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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44화 (44/228)
  • 던전 안의 살림꾼 44화

    적어도 강진현의 인벤토리에 있는 무기만 사용할 수 있었더라도!

    ‘내 인벤토리는 텅 비어 있단 말이야!’

    A급짜리 곰팡이 박멸액을 제외하면, 희나의 인벤토리 창은 완전히 비어 있었다!

    ……그 순간, 희나의 머리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곰팡이 박멸액!’

    그랬다. 희나에게는 곰팡이 박멸액이 있었다. 희나는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지식을 떠올렸다.

    ‘버섯도 곰팡이 종류랬어.’

    그렇다면 저 버섯 포자무리에도 곰팡이 박멸액이 통할지도 몰랐다.

    거기다 여기는 B급 던전이었다. 곰팡이 박멸액 쪽이 A급으로 등급이 더 높았으니 어느 쪽으로건 효과가 있기를 바랄 수밖에.

    “모르겠다! 이판사판이야!”

    희나는 인벤토리 창에서 A급 곰팡이 박멸액을 꺼냈다.

    그와 동시에 머리 위로 새카만 그림자가 졌다. 포자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손바닥이었다.

    “제발, 행운 스탯아 열일해라!”

    희나는 이제 65로 오른 행운 스탯이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허공을 향해 곰팡이 박멸액을 분사했다.

    치이이익!

    독한 냄새와 함께 곰팡이 박멸액이 빼곡히 모인 포자 사이사이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됐다! 됐어!”

    희나는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스프레이에 닿은 부분이 그대로 눈처럼 녹아내려 사라진 것이다.

    칙, 치익! 치이이익!

    용기와 확신을 얻은 희나는 곰팡이 박멸액을 사방으로 분사하기 시작했다. 냄새가 좀 독했지만 적어도 죽지는 않으니 괜찮았다.

    “살았다, 살았어!”

    까맣게 모여 있던 포자는 어느새 거의 다 녹아 사라졌다. 버섯들은 포자를 계속 내뿜었지만, A급 곰팡이 박멸액의 엄청난 효과 앞에선 인해 전술도 맥을 못 췄다.

    희나는 칙칙 스프레이를 뿌려 대며 거대한 대왕 버섯 앞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강진현을 질질 끌어 챙겨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참고로 그를 돌돌 감싸고 있는 침낭은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도 찢어진 데 하나 없이 멀쩡했다. 과연 A급 침낭다웠다.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면 게이트가 열린다고 했지…….’

    희나는 아름드리나무 같은 거대한 버섯에 곰팡이 박멸액을 가차 없이 뿌리기 시작했다.

    버섯이 너무 컸기에 달걀로 돌 깨트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희나는 이놈을 철저히 죽여 없애 버리고 싶었다.

    “죽어라, 이놈아!”

    얼마나 스프레이를 뿌려 댔을까?

    마침내 대왕 버섯이 뭉그러지기 시작했다.

    푸슈슈슈슈슈…….

    대왕 버섯은 바람 빠지는 풍선 소리를 내면서 밑동부터 녹아내렸다.

    그러자 주변에 있는 작은 버섯들 또한 그대로 주저앉아 시들기 시작했다. 버섯들의 뿌리가 연결되어 있어 한 몸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시스템 알림이 뜬 건 그때였다.

    던전 보스인 대왕 버섯의 숨통이 완전히 끊어졌다는 알림이었다.

    그와 함께 던전 어딘가에서 바깥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고, 희나는 시스템의 축하를 받았다.

    ‘자신의 능력으로 절대 해치울 수 없는 등급의 몬스터를 운 좋게 해치워…….’

    칭찬인지 욕인지는 조금 헷갈렸지만, 어쨌든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살았다!”

    희나는 그대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닥은 축축했다. 하지만 진이 빠질 대로 빠진 희나에게 그런 사실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바닥에 앉자, 이 난리 통에도 쿨쿨 잠들어 있는 강진현의 평온한 얼굴이 보였다. 희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대체 ‘안락한 침상’ 효과가 얼마나 먹힌 거야?’

    어찌나 잘 자고 있는지, 화도 안 났다. 어쨌든 강진현을 이렇게 재운 건 자기였으니까.

    “아……. 못 일어나겠어.”

    희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시스템 알림 창을 다시 확인했다.

    잘 살펴보니, ‘에픽 보상’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무슨 뜻인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좋은 보상이라는 뜻 같았다.

    몸이 덜덜 떨리긴 했지만, 에픽 보상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희나는 비틀비틀 일어나 대왕 버섯 근처를 뒤졌다. 몬스터가 죽으면서 남긴 마석과 아이템을 찾는 거였다.

    “여기 있다!”

    희나는 뭉그러진 버섯 속에서 반짝이는 마석을 찾아냈다.

    ‘되게 크네.’

    마석은 아기 주먹만 한 크기로, 적당히 값어치 있어 보였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일전에 강진현이 주었던 마석보다 훨씬 질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건 내가 잡았으니까 내 거야.’

    희나는 마석을 인벤토리 창에 쏙 집어넣었다.

    어찌 되었건 난생처음으로 가져 보는 ‘내가 잡은 몬스터에서 나온 마석’이었다. 희나의 목숨값이 서려 있었다. 물론 앞으로 절대 이런 마석을 가지고 싶지는 않았다.

    마석 옆에는 빨간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상자는 더러운 버섯 안에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깨끗했으므로, 희나는 이게 시스템이 지급한 ‘에픽 보상’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헌터들이 몬스터를 잡았을 때 가끔 마석 외에 특별한 보상 아이템이 떨어지곤 했다.

    ‘그중 ‘에픽 보상’이라니.’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붉은 상자를 연 희나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물건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희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몇 초 동안 상자 안을 빤히 바라보았다.

    심지어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려서 잠깐 고개를 흔들기도 했다. 상자 안에 있는 게 진짜가 맞는지, 손가락을 대어 보기도 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희나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그리고 손에 든 상자를 내팽개쳤다.

    희나답지 않은 감정적인 모양새였다.

    “이게 대체 뭐야!”

    내동댕이친 붉은 상자 안에서 ‘에픽 보상’ 아이템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그건 바로 둘둘 감긴 신문지 한 뭉치였다.

    희나는 방금 상자 속 신문지에 손을 가져다 댔을 때 눈앞에 뜬 아이템 설명 창을 떠올렸다.

    <쓸모 있는 신문지(SSS): 다방면에 두루두루 사용할 수 있는 몹시 쓸모 있는 신문지. 쉽게 찢어지지 않고, 구겨짐이 쉽게 회복된다. 사용자의 쓰임에 따라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부가 기능: 사용자의 상황에 따라 등급 감추기가 가능한 아이템입니다.>

    ‘이딴 게 트리플 S등급이라고?’

    희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각성자계 물정에 어두운 희나라곤 하지만, 유명한 상식 정도는 알았다.

    SSS등급의 아이템은 전 세계에 단 다섯 개밖에 없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론 그랬다.

    그리고 지금 그 여섯 번째 SSS등급의 아이템이 희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신문지의 형태를 하고!

    “등급 빼고는 좋은 게 하나도 없잖아!”

    희나는 허리를 굽혀 신문 뭉치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시스템이 축하 알림 창을 띄웠다.

    축하하는 건지, 약 올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시스템 알림 창은 이상하게 얄미운 데가 있었다.

    “이걸 대체 어디다 쓰란 말이야?”

    희나는 격분을 참지 못하고 신문 뭉치를 잡고 탈탈 흔들었다.

    ‘이놈의 운발!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시스템의 멱살이라고 생각하니까 힘이 절로 났다.

    “어쨌든, SSS급이라니까…….”

    어디 가서 말하기도 민망한 아이템이지만, SSS급이긴 했다. 거기다 나중에 돈 없을 때 폐지로라도 팔아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아주 조금이나마 누그러졌다.

    마석과 에픽 보상을 주워서 터덜터덜 강진현에게로 가는데, 발치에 뭔가 딱딱한 게 걸렸다.

    “엄마야!”

    버섯 포자와의 추격전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 있는 상태라 희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엎어져 버렸다. 손바닥이 까졌고 무릎이 아팠다.

    몬스터와 대적하며 힘을 많이 소모해서 ‘밥심’ 스킬이 발휘된 덕분에 배도 꼬르륵, 하고 고파 왔다. 희나는 어쩐지 이 상태가 좀 서럽게 느껴졌다.

    “에이 씨. 오늘 무슨 살이라도 꼈나?”

    희나는 일부러 큰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손을 탁탁 털었다.

    넘어졌던 자리를 슬쩍 보니, 무언가가 반쯤 파묻힌 채 있었다. 색깔이나 형태를 보자니 돌부리는 아닌 것 같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65짜리 행운 스탯이 저걸 한번 확인해 보라며 귓가에 속삭였다.

    “이건 또 뭐지?”

    눈을 가늘게 뜨고 그것을 손가락으로 더듬자, 놀랍게도 상태 창이 떴다. 아이템이었다.

    <정체불명의 씨앗(?):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의 씨앗.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 특별한 관심과 손길이 닿는다면 정체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지 않을까?>

    “씨앗이라고?”

    손으로 땅을 파서 꺼내 보니, 볼록한 정사면체 모양의 진갈색 씨앗이 나왔다. 사실 씨앗이라기엔 조금 크긴 했다. 잘 익은 귤만 했다.

    ‘어쩌지? 정체불명이라는데 버릴까?’

    희나는 잠깐 손안에 든 걸 버리려다가, 멈칫했다. 오빠가 떠올랐다.

    ‘오빠가 싹을 틔울 수도 있지 않을까? 농사꾼 클래스잖아.’

    희원은 요즈음 소소하게 텃밭을 가꾸면서 뿌듯해했다. 이 씨앗을 싹틔워 기르는 것도 꽤 재미있어할 듯했다.

    거기다 갑자기 정신이 들어서 또 돈 벌겠다며 밖에 나돌아 다니게 할 바엔, 정체 모를 씨앗을 키우는 재미를 붙여 주는 편이 훨씬 나았다.

    “최악이래도 못 먹는 풀밖에 더 나오겠어?”

    희나는 씨앗을 인벤토리 안에 넣었다.

    ‘던전에서 주워 왔다’라며 오빠에게 생색낼 거리 하나쯤 챙겨 두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공간의 조각을 사용하고 생겨난 씨앗은 아직도 싹을 못 틔웠나?’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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