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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1화 (11/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1화

    “언니, 되게 유명한가 봐요.”

    희나가 귓가에 대고 속닥거리자, 우민아도 희나를 따라 소곤소곤 말했다.

    “내가 좀 유명해.”

    우민아는 장난스러운 몇 마디를 남기고 이제 다 왔다며 손을 흔들었다.

    “저기로 가면 인사팀장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면접 잘하고.”

    “고마워요, 민아 언니.”

    “뭘. 나는 오늘 일이 있어서 같이 밥은 못 먹겠다. 그래도 끝나면 연락해.”

    우민아는 정말로 일이 있는지 빠르게 사라졌다.

    희나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언니가 힘들게 자리까지 마련해 줬는데, 얼굴에 먹칠하지 않게 면접 잘 봐야지.’

    희나는 주먹을 콱 쥐고는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대망의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으악!”

    희나는 헐러덩 하고 벗겨져 버린 구두 때문에 놀라 꺅 하고 작게 소리 질렀다.

    “뭐, 뭐야?”

    한쪽 발로 깡총대며 벗겨진 구두를 살펴보니, 구두 굽 끝에 뭔가 진득한 게 붙어 있었다. 껌 같아 보였다.

    “누가 이런 걸 복도에 뱉어 놨담?”

    투덜거리며 신발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어?”

    이상한 일이었다.

    마치 순간접착제로 붙여 놓은 것처럼 구두가 바닥에서 딱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서 낑낑 달라붙어도 안 됐다.

    ‘헉, 어쩌지?’

    희나는 몹시 당황했다.

    손목시계를 보니 아직 면접 시간까지는 15분가량이 남았다. 하지만 구두는 그 안에 떨어질 것 같지가 않았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집 불러낸 다음에 구두 매장에서 신발 하나 사서 신고 나올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구두가 붙었습니까?”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깜짝이야!”

    희나는 깜짝 놀라서 제자리에서 뛰어오를 뻔했다.

    애써 평정을 가장하며 뒤를 돌아보니, 의외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슬라임 진액에 달라붙은 거라,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잘생기고 차가운 낯을 가진 남자, S급 헌터 강진현이었다.

    하지만 희나에게 자기 앞에 S급 헌터가 있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잠깐이긴 했지만 일단 구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면접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헉, 어떻게 하죠? 저 조금 있다가 면접 있는데.”

    “음…….”

    안절부절못하는 희나의 모습에 강진현이 침음성을 내뱉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희나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구두를 쥐었다. 그의 커다란 손안에 잡힌 구두는 본래 크기보다 훨씬 작아 보였다.

    그리고 강진현은 손에 힘을 주어 구두를 잡아당겼다.

    우둑, 우두둑, 하는 소리가 울렸다. 끈적끈적한 것에 붙은 구두를 떼어 내는 소리라기에는 조금 과격했다.

    ‘헉.’

    희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지 않으면 비명을 지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어떻게 딱딱한 바닥이 부서질 수가 있지?’

    그랬다. 희나의 구두는 무사히 구출되었다.

    하지만 뒷굽과 앞굽에 달갑지 않은 손님을 매단 채였는데, 그건 바로 바닥에서 떨어져 나온 돌 조각이었다.

    분명히 바닥과 구두의 내구도를 비교하면 구두가 훨씬 낮을 텐데, 어떻게 돌바닥이 부서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것 또한 S급 헌터가 부린 현란한 스킬인 것일까?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스, 슬라임 진액이란 게 접착력이 굉장한가 보네요…….”

    희나는 잠시 할 말을 찾다가 슬라임 진액의 접착력을 칭찬했다.

    한편, 강진현은 자기 손에 든 작은 구두를 계속 내려다보았다.

    희나는 어쩔 줄 모르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면접 시간은 거의 다 됐고, 구두에는 돌덩이가 붙어 훌쩍 키가 커져 버렸다.

    ‘이대로 두고 가 버려야 하나?’

    당혹감에 도망까지 염두에 두고 있을 때였다.

    “이희나 씨, 면접 들어오십……. 이게 무슨 일입니까?”

    면접실 문이 열리며 양복을 잘 차려입은 남자가 나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황상 우민아가 말했던 인사팀장이 분명했다.

    “아, 그게……”

    희나는 급하게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인사팀장이 입을 여는 게 먼저였다.

    “강진현 헌터, 사내 기물 파손은 이번에도 개인 경비에서 제하도록 하겠습니다.”

    놀랍게도 아주 익숙한 듯한 어조였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강진현의 손에서 희나의 구두를 낚아채곤, 그 상태를 살폈다.

    “이희나 씨는…… 신발이 필요해 보이네요. 슬리퍼를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희나는 강진현을 편들어 주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그는 희나를 도와주려고 하다가 바닥을 박살 낸 것이었으니까…….

    “저기, 인사팀장님. 강진현 헌터님께서는 저를 도와주시려고 하다 이렇게…… 어, 이렇게 된 건데, 기물 파손 책임까지 지시는 건 조금 과한 처분 아닐까요?”

    비록 잘못된 결과가 나긴 했지만, 어쨌든 은혜는 갚아야 했다. 희나는 또박또박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말했다.

    그러자 인사팀장이 희나에게 돌덩이가 붙은 구두 한 짝을 건네며 말했다.

    “아마 저 슬라임 진액도 자기가 흘린 걸 겁니다. 안 그러면 도와주려고 했을 리 없죠. 그렇지 않습니까, 강진현 헌터?”

    그 충격적인 소리에 희나는 휙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방금까지 강진현이 서 있었던 곳에는 그림자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흰 명함 한 장만 딱 올려져 있을 뿐이었다.

    “보상이 필요하시면 이 번호로 연락하면 되실 겁니다.”

    인사팀장은 허리를 굽혀 명함을 주워 들어 희나에게 건넸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는지, 당황이라곤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엄청 자연스럽네.’

    희나는 우리나라 헌터 제1위이자 S급 능력자인 강진현이 의외로 길드 내에서 사고뭉치 역할을 맡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슬리퍼로 갈아 신은 희나는 한 손에 구두 한 켤레를 달랑달랑 들고 면접실로 들어갔다. 구두 굽에 돌덩이가 붙어서 제법 묵직했다.

    ‘어쩌지? 급하게 빌린 거라서 물어 줘야 하는데.’

    희나는 힐끔거리며 손가락에 걸린 구두를 내려다보았다.

    그 모습에 강목현 인사팀장이 잠시 생각에 빠진 듯하더니,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순식간에 홀로 남은 희나는 면접실 의자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면접실 한구석에는 정수기와 함께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그 위에는 간단한 티백, 휴지, 물티슈 등이 놓여 있었다.

    희나는 슬그머니 면접실 문을 바라보았다. 인사팀장은 5분에서 10분가량 자리를 비운다고 했으니, 한동안은 돌아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사이에 구두 좀 닦아 볼까?’

    아무래도 상한 신발이 신경 쓰였기에, 살금살금 걸어가 물티슈를 가져왔다.

    “이걸로 닦일 리는 없겠지만……. 닦아 보긴 해야지.”

    희나는 큰 기대 없이 구두 굽에 붙은 진득한 액체를 물티슈로 슥슥 닦아 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

    끈적한 진액이 물티슈에 깨끗하게 제거된 것이다. 아까 바닥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던 진액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이것도 뭔가를 닦고 청소하는 거라서일까, 덩달아 스킬까지 발동했다.

    물티슈 몇 장을 더 뽑아 구두를 문지르자 이내 투둑, 툭 하고 바닥재가 떨어졌다. 희나는 널브러진 돌덩이들을 내려다보았다.

    ‘강진현 헌터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물티슈 몇 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걸 굳이 힘으로 바닥을 뜯어내다니,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게 바로 S급 헌터의 세계란 걸까?

    신기한 눈초리로 손에 든 구두와 바닥을 번갈아 보고 있는데, 면접실 문이 벌컥 열렸다.

    ‘깜짝이야!’

    희나는 앉은 채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 것도 없는데 뭔가 큰 잘못을 하다가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희나 씨?”

    면접실에 들어온 사람은 인사팀장 강목현이었다.

    “아, 예. 팀장님.”

    희나는 조금 쩔쩔매며 진액이 묻은 물티슈를 주섬주섬 치웠다.

    강목현은 그런 희나를 향해 손에 든 것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슬리퍼를 신고 귀가하시긴 힘들 것 같아 임시방편으로 진액 제거제를…….”

    그는 말을 하다가 희나의 손에 든 구두를 보고 말을 멈췄다. 정확히 말하면 잠시 할 말을 잊은 것에 가까웠다.

    ‘내가 뭘 잘못했나?’

    강목현의 눈치를 보고 있을 때였다.

    “구두에 묻은 진액은 어떻게 제거하셨습니까?”

    “이거요? 물티슈로 닦으니까 지워지던데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희나는 어리둥절 대답했다. 그러자 강목현은 자기가 들고 온 물건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액체를 담은 스프레이 통이었다.

    “……슬라임 진액이 특수 용액 없이 물티슈로 지워진다고?”

    마치 큰 문제라도 생긴 듯 무언가 중얼거리기에, 희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

    “그건 전혀 아닙니다. 우선 앉아 볼까요, 이희나 씨.”

    강목현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갑자기 면접 모드로 바뀌어 본격적으로 희나에게 질문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우선, 청소 관련 계열 능력을 각성하셨다고요?”

    희나는 깨끗해진 구두를 바닥에 내려놓고 급히 면접에 응했다.

    “아, 예에. 살림 관련 일인데…….”

    구두를 닦다가 갑자기 시작된 면접은 의외로 별것 없었다. 긴장한 게 의미 없을 정도로 면접은 쉬웠다.

    인사팀장은 희나의 ‘야무진 손끝’ 스킬 외에는 뭔가 더 궁금한 게 없었던 모양이다.

    희나는 인성 면접인 듯한 간단한 질문 몇 가지에 추가로 대답했고, 곧바로 회사와 업무에 대한 소개를 받았다.

    ‘원래 길드 면접은 보통 회사 면접이랑 다른가?’

    급발진에 가까운 진행에 당혹하고 있을 때쯤, 희나는 의외의 사실을 전해 들었다.

    “……민아 언니, 아니, 우민아 헌터님이 던전 공략팀 총괄팀장이라고요?”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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