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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39화 (39/228)
  • 던전 안의 살림꾼 39화

    ‘휴. 시간을 많이 벌어서 다행이야.’

    희나는 안도하며 마석을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었다.

    “큰 걸 받았으니까, 8개월 치 정도 미리 선금 주셨다고 생각할게요.”

    희나는 앞으로 237일 동안 강진현에게 열심히 도시락을 싸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닙니다. 마석은 많으니, 계속 드릴 수 있습니다.”

    강진현은 희나에게 뭘 더 못 줘서 안달 난 사람처럼 굴었다. 하지만 이 이상 마음의 짐을 지고 싶지 않았던 희나는 딱 잘라 거절했다.

    “절대로 안 돼요. 더 주시면 도시락 안 싸 드릴 거예요.”

    협박은 쉽게 먹혔다. 천하의 S급 헌터 강진현이 꼬리를 내렸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표정은 밝았다. 희나가 당장 내일부터 도시락을 싸 주겠다며 꼭꼭 약속을 해 줬기 때문이다.

    “알레르기 있거나 싫어하시는 재료 있어요?”

    희나는 미리 고객의 취향을 살폈다. 강진현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전혀 없습니다.”

    역시 S급 헌터가 되려면 뭐든지 잘 먹어야 한다. 희나는 나중에 조카가 생기면 그렇게 가르쳐 주기로 결심하며 또다시 물었다.

    “그럼 좋아하는 반찬은 있어요?”

    “희나 씨가 만들어 준 음식이라면 다 맛있을 것 같군요.”

    강진현이 낯간지러운 소리를 해 댔다.

    “별말씀을 다.”

    “진심입니다.”

    입에 발린 말이지만, 듣기에 싫지는 않았다. 어쨌든 칭찬은 좋은 거였으니까.

    강진현은 방긋방긋 웃는 희나를 잠시 말없이 지켜보다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무쪼록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앗, 이러실 필요까지는……. 저야말로 부족한 솜씨지만 잘 부탁드려요.”

    희나는 덩달아 허리를 굽신거렸다. 강진현의 깍듯함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진현에게 이런 친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희나는 각성 후 잃어버린 즐거움을 되찾게 해 줄 구원자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강진현은 부드럽게 웃음 지었다.

    “다가올 내일이 기대되기는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전투뿐이던 그의 삶에 사소한 일상이란 그 무엇보다 귀중했다. 그깟 마석 수백 개를 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희나는 당장 집에 돌아가 시스템에게 값비싼 마석을 바쳤다.

    “계속 진행할게.”

    “여기, 마석 가져왔다! 이 날강도야!”

    “복구 서비스 진행해 줘.”

    그러자 희나의 손 위에 있던 동그란 마석이 허공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석은 빛나는 가루가 되어 반짝거리며 허공에 흡수되었다.

    몇 초 후, 허공에 시스템 알림이 떴다.

    이전의 손톱만 한 마석으로 얻은 시간까지 더하니, 239일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희나가 비장하게 희원과 오색이를 돌아보았다.

    “이제 239일 안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거나, 합의점을 찾는 거다?”

    남매가 평생 만져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값비싼 마석을 사용해서 번 시간이었다. 그 안엔 결론을 내려야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난 네 행운 스탯을 믿어.”

    희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희나는 전체 스탯 비율 중 행운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으니, 그만큼 운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날 거라는 확실치 않은 소리까지 해 댔다.

    “네 행운 스탯이 열일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네가 날 찾아서 구해 냈겠어? 그것도 S급 헌터인 강진현까지 끌어들여서?”

    들어 보니 그럴싸한 것 같기도 했다.

    「인생 한 방!」

    오색이까지 옆에서 한 방 인생을 노래했다.

    하지만 희나는 둘의 ‘행운 한 방론’에 넘어가지 않았다. 대신 엄포를 놓았다.

    “됐어! 인생은 한 방이 아니야! 차근차근 이루어 가는 거야! 그러니까 다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이나 해 와! 우리 집 시간은 이제부터 진짜 금이야, 금!”

    * * *

    저녁거리 겸 도시락 반찬으로 넣을 달걀말이를 신중하게 뒤집고 있는데, 눈앞에 알림창이 또롱또롱또롱 떴다.

    ‘헉, 랭크 업!’

    엄청난 소식에 희나는 엄청나게 놀랐다.

    하지만 달걀말이 앞에서는 침착을 유지해야 했다. 모난 부분 없는 어여쁜 결과물을 위해서는 방심은 금물이었다.

    치이이-.

    희나는 달걀 물을 마저 붓고서 달걀말이를 한 바퀴 더 굴렸다. 네모난 달걀말이용 팬의 가장자리에 꾹꾹 눌러 각을 잡는 것도 잊지 않았다.

    “됐다!”

    마침내 오동통한 달걀말이가 도마 위에 올랐다. 달걀말이의 모습은 완벽 그 자체였다. 갈색으로 그을린 부분 하나 없이 샛노랬다.

    살면서 희나가 만든 달걀말이 중 최고의 걸작이었다. 뿌듯했다.

    희나는 뒤집개로 탄력 있는 달걀말이를 찰싹찰싹 때렸다. 찰졌다.

    “이제 시스템 창 좀 봐 볼까?”

    희나는 달걀말이를 한 김 식힐 동안 아까 떴던 랭크 업 메시지를 다시 살피기로 했다.

    ‘이 맛이 바로 손맛’ 스킬의 랭크가 올라가면서 희나의 등급 자체도 C로 올라간 것 같았다.

    희나는 그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도도도 달려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던전 토지를 개간하고 있는 희원이 보였다. 이마에 구슬땀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어? 무슨 일이야? 벌써 밥 다 했어?”

    희원이 목덜미에 건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물었다. 희나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손에 든 뒤집개를 휘둘렀다.

    “오빠! 나 랭크 업했다! 이제 C급이야! 내가 오빠보다 등급 높아졌어!”

    10년째 D급에 머물러 있는 희원을 놀려 주기 위해서였다.

    “각성한 지 3개월도 안 됐는데 랭크 업했지롱! 나 이러다 S급 살림꾼 되는 거 아닐까?”

    호들갑을 떨자 희원이 꼴불견이라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오빠답게 축하는 해 줬다.

    “그래. C등급 된 거 축하해. 그나저나 스탯은 많이 올랐냐? 희나 너, 가진 건 행운 스탯밖에 없었잖아.”

    “아. 스탯 오른 걸 확인 안 했네.”

    오빠의 말에 희나는 스탯 창을 확인했다.

    <◆체력 12 ◆마력 2 ◆근력 9 ◆민첩 9 ◆끈기 30 ◆행운 65>

    “에이…….”

    희나는 아쉬움 가득한 탄식을 내뱉었다.

    “왜? 많이 안 올랐어?”

    실망하는 동생의 모습에 희원이 눈을 반짝였다.

    “끈기랑 행운만 무지 올랐어. 나 이제 행운 65야.”

    엄청난 행운 수치에 희원이 감탄했다.

    “엄청 높은데? 보통 행운 스탯은 아무리 높아도 30 못 넘어. 내가 본 사람 중에 20 넘는 사람도 세 명이 안 될걸.”

    “그래?”

    희나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다른 스탯과 달리 행운 스탯은 눈으로 보이는 성장이 없어서 사소하게 여겨지는 측면이 있었다.

    ‘실제로 이 숫자만큼 행운 효과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한편, 희원은 흥분에 차서 동생을 부추겼다.

    “너 복권 사 봐야 하는 거 아냐?”

    “지난번에 오빠 말대로 한 번 사 봤다가 허탕만 쳤잖아.”

    희나는 돈 아까운 짓 하지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이제 체근민 합이 20은 넘어. 다 합쳐서 30이라고.”

    “F급 각성자 스탯이네.”

    “그래도 오른 게 어디야?”

    희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원래는 체근민 합이 20도 안 돼 일반인 수준이었던 스탯이었다. F급이나마 각성자 수준으로 올라선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나저나 개간은 잘돼 가?”

    쓸모없는 행운 스탯 이야기는 관두고, 희나는 마구 파헤친 땅을 쓱 훑어보았다.

    현관문을 중심으로 4m 원을 그리며 흙이 뒤집혀 있었다. 이건 모두 희원의 작품이었다.

    “가끔 이상한 뼈가 나오는 것 빼면 잘돼 가고 있어.”

    희원이 희나 발치에 쌓인 뼈 무더기를 턱짓하며 말했다.

    그 말에 희나는 소름이 돋아서 화들짝 뒤로 물러났다.

    “아, 징그러워! 진작에 얘기 좀 해 주지!”

    “네가 얘기할 틈을 줬어야지.”

    희나가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사람 뼈는 아니지?”

    “몰라. 그런데 모양 보니까 몬스터 뼈에 더 가까운 것 같더라.”

    희원이 태평하게 대답했다. 희나는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 했다.

    “이걸 왜 모으고 있어? 밖에 내다 버려.”

    그러자 희원의 삽질을 구경하고 있던 오색이가 끼어들었다.

    「몬스터 주의 필요.」

    몬스터 뼈 같은 걸 바깥에 수북이 쌓아 두면 몬스터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곳이 안전지대라고는 해도, 코앞에 몬스터들이 휙휙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면 정신 건강에 안 좋을 거라나.

    “그래서 한구석에 모아 뒀다가 땅에 묻어 버리려고.”

    희원이 뼈 무더기를 툭툭 쳤다. 희나는 혀를 차면서 뒤를 돌았다.

    “그래. 뭐, 현관 밖은 오빠 소관이니까. 알아서 해.”

    생사도 모른 채 위험한 던전을 오가는 것보다, 집 마당을 뒤엎으며 뼈를 발굴해 내는 편이 훨씬 안전했으니까.

    ‘어쨌든 오빠가 열중할 거리를 찾을 수 있게 돼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또 돈 벌어 온다며 집을 뛰쳐나갔을지도 모른다.

    “지난번에 가져간 정체 모를 씨앗은 어떻게 했어?”

    희나는 뒤늦게 □□□ □□, 그러니까 공간의 조각이 사라지고 남은 새까만 씨앗을 떠올렸다.

    얼마 전에 희원이 땅에 심어 본다며 가져갔던 참이었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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