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안의 살림꾼 52화
희나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어어?”
이토록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식물이라니, 마치 컴퓨터 그래픽을 보는 것 같았다. 이 광경에 희나와 희원 모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싱기방기!!!!」
오색이도 뭔지 잘 모르겠는지, 신기하다며 한마디 얹었다.
“이, 이거 대체 뭐야?”
희나는 당황해서 앉은 채로 한 걸음 물러섰다. 동시에 희원이 허공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잠깐. 희나야, 이거 퀘스트 두 번째 항목이 열렸어.”
퀘스트 설명 창이 열린 모양이었다. 희나는 반쯤 겁에 질려 오빠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뭐라고 쓰여 있는데? 이거 왜 벌레같이 움직이는데?”
사실 오빠가 소중히 키운 식물만 아니었으면 ‘해충 박멸’ 스킬을 써서 당장 짓밟아 버렸을지도 몰랐다.
희원은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설명 창을 읽었다.
“음……. 축하합니다. 애완식물이 오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모름지기 무엇이든 이름을 붙여야 정이 드는 법. 방금 깨어난 애완식물에게 친근한 이름을 붙여 주세요……라고 쓰여 있네.”
“애완식물이 잠에서 깨어났다고? 이름은 또 왜 필요한데?”
희나는 미간을 모았다.
애완동물도 아니고 ‘애완식물’이라고 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애당초 시스템은 희나 남매에게 뭐 하나 멀쩡하고 정상적인 걸 준 적이 없었다.
“음……. 이름은 뭘로 하지? 당장 지어 줘야 하는데.”
한편, 희원은 퀘스트에 몰입한 듯 애완식물의 이름을 생각하느라 바빴다. 한동안 고민하던 그는 괜찮은 이름을 생각해 냈는지 아! 하고 소리쳤다. 그리고 시스템 창에 대고 말했다.
“바둑이! 바둑이로 하자. 애완견이든, 애완식물이든, 역시 이름은 바둑이가 최고지.”
그는 자신의 작명 센스가 퍽 자랑스러운지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희나는 말문이 턱 막혀 가만히 그 광경을 보고만 있었다.
물론 그게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 애완식물 때문인지, 그런 애완식물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바둑이’라는 구린 이름을 지어 준 오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샤아아, 팟!
희원이 바둑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자마자, 정신없이 파닥거리던 애완식물, 아니 ‘바둑이’에게서 옅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팅커벨이 요정 가루를 흩뿌리는 것처럼 이리저리 춤을 추는 바둑이의 풀잎에서도 반짝거리는 빛 가루가 떨어져 나왔다.
빛 가루는 던전 토양에 뿌려졌고, 축축한 흙에 눈처럼 녹아 사라졌다. 제법 아름답고도 기괴한 장면이었다.
“오!”
거기서 또 무슨 이벤트가 있었는지, 희원이 감탄했다. 궁금해진 희나는 오빠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아야!”
희원이 무자비하게 찔린 옆구리를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어련히 시간 지나면 설명해 줄 텐데, 그걸 못 기다리고.”
“그래서 오빠 앞에 뭐라고 뜬 건데? 뭘 보고 그렇게 놀란 거야?”
그러자 희원이 손을 뻗어 귀신 들린 풀…… 아니, 바둑이를 심어 둔 땅을 맨손으로 토닥거렸다. 정확히 말하면 빛 가루가 떨어진 반경이었다.
“저 반짝이는 게 땅으로 떨어져서 미약하나마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었대. 토질이 특별해졌다는데?”
그 설명에 희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요정 가루가 아니라 황금색 똥 가루였나?’
동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희원은 손끝으로 흙을 살살 만져 댔다.
“느낌만 그런 건가? 어쩐지 흙 질감이 좀 더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사락, 사락.
바둑이가 그런 희원의 손가락에 살살 감겨 왔다. 마치 애교라도 부리는 것 같았다.
잠시 말을 잃고 그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희나의 스킬 창도 덩달아 반짝였다.
이것도 풀은 풀이라고, 나물 뜯기 스킬이 시전되었다. 늘 그래 왔듯 이 풀을 먹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 여부가 뜨는 듯했다.
하지만 1초도 안 돼서 식용 여부와 등급이 뜨는 평소와는 달랐다. 이번에는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한 30초 정도 지났을까, 희나의 눈앞에 나물 뜯기 스킬 결과가 떴다.
<먹어서는 안 되는 바둑이(?? ? ???)>
단순한 ‘풀’이 아니라 ‘바둑이’라는 고유 명사가, 등급 대신 물음표가 잔뜩 올라와 있었다.
“특이하네…….”
한 번도 본 적 없는 결과였다.
먹을 수 ‘없는’ 게 아니라 먹어서는 ‘안 되는’ 식물이라니! 애당초 태생부터가 그러했지만, 아무래도 바둑이는 보통 존재는 아닌 것 같았다.
‘생긴 걸 봐서는 몬스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바둑이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희원이 호들갑을 떨며 희나를 퍽퍽 쳤다.
“이야! 희나야! 이것 좀 봐!”
“히익.”
희나는 경악해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허미.」
오색이도 허공에 탄성을 입력했다. 말할 수 있는 달팽이에게도 좀 충격적인 광경이었나 보다.
“뭐야, 이거 진짜 살아서 움직이잖아?”
아무래도 꿈틀꿈틀 움직이는 식물까지는 미모사나 파리지옥 등으로 본 적 있어도, 뿌리를 움직여 성큼성큼 걷는 식물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을 테니까.
그랬다. 바둑이는 축축한 흙바닥에서 뿌리를 빼내어 땅 위를 성큼성큼 걷고 있었다.
정말 비현실적이었다. 희나는 할 말을 잃은 채 눈알만 굴려 바둑이를 관찰했다.
“아이고, 귀여워라.”
‘농사꾼’에게는 이 장면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지, 그저 희원만 손뼉을 짝짝 치며 바둑이의 첫걸음마를 응원했다.
바둑이는 응원에 힘입어 희원의 밭 위를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심지어 식물 주제에 동물인 오색이보다 빨랐다.
바둑이는 한참 동안 뛰다가 이내 희원과 희나, 오색이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한 뼘 정도 되는 자그마한 식물이 부산스레 움직이는 걸 계속 보고 있자니 정신 사나웠다.
“오빠, 얘 좀 진정시켜 봐.”
희나는 희원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아빠 미소를 짓고 있던 희원이 어이쿠, 하면서 매서운 손가락을 피했다.
“걷는 게 얼마나 신기하면 저렇게 뛰어다니겠어? 좀 놔둬. 어리잖아.”
희원은 그사이에 이 걸어 다니는 식물에게 푹 빠졌는지 바둑이의 편을 들었다.
「경박, 경박, 경박.」
오색이도 바둑이의 경박함을 지적했지만, 희원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씩씩하고 좋기만 하구먼.”
오히려 귀여운 강아지를 구경하는 주인처럼 흐뭇하게 바둑이의 재롱을 감상했다.
갓 태어나 어리고 씩씩한 바둑이가 지쳐 나가떨어지는 데는 다행히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둑이는 희나 일행의 주변을 마흔 바퀴쯤 돌더니 제풀에 비틀거리다 푹신한 땅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닥에 뿌리를 펼치고 앉은 바둑이는 땀을 닦는 듯, 잎사귀를 나풀거리며 꽃봉오리를 훔쳤다. 이상한 데서 사람 같은 면모가 있었다.
그러자마자 희원이 오,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어? 퀘스트 떴다.”
눈앞에 무언가 해야 할 일이 뜬 모양이었다.
“뭔데, 뭔데?”
희나의 재촉에 희원이 퀘스트 내용을 정리하여 읊어 주었다.
“녹초가 된 어린 바둑이를 돌보래. 영양 섭취가 필요하대.”
육성 게임도 아니고, 정말 가지가지 시키는 게 많았다. 희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영양 섭취면……. 비료라도 사서 뿌려야 하나? 이 시간에 문 연 화원이 있을까?”
“그건 아니야. 성장기엔 칼슘 섭취가 중요하니 달걀 껍데기나 뼈 같은 것 좀 먹이라는데.”
“갑자기 칼슘? 식물도 튼튼해질 뼈가 있나?”
“그건 그러네.”
이상한 논리였다. 하지만 시스템이 시켰던 일 중 납득 가는 일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었던가?
평범한 비전투계 각성자인 희나와 희원 남매는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날도 어두워졌는데 일단 집 안에 데려가자.”
희원은 작은 화분 하나를 들고 와 던전 흙을 퍼 담았다. 그리고 바둑이를 들어 화분 안으로 집어넣었다. 바둑이는 고분고분하게 희원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심지어 욕조에서 목욕이라도 하는 것처럼 화분 턱에 줄기를 기대고 눕는 방만한 자세를 보여 주기까지 했다.
‘대체 정체가 뭐지?’
희나는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둑이를 흘겨보았다. 어쨌건 시스템이 오빠더러 키우라고 한 식물이니 이상한 건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다.
화분째로 바둑이를 집 안으로 데려가자, 바둑이의 봉오리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치 주변을 구경하는 것 같았다.
대체 꽃봉오리 어디에 눈이 붙어 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먹이는 밭 개간하면서 나왔던 뼛조각으로 하면 되겠네.”
희원은 밭으로 나가 정체불명의 뼈 무덤을 뒤졌다. 그리고 개중 작은 것들만 골라 손에 한 움큼 쥐고 돌아왔다.
희나는 그 이상 바둑이에게 관심이 없었기에 부엌으로 향했다.
분주하게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희원이 요청했다.
“희나야. 미안한데 계란 껍데기 좀 가져다줄 수 있겠어? 뼈가 부족하네.”
얼마 전에 장을 봐 와서 마침 냉장고 안에 계란은 많았다. 희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저녁은 계란 요리를 해야겠네.’
희나는 그릇에 계란 네 알을 톡톡 까서 풀었다. 소금으로만 간을 한 샛노랗고 도톰한 달걀말이를 할 생각이었다.
“오빠, 여기, 계란 껍데기. 이거 주면 될 거야.”
깨끗하게 갈라진 달걀 껍데기를 볼에 담아 희원에게 건넸다.
그러자 희원이 껍데기를 적당한 크기로 부수어 들었다. 아까 가져온 뼈는 어디 있는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뼛조각들의 행방을 생각하자 희원이 달걀 껍데기를 바둑이에게 어떻게 먹였는지가 궁금해졌다.
희나는 오빠의 곁에 찰싹 붙어 화분을 관찰했다. 오색이도 궁금한지 희나의 머리 위로 타고 올라와 안테나를 쭉 길게 뺐다.
‘화분에 비료처럼 깔아 주려나?’
하지만 역시나, 바둑이는 모두의 예상을 비껴가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던전 안의 살림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