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안의 살림꾼-19화 (19/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9화

    * * *

    5층 청소를 빠르게 끝내고 8층에 올라서자마자 와르르 헌터들이 모여들었다. 사탕에 몰려든 개미 떼 같았다.

    “나 침낭 좀 깔아 줘, 희나! 나흘 동안 한숨도 못 자고 몬스터만 잡았더니 죽을 것 같아!”

    “내가 먼저야, 나부터! 나 책상이 엉망인데, 좀 봐줄 수 있어요? 오거 팔을 뜯어다가 방부 처리를 해 뒀는데, 그게 어디 있는지 못 찾겠어요.”

    “김밥! 김밥은?”

    “희나 씨. 이거 먹어도 되는 풀인지 아닌지 구분 좀 해 줘요!”

    “고기 먹으러 가자!”

    참고로 마지막 외침은 우민아의 것이었다.

    희나는 우민아의 장난스러운 외침에 피식 웃고는 손을 들어 헌터들을 진정시켰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이렇게 몰려오시면 제가 아무런 일도 못 해요.”

    헌터 전용층인 8층을 맡게 된 지도 벌써 한 달여.

    희나는 완전히 청룡 길드에 적응했다. 심지어 헌터들과 친해지면서 몇몇 스킬은 털어놓은 지 오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안락한 침상’이라거나, ‘야무진 손끝’, ‘나물 뜯기’ 같은 소소한 스킬들 말이다.

    처음 희나는 헌터들이 거칠 것이라 생각했다. 소위 말하는 위험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희나의 상상과는 달리, 헌터들은 조금 특이한 성격을 가졌을 뿐 별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조금 더 손이 많이 가는 다 큰 어린애 같지.’

    청룡 길드의 길드원이라면, 대한민국에서 나름 손꼽히는 실력을 지녔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들 일상생활에서는 조금 나사가 빠진 것 같았다.

    희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생각했다.

    ‘어쩌면 멀쩡한 사람들은 다 필드에 나가 있는 걸 수도 있고.’

    마침 S급 강진현을 필두로 한 던전 공략팀이 한 달째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던전이 원체 거대한 탓에, 전투 외 이동 시간만으로도 거의 20일을 소모한다나?

    덕분에 희나는 청룡 길드의 유명 인사인 강진현의 머리카락 한 올도 구경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랑 엮일 사람도 아니고, 굳이 구경할 필요도 없긴 하지만…….’

    다만 강진현과 공략팀이 돌아오면 이 헌터 휴게실이 얼마나 더 떠들썩해질지 궁금하긴 했다.

    어쨌거나 희나는 헌터 전용 층수의 관리가 힘들 거라는 김화순 팀장의 말에 다른 의미로 공감하고 있었다.

    “청소부터 할게요. 모두 제자리에 가서 앉아 주세요.”

    희나는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단단히 묶으며 손을 훠이훠이 휘저었다. 참새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던 헌터들이 희나의 손짓에 따라 파닥파닥 물러갔다.

    “실시간 청소 ASMR!”

    누군가가 걸레를 잡는 희나를 향해 소리쳤다. 희나는 피식 피곤한 웃음을 지으며 소리쳤다.

    “ASMR을 누가 그렇게 큰 소리로 시작해요? 거기다 동영상 사이트에 이상한 영상 찍어서 올리지 마세요, 진짜!”

    “아니야. 그거 조회 수 진짜 잘 나온다고! 사람들이 쾌감 쩐대!”

    “그거 초상권 침해예요.”

    “얼굴 안 나오게 찍었으니까, 걱정 마.”

    “어휴…….”

    그랬다. 청소는 별로 안 힘들었다. ‘야무진 손끝’ 스킬도 있고, 50% 효율 착장 버프도 받았기 때문이다.

    ‘고작 청소 좀 잘하는 스킬일 뿐인데, 뭐 그리 신기해하지?’

    다만 희나가 벅차게 느끼는 건, 자신을 향한 헌터들의 끝없는 관심이었다.

    고민 끝에 우민아에게 상담을 청하자, 우민아는 이렇게 말했다.

    ‘스탯도 낮고 공격 속성도 없는 각성자라서 신기한 한입 거리 초식 동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거든. 비전투계 길드원들이랑은 느낌이 또 달라서.’

    청룡 길드에는 헌터가 아닌 비전투 각성자들도 길드원으로 소속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지난번에 침대로 난동을 부렸던 최상훈이 그랬다.

    그는 비전투 계열인 아이템 감정사에 불과했지만, 스탯이 높아서 어지간한 몬스터는 거뜬히 잡아낼 만한 실력이 있었다.

    ‘하긴. 상훈 아저씨는 S급이니까 스탯이 높을 만도 하지.’

    그런 톱급 각성자들만 보다가, 능력도 스탯도 소소하고 자그마한 희나를 보면 얼마나 신기하게 느껴지겠냐는 것이다.

    거기다 덧붙이는 말로는, 그 소소하고 자그마한 능력이 너무너무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마음에 드는 것밖에 없으니 그렇다고는 하는데…….

    ‘그건 언니가 내 고기 맛을 봐서 그런 것 같은걸.’

    호시탐탐 희나와의 고기 먹방을 노리는 우민아였기에 신뢰가 영 안 갔다.

    희나가 보기에는 역시 자기 같은 각성자는 처음 만나서 신기한 마음에 다들 쿡쿡 찔러보고 있는 거였다.

    ‘이 관심이 대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희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휴게실 곳곳을 걸레로 꼼꼼히 닦았다. 어제도 닦은 곳이었지만 하루 사이 검붉은 자국 같은 게 튀어 있었다.

    이럴 때마다 희나는 대체 헌터들이 휴게실을 어떤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지 의문을 느꼈다.

    희나가 걸레질을 할 때마다 자리에 앉아 있던 헌터들이 엉덩이를 치워 주었다. 처음에는 꿈쩍 않고 석상처럼 앉아만 있더니, 이제는 좀 친해졌다고 제법 곰살궂게 굴었다.

    “고마워요.”

    “고맙긴. 근데 말이야. 희나 씨, 김밥은 또 쌀 생각 있나?”

    ……어쩌면 얻어먹을 꿍꿍이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희나는 김밥 이야기를 꺼낸 헌터를 올려다보았다.

    키가 큰 남자의 이름은 화원호로, 성씨처럼 화염 속성을 가졌다. 거기다 자기 속성만큼이나 성격이 오락가락 들끓기로 유명했다.

    수틀리면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어 화재경보기를 터뜨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데, 희나가 보기엔 그건 좀 과장 같았다.

    ‘성격이 좀 급할 뿐이지 화통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청소하는 희나 옆에서 불 쇼를 하면서 김밥 타령을 하는 화원호는, 장난꾸러기 청년 정도로만 보였지 그런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화원호가 김밥 이야기를 꺼내자 헌터 휴게실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김밥! 나 어젯밤에도 그 김밥 먹는 꿈 꿨어.”

    “희나 씨, 여기 관두고 김밥집 차리면 안 돼?”

    “안 돼! 그러면 줄 서서 먹어야 할 수도 있단 말이야. 우리만 알아야지, 이 손맛은.”

    “지금도 줄 서서 먹어야 하는 건 똑같잖아. 너무 감질난다고.”

    제각각 할 말이 어찌나 많은지, 제대로 알아듣기도 힘들었다.

    희나는 헌터들의 수다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몇 주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내가 싼 김밥이 이렇게까지 호응이 좋을 줄이야.’

    환경 미화 팀원들은 희나의 일을 많이 거들어 주었다. 신입이 갑자기 버거운 업무를 맡게 됐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희나는 그 정성이 고마워서 간식거리로 먹을 김밥을 손수 준비하기로 했다.

    그렇잖아도 희나는 낮은 체력을 ‘밥심’ 스킬로 만회하기 위해 간식 삼아 김밥을 싸 가지고 다녀야 했다.

    그러다 보니 간식을 먹을 때 가끔 팀원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줄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팀원들이 김밥을 무척 좋아했으므로 희나는 감사의 표시로 ‘희나표 김밥’을 대량으로 싸기로 결심했다.

    뭘 만들어야 한다는 게 번거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원래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오래간만에 누굴 위해 음식을 준비한다는 설렘 때문에 손이 아주 커져 버렸다는 것쯤일까?

    ‘야무진 손끝’ 스킬과 앞치마 착장 버프는 음식을 만들 때도 적용됐다. 덕분에 희나는 힘든 줄도 모르고 김밥을 준비했다.

    그녀는 일요일을 꼬박 바쳐 무아지경으로 김밥을 만들었고, 무려 60줄이나 되는 김밥을 싸 버렸다.

    출근길 지하철 앞에서 팔아도 될 정도의 양이었다.

    ‘어쩐지 밥을 해도 해도 부족하더라니.’

    이제 C등급이 된 ‘야무진 손끝’의 손길을 받은 김밥은 어느 곳 하나 터진 데 없이 반들반들 맛있어 보였다.

    희나는 김밥을 두고 먹을까 고민하다 직장에 60줄을 전부 싸 가기로 했다.

    그래서 그중 15줄은 팀원들끼리 옹기종기 앉아 나누어 먹었고, 남은 45줄은 적당히 갈라 5층과 8층 휴게실에 반반 나누어 가져다 놓으려 했는데…….

    ‘……그랬는데.’

    희나는 헌터들에게 약탈당한 45줄의 김밥을 떠올리며 허허 웃었다.

    고랭크 헌터들은 전부 개코들만 모인 게 틀림없었다. 김밥을 안고 휴게실 안으로 들어오자 눈길이 단박에 희나를 향해 쏠렸고…….

    ‘그때부터 난리도 아니었지.’

    너도나도 희나의 김밥을 한 줄씩 받아 간다며 소란을 피워 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일반인 휴게실에 둘 물량까지 완전히 털려 버린 상태였다.

    그 이후로 희나의 김밥을 맛본 헌터들은 틈만 나면 김밥, 김밥, 김밥 타령을 해 댔다.

    심지어 어떤 헌터 중 하나는 마석 조각 하나를 희나의 주머니에 쓱 밀어 넣으며 ‘김밥…….’ 하고 속삭이기까지 했다.

    ‘마석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거기다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는 몰라서 되돌려 줄 수도 없었다.

    차마 버리기엔 너무나 값어치가 높았으므로 희나는 마석 조각을 집 안 깊숙이 보관해 두었다. 나중에 오빠가 오면 처분을 부탁할 예정이었다.

    덕분에 희나는 김밥 몇 줄 값으로 몇 달 치 월급을 번 셈이 됐다.

    “김밥~ 희나 씨, 김밥 먹고 싶다. 환상의 나라로 가는 김밥을 먹고 싶다.”

    희나는 옆에서 깔짝대는 화원호를 진정시켰다.

    “김밥은 손이 좀 가는 음식이니까, 다음 주쯤 언제 날 잡아서 해 올게요.”

    김밥 몇천 줄은 쌀 수 있는 돈을 받았는데, 계속 모른 척하는 건 도의가 아니었다.

    “야호! 들었냐! 새끼들아! 내가 해냈다!”

    그러자 화원호가 불을 뽜악 뿜어내며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찌나 불길이 세던지, 화재경보기가 울리고 스프링클러가 작동했다. 천장에서 물이 줄줄 떨어졌다.

    휴게실은 금세 엉망이 되었다.

    희나는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 청소 공쳤네.”

    문득, 어쩌면 화원호에 대한 소문은 진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던전 안의 살림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