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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6화 (16/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6화

    2. 청룡 길드의 살림꾼

    첫 출근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청룡 길드 앞에 서 있는데, 누가 등을 찰싹하고 때렸다.

    “으헉!”

    매운 손맛을 보니 고랭크 헌터가 분명했다. 예를 들어…….

    “민아 언니!”

    “주말 잘 보냈냐?”

    ……우민아 같은.

    희나는 알싸한 등을 손으로 살살 비비며 히죽 웃었다.

    우민아가 청룡 길드에서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이란 걸 알고 나니, 저와 우민아의 친분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황금 동아줄이라는 걸 잡아 보다니!’

    우민아가 이 길드에 있고 이 관계가 어그러지지 않는 한, 자신은 이 회사에서 잘리지 않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니 계속 얼굴 근육이 히죽히죽 녹아내렸다.

    희나의 낯을 가만히 지켜보던 우민아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무슨 일 있었어? 왜 이렇게 얼굴이 좋아?”

    “집이 좋아서 푹 쉬었더니 그런가 봐요.”

    희나는 흐물흐물 풀린 얼굴 근육을 바로 했다. 고기만 잘 굽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진 않았다.

    “하긴. 기분 좋을 만도 하지. 그 자리에서 곧바로 채용됐다고? 인사팀장이 깐깐해서 그런 일이 별로 없는데. 네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나 봐.”

    “에이……. 아니에요.”

    “강진현이 또 사고 쳤는데 그걸 편들어 줬다면서? 가산점 받았겠네.”

    “그건 아닐 것 같은데.”

    희나는 강진현을 사고뭉치 취급하던 인사팀장의 태도를 떠올렸다. 그것 때문에 인사팀장의 눈에 들었다는 건 좀 이상했다.

    “왜? 그럴 만도 하지. 채용 면접관인 자기 앞에서 강진현 사고 친 거 편들어 주는 게 인상 깊었다던데. 거기다 인사팀장은 강진현 형이니까 더 마음이 갔겠지.”

    “예에? 형이라고요?”

    희나는 몹시 놀랐다. 냉랭한 분위기가 닮기는 했지만, 태도가 완전 남 대하는 태도였기 때문이다.

    아니, 이건 남보다도 못한 사이 아닌가?

    우민아가 희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키득거렸다.

    “맞아. 진짜 친형 맞아. 인사팀장 이름 못 봤어? 강목현이잖아. 강목현, 강진현. 딱 형제 느낌 들지 않아? 그런데 둘이 공적으로는 엄청 칼 같아서 별로 티가 안 나긴 해.”

    “헉. 상상도 못 했어요.”

    “다들 그러더라.”

    그러면서 우민아가 희나를 향해 엄지를 척 내밀어 보였다.

    “거기다 자기 PR까지 뚝딱 해내고. 단박에 마음에 든 눈치던데.”

    “제가 자기 PR을 했다뇨?”

    영문 모를 소리에 희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희나가 한 일이라곤 강목현 인사팀장의 질문에 고분고분 답한 것밖에 없었다.

    “왜, 그, 있잖아. 슬라임 진액을 전용 용액 없이 제거했다면서? 이야, 그거 쉽지 않은 일인데. 네 살림 손재주가 정말 대단하긴 한가 보다.”

    우민아는 연신 감탄하며 희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희나는 그 손길에 정신없이 흔들리며 상황 파악을 했다.

    ‘구두에 묻은 진액 닦은 걸 얘기하는 건가? 그게 전용 용액까지 필요한 거였어?’

    어쩐지 구두 굽을 닦는데 저절로 ‘야무진 손끝’이 발동하긴 했다. 대강 추측해 보면, 그게 슬라임 진액을 제거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았다.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우민아가 희나를 청룡 길드 안으로 이끌었다.

    “아무튼, 이제 진짜 출근해야지.”

    희나는 우민아에게 반쯤 끌려들어 가며 생각했다.

    ‘와, 나 어쩌면 줄 두 개 잡은 걸 수도 있겠는데?’

    입사 첫날, 김칫국 정도는 마셔 주어야 제맛 아닐까?

    입사 첫날은 대부분의 회사가 그렇듯 정신없었다.

    근로 계약서를 쓰고, 부서별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앞으로 할 일에 대한 개략적인 브리핑을 들었다.

    희나는 시설 관리부 환경 미화팀 소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간단한 유니폼이 주어졌다. 푸른색의 작업용 티셔츠에 방수가 되는 바지였다.

    ‘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걸.’

    희나는 의외로 세련된 디자인의 복장이 마음에 들었다. 움직이기도 편했고, 때도 잘 타지 않는 재질이었다.

    “희나 씨는 신입이니까 한동안은 5층 하나만 담당하면 될 거예요. 5층은 일반 직원들이 쓰는 층이라서 관리하기 썩 어렵지 않아요.”

    환경 미화팀 팀장인 김화순이 말했다.

    그녀는 중년의 여성으로, 다년간 청소 관련 일을 하다 스카우트되어 청룡에 팀장으로 입사하게 되었다고 했다. 푸근한 인상이었지만, 묘한 카리스마를 풍겼다.

    희나는 이 카리스마가 어디에서부터 기인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 분야의 정점을 찍은 사람이 내보이는 경험과 연륜이었다.

    ‘살림꾼’ 클래스인 희나에게는 절로 존경이 드는 사람이었다.

    “희나 씨, 손끝이 야무지네. 인사팀장에게 들었어요. 청소 관련 능력이 뛰어나다면서요? 어쩐지 가르쳐 주는 일마다 척척 잘하더라. 아주 흐뭇해.”

    김화순이 희나를 칭찬했다. 희나는 얼굴을 붉히며 겸양의 말을 건넸다.

    “아니에요. 이게 다 팀장님께서 꼼꼼하게 잘 가르쳐 주셔서 그런 거죠.”

    “호호, 아부도 잘하는데!”

    희나가 오후 동안 김화순을 따라다니며 알게 된 것은 앞으로 할 업무뿐만이 아니었다.

    환경 미화팀은 단순 청소 담당처럼 보였지만, 의외로 각성자 팀원이 몇몇 섞여 있었다.

    고랭크는 아니었고, F급이나 E급, 가끔 가다 희나 같은 D급 정도였다.

    “헌터들이 자주 다니는 곳이다 보니까 힘쓸 일도 많고 해서 비전투계 각성자들을 들였어요. 랭크가 낮긴 해도 일반인들보다야 체근민 합이 높거든.”

    “예에, 그렇죠.”

    D랭크지만 F랭크보다 못한 체근민 합을 가지고 있는 희나는 속으로 찔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한동안은 5층만 맡을 거라 괜찮겠지만 헌터들 다니는 다른 층까지 맡으면 좀 힘들어질 수도 있어요. 헌터들이 좀 거친 부분이 있거든. 많이 힘들면 나한테 말해요. 다른 팀장들한테 주의 줄 수 있으니까.”

    희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환경 미화직인데도 월급이 평균보다 훨씬 높더라……. 일이 고되기는 하겠구나.’

    그래도 추가 근무를 하면 칼같이 추가 수당, 특별 수당을 챙겨 주는 제대로 된 회사에 취직한 게 어디냐는 생각도 했다.

    희나는 언제나 추가 수당 없는 야근 지옥 회사만 다녀 봤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 비하면 여긴 천국이었다.

    김화순이 마지막으로 생각났다는 듯, 희나를 돌아보았다.

    “아, 그리고. 희나 씨. 강진현 헌터 알죠? 우리나라 1등 하는 헌터.”

    “예. 알아요.”

    사실 이미 두 번이나 본 사이였다.

    “강진현 헌터가 뭘 어지럽히거나 망가뜨릴 수도 있어요. 좀…… 자주.”

    “예에.”

    최근의 만남을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았다. 희나가 왜 그러냐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김화순이 호호 웃었다.

    “그런데 우리 길드 이미지란 게 있잖아. 강진현 헌터가 우리 길드 얼굴 같은 사람이라…… 이런 건 밖에 가서 얘기하면 안 되는 것 알죠? 명예 훼손, 이런 게 걸릴 수도 있어요.”

    온화한 목소리지만 뼈가 있었다. 입 잘못 놀리다 걸리면 뼈도 못 추릴 거라는 경고였다.

    “예. 조심하겠습니다. 저, 밖에 나가서 일 얘기 잘 안 해요.”

    “잘됐네요. 청소 다니다 보면 온갖 소문 많이 주워들어요. 그래서 특별히 입조심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거든요. 직전에 퇴사한 팀원도 그것 때문에 회사 나가게 됐으니까. 희나 씨도 조심해요.”

    “옙!”

    희나는 이 회사에선 귀가 안 들리는 것처럼 생활해야지, 하고 결심했다.

    * * *

    [청룡 길드 인트라넷 – 사내 익명 게시판 – 바른 말, 고운 말을 사용합시다^^]

    [검색어: 5층 휴게실]

    […… (결과 검색 중) ……]

    [‘5층 휴게실’에 관련한 게시글/댓글이 모두 검색되었습니다. 일부 표현이 생략된 게시글까지 검색합니다.]

    [제목: 오늘 ㅅㄹ 때문에 미칠 것 같어…….]

    내용: 어쩐지 어제 기분 ♪♩♬(바른 말, 고운 말을 사용합시다^^) ㅈㄴ 거지 같다 했어.

    오늘 아침회의 끝나고 화장실 가니까 딱 터져 있는 것 있지?

    근데 당장 내일까지 마감해야 하는 작업 있어서 GG 치지도 못하고ㅡㅡ...

    ♪♩♬ ♬♪(바른 말, 고운 말을 사용합시다^^)..

    (댓글)

    - 끔찍.. 거기다 오늘 비도 왔잖아. 찝찝했겠다. 약은 먹었음?

    └ 의무실 가서 상비약 타다 먹음ㅠ 근데 약빨 겁나 안 들어... 제대로 된 약은 맞긴 한 거임? 의무실 약빨 진짜 의문..

    └ 휴게실 가서 30분이라도 누워 있어ㅡㅜ 5층 여휴ㅜ

    └ 그럴까봐ㅠ 밥 벌어먹고 살기 ♪♩♬(바른 말, 고운 말을 사용합시다^^) 고되다 씨이이이이이이! 애매한 필터 처리 거지같네!!

    └ 사우여 힘을 내오ㅠ ♩♬♪(바른 말, 고운 말을 사용합시다^^)같은 필터 기능..

    [제목: 5층 휴게실 = 꿀잠 스팟]

    내용: 5층 휴게실에서 살고 싶다. 우리집 침대보다 아늑해..

    (댓글)

    - ㅇㅈㅇㅈ 요새 회사 점심시간 5휴에서 낮잠 자는 낙으로 옴. 머리만 대면 꿀잠이야

    - (((간증))) 지난번에 생리때매 죽을뻔했는데 여기서 30분 자고 싹 나아서 옴.

    └ 그건 좀 많이 간듯ㅋ. 약빨이 돌았겠지ㅋㅋ

    └ 진짜임. 내 후배도 몸 안 좋을 때 여기서 재워 봤는데 싹 나음!!! 반박하지 마라

    └ 이건 나도 동의222222222 감기 기운 있을 때 5휴에서 자고 일어나면 똑 떨어짐.

    └ 님들 아플 땐 원래 뭐다? 누워서 쉬면 다 낫는 거다~ 5휴가 특별한 게 아니다~ ㅇㅋ?

    └ 근데 그거랑 ㄹㅇ 느낌이 다르다니까?!

    [제목: 야 5층 일반인 휴게실에 버프 효과 있는 거 아냐?]

    내용: 지난번에 헌터 휴게실 다 차서 5층 휴게실 갔거든ㅇㅇ..

    야 근데 5층 휴게실 개깨끗하고 좋더라. 리모델링했는지 ♪♩♬(바른 말, 고운 말을 사용합시다^^) 깨끗해서 깜짝 놀람ㅇㅇ

    그래서 좀 빡쳤음.ㅋ

    우리가 벌어 오는 돈이 얼만데 헌터 휴게실에 더 신경 써 줘야 하는 거 아님?

    암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비어 있는 침대 아무 데나 누웠더니 시스템 알람이 뜸.

    뭐라고 떴냐면 ‘님이 누워 있는 침대가 안락해서 회복 속도가 20% 증가함’ 이렇게 뜸. 진짜로!

    이상해서 다른 침대에도 다 누워 봤는데

    전부다 그 알람이 뜨더라ㅋㅋㅋ

    야, 근데 5층 일반인들밖에 안 쓰는데 왜 비싼 회복 버프템을 가져다 둠?

    ♪♩♬(바른 말, 고운 말을 사용합시다^^) ♩♪♬♩(바른 말, 고운 말을 사용합시다^^) 어이없어서ㅇㅇ...

    물어보니까 일반 사원들한텐 이미 유명하다더라. 꿀잠 스팟이라나ㅋ

    꿀잠은 무슨...ㅋ 회복 버프다 이것들아

    (댓글)

    - 뭐임? 헌터 휴게실엔 구린 침대 가져다 두고 회복 버프 필요도 없는 일반 휴게실에 왜 템을 넣어 둠? 당장 바꿔야 하는 거 아님?

    └ 참신한 주작 응 감사요ㅎㅎ

    └ 야 니들이 다 돈 벌어 오고 그러는 거 같지? 우리가 일 안 해다 주면 서류 처리도 못 할 인간들이 맨날 지네만 돈 버는 줄 알고 있어ㅡㅡ 너네도 우리 없으면 돈 못 벌어 ♪♩♬(바른 말, 고운 말을 사용합시다^^)들아ㅋㅋ

    - 나도 가 봐야지 궁금쓰

    - 야 왜 이런 걸로 또 싸우고 있냐 헌터 비헌터로 편 갈라서 싸우지 좀 말자 지겹다 지겨워

    - 궁금해서 방금 가 봤는데 진짜 회복 버프 창 뜬다 ㄹㅇ임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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