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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3화 (13/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3화

    “아하. 그때 나도 모르게 스킬이 발동했구나. 근데 왜 점수가 마이너스야? 벌레가 아닌 달팽이를 때려서 그런가? 근데 집에서 나오면 결국 둘 다 비슷한 거 아닌가?”

    희나의 중얼거림에 오색이는 몸체가 새빨개질 정도로 흥분해서 와르르 메시지를 쏟아 냈다.

    「무엄! 본인 ≠ 단순 달팽이!」

    「본인 = 주택 관리자! 주택의 요정!」

    「주택 관리자 폭행, 벌점 부과 요인!」

    희나는 삐뽀삐뽀 안테나를 흔들며 노발대발하는 작은 달팽이에게 사과했다. 진땀이 다 나왔다.

    “미안해, 오색아. 내가 실언을, 아니, 망언을 했네. 내가 정말 나빴어. 처음에 널 때린 건 정말 잘못한 일이야. 세상에서 껍데기가 제일 멋지고 귀여운 오색이를 보지도 않고 날려 버릴 생각을 하다니! 숙련도가 100이나 깎일 정도로 엄청나게 큰 잘못이지. 맞지?”

    희나는 먹던 치킨까지 내려놓고 바닥에 착 달라붙어 오색이를 달랬다.

    그러자 오색이는 잔뜩 의기양양해져서 외쳤다.

    「큰 잘못! 가중 처벌 필요!」

    그와 동시에 누렇던 벽지가 화려한 장미 꽃무늬로 뿅 하고 변했다. 거의 안구 테러에 가까운 벽지 문양에 희나는 질겁했다.

    “악! 내 집! 이게 무슨 짓이야!”

    「눈 → 눈, 이 → 이.」

    대충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소리 같았다. 희나는 두 눈을 손가락으로 가리며 소리쳤다.

    “너, 그 이상한 축약 화살표 좀 그만 써 줄래?”

    「∴폭행 → 복수! (*∴ 그러므로)」

    하지만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한 오색이를 말릴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었다.

    벽지가 시뻘건 장미 꽃무늬로 변한 것에 이어, 싱크대에도 색색의 꽃무늬가 뿅뿅뿅 생겼다.

    한쪽 문에는 꽃 대신 웃고 있는 달과 별, 돌고래 무늬가 찍혔다. 그리고 신발장 옆에는 올록볼록한 벽돌 모양 엠보싱 벽지도 발렸다.

    도무지 의도를 알 수 없어서 더 끔찍한 인테리어였다.

    희나는 반쯤 넋 나간 채로 울부짖었다.

    “엉엉, 오색아. 폭력은 정말 나쁜 행위야.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내 집을 더는 망치지 말아줘!”

    작은 달팽이가 진정한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였다. 다행스럽게도 이 반달리즘(?)은 벽지와 싱크대 무늬 변화 정도로 끝났다.

    만약 여기서 올드한 체리 몰딩까지 추가되었다면 희나는 정말로 울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으, 이거 어떻게 해! 잠자다가 꽃에 눌려 죽는 꿈 꾸겠어!”

    누리끼리하고 시커먼 곰팡이 벽지가 그리워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지금 집의 상태는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이었다. 이래서 사람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중요했다.

    “오색아, 이거 되돌려 주면 안 돼? 내가 진짜 미안해.”

    희나는 오색이를 붙잡고 애원했다.

    「…….」

    그러나 오색이는 허공에 말줄임표만 쳐 댔다. 침묵했다는 의미다.

    “오색아? 응?”

    「…….」

    “위대한 주택 관리자이자 주택의 요정이신 오색 선생님! 제 소원 좀 들어주세요!”

    희나의 부탁에 마침내 오색이가 입을 열었다.

    「……불가.」

    “왜? 내 사과가 진실하지 못한 것 같아? 아니야. 나 진짜 진심이야. 미안해.”

    「……본인 능력으로 불가능.」

    어쩐지 서늘한 기운이 등골을 스쳤다.

    “뭐, 뭐가 네 능력으로 불가능하다는 거야?”

    오색이의 두 안테나가 빙빙 꼬였다. 이 달팽이 또한 무언가 찔려 하고 있었다.

    희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온화하게 물었다.

    “오색아, 얘기해 봐. 뭐가 안 된다는 거지?”

    「ㅂㅗㄱㄱㅜ…….」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 읽은 희나가 무어라 입을 열려 하는 순간이었다.

    오래간만에 시스템 창이 일을 했다.

    “인테리어?”

    희나의 의문에 퀘스트 설명이 이어졌다.

    <도전! 인테리어!(난이도 미정): 끔찍한 인테리어에서 벗어나고 싶으신가요? 아늑한 나만의 공간을 가꾸고 싶으신가요? 셀프 인테리어에 도전하세요.

    ▶ 필수 퀘스트 (0/3)

    - 쓸데없는 벽지 뜯어내기 (0/100%)

    - 벽 컬러 바꾸기 (0/100%)

    - 싱크대 컬러 바꾸기 (0/100%)

    ※ 시간제한: 없음

    ※ 퀘스트 불이행 시 불이익: 심미적으로 고통스러운 주거 생활이 지속됩니다.

    ※ 퀘스트 보상: ‘홈 스위트 홈’ 스킬 레벨 업!

    ▶ 부가 퀘스트 (0/n)

    ※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완료 시 추가 보상 지급>

    묘하게 구체적이면서도 자유로운 퀘스트였다.

    퀘스트는 각성자마다 랜덤하게 주어지는 숙제 같은 거였다. 대체로 각성자의 능력에 맞게 주어졌으며, 시간제한이 있었다.

    그리고 퀘스트는 깨지 못했을 때 능력치 감소나 아이템 상실 등의 엄청난 불이익이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깨야만 하는 것이 많았다.

    대신, 퀘스트를 완료했을 때 받는 아이템이나 능력치 상승은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그렇기에 많은 능력자들은 내심 이 퀘스트라는 것이 뜨기를 원했다.

    그런 퀘스트가 희나에게 처음으로 주어졌다. 그건 바로 끔찍해진 원룸의 인테리어를 적어도 볼만하게 되돌리는 것!

    다행스럽게도 시간제한은 없었다.

    희나는 조잡한 방구석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이런 데에서 살 수는 없어. 퀘스트고 나발이고, 방을 좀 고쳐야 해.”

    희나는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고생을 참 많이 했다. 덕분에 어지간한 집에는 익숙했다.

    “……하지만 이런 집은 아니야.”

    희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살면서 이렇게 촌스러운 데다, 정신없고 머리 아픈 인테리어는 처음이었다. 정말로 대책이 필요했다.

    「……퀘스트. 본인 덕분.」

    옆에서 오색이가 작은 폰트로 변명하듯 자기의 공을 치켜세웠다.

    “조용히 해, 오색아. 나도 잘한 것 없지만, 너도 잘한 것 없는 거 알지?”

    「…….」

    하지만 희나의 한마디에 금방 조용해졌다. 이 달팽이를 닮은 집요정에게 미적 감각이라는 게 있다면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충분히 알고 있을 테니.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인데, 그 전에 일을 해치워야겠지?”

    남은 날짜를 손가락으로 세며 중얼거렸다. 오늘이 화요일이니, 시간이 대충 일주일쯤은 남은 셈이었다.

    “어차피 벽지 곰팡이도 제거하고, 기본적인 세간살이는 마련하려고 했으니까……. 겸사겸사 하는 거라고 치자.”

    희나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어쨌든 집 꼴이 엉망이 되었지, 집이 사라진 건 아니니까 다행이라고.

    “그럼 저 벽지부터 해결해 볼까……?”

    알록달록한 꽃무늬가 수놓인 벽지에는 여전히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희나는 인벤토리 창을 열어 레벨 업 기념으로 받은 ‘곰팡이 박멸액(A)’을 꺼냈다. 꺼내야겠다고 생각하자마자 척, 하고 손에 잡히는 게 신기했다.

    ‘그냥 일반 물품들도 인벤토리에 보관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긴, 그건 너무 사기지?’

    인벤토리에는 시스템이 지급하거나 던전에서 나온, 혹은 던전 부산물로 만든 물건들만 보관 가능했다.

    이처럼 일반인들이 쓰는 물건들은 넣을 수 없으니, 인벤토리에 보관할 수 있는 물건의 종류는 몹시 한정적이었다.

    무기라든가 포션, 매직 스크롤, 몬스터 사체에서 나온 마석 등등……. 대체로 엄청나게 비싼 것들밖에 없었다.

    아무튼, 곰팡이 박멸액 또한 시스템이 지급한 물건이었기 때문에 인벤토리에 저장이 가능했다.

    “일어선 김에 효과를 좀 볼까?”

    희나는 좀 더 확실한 박멸액 효과를 보기 위해 앞치마와 머릿수건까지 장착했다. 어쨌든 곰팡이 박멸액을 쓰는 데도 ‘야무진 손끝’ 스킬은 패시브로 적용되는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시스템이 착장 어드밴티지를 알렸다.

    희나는 청소 도구함을 열어 마스크를 찾아 썼다. 냄새가 독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박멸액 때문에 오색이에게 피해가 갈까 봐 오색이를 수건으로 둘둘 말아 화장실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절대 화풀이가 아니었다. 걱정 때문이었다. 정말이었다.

    분홍색 고무장갑까지 장착한 희나는 한가득 곰팡이가 슬어 있는 벽 한 면에 ‘곰팡이 박멸액(A)’을 분사했다.

    치이이, 소리와 함께 흰 분무가 뿜어져 나왔다.

    ※ 주의 사항: 인체에 유해하니 15분 후 반드시 환기를 해 주세요.>

    친절한 시스템 창은 곰팡이 박멸액의 사용법까지 일러 주었다.

    희나는 나머지 벽면에도 곰팡이 박멸액을 칙칙 뿌리고는 집 밖에 나가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다.

    ‘어느 곳에 가야겠다’라고 생각하며 문을 여는 평소와는 달리, 이번에는 구체적인 장소를 생각하지 않은 채였다.

    철컥, 쇠로 만든 문고리를 돌리자마자 문틈으로 밝은 빛이 새어 들어왔다. 도시의 햇빛이라기엔 맑게 느껴지는 햇살이었다.

    “……어?”

    문밖으로 나선 희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눈을 몇 번이고 비벼도 시야에 보이는 건 여전했다.

    “뭐야, 이거?”

    그랬다. 희나는 지금 백사장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다만 보통의 바닷가라고 하기에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끼요오오오옷! 끼요요오옥!]

    [캿캿캿! 캿캿!]

    창공에 갈매기가 아닌, 몬스터들이 뛰놀고 있다는 점이랄까.

    “여긴…….”

    그랬다. 이곳은 던전이었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던지, 지식팡팡에 물어보고 싶기까지 했다.

    Q. 생각만 하면 어디든 갈 수 있으니 땡잡았다고 생각한 집이 알고 보니까 던세권이었어요. 어떻게 하지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A. 부동산 사기당하셨네요. 그런데 집이 거기밖에 없으면, 살아야지요. 어떻게 하겠어요?

    “이게 뭐람?”

    그렇게 희나는 한참 동안 끼욧거리는 비행 몬스터들을 올려다보았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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