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안의 살림꾼 43화
“어떠세요? 좀 피로가 풀리는 것 같긴 한가요?”
그는 도롱이 같은 모습이 되어 눈을 깜빡였다. 스킬 상태 창을 읽는 것 같았다.
“회복 버프가 일시적으로 100%까지 증가했군요. 대단한 스킬입니다.”
“별말씀을요…….”
S급 헌터에게 스킬 칭찬을 받으니 황송해서 몸이 다 꼬였다.
처음 스쳐 지나가듯 만났을 때는 딱딱하고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면 알수록 사람이 친절하고 상냥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은 상태인데도 말이야. 내가 만일 그런 상태였으면 매사에 엄청 날카롭고 짜증스럽게 굴었을 텐데.’
S급 헌터는 인품도 보통 사람들과 다른 게 틀림없었다.
“어떠세요, 조금 피로가 풀린 것 같으세요? 고작 C급 스킬이 강진현 씨한테 먹힐 리는 없겠지만, 어쨌든 기분이라도 편안하셨으면 해서요.”
희나는 침낭 옆에 쪼그려 앉아 말을 걸었다.
강진현은 느릿느릿 대답했다.
“좋……습니다. 희나 씨도 여기 함께 누우면 좋…….”
“예? 뭘 같이 누워요?”
순간적으로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지만, 강진현은 그를 마지막으로 침묵을 지켰다.
“……저기요?”
“…….”
평소 과묵하긴 하지만, 희나가 하는 모든 질문에는 꼬박꼬박 대답하던 그였다. 좀 이상했다.
“강진현 씨?”
그의 이름을 부르며 얼굴을 확인하려는데, 눈앞에 시스템 창이 팟 튀어 올라 반짝였다.
*자신의 능력치보다 500배 이상 높은 능력치를 가진 상대를 기절시켰을 때 얻을 수 있는 업적입니다.
*참고: 업적은 최초 1회에 한해 카운트됩니다.>
온갖 글자들이 희나의 눈앞에 정신없이 떠올랐다. 덕분에 희나는 몇 초가 지나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강진현 헌터를 재웠어?’
어느새 강진현의 눈꺼풀이 얌전히 감겨 있었다.
‘장단 맞춰 준다고 가짜로 자는 척하는 것 아냐?’
희나는 그의 눈앞에 손을 휘휘 저어 보았다. 그러나 그는 눈뜰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진짜로?”
희나는 깜짝 놀라 큰 소리를 내어 말해 버렸다.
‘헉. 겨우 잠들었는데, 깨 버릴라.’
하지만 강진현은 그 목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깊이 잠든 듯했다. 눈꺼풀 하나 까딱하지 않고 새근새근 꿀잠에 빠져 있었다.
한참 동안 침낭 옆에서 강진현을 시험해 본 결과, 희나는 그가 진짜로 잠들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내가 S급 헌터를 재우다니.”
희나는 대단한 일을 해낸 자기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물론 이전에도 S급 각성자인 최상훈을 단숨에 재워 버린 전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의 클래스는 비전투계인 감정사였다.
그는 헌터로 치면 B급 언저리의 능력치를 가졌다. S급 헌터의 능력치에 견줄 바가 안 됐다.
‘엄청 피곤했나 봐. 미동도 없어.’
희나는 자리에 앉아서 잠든 강진현을 힐끔힐끔 구경했다. 잠든 지 대충 1시간쯤 지난 것 같은데, 그는 시체처럼 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해 지면 무서울 테니까 해 질 때쯤 깨우자.’
몇 년 만에 단잠에 빠진 사람을 당장 깨우기는 좀 미안했다. 어차피 이곳은 위험한 몬스터도 없으니, 강진현이 꼭 깨어 있을 필요는 없었다.
다만 해가 지면 혼자 있기 으스스해질 것 같았으므로 그때까지만 재우기로 했다.
희나는 잠든 강진현의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다행스럽게도 강진현의 이목구비는 잘생겨서 봐도 봐도 쉽게 질리지 않았다.
“헌터 안 됐으면 연예인 했을 것 같아.”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슬슬 해가 지고 있었다. 강진현을 깨워야 할 시간이었다.
“강진현 씨.”
희나는 조심스럽게 침낭 위를 두들기며 강진현의 이름을 불렀다.
“…….”
하지만 그는 미동도 없었다. 희나는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강진현 씨, 이제 일어나셔야 해요. 오래 주무셨어요.”
“…….”
여전히 그는 곯아 떨어진 채였다.
그 이후, 희나는 강진현을 깨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심지어 그를 바닥에도 굴려 보았고, 볼을 꼬집어도 보았다.
그렇지만 침낭 속 남자는 깨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거의 가사 상태에 빠진 거 아냐?”
희나는 혀를 찼다. 기척에 예민하다던 S급 헌터는 어디 가고, 잠자는 숲속의 헌터만 남아 침낭 속에 누워 있었다.
점점 사위가 캄캄해졌다.
‘으, 무서워.’
희나는 잠든 강진현을 데굴데굴 굴려 자기 옆으로 옮겨 놓았다.
혼자 있기 좀 무서웠기 때문이다. 귀신을 믿진 않았지만, 이곳은 던전이었다. 무언가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많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야.’
희나는 휴대전화 화면을 켜서 어둠을 쫓아냈다.
물론 던전 안이라 잡히는 신호는 없었다. 무료 와이파이가 펑펑 터지는 희나의 집이 이상한 거였다.
“집에라도 다녀오고 싶은데, 너무 머네.”
희나는 작게 한숨 쉬었다. 스킬을 사용해 지도를 보니, 희나네 집 현관문은 보스 몬스터가 있는 장소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던전 바깥에서처럼 현관문을 마음껏 만들 수 있다면 좋으련만. 던전 내부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아마도 던전 안에 택지가 있어서 그런 거겠지?’
정확한 원리는 모르겠지만, 희나는 이게 던전 안에 집이 있는 것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사이 희나는 강진현을 백 번도 넘게 흔들었고, 그는 여전히 깨지 않았다.
‘죽은 거 아냐?’
불안해서 코 밑에 손가락을 대 보니, 다행히 숨은 붙어 있었다. 죽은 듯 잠들어 깨어나지 않을 뿐이었다.
“아, 어떻게 하지?”
어느새 시커멓던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고 있었다. 희나는 어쩔 줄 몰라서 잠든 강진현을 필사적으로 깨웠다.
심지어 멱살 부분을 잡고 뺨을 찰싹찰싹 때려 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S급의 육체는 튼튼하기 그지없어서, 때린 흔적도 남지 않았다. 애먼 희나 손만 새빨갛게 달아올랐을 뿐이다.
“강진현 씨! 제발 일어나 봐요! 좀!”
희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침낭을 탈탈 흔들었다. 해가 뜨고 있었고, 이제 몬스터들이 활동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오므라진 봉오리들이 꽃잎 펼쳐지듯 펴졌다. 버섯갓이었다.
커다란 버섯 기둥이 꿈틀거릴 때마다 바닥이 조금씩 흔들렸다. 대왕 버섯, 아니, 보스 몬스터 밑에 자리를 잡은 희나는 죽을 맛이었다.
‘으아아, 어떻게 해!’
바닥은 지진 난 것처럼 흔들리지, 강진현은 깨지 않지, 서서히 부푸는 버섯갓은 징그럽지, 심지어 희나는 몬스터와 맞서 싸울 무기조차 없었다.
모든 게 다 끔찍했다.
푸슈우우우.
버섯이 포자를 뿜어낸 건 그 순간이었다.
그 양이 어찌나 많던지, 푸르스름한 하늘이 순간 새까매질 정도였다. 포자들은 마치 벌 떼처럼 한데 모여 거무스름한 형태를 만들었다.
‘손 모양?’
형태는 명확하지 않았으나, 포자들은 까맣게 모여 거대한 손 모양을 만들었다.
희나는 강진현이 들어 있는 침낭을 꼭 안고 그 장면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하지만 던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희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괜히 재웠어! 내가 미쳤지, 미쳤어!’
희나는 괜한 오지랖을 부린 과거의 자신을 욕했다. 그리고 깨어나지 않는 강진현도 욕했다.
기척에 예민해서 쉽게 잠들지 못한다더니, 순 거짓말쟁이였다.
‘뺨을 맞아도 안 깨어나는 잠꾸러기면서!’
고오오오오.
순간, 불안한 진동이 공기를 울렸다. 희나는 잔뜩 긴장한 채 포자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을 지켜보았다.
슈우우우우!
커다란 손은 잠시 허공에 붕 뜨는 듯하더니, 그대로 바닥을 내리쳤다. 희나와 강진현이 있는 방향을 향해서였다.
쾅! 하는 육중한 소리가 울렸다. 거대한 손은 땅에 손바닥 자국을 그대로 남기고 물러났다. 손바닥이 닿았던 곳이 움푹 파여 있었다.
‘주, 죽을 뻔했네!’
한편, 희나는 후들후들 떨며 침낭 속 강진현과 함께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거대한 손이 내려오는 걸 보고 정신없이 피했는데, 간발의 차이로 살아났다. 10센티미터만 덜 움직였으면 죽었을지도 몰랐다.
부우우우웅!
거대한 손바닥은 쉬지 않았다. 마치 벌레를 잡는 것처럼 희나와 강진현이 있는 곳을 향해 쉼 없이 손을 휘둘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손의 움직임이 아주 빠른 건 아니라는 것 정도였다. 희나는 강진현이 든 침낭을 질질 끌고 다니며 바닥을 내리치는 손바닥을 이리저리 피했다.
“헉, 흐억, 허억, 헉…….”
희나는 밭은 숨을 내쉬었다. 이리저리 몸을 굴렀더니 온몸이 다 까지고 아팠다.
입안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숨이 찼다. 하지만 살아남아야 하니 움직임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극한의 상황에 부닥치자 눈물조차 안 났다.
‘한 시간을 어떻게 버티지?’
강진현이 한 시간만 버티면 된다고 했으니 한 시간 후면 이 거대한 손도, 징그러운 버섯갓들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희나에게 한 시간은 까마득하게 긴 시간이었다.
지금만 봐도 그랬다. 채 5분도 안 지났는데 벌써 체력에 한계가 오고 있었다.
희나의 스탯과 체력으로는 성인 남자 하나를 둘러메고 한 시간 동안 쉴 틈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건 불가능했다.
“아악!”
설상가상으로 힘이 풀린 다리가 꼬여 넘어지기까지 했다.
“으엉, 어떻게 해!”
희나는 잠든 강진현을 끌어안고 주저앉았다.
더는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희나와 강진현은 바짝 눌러 터진 시체 꼴이 될 게 분명했다.
마침내 엉, 하고 눈물이 터졌다. 이렇게 죽다니, 너무 억울했다.
‘무기라도 있었으면, 이렇게 허망하게 죽지는 않을 텐데!’
던전 안의 살림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