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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2화 (12/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2화

    어쩐지 길 가는 도중 모든 사람이 우민아에게 아는 척하긴 했다.

    원체 털털한 성격 때문일까, 희나는 그게 우민아의 성격이 좋아서 그런 줄 알았지,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라곤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랭크도 높고, 사람들을 아우르고 통솔하는 능력이 뛰어나니까요. 의외입니까?”

    “아니요. 다만 강진현 헌터가 제일 랭크가 높으니까 총괄팀장이라고 하면 그분이실 것 같았거든요.”

    순순한 대답에 인사팀장이 피식 웃었다.

    “물론 무력도 던전 공략의 난이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팩터이긴 합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한 팀으로 진입하는 던전 공략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팀워크고, 리더의 상황 판단 능력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민아 총괄팀장은 좋은 리더라고 할 수 있지요.”

    “와…….”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고기를 씹고 있던 사람이 이렇게 대단한 인물일 줄이야. 인사팀장의 극찬에 희나는 감탄했다.

    ‘내가 진짜 라인 잘 탔나 봐.’

    처음으로 권력이란 동아줄에 가까워진 걸 신기해하던 중이었다.

    인사팀장이 고개를 한 번 까딱이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그럼 이희나 씨.”

    “넵!”

    희나는 빠릿빠릿하게 대답했다.

    그는 희나의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물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실 수 있겠습니까?”

    “예? 네, 네! 가능합니다.”

    급작스러운 합격 통보에 희나는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청소 직원 뽑는 자리라서 그런지, 큰 논의 없이 인사팀장의 말 한마디에 채용이 된 것 같았다. 적어도 희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이곳으로 오시면 됩니다. 간단한 안내와 함께 업무 인수인계가 있을 예정입니다.”

    인사팀장은 깨끗해진 구두를 신고 면접장을 나서는 희나에게 한마디 더 덧붙였다.

    “우리 청룡 길드는 이희나 씨 같은 인재를 영입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민망할 정도의 금칠에 희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희나는 감사하다며 고개를 연신 굽신거리며 자리를 떴다.

    면접실 문을 닫고, 한적한 복도를 걸으며 희나는 휴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 때문은 아니었다. 홀가분했기 때문이다.

    ‘취업을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거였다니.’

    순식간에 좋은 일자리를 얻었다. 반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래서 인맥이 최고라고 하는구나. 낙하산, 낙하산 하는 이유가 다 있어.’

    살면서 그런 혜택을 누려 볼 일은 없다고 생각했건만, 최초로 맛본 인맥의 맛은 아주 달콤하다 못해 짜릿했다.

    ‘정규직에, 이전 직장보다 더 높은 월급에, 훨씬 이름 있는 회사로 이직이라니.’

    물론 데스크 업무에서 청소 업무라는 직종 변경이 있었지만, 잘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았다.

    희나의 각성 클래스는 살림꾼이었다. 청소할수록 경험치가 쌓여 랭크를 올릴 수 있었다.

    ‘아직 이 능력으로 무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랭크는 높을수록 좋다고 했어.’

    먼 훗날, 이 능력 또한 쓸 일이 있으리라.

    희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청룡 길드를 나섰다.

    * * *

    희나는 나간 김에 면접에, 각성자 등록까지 해치웠다.

    각성자들은 각성 한 달 이내로 각성 사실을 신고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최대 2천만 원이라는 무서운 벌금이 부과되었다.

    위험할 수 있는 이능력자들을 파악해 두기 위한 정책이었다.

    물론 거기에 희나는 전혀 포함이 안 됐다. 일단 등급이 D등급이었고, 헌터로 활동 불가능한 능력만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희나의 각성자 등록은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오늘 저녁은 치킨이다!”

    희나는 룰루랄라 근처 치킨집에서 치킨을 산 후, 귀가했다.

    벽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집 현관문을 불러올 수 있는 능력은 다 좋았지만, 배달 음식을 시키기 어렵다는 게 단점이었다.

    ‘그래도 월세 한 푼 안 나가는 공짜 집이니까. 이 정도는 감지덕지해야지.’

    더불어 강제로 배달 음식을 줄이게 되어서 식비 절감 효과가 있을 거란 사실도 마음에 들었다. 희나는 은근 짠순이였다.

    희나는 손에 통닭 봉투를 대롱대롱 매달고선 현관에 들어왔다.

    “오색아, 치킨 왔다!”

    「이틀 연속 음주, 태도 불량.」

    작은 달팽이는 희나의 행동이 술 취한 것 같다며 지적했다.

    “나 대기업 취업뽕에 취한 것 같아.”

    희나는 국가가 허락한 수많은 마약 중 하나에 취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달팽이가 안테나 두 개를 절레절레 휘저었다.

    희나는 면접용 정장에서 추리닝으로 후다닥 갈아입고 손을 씻고 나왔다. 그리고 치킨을 마주할 준비를 했다. 온종일 먹은 게 없어서 배가 고팠다.

    “얼마 만의 치킨이야?”

    비록 작은 소반 하나 없어서 바닥에 치킨을 늘어놓아야만 했지만, 진심으로 행복했다.

    집은 청소해서 깨끗해졌고, 등은 따숩고, 좋은 곳에 취직해서 미래 걱정도 없다. 거기다 코앞에 치킨까지 있으니 이곳이 바로 천국이었다.

    “오빠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희나는 닭 다리 두 개를 양손으로 집으며 오빠를 생각했다. 오빠가 있었다면 한 개씩 나누어 먹었을 것이다.

    “오빤 이번엔 대체 어딜 갔길래 아직도 연락이 안 되는 거야?”

    던전 게이트에서 빠져나오고도 벌써 닷새가 지났다. 그리고 오빠는 희나가 각성하기 일주일 전 집을 비웠다. 총 열흘하고도 이틀 동안 연락이 안 되고 있었다.

    “헌터 일들이 다 그렇긴 하지만, 지금 집도 없어진 판국에 걱정되게…….”

    희나는 닭 다리 두 개를 번갈아 뜯으며 투덜거렸다.

    던전을 공략하는 데는 시간이 꽤 많이 필요했다. 물론 쉬운 곳은 하루 만에도 공략할 수 있었지만, 등급이 높은 던전은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희나의 오빠도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까지도 연락이 안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자기 몸이야 잘 건사하겠지만, 그래도.’

    처음에야 오빠가 죽어 버리지는 않을지 마음 졸였지만, 이제는 안다.

    오빠도 희나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동생이 걱정할까 봐, 최대한 다치지 않고 돌아오기 위해 애썼다.

    자기까지 없어지면 희나는 완전히 혼자가 되어 버릴 테니까.

    “어휴. 알아서 잘 지내고 있겠지. 던전 밖으로 나오면 연락도 될 거고.”

    자기 동생이 살림꾼이라는 희한한 클래스로 각성했다는 걸 들으면 오빠는 어떤 표정을 할지 궁금했다.

    ‘아마 좋아하겠지?’

    내 집 마련의 꿈을 단번에 이루어 주는 스킬이 붙어 있으니까, 환영할 것 같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갑자기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오색아, 여기에 다른 사람들도 데려올 수 있어?”

    사실 생각해 보면 진작 떠올려야 했을 물음이었다. 갑작스럽게 생긴 더러운 집이니, 취직이니, 각성자 등록이니 하는 일들 때문에 거기까지 생각이 채 미치지 못했다.

    공짜 집이 생겼다고 한들, 이 집에 오빠가 못 들어온다면 아무 쓸모가 없었다.

    「가족, 손님, 입주 및 초대 가능.」

    다행스럽게도 오색이는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희나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다. 나랑 친분이 있으면 들어올 수 있구나.”

    희나는 금세 기분이 좋아져 나머지 오돌뼈를 오독오독 씹어 먹었다. 고소하고 맛있었다.

    기름진 튀김을 음미하며 희나는 상태 창을 열어 여태까지 사용한 스킬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나물 뜯기’ 스킬을 제외하고는 모두 D랭크였다.

    <안락한 침상(D): 다른 존재의 방해를 받지 않고 안전하고 조용하게 휴식을 누릴 수 있도록 안락한 침상을 만든다. 액티브 스킬. (현재 숙련도 41/1000)>

    <나물 뜯기(C): 식용 가능한 나물을 구분해 뜯을 수 있다. 패시브 스킬. (현재 숙련도 33/2000)>

    <홈 스위트 홈(D): 스킬 시전자에게 집을 제공한다. 액티브 스킬. (현재 상태: ‘낡은 기본형 원룸’ Lv. 5)>

    <해충 박멸(D): 가내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를 퇴치한다. 액티브 스킬. (현재 숙련도 –100/1000)>

    <야무진 손끝(D): 야무진 솜씨로 모두에게 만족감을 부여한다. 패시브 스킬. (현재 숙련도 574/1000)>

    <이 맛이 바로 손맛(D): 최고의 MSG를 맛보게 해 준다. 그것은 바로 손맛. 액티브 스킬. (현재 숙련도 336/1000)>

    <밥심(D): 체력은 곧 밥심에서 나온다. 고갈된 체력을 쌀이 섞인 음식으로 회복한다. 패시브 스킬. (현재 숙련도 23/1000)>

    잘 살펴보니, 그동안은 미처 못 봤던 숙련도 항목까지 떴다. 희나의 생각보다 높은 것도 있었고, 낮은 것도 있었다.

    특히 ‘야무진 손끝’의 숙련도가 생각보다 높았다.

    “패시브 스킬이라서 그럴까? 청소만 한 것치고는 높은데, 다른 스킬을 시전할 때도 적용되나 봐.”

    어제 주구장창 고기를 구웠던 걸 생각하면 숙련도가 많이 올라 있는 게 설명이 됐다.

    하지만 잘한 것보다는 못한 게 더 눈에 밟히는 법.

    희나의 눈길을 가장 많이 끈 건 ‘해충 박멸’ 스킬의 숙련도였다.

    “해충 박멸은 왜 숙련도가 마이너스야? 그것도 –100이나 되잖아!”

    사실 이 스킬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썼는지 기억도 안 났다.

    “이건 대체 뭐지?”

    의아해하며 스킬 창을 살피는 희나의 눈앞에 신경질적인 메시지가 떴다.

    「고약한 기억력! 오색 폭행 기억 삭제? 악행 규탄!」

    오색이가 안테나 두 개를 뿔처럼 세우고 희나의 무릎을 쿵쿵 쳤다. 안타깝게도 너무나 미약한 감촉이라 간지러움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프지 않은 걸 표 내면 오색이가 더 화를 낼 것 같았으므로 희나는 아야, 아야, 하고 아픈 척을 했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오색 폭행 기억 삭제라니? 너를 폭행한 기억을 삭제했냐고? 내가 너같이 작고 귀여운 달팽이를 언제 때린 적이 있……구나.”

    뒤늦게 강렬한 첫 만남의 기억이 떠올랐다. 바닥에서 솟아오른 작은 달팽이를 보고 벌레인 줄 알고 후려쳐 버린 전적이 있었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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