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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38화 (38/228)
  • 던전 안의 살림꾼 38화

    “전력 복구하는 데 마석이 필요하대?”

    허허 웃고 있는데 희원이 눈치 좋게 물어 왔다. 희나는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응. 근데 마석으로는 일시적으로만 전력 복구가 가능하대. 예전에 우리가 썼던 공간의 조각이 있어야 완전히 고쳐진다나 봐.”

    “그건 던전 부산물이잖아. 우리 둘 다 전투계가 아닌데, 그걸 어떻게 구해?”

    “그러니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데, 오색이가 남매 사이로 고물고물 기어들어 왔다.

    「역량 부족. 유감.」

    안테나가 축 처진 게 조금 의기소침해 보였다.

    “너도 최선을 다한 건데 잘 안 된 거잖아. 원래 집에서 수리 못 하면 사설 업체 불러야 해. 근데 업체가 장사를 순 날강도처럼 하는 게 문제인 거지.”

    희나는 허공을 노려보았다. 시스템은 당최 종잡을 수가 없었다.

    “계속 이렇게 불 꺼진 집에서 살 수는 없잖아. 이 집 버리고 떠나야 하나?”

    희원이 어두컴컴한 집 안을 둘러보았다.

    어둠 속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희나의 정성 어린 손길이 들어가 깔끔하고 쾌적하게 변화한 상태였다.

    ‘나름 정들었는데…….’

    역시 제일 아쉬움을 느끼는 건 희나였다.

    더러운 한 칸짜리 방으로 시작해서 번듯한 투 룸에 이르기까지, 희나의 노고가 들어간 집이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주목! 주목!♧♣♨」

    한편, 오색이의 요란한 특수 문자가 회상에 잠긴 희나를 일깨웠다.

    “왜 그래, 오색아?”

    희나는 휴대전화 플래시 라이트를 달팽이에게 비추어 주었다.

    오색이는 두 안테나를 꼿꼿이 세운 채 몸을 움칫둠칫 움직이고 있었다.

    「해결책 찾아냄.」

    “진짜?”

    남매는 몸을 납작 굽혀서 오색이를 바라보았다. 뻣뻣한 안테나에서 자랑스러움이 흘러넘쳤다.

    “뭐? 어떻게 하면 돼? 다른 방법이 있어?”

    「집주인 도시락.」

    “도시락이라니?”

    「수요와 공급이 있음.」

    이 달팽이는 별걸 다 알았다. 두 쌍의 눈동자가 자기를 향하고 있는 걸 확인한 오색이가 문자열을 이어 갔다.

    도시락

    마석

    집주인

    공급 가능

    수요 있음

    강진현

    수요 있음

    공급 가능

    뜬금없이 허공에 뜬 표에 희나는 엥, 소리를 냈다. 그리고 찬찬히 표를 해석했다.

    “나는 도시락을 공급 가능하고 마석이 필요한데, 강진현은 도시락이 필요하고 마석을 공급 가능하다고?”

    오색이가 손뼉을 치듯이 두 안테나를 짝짝 부딪쳤다.

    「ㅇㅇ. 식대 ↔ 마석. 물물 교환 가능.」

    「양측 만족스러운 거래 예상.」

    오색이의 논리적인 설명에 희원이 반색했다.

    “오. 좋은 방법인데? 강진현이 도시락 하나에 천만 원까지 줄 수 있댔잖아. 일단은 돈 대신 마석을 달라고 하면 되겠네!”

    “차라리 그럴 바엔 그 돈을 모아 새로운 집을 마련하는 방법이 더 낫지 않을까?”

    희나가 좋은 지적을 했다. 그러자 신나게 둠칫거리던 오색이가 반발했다.

    「오색, 집주인의 매정함에 큰 충격!」

    「이대로 인연이 끊길 것인가?」

    희나는 고개를 거세게 흔들었다.

    “당연히 너도 같이 가는 거지, 오색아. 어떻게 여기에 널 혼자 남겨 두겠어?”

    몇 달이긴 하지만, 오색이와는 투덕거리며 정이 담뿍 들었다. 이대로 두고 떠날 수 없었다.

    하지만 오색이의 의견은 좀 달랐다.

    「본 달팽이 = 주택 관리자. 해당 주택을 자의로 떠나지 않음.」

    자기는 ‘홈 스위트 홈’의 주택 관리자이니, 절대 떠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희나는 한참 동안 오색이를 설득했다. 그렇지만 성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집주인의 제안을 강력히 거부함!」

    어쩌면 오색이는 이 집의 집요정 비슷한 존재였으니,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어휴. 어떻게 하지? 이대로 오색이를 두고 가기엔 마음이 편치 않아.’

    희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했다. 희원은 가만히 그런 희나를 지켜보더니 조언했다.

    “잘 모르겠으면 대충 질러 보자.”

    “뭐?”

    “일단 마석으로 전기 해결하고 나서 마저 생각해 보자는 말이야. 너 행운 스탯 45라며? 어떻게든 방법이 생기겠지.”

    던전 밖의 집을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오색이를 두고 가기 싫으면 한동안 여기에서 계속 살면서 오색이를 설득을 하건 납치를 하건 그건 그때 가서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마석은 좀 들겠지만……. 당장 어두컴컴하게 지낼 수는 없잖아. 어때, 희나야?”

    희원은 담이 좁쌀만 한 동생과 달리 가끔 이렇게 막 나가는 면모를 보였다. 그래서 D등급 농사꾼이면서도 헌터 일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 그럴까?”

    희나는 갈팡질팡하다 결국 오빠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어쨌든, 당장 오색이를 두고 나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색이는 희나의 가족이었으니까.

    희나는 가족을 두고 떠나지 않았다.

    * * *

    퇴근 후, 희나는 강진현의 개인 사무실 앞에 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휴. 어떻게 말을 꺼낸담?’

    강진현과 교섭을 할 생각을 하니 심장이 뛰었다.

    아무리 강진현이 희나의 도시락에 큰돈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해도, 막상 먼저 말을 꺼내려니 민망했다.

    평범한 수제 도시락과 몇백만, 몇천만 원짜리 마석을 교환하자고 하려는 이 상황이 상당히 염치없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민망해도 오색이를 생각하자!’

    희나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토끼 같은 오빠와 여우 같은 달팽이를 생각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젯밤 정전 사태는 일단 희나의 마석으로 해결해 둔 상태였다. 하지만 이건 미봉책에 불과했다. 손톱만 한 마석으로는 사흘밖에 버틸 수 없었다.

    희나의 ‘홈 스위트 홈’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마석이 끊임없이 필요했다.

    ‘……아니면 또 공간의 조각을 우연찮게 얻어 내거나.’

    어떤 말을 꺼낼지 한참 동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깜짝이야!”

    희나는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희나 씨.”

    이제 자기가 나타날 때마다 놀라는 희나의 모습에 익숙해진 강진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대신 희나에게 손짓했다.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들어오지 않으시기에.”

    “어, 어떻게 아셨어요?”

    “기척이 느껴집니다.”

    “아.”

    희나는 얼떨떨한 상태로 강진현과 마주 앉았다.

    “어떤 연유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강진현의 차분한 목소리를 듣자 그제야 정신이 깨어났다. 희나는 잠시 입술을 우물거리다 용건을 털어놓았다.

    “그게, 그 도시락 말씀하셨던 거 있잖아요.”

    “기억합니다. 어제 점심시간에 제가 제안했죠.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현의 눈이 먹이를 만난 짐승처럼 번쩍였다.

    “대답은?”

    “할게요.”

    희나의 대답에 강진현의 단단한 입매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렸다. 바짝 조인 줄처럼 팽팽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부드럽게 풀어졌다.

    그 모습에 희나는 잠깐 ‘밥 한 끼에 이렇게 사람이 변하고 볼 일인가?’ 하고 생각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희나는 침을 꼴딱 삼키고 본론을 꺼냈다.

    “그럼 이제 도시락값에 관해 얘기하고 싶은데요…….”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천? 2천? 말씀만 하십시오.”

    오빠 말대로 S급 헌터에게 몇천만 원은 돈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강진현은 천만 원, 2천만 원을 마치 1000원, 2000원처럼 쉽게 말했다.

    물건을 살 때 그램당 1원 단위까지 꼼꼼히 비교해 가며 구매하는 희나와는 완전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 도시락값은 돈이 아니라 물건으로 받고 싶어요.”

    “무엇입니까? 제가 구할 수 있는 범주 안에 있는 물건은 모두 구해다 드릴 수 있습니다.”

    “마석이요.”

    말을 꺼내자마자 강진현의 손 위에 주먹만 한 마석이 짠, 하고 생겼다. 인벤토리에서 꺼낸 듯했다.

    “한 끼에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주먹만 한 마석은 순도에 따라 몇천만 원에서 몇십억 원까지 가격이 다양했다. 그리고 강진현이 꺼낸 마석은 굉장히 색이 투명했다.

    순도가 높은 상급 마석이라는 뜻이었다. 저런 마석은 적어도 A급 몬스터 이상을 잡아야 나왔다.

    희나는 땀을 삐질 흘렸다.

    “그 정도로 클 필요는 없는데요. 손톱만 한 조각 정도만 돼도…….”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진 물건을 코앞에 두고 있자니 욕심도 안 났다. 부담스럽기만 했다.

    “별로 크지 않습니다. 아니면 더 큰 마석을 보여 드릴까요? 그럼 마음이 바뀔 겁니다.”

    강진현이 어마어마한 협박을 하기에 희나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그럼 저걸로 받을게요!”

    “좋습니다.”

    강진현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희나에게 마석을 건네주었다.

    순간적으로 이 마석을 팔아 할 수 있는 일들이 수천 가지는 지나갔지만, 희나는 오색이의 동글동글한 머리통을 생각하며 잡념을 떨쳐 냈다.

    ‘돈보다는 가족이 먼저지.’

    대신, 마석을 받자마자 제일 먼저 시스템 창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 전기의 양부터 확인했다.

    ‘허억.’

    일수가 어마어마했다. 간신히 사흘 가는 손톱만 한 마석과는 달리, 이건 8개월이나 집 안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앞으로 8개월 정도는 방법을 더 찾아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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