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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0화 (10/228)

던전 안의 살림꾼 10화

우민아는 희나의 ‘홈 스위트 홈’ 스킬을 듣고 엄청나게 놀랐다. ‘집’이라는 공간을 제공하는 스킬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이건 정말로 대단한 스킬이야. 네가 말한 것처럼 평범하고 안전하게 살고 싶으면 남한테는 절대 이야기하지 마. 네가 위험할 수 있어.”

“그래요?”

별생각 없이 공짜 집을 받았던 터라, 희나는 우민아의 진지한 태도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민아는 그런 희나에게 당부하듯 이야기했다.

“외부 물건도 들이고 내갈 수 있다면서?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당해서 밀수용 셔틀로 이용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 스탯은 낮아서 자기 방어 능력은 낮은데 특이한 스킬을 가지고 있다니, 나쁜 마음 먹은 사람들이 접근하면 너 진짜 큰일 나.”

“헉.”

듣고 보니 그랬다. 희나는 우민아의 말대로 앞으로 ‘홈 스위트 홈’ 스킬을 남에게 이야기하지 않기로 속으로 맹세했다.

능력의 위험성을 지적해 준 것과는 별개로, 우민아는 휴대전화로 찍은 원룸의 첫 상태 사진을 보고 경악했다.

“뭐야, 이 줘도 안 살 것 같은 집은?”

“어, 언니. 아까는 제 능력이 위험할 수도 있다면서요?”

“그건 그거고, 이건 너무 더럽잖아!”

부정할 수 없는 팩트였다.

“맞아요. 그래서 2박 3일 동안 집 청소만 했어요. 오늘 언니한테 연락하기 직전에 막 끝냈고요.”

“이런 집이 청소한다고 나아지긴 해?”

우민아는 회의적인 편이었다.

그녀의 태도에 어쩐지 자기 능력을 부정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므로, 희나는 휴대전화 사진첩을 척척 넘겨 청소 직후의 사진을 쭉 보여 주었다.

가만히 사진첩을 들여다보던 우민아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바로 이거였다.

“……그래서 이게 네가 다 청소한 거라고? 아예 다른 집 아냐?”

“아뇨. 제가 다 한 것 맞아요. 이것도 제 스킬의 도움을 받았어요. ‘야무진 손끝’이라고.”

“‘야무진 손끝’은 또 뭐야?”

물음에 희나는 스킬창의 설명을 그대로 읽어 줬다.

“야무진 손끝. D랭크. 야무진 솜씨로 모두에게 만족감을 부여한다. 패시브 스킬……. 이렇게 쓰여 있어요.”

“능력이 청소에 한정되었다기보단 좀 더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것 같네.”

“제 생각도 그래요. 집안일을 전반적으로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스킬인 것 같아요. 기본 솜씨가 좋아진다고 해야 하나?”

“흠. 이런 스킬은 쓸데가 많을 것 같은데. 가사 도우미 같은 건 어때? 네가 찍어 둔 이 사진들 올려 두고 일자리 구하면 꽤 쏠쏠하게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드디어 현실적인 조언이 나왔다. 하지만 희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정시 출근하고 정시 퇴근하는 정규직 회사원이 되고 싶어요. 언니 말에 조금 마음이 혹하긴 했는데, 가사 도우미는 결국 프리랜서나 마찬가지잖아요. 수입이 들쭉날쭉한 것도 너무 불안할 것 같고, 4대 보험 문제도 있고…….”

희나의 오목조목한 대답에 우민아가 혀를 내둘렀다.

“너 정말 극단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이구나. 젊은 애가 도전 의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네.”

“안전한 게 최고예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남이 건너는 걸 본 후에 건너라, 가 제 인생 모토거든요.”

“흠. 돌다리도 그냥 안 건넌다고.”

진지한 대꾸에 우민아는 턱을 괸 채 생각에 빠졌다. 희나는 뒤통수를 긁으며 변명하듯 말했다.

“아무튼, 이런 성격으로는 일반인처럼 사는 게 최고인 것 같죠? 그래서 이곳저곳 회사에 연락해서 다음 일자리 찾아보고 있어요.”

“그건 잘돼 가? 요즘 일자리 찾기 힘들다잖아.”

우민아의 예기치 않은 돌직구에 희나의 심장에 멍이 들었다.

“……아니요. 그, 그래도 시간은 아직 여유로우니까 천천히 찾아보면 돼요. 나름 사회생활 5년이나 했는데, 다음 직장 못 찾겠어요?”

“아직 다음 직장을 물색하는 중인데, 지금 당장 할 일은 없다는 거지?”

상급 헌터 아니랄까 봐, 우민아는 같은 곳을 또 때리는 데에도 능했다. 희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아요. 사실…… 당장 일하고는 싶은데, 일자리가 없는 게 문제죠.”

그러자 우민아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의자를 테이블 가까이 끌어다 앉았다.

그 모습이 어쩐지 비장해 보여서, 희나도 몸을 바로 세워 앉았다.

마침내 우민아가 입술을 한 번 핥더니, 희나에게 제안했다.

“너, 우리 길드에서 일 한번 해 볼래?”

“네?”

상상도 못 했던 제안에 희나는 손부터 내저었다.

“언니, 저 D급이에요. 지난번에 E급 던전에서도 겨우 살아 나왔어요. 체근민 합이 30도 안 되고요, 아까 들으셨다시피 공격 관련 스킬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청룡 길드에 들어가요? 제 능력으로는 들어가고 싶어도 죽어도 못 들어갈 거, 알고 있어요.”

입에서 말이 청산유수로 나왔다. 어쨌든 결론은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도 말라는 거였다.

“푸하하하!”

우민아는 희나의 파랗게 질린 표정을 보고는 크게 웃었다. 그러면서 손사래를 쳤다.

“아까도 말했지만, 길드에 들어간다고 다 헌터가 되는 건 아니야. 길드도 엄연한 회사라고. 회사에 헌터들만 있으면 길드가 유지되겠어? 사무팀도 있고, 관리팀도 있고, 인사팀도 있고, 의외로 평범한 회사랑 다를 거 없어. 연예 기획사 들어간다고 다 연예인 되는 건 아니잖아. 그거랑 같은 거야.”

우민아의 지적에 희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길드에 들어오라고 해서 착각했어요…….”

“그래. 그럼 이제 내 말을 들어 볼 생각이 들어?”

“네에…….”

희나는 얌전히 대답했다. 그 모습에 우민아가 귀엽다는 듯 피식 웃었다.

“얼마 전에 시설 관리부 환경 미화팀 팀원이 한 명 퇴사했거든. 아, 직책이 뭐냐면…… 설명은 좀 복잡한데, 청소 미화원이야.”

“보통 큰 회사 건물은 청소 업체에 비정규직으로 하청 주지 않나요?”

현실적인 지적에 우민아가 대답했다.

“헌터들이 자주 오가는 길드다 보니까 보안 유지 문제도 있고 전문성이 좀 필요한 부분도 있거든. 그래서 따로 팀을 만들어서 관리 중이야.”

그럴싸한 대답이었다. 무엇보다 희나의 귀를 솔깃하게 만든 건 이어진 문장이었다.

“당연히 정규직이고.”

“……정규직이요?”

“월급도 괜찮아. 일이 좀 빡세서 그렇지.”

“얼마 정돈데요?”

“그건 인사과에 물어봐야 하는데 보통 회사원만큼은 벌걸. 인센티브나 초과 수당 받으면 그것보다 더 쏠쏠할 수도 있고. 어때?”

그러면서 우민아는 가끔 나랑 만나서 이렇게 고기도 구워 먹고 술도 마시자며, 슬쩍 본심을 비쳤다.

고기 노예에 대한 탐욕이 불러온 원대한 제안이었다.

“음.”

희나는 고민에 휩싸였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민아의 제안은 꽤 그럴싸해 보였고, 이런 취업 빙하기에 내려온 금동아줄은 잡아 낙하산을 타야 한다는 사실쯤은 명료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제가 그 일을 잘할 수 있을까요?”

“그럼! 내가 보기엔 희나 너는 완전 적격자야!”

그리고 우민아는 어딘가를 향해 전화를 걸더니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야, 우리 지난주쯤에 시설 관리부 한 명 퇴사하지 않았냐? 사람은 찼어? 왜 그러냐고? 아니. 그냥 궁금해서. 내가 괜찮은 애 알고 있거든. 아, 어린 건 좀 별로라고? 아니야. 근데 얘 진짜 일 잘해. 얘가 청소한 거 보내 줄게. 너도 결과물 보면 완전 마음에 들걸. 애도 진짜 착하고 참해. 그래, 그래. 문자로 사진 당장 보내 줄 테니까 괜찮으면 다시 연락 줘.”

통화는 순식간에 끝났다. 우민아는 희나에게 사진을 받아 통화 상대에게 전달하고는, 휴대전화를 탁 하고 내려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전화에 불빛이 들어왔다. 무언가 답장이 온 것 같았다.

희나는 결과가 궁금해 목을 길게 빼고 화면을 힐끔거렸다.

우민아는 피식 웃으며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여 줬다.

[인사팀장 강목현: 괜찮아 보이네. 그래도 대면 면접은 봐야 하니까 날짜 잡아 봐.]

* * *

다음 날, 희나는 급하게 빌려온 단정한 면접용 정장을 입고 커다란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청룡 길드였다.

‘이렇게 급하게 면접을 볼 줄은.’

너무 순식간에 닥친 기회라 긴장도 안 됐다. 취하지도 않았는데, 어제 마신 술이 아직도 안 깬 기분이었으니까.

“고기 굽기의 신! 이희나!”

희나는 자기 이름에 민망한 호칭까지 붙여 쩌렁쩌렁 부르는 소리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야, 여기!”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희나를 사적으로 알고 있는 유일한 길드원인 우민아였다. 그녀는 성큼성큼 건물 밖으로 걸어 나와 희나에게 어깨동무했다.

“어이, 내 동생. 숙취는 없었나 보네. 얼굴이 말끔한 걸 보니.”

도합 두 번을 만난 사이라기엔 굉장히 친밀한 접촉이었지만, 이제 우민아의 성격을 대강 파악한 희나는 그러려니 했다.

우민아는 몹시 털털했고 사람을 대하는 데 스스럼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게 은근히 사람의 호감을 샀다. 성격이 아주 좋은 타입이었다.

“어제 언니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진로 상담해 주시느라 뭘 많이 마시진 않았잖아요.”

“크, 요 착한 입 봐라. 너는 오늘 가서 안녕하세요, 한마디만 해도 합격할 상이다.”

우민아가 크하하 웃으며 희나를 청룡 길드 안으로 인도했다.

초행길이라 면접장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 조금 막막했는데, 우민아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저 마중 나와 주신 거예요?”

“내가 너 소개했는데, 마중 나와 데리고 가는 의리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

“바쁘실 텐데 감사해요.”

희나는 작게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우민아는 별거 아니라며 희나의 어깨를 탁탁 쳤다. 상급 헌터라 그런지 손이 꽤 매웠다.

희나는 아프지 않은 척 애써 웃었다.

우민아는 길드 안에서 유명 인사인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많은 사람의 인사를 시원시원하게 받아넘기며 희나를 면접실까지 데려다주었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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