비싸고 고급스러운 도구들이었다.

    “우와!”

    희나는 수납 서랍을 열어 볼 때마다 탄성을 내질렀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를 뜯는 것 같았다.

    무엇 하나 눈에 안 차는 게 없었다. 일개 조리 도구들의 자태가 이토록 황홀할 수 있는지, 희나는 처음 알았다.

    “이거, 전부 제가 쓰는 거예요?”

    희나는 수납장을 뒤지며 구경하다 고개를 빼꼼 내밀며 물었다.

    멀찍이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목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희나 팀장 개인 공간입니다. 이희나 팀장은 요리를 해야 하니, 조리 시설을 따로 준비했습니다.”

    “이런 것까지 준비해 주실 줄은…….”

    희나는 감격에 두 손을 부여잡고 눈을 반짝였다. 이 멋진 공간이 온전히 자기 차지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여기에서 일할 생각을 하니까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요! 매일이라도 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매일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만……. 주말에 출근하실 경우, 특근 수당은 당연히 보장됩니다.”

    강목현은 희나의 감동 가득한 환호를 상당히 무감동하게 받아쳤다.

    “아. 그리고 흔치 않지만 가끔 강진현 헌터의 집으로 직접 가셔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경우에는 출장 수당까지 확실히 챙겨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얼마든지 가고말고요!”

    희나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남의 집에 가서 일을 하라니…….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애당초 각오했던 일이다.

    거기다 불의의 사고로 어쩌다 보니 이미 강진현과 집을 한번 튼 희나로서는 어려울 게 없었다.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한 모습을 보고 나니 마음의 거리가 한결 가까워진 것도 있긴 했다.

    “그럼 저는 오늘부터 뭘 하면 되나요?”

    자연스럽게 할 일을 묻는 희나에게 강목현이 들고 있던 파일철을 건넸다.

    “우선 이것부터 받으십시오.”

    “이건 뭐지요?”

    펼쳐 보니 타임 테이블 같은 게 두툼하게 끼워져 있었다.

    “강진현 헌터의 한 달 스케줄입니다. 게이트 폭주 같은 비상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한, 대체로 이 일정대로 움직입니다.”

    슬쩍 오늘 날짜를 보니 언론 인터뷰 몇 건이 잡혀 있었다.

    이틀 전 강진현이 술에 취해 말한 대로였다.

    희나는 파일철을 쓱 훑어본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렇게 중요한 걸 제게 주셔도 되나요?”

    유명인의 일정, 그것도 S급 헌터의 일정을 이렇게 턱턱 넘겨줘도 되는 건가?

    “물론 이 정보는 대외비입니다. 다만 이희나 팀장 같은 경우는 강진현 헌터를 케어하는 역할을 맡았으니 미리 알아야 할 내용이라 넘겨드리는 것이고요.”

    강목현은 이 정보를 외부에 유출해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고 강조해서 말했다.

    “그럼 브리핑은 이 정도에서 마치겠습니다. 앞으로 이곳으로 출퇴근하시면 되고, 강진현 헌터의 스케줄에 맞추어 식사를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수면 문제는…… 여기.”

    강목현은 인벤토리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어 내려놓았다. 희나와 구면인 물건이었다.

    “이건 A급 침낭 아닌가요?”

    강진현의 A급 침낭이었다.

    “맞습니다. 이희나 팀장이 이 침낭에 휴식 버프 스킬을 걸어 주면, 강진현 헌터가 자택으로 가져가 침낭에서 수면을 취할 겁니다.”

    “아하.”

    직접 강진현의 집에 가서 자장자장 하며 재워 주기라도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그건 아니라니 다행이었다.

    지금 희나의 ‘안락한 침상’ 스킬 랭크는 C였다. 20% 버프가 12시간 동안 지속되는 정도의 효과를 가졌다.

    ‘퇴근 직전에 침낭에 스킬을 써 두면 되겠네.’

    오후 6시쯤 스킬을 시전해 두면, 강진현이 적어도 다음 날 새벽 오전 6시까지는 잘 수 있었다.

    머릿속으로 스킬 지속 시간을 계산하는 사이, 강목현이 설명을 마무리했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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