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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6화 (6/228)
  • 던전 안의 살림꾼 6화

    “우선 방바닥부터 어떻게 좀 해야겠어.”

    희나는 청소용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양손에 잡아 들었다.

    그녀는 지금 신발을 신은 채로 집 안에 들어와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허용할 수 없는 극악무도하기 그지없는 행위였지만, 거부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방바닥이 바깥 흙바닥만큼 더러웠기 때문이다.

    “이 흙더미부터 치워야 바닥을 닦든 말든 하지.”

    본격적인 청소를 위해 머리를 묶어 올리고 마스크를 꼈다.

    마스크를 끼지 않으면 흙먼지에 폐가 먼지투성이가 되어 버릴 것 같았다. 거기다 집 안에서 풍기는 곰팡이 냄새에, 화장실 냄새도 고약했고.

    “아.”

    희나는 고무장갑을 끼려다 잠깐 멈칫했다.

    「실행. 실행. 빠른 실행.」

    그사이를 못 참고 달팽이가 희나를 재촉했다.

    이에 희나는 손을 훠이 저었다. 잠시만 기다리라는 의미였다.

    “잠깐만. 시작하기 전에 사진 좀 찍어 두고 시작하자. 여기가 얼마나 끔찍한 집이었는지는 기록해 둬야 해.”

    거기다 이 정도 더러움이면 아무리 청소해도 티가 잘 안 날 것 같았다.

    처음 상태를 기록해 두면 비교해서 뭔가 나아졌다는 기쁨이라도 얻을 수 있으리라.

    찰칵! 찰칵! 찰칵!

    희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더러운 집 안 꼴을 사진으로 담았다.

    집 안을 자세히 살피니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었다. 화장실을 찍을 때는 헛구역질까지 났다.

    ‘새 휴대전화에 담는 첫 사진이 이런 사진이라니…….’

    희나는 괜히 휴대전화에 미안함을 느꼈다.

    「행동 굼뜸. 빠른 실행! 빠른 실행!」

    물론 사진을 찍는 내내 달팽이는 희나의 뒤를 뽈뽈 쫓아다니면서 ‘빠른 실행’을 외쳐 댔다.

    희나의 끈기 스탯은 20이었는데, 달팽이의 끈기 스탯은 100 정도 되는 게 분명했다.

    “알았어, 알았어. 이제 정말로 시작할게.”

    희나는 허리를 굽혀 은근슬쩍 달팽이의 통통한 머리통을 쓰다듬으려 했다.

    하지만 달팽이는 희나의 손이 닿기 전에 머리를 껍데기 안으로 쏙 집어넣어 버렸다.

    ‘쳇.’

    눈치 좋은 녀석이었다.

    실패를 아쉬워하며 고무장갑을 꺼내 꼈다. 그리고 청소할 준비를 하는데, 옆에서 달팽이가 안테나를 삐뽀삐뽀 움직였다.

    “왜? 네가 하자는 대로 빠른 실행 하려고 하는데.”

    그러자 달팽이가 희나의 시야에 엄격한 폰트를 띄웠다. 궁서체였다. 진지했다.

    「기본 착장 미흡.」

    “기본 착장?”

    「살림꾼 기본 착장. 머릿수건. 앞치마. 그 외 선택적 추가 아이템. 마스크. 장갑.」

    달팽이의 요구에 희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청소 시작하는 데 별게 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나는 순순히 달팽이의 지시를 따랐다. 어쨌든 이곳의 ‘주택 관리자’라지 않는가? 말을 따라서 나쁠 건 없었다.

    “그래, 그래. 알았어. 마침 앞치마 사 오긴 했으니까 입으면 되지. 그리고 머릿수건은……. 흠. 행주로 하면 되겠다.”

    희나는 짐을 뒤적거리며 앞치마와 행주를 찾았다.

    앞치마를 입고, 행주를 머릿수건 대용으로 두르고 나니 그제야 달팽이가 만족했다.

    「대흡족.」

    달팽이의 칭찬을 듣고 “이제 됐지?”라고 물으려는 순간이었다.

    시스템 창이 새로운 사실을 알려 왔다. 희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 입었다고 효율성이 올라?”

    그러자 시스템이 대답하듯 알림 창을 띄웠다.

    “뭐? 랭크가 오를 수도 있어?”

    새로운 정보였다. 열심히만 하면 D급인 희나도 C, B, A, S급으로 승급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그게 생각처럼 쉬우면 전부 다 S랭크게?’

    하지만 희나는 그게 ‘예습 복습을 열심히 하면 당신도 손쉽게 전국 1등이 될 수 있다!’는 문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애당초 그게 가능했으면 오빠가 10년째 D급으로 빌빌거리는 일도 없었다.

    “그럼, 이제 진짜로 시작해 볼까?”

    희나는 손뼉을 짝짝 치며 스스로를 격려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꼬나 쥐고 전투 태세에 임하자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떴다.

    ‘야무진 손끝은 또 뭐지?’

    의문을 가지니 곧바로 설명 창이 떴다.

    <야무진 손끝(D): 야무진 솜씨로 모두에게 만족감을 부여한다. 패시브 스킬.>

    역시나, 설명은 여전히 성의 없었다.

    희나는 모든 각성자들이 자기 같은 스킬 상태 창을 가졌는지 궁금해졌다.

    “그래. 아무튼…… 그럼 스킬 효과를 한번 봐 볼까?”

    희나는 이런저런 잡념을 지워 내고 진짜로 청소를 시작했다.

    “어휴, 힘들어.”

    희나는 이마에 맺힌 구슬땀을 소매에 닦아 문질렀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청소를 시작한 지 3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어쩐지 슬슬 몸이 뻐근하고 힘이 빠진다 싶더니, 체근민(체력, 근력, 민첩)이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열심히 일한 탓인지 배도 고파 왔다.

    때맞추어 시스템 창이 숙련도 상승을 알렸다.

    희나는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이걸 12나 올랐다고 좋아해야 하나, 아니면 12밖에 안 올랐다고 불평해야 하나……?’

    분당으로 대강 계산해 보면, 10분 동안 뼈 빠지게 청소를 하면 숙련도가 1포인트가량 오르는 식이었다.

    그러니까 1000만큼의 숙련도를 채우려면 약 1만 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1만 분은 약 167시간이었고, 167시간은 대충 7일 정도 됐다.

    먹지도, 쉬지도, 자지도 않고 닷새를 넘게 청소만 하라니, 엄청나게 빡센 승급 조건 같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의외로 할 만했다.

    “스킬 랭크 올리는 데 167시간만 들이면 된다니, 할 만한데?”

    하루에 8시간씩 청소하면 약 20일이 조금 넘는 시간, 그러니까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만에 스킬 랭크 업이 가능했다.

    물론 하루에 8시간씩이나 청소하는 건 엄청난 체력을 가진 청소부가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겠지만 말이다.

    「휴식 종료. 청소 재개!」

    잠깐 생각에 빠진 사이, 달팽이가 희나의 어깨 위로 올라가 재촉했다.

    「할 일, 산더미.」

    희나는 기계적으로 일을 시작하려다 팔다리를 쭉 늘어뜨렸다. 그간 청소에 얼마나 집중을 했던지, 힘이 안 들어갔기 때문이다.

    역시 체근민 총합 30 미만의 쪼렙다웠다.

    “달팽아, 나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잠깐만 쉬었다 하면 안 될까? 너무 배고파.”

    「찰싹찰싹!」

    “방금 나 채찍질한 거니?”

    「긍정.」

    “하하…….”

    희나는 완고하기 그지없는 달팽이를 무시하고 고무장갑을 벗었다. 갑자기 허기가 져서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난 뭘 좀 먹어야겠어. 갑자기 힘이 팍 빠져.”

    저녁거리로 사 온 김밥을 비닐봉지 안에서 주섬주섬 꺼내 깠다. 김밥×라에서 사온 기본 김밥은 통통해서 아주 먹음직스러웠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맡으니 입에서 침이 폭포수처럼 흘렀다. 분명히 아까 점심을 먹었는데도, 며칠은 굶은 것처럼 배가 고팠다.

    “마시써!”

    희나는 그대로 김밥 세 줄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다음 날 끼니까지 생각해 넉넉하게 사 온 건데 말이다!

    보통 김밥 한 줄이면 배가 차고도 남았는데, 세 줄이라니.

    희나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위업을 이룬 스스로에게 감탄했다. 심지어 김밥을 세 줄이나 먹었는데 배도 하나 안 나왔고 위장은 여전히 가뿐했다.

    “일이 고돼서 그랬나? 무지하게 먹었네…….”

    중얼거리고 있는데, 눈앞에 갑자기 상태 창이 뿅 하고 떴다.

    희나는 그제야 갑자기 몰려온 피로와 허기짐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3시간 동안 온 힘을 다해 일해서 체력이 전부 고갈된 모양이었다.

    ‘내 체력으론 오래 버틴 거긴 하지.’

    평소의 몇 배가 되는 노동 강도로 3시간이나 일했으니, 지치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도 밥 먹는 걸로 체력이 차네?”

    별도의 휴식 없이 음식물 섭취만으로도 체력이 회복되다니, 신기했다. 그러자 시스템 설명 창이 떠 희나의 의문에 대답해 주었다.

    <밥심(D): 체력은 곧 밥심에서 나온다. 고갈된 체력을 쌀이 섞인 음식으로 회복한다. 패시브 스킬. (현재 숙련도 23/1000)>

    그렇다. 이것도 스킬이었다. 희나는 좀 어이가 없어서 허허 웃었다.

    “뭐지, 이 스킬은?”

    물론 체력 스탯이 남들에 비해 한없이 부족한 희나에게는 꽤 유용한 능력이기는 했다. 하지만 진짜 밥 먹는다고 체력이 회복되는 스킬이라니…….

    ‘아무리 한국인은 밥심이라지만.’

    희나는 김밥 먹은 쓰레기를 정리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재시작! 재시작!」

    그러자 힘을 되찾은 걸 눈치챘는지 어깨에 앉은 달팽이가 희나를 재촉했다.

    “너 정말 집 관리에 진심이구나? 알았어, 알았어. 피로 회복했으니까 이제 치울게.”

    희나는 온순한 일꾼이었으므로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일을 시작했다.

    달팽이는 들썩이는 희나의 어깨 위에서도 용케 균형을 잘 잡았다.

    「주택 관리♬」

    원룸이 조금씩 깨끗해지는 게 기분이 좋은지 음표 모양까지 붙였다. 그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3시간의 청소로 조금 장판 바닥 같아진 바닥을 밀대로 박박 밀며, 희나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달팽아. 나 궁금한 게 있어.”

    「현재 상태: 질의응답 가능.」

    “지금이야 내가 살아야 할 집이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청소를 하고 있긴 한데, 전반적인 스킬 랭크가 올라서 ‘살림꾼’ 랭크까지 덩달아 오르면 뭐가 좋은 거야? 이름대로 집안일을 더 잘하게 해 주나? 그런 건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데…….”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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