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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29화 (29/228)
  • 던전 안의 살림꾼 29화

    “혹시 지금 집이 넓어진 게, 과금으로 스킬 랭크가 올라서 그런 거야?”

    “그런가 봐. C랭크가 되면서 ‘연식 있는 기본형 투 룸’이 해금됐대.”

    희나는 스킬 창을 띄워 상태를 확인했다.

    <홈 스위트 홈(C): 스킬 시전자에게 집을 제공한다. 액티브 스킬. (현재 상태: ‘연식 있는 기본형 투 룸’ Lv. 9)>

    랭크는 C랭크가 되어 있었고, 상태는 ‘낡은 기본형 원룸’에서 ‘연식 있는 기본형 투 룸’으로 바뀌어 있었다.

    집의 레벨은 랭크와 상관없는지 여전히 9를 유지하고 있었다.

    “레벨이 좀 있어서 그런지 이번 집은 그나마 깨끗하네.”

    희나는 집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새로 얻은 집을 파악했다.

    다행스럽게도 원룸에 두었던 살림살이는 사라지지 않고 제각각 자리를 잘 찾아 정리되어 있었다.

    “보통 원룸 다음에는 1.5룸이지 않나?”

    문득 든 궁금증에 희나가 중얼거렸다.

    보통 집이 좋아진다고 하면 한 칸짜리 원룸에서 거실에 방이 딸린 1.5룸으로, 그다음에 방이 두 개인 투 룸으로 넘어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희나야 더 좋은 집이 생겼으니 별 불만은 없었지만, 은근 쩨쩨한 시스템의 술수를 생각해 보면 좀 이상했다.

    「시스템 코딩 문제. □룸. 이때 □ = 오직 1, 2, 3, ……인 자연수.」

    옆에서 오색이가 수학 교과서 같은 말을 나열했다.

    대충 시스템은 원룸, 투 룸, 쓰리 룸 같은 명확한 숫자의 집 구조만 줄 수 있고, 1.5룸 같은 애매한 숫자의 집 구조는 못 준다는 뜻인 것 같았다.

    희나는 오색이의 복잡한 설명을 금방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뭐가 어떻게 됐건 어쨌든 결론적으론 잘된 일이었으니까.

    “이야. 같은 히든 D급 꾼인데 차별 너무한 것 아니야? 누구는 이런 아늑한 집도 주는데, 나는 던전 아니면 땅도 제대로 못 파고.”

    함께 집 구경을 하던 희원이 투덜거리기에 희나는 휴대전화를 열어 예전의 더러운 원룸 사진을 보여 주었다.

    “내가 다 청소하고 꾸며서 좋아 보이는 거야. 레벨 업 하기 전에는 이랬어. 처음엔 D급이라고 이런 쓰레기 같은 집을 시스템이 강매했다니까.”

    「그러나 청소로 경험치 쏠쏠했음. 집주인, 긍정적 시각 필요.」

    오색이가 그래도 청소 덕분에 경험치를 얻어 레벨 업은 많이 하지 않았냐며 은근슬쩍 시스템 편을 들었다. 희나는 그런 오색이를 흘겨보았다.

    “너는 옆에서 「영차영차」만 했으니까 그런 말이 나오지! 난 정말 힘들었다고!”

    「달팽이, 손발 없음. 청소 불가능.」

    오색이가 뭐라고 변명하든 간에, 희나는 모른 척하고 방 하나를 선점했다.

    “이 방 내 거!”

    두 개 있는 방 중 크기가 조금 더 큰 방이었다. 시스템도 여기가 희나의 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큰방에 희나가 쓰던 침대를 놓아두었다. 첫 랜덤 뽑기로 받은 E급 ‘프레임 없는 낡은 매트리스 침대’였다.

    “그래. 집주인이 더 큰 방 쓰신다는데, 세입자인 제가 그 뜻을 어떻게 말리겠습니까?”

    희원이 어깨를 으쓱하며 희나의 의견에 순응했다. 집주인의 권력은 짜릿했다.

    아무튼 대충 상황은 정리됐다. 이에 희나는 미리 구매해 둔 속옷과 트레이닝복을 꺼내어 건넸다.

    “그럼 오빤 이제 좀 씻고 와.”

    집에 들어오자마자 이런저런 것들을 설명해 주다 보니, 희원은 아직 씻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제 상황 판단을 끝냈으니 다음으론 꼬질꼬질한 때를 벗겨 내는 게 급했다.

    “집이 좀 오래돼 보이는데, 여기 수압은 괜찮을까?”

    희원이 과연 희나의 오빠다운 걱정을 했다. 희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잘 나올걸. 예전에 이것보다 더 안 좋은 원룸에 있을 때도 물은 잘 나왔어. 아무튼 빨리 씻고 나와. 밥 먹자. 삽겹살 사 올게.”

    꼬르륵.

    삼겹살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희원의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희원은 난감한 듯 허허 웃으며 전혀 믿기지 않는 소리를 했다.

    “천천히 준비해. 난 괜찮으니까.”

    그리고 민망한지 욕실 안으로 쏙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물소리와 함께 “크으, 시원하다!” 하는 탄성이 들려왔다.

    ‘괜한 허세 부리기는.’

    희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장바구니 두 개를 챙겼다. 비루먹은 개 꼴이 된 오빠를 위해 먹을 걸 잔뜩 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마이써!”

    희원이 상추쌈을 입안 가득 넣고 손뼉을 쳤다.

    눈가에 감동이 철철 넘쳤다. 오래간만에 먹어 보는 고기인 데다가, 희나의 손맛 스킬까지 중첩되었으니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게 용했다.

    “이 맛에 내가 산다!”

    희원은 고기쌈을 꿀떡 삼키고 함지박만 한 웃음을 지었다.

    희나는 그 모습을 조금은 안쓰럽게, 조금은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많이 먹어. 고기 세 근 사 왔어. 먹고 싶은 만큼 구워 줄게. 소화제도 사 왔으니까 마음껏 먹어.”

    “역시 내 동생이 최고다! 이희나! 이희나!”

    희나는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오빠 앞에 구워 온 고기와 상추를 밀어 놓았다.

    「식사 방해 금지!」

    그러자 상추 더미에서 주먹만 한 달팽이가 뿅 하고 머리를 내밀었다.

    “어디 갔나 했네. 왜 상추 소쿠리 안에 들어가 있어?”

    희나는 오색이를 집어 꺼냈다. 오색이가 있던 자리에는 구멍이 송송 난 상추가 있었다. 희나는 의외라는 듯 물었다.

    “뭐야, 오색아, 너 상추도 먹어?”

    오색이가 뭘 먹는 모습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오색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별식.」

    하긴, 주택 관리자라고 해도 달팽이 모습을 하고 있으니 상추를 먹는 건 썩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오색아, 그런데 나 궁금한 게 있어.”

    때맞춰 오색이가 등장한 김에 희나는 줄곧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

    “나는 스킬을 시전해서 이 집에 들어오고 나갈 수 있잖아.”

    「ㅇㅇ.」

    “그럼 오빠는 내가 없으면 이 집에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해?”

    이건 중요한 문제였다.

    희원이 ‘홈 스위트 홈’ 스킬 보유자인 희나를 따라서만 집 안 출입이 가능하다면, 새집이 생긴 의미가 없었다.

    집은 가족이 함께 쓰는 공간이고, 누구나 입출입이 자유로워야 했다.

    「집주인 염려 충분히 이해. 동거인 출입 여부: 문제없음.」

    오색이가 전혀 걱정하지 말라는 것처럼 안테나를 좌우로 까딱까딱 흔들었다. 그러더니 고물고물 기어서 희원의 왼쪽 손등 위에 올라탔다.

    희원은 달팽이가 자기 손등 위에 올라타든 말든 희나의 손맛에 빠져 쌈장에 삼겹살을 찍어 먹느라 여념이 없었다.

    「식구. 스페어 키 제공 가능.」

    “스페어 키? 그러니까 오빠한테 여길 오갈 수 있는 여분의 열쇠 같은 걸 줄 수 있다는 거지?”

    「ㅇㅇ. 스페어 키 제공 동의?」

    오색이가 묻자, 곧이어 시스템 창이 떴다.

    “예스.”

    희나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스킬 창 한쪽에 ‘식구 1: 이희원’이라는 글자가 뿅 나타났다.

    등록과 함께 질문이 곧바로 이어졌다.

    오색이가 말한 여분 열쇠 얘기가 바로 이것인 것 같았다. 희나는 망설임 없이 “예스.”라고 대답했다.

    「오키도키.」

    희나가 대답하자마자 희원의 손등에 올라가 있는 오색의 등껍질이 무지개색으로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등껍질은 약 10초가량 환히 발광하더니, 빛은 이내 다시 사그라들었다.

    「완료.」

    오색이 꿈실꿈실 희원의 손등 위에서 내려왔다. 오색이 있던 자리에는 금빛 열쇠 모양이 마치 도장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신기한 광경에 희원마저 삼겹살을 먹던 것을 멈추고 자기 손등을 들여다보았다.

    “이게 열쇠야?”

    「ㅇ.」

    오색이는 ‘이응’조차 하나뿐인 성의 없는 대꾸를 하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대충 풀어서 말하자면 내용은 이랬다.

    스페어 키를 받으면서 희원도 ‘홈 스위트 홈’의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희나처럼 원하는 곳 아무 데서나 문을 열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건 아니었다.

    오직 한 장소에서만 ‘홈 스위트 홈’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쉽게 말해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문을 소환할 수 있는 희나와 달리, 손님의 ‘문’ 위치는 고정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그럼 현관문 위치는 내가 지정할 수 있어? 아니면 랜덤이야?”

    희원이 오색이에게 물었다. 오색이 대답했다.

    「최초 1회에 한해 사용자가 무료로 위치 지정 가능. 단, 2회 차부터는 변경 시 유료 재화 필요.」

    “또 돈이야?”

    과금 이야기가 또 불쑥 튀어나오긴 했지만, 어쨌든 현관문 위치는 희원이 직접 지정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첫 번째는 공짜라니까 다행이다, 희나야.”

    희원이 속 좋은 소리를 해 대기에 희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아무튼 현관문 위치는 인적 드문 곳 찾아서 지정해 둬야겠네.”

    「적절한 위치 지정이 핵심.」

    오색이도 희나의 말을 거들었다.

    그러자 희원은 적당한 장소를 생각하는 듯 턱을 괸 채 중얼거렸다.

    “어디 보자. 적당히 역세권이면서 사람이 잘 지나다니지 않아서 조용하고, 생활 시설들은 또 너무 멀지 않게 있는 곳이 어디 있을까~?”

    들어 보니, 바라는 게 너무 많았다. 이 서울 시내 안에 그런 장소가 있다면 진작 개발에 들어가고도 남았다.

    그래서 희나는 오빠의 고민에 솔직히 대꾸해 주었다.

    “그런 장소를 찾는 것보단 우리가 100년 넘게 쉬지 않고 일해서 비싼 집을 사는 편이 더 빠를걸.”

    “그건 그렇지…….”

    희나의 지적에 희원이 허허 웃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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