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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54화 (54/228)
  • 던전 안의 살림꾼 54화

    물론 지금은 ‘홈 스위트 홈’에 살고 있지만, 희나는 엄연히 새 아파트에 입주한 입주민이기도 했다.

    새로 이사를 왔으니 옆집 사람에게 떡 비슷한 마들렌이라도 돌리면 좋을 듯했다.

    희나는 당장 행동을 개시했다. 예쁘게 포장한 마들렌 봉지를 들고 옆집 벨을 눌렀다.

    딩동, 딩동. 벨을 누르고는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다시 한번 벨을 눌러 봤지만,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출근해서 집에 아무도 없나 봐.’

    희나는 어쩔 수 없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경비실로 내려갔다. 다행스럽게도 경비실에는 사람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1211호에 새로 입주한 사람인데요.”

    창문을 똑똑 두들기며 곰살맞게 인사를 건네자 경비원이 마주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십니까?”

    “오늘 과자를 좀 구웠어요. 입주 인사 겸 드리려고요.”

    포장한 마들렌을 건네자 경비원의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데 먹을 것만큼 좋은 선물이 없었다.

    “아니 이런 걸 다……. 고맙습니다, 아가씨. 잘 먹을게요.”

    “맛있게 드셔 주시면 저야말로 감사하죠.”

    희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몸을 돌리려다가, 열리지 않던 앞집 문이 생각나 물었다.

    “아, 그런데요. 1212호에 사시는 분이 언제쯤 퇴근하시는지 알고 계세요? 인사드리려고 가 봤는데, 안 계시더라고요.”

    “아. 1212호 말입니까?”

    물음에 경비원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이에 1212호가 진상 입주민 중 하나인 걸까? 하고 생각할 때였다.

    “나도 여기서 일하면서 1212호 입주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요?”

    의외의 대답에 희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기 입주한 지는 오래된 것 같은데, 거참 귀신 같은 사람이야. 주기적으로 살림해 주는 사람이 오가는 걸 봐서 실거주는 하는 것 같거든. 뭐, 공사 같은 것도 자잘하게 많이 하고.”

    주변과 완전히 교류가 없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어딜 가든 이웃들과 인사는 하고 다니는 희나로서는 꽤 신기하게 여겨지는 부류였다.

    “그럼 이건 못 드리려나……?”

    희나는 이웃 주민용으로 따로 포장해 온 마들렌을 내려다보았다.

    “아마 힘들 거예요. 일전에 무슨 동의서 얻으려고 동대표도 몇 번 찾아가 봤는데,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더라고, 원.”

    ‘이 김에 이웃이랑 얼굴 좀 트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1212호 선물용으로 만든 마들렌은 경비원에게 동료분과 나누어 드시라 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경비원은 몇 번이고 잘 먹겠다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지나가듯 말했다.

    “1211호는 계속 공실이었는데, 이렇게 좋은 아가씨가 들어와서 정말로 다행이에요.”

    목소리에 진심이 섞여 있었다. 희나는 빙긋 웃으며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 또다시 인사했다.

    진짜로 살 집은 아니었지만, 어쨌건 좋은 집터를 구한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경비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청룡 길드였다.

    휴가 기간에 회사를 가는 게 웬 말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희나는 이왕이면 베이킹한 당일 마들렌을 가져다주고 싶었다.

    뭐든 당일 만든 게 제일 맛있는 법이니까.

    마침 길드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쉬는 시간이었다.

    희나가 가장 먼저 들른 곳은 환경 미화팀 사무실이었다. 팀원들에게 뒤늦은 작별 인사와 함께 마들렌을 하나하나 나누어 주었다.

    “반년도 제대로 못 채우고 나가서 죄송해요. 일 많이 가르쳐 주셨는데, 또 신입 뽑아야 하죠?”

    개인적으로 미안함이 컸다. 제대로 일을 가르쳐서 쓸 만해졌는데, 다른 부서로 쏙 빠져 버린 꼴 아닌가?

    “아유. 아니야. 희나 씨 들어와서 그간 우리는 엄청 편했어. 그 침상 스킬 덕분에 헌터들도 훨씬 얌전해지고 말이야. 잠투정 없이 잘만 자더라.”

    “그래. 미안할 게 뭐 있어? 잘돼서 나가는 건데. 얼마나 잘났으면 사원에서 팀장으로 고속 승진을 했겠어? 희나 씨, 나 잊으면 안 된다! 황금 인맥이란 거, 나도 만들어 보자고.”

    누군가의 너스레에 팀원들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래요. 희나 씨,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희나 씨는 성실하고 꼼꼼해서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도 잘해 낼 수 있을 거예요.”

    김화순 팀장이 손을 꼭 붙잡아 도닥여 줬다.

    ‘좋은 사람들이야…….’

    환경 미화팀 팀원들의 덕담에 코끝이 찡했다.

    앞으로 이 사람들과 일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허전하기도 했다. 희나가 여태껏 만나 본 직장 동료들 중에서 제일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잘 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같이 일하는 것도 정말 즐거웠고요.”

    희나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계속 같은 건물에서 일할 건데 영영 헤어지는 것처럼 말하네?”

    그러자 팀원 중 하나가 감상에 휩싸인 희나를 놀리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러게요. 앞으로도 자주 뵐 수 있을 텐데……. 괜히 떠난다니까 아쉬워서.”

    희나는 코를 훌쩍이며 환경 미화팀에 자주 들를 것을 약속했다.

    “시간 나면 헌터 휴게실 내려와서 ‘안락한 침상’ 시전하고 갈게요.”

    “어이구, 말만으로도 고마우니까 무리할 필요 없어요.”

    희나는 환경 미화 팀원들과 마무리 인사를 한참 동안 나누었다.

    * * *

    희나가 떠난 후, 환경 미화 팀원들은 마들렌을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세상에, 손재주도 좋지. 빵을 어쩜 이렇게 맛있게 만들었을까?”

    “손끝도 야물딱진데다가 붙임성도 좋고. 내가 아들만 있었으면 딱 소개시켜줬을 텐데.”

    “맞아, 맞아. 희나 씨랑 결혼하는 사람은 복 받은 거지.”

    누군가의 한마디에 자리가 소란해졌다.

    “안 그래도 희나 씨한테 좋은 사람 소개해 주고 싶었는데, 같은 팀이라서 조심스러웠거든요. 이왕 다른 팀으로 간 거, 이 기회에 자리 좀 주선해 볼까요?”

    “희나 씨 이제 청룡 길드 팀장이야. 급 맞는 상대나 찾을 수 있겠수?”

    “그럼요. 괜찮은 사람 알아요. 얼굴도 잘나고, 능력도 괜찮은…….”

    팀원 중 하나가 휴대폰을 들어 호들갑을 떨던 순간이었다.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수고 많으십니다.”

    소리소문없이 강진현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신나게 대화를 나누던 팀원들을 한참 동안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사무실에 슬라임 용액을 엎어서 그런데, 청소 좀 부탁드립니다.”

    “그래요? 슬라임 용액은 오래 두면 큰일 나는데.”

    환경 미화 팀원들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덕분에 희나의 소개팅 이야기는 금세 잊힌 듯했다.

    “빨리 가서 치웁시다!”

    강진현은 왁자하게 멀어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그 시선에 묘한 감정이 서렸던 것도 잠시.

    휴대전화가 지잉 울리며 화면에 메시지가 반짝였다.

    [이희나 씨: 진현 씨! 간식을 좀 만들었어요. 지금 길드에 왔는데, 드시겠어요?]

    누구에게나 친절한 희나답게 상냥한 메시지였다. 어쩐지 그 글자에서 눈을 떼기 어려워, 강진현은 한참 동안 그 메시지를 내려다보았다.

    * * *

    길디긴 인사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나온 후, 우민아와 강진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뭘 좀 만들어서 회사에 가져왔는데 좀 드시겠냐는 내용이었다.

    Rrrr…….

    문자를 보내자마자 우민아에게서 득달같이 전화가 왔다. 황급히 받으니 신이 난 목소리가 들렸다.

    - 쉬는 날인데 뭘 또 그렇게 만들었대? 나 지금 오늘 치 일 다 끝났는데 내 사무실로 올래?

    혹시 일하고 있을까 봐 미리 문자로 연락한 것이었는데, 아무 일도 없다니 잘됐다.

    “언니 사무실 가르쳐 주시면 그쪽으로 갈게요.”

    우민아는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자기 사무실 위치를 알려 주었다. 전화를 끊고 화면을 보니, 강진현으로부터의 답장은 없었다.

    ‘바쁜가 봐.’

    희나는 강진현이 영 연락이 안 되면 지나가는 헌터에게 마들렌을 선물하기로 결심했다. 이대로 선물을 다시 집으로 들고 갈 수는 없는 법이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우민아의 사무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희나야!”

    희나는 노크도 하기 전에 열린 문에 깜짝 놀랐다. 우민아는 놀란 토끼 꼴이 된 희나의 팔을 끌고 들어와 의자에 앉혔다.

    “미안. 갑자기 문 열려서 놀랐어? 너 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거든.”

    우민아가 하하 웃으며 종이컵에 믹스 커피를 한 잔 타 줬다. 사무실에 퍼지는 달큼한 냄새에 희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발걸음 소리만 듣고 제가 온 걸 알아채신 거예요? 고랭크 헌터분들은 정말 대단하네요.”

    우민아는 손을 휘저었다.

    “에이. 전투 때가 아니고서야 평소에 정신 줄 놓고 있으면 나는 그런 거 잘 못 느껴. 네가 온다고 하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있었던 거지. 강진현 정도나 돼야 별 집중 없이 방 너머 기척을 느낄 수 있을걸.”

    “아……. 일상적으로 그런 게 느껴지면 되게 불편하겠네요.”

    주변 소음이나 기척에 남들보다 더 예민하면 얼마나 피곤할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뭐, 걔도 걔 나름의 대처 방법이 있겠지.”

    우민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그러면서 희나의 손에 든 종이봉투를 힐끔힐끔 보았다.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희나는 피식 웃으며 마들렌 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베이킹을 좀 많이 해서 주변 분들께 나눠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베이킹? 너 그런 것도 해? 대단한데!”

    우민아가 코를 킁킁거리며 마들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오늘 처음 해 봤어요. 그래도 생각보다 잘됐어요.”

    그 와중에 희나는 은근슬쩍 자기 솜씨를 자랑했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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