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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4화 (4/228)
  • 던전 안의 살림꾼 4화

    1시간 전, 희나는 우민아를 따라 게이트 밖으로 나섰다.

    우민아와는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헤어졌으며, 구조대원들에게 인계되었다.

    희나는 크게 다친 곳은 없었기에 간단한 응급조치만 받고 게이트 피해 명단 리스트에 이름을 남긴 후 귀가했다.

    ……아니, 귀가하려 했다.

    “내 집!”

    희나는 절규했다. 던전 안의 몬스터 앞에서도 굳건하던 멘탈이 바사삭 부서졌다.

    던전 게이트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잡아먹었다. 게이트가 생겼던 자리에는 그저 폐허만 남을 뿐이었다.

    그런고로 회사에서 야근하던 도중에 던전에 휘말려 들어갔으니, 게이트 폭주의 한가운데에 있었을 회사 건물이 멀쩡하진 못하리라 예상하긴 했다.

    “회사 건물이야, 그렇다 쳐! 그런데 내 집까지 휘말려서 사라질 건 뭐냐고!”

    하지만 게이트 폭주의 범위가 이 정도로 넓으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희나는 출퇴근 문제로 회사 근처 빌라에 전세를 얻어 두었는데, 터덜터덜 걸어 도착한 그곳에는 무너진 벽돌담만이 있었다.

    집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주워 갈 만한 세간살이마저 완전히, 싹 다 던전 게이트에 털려 버린 것이다.

    “이 도둑놈의 자식들 같으니라고!”

    희나는 하늘에 삿대질하며 욕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살피던 구조대원은 희나가 육신에 상처를 입은 것이 아니라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인에게 집이란, 영혼과도 같았으니까.

    “지내시던 곳이 게이트 폭주에 휘말렸군요. 근처 초등학교에 임시 대피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모셔다드릴까요?”

    구조대원은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로 희나의 등을 토닥였다.

    희나는 한참을 분노에 헐떡이다 겨우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초등학교면 저도 어디 있는지 알아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친절은 고마웠지만, 도저히 누군가와 함께할 만한 정신이 아니었다. 갑갑한 현실에 울화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지? 회사 건물이 사라졌으니 월급 줄 회사는 망한 거나 다름없고, 집은…… 보상금은 얼마나 나오려나? 큰돈이 나오지는 않을 텐데. 내 집! 내 보증금! 내 가구! 내 돈! 어떻게 해! 맨몸으로 쫓겨나도 이것보다는 더 희망적이겠다!’

    좁고 허름했지만, 오빠와 희나의 피땀이 들어간 전셋집이었다.

    비록 야근에 치여 자주 들어가지는 못했을망정 등 따숩게 몸 누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편안한 공간이었는데…….

    “……그게 사라져 버리면 어떻게 해! 집! 아이고, 내 집!”

    각박하다 못해 비참한 현실에 가슴을 치며 드러누우려는 순간이었다.

    눈앞에 뿅, 하고 시스템 안내 창이 솟아올랐다. 희나는 상태 창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히든 스킬은 뭐고, ‘홈 스위트 홈’은 또 뭐야?”

    안내 창은 친절하게 희나의 의문에 대답까지 해 주었다.

    희나의 눈이 빠르게 스킬 창을 훑었다.

    <홈 스위트 홈(D): 스킬 시전자에게 집을 제공한다. 액티브 스킬. *‘살림꾼’ 클래스의 각성자가 ‘홈 리스’인 상태에서 간절히 ‘집’을 원할 때 해금된다.>

    여전히 스킬 설명은 성의 없었고, 해금 조건은 비참한 데다가 말도 안 됐다.

    살림꾼이라는 괴상망측한 히든 클래스로 각성한 사람이 집을 잃어 절규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희나에겐 그런 사실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스킬 내용 자체가 실로 희망차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집을 제공한다고? 스킬로…… 집을?’

    사실이라면 하늘에서 난데없이 집 하나가 떨어진 셈이었다.

    그렇다. 이건 복권 당첨보다 더 대단한 스킬이었다!

    믿을 수 없지만 믿고 싶어질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설마 <안락한 침상> 스킬처럼 집을 지을 자재를 구해 오라는 건 아니겠지?’

    희나는 끝까지 의심을 지우지 못한 채 스킬을 시전했다.

    “홈 스위트 홈!”

    스킬을 시전하자 옅은 빛과 함께 반쯤 무너진 담벼락 위에 문이 생겨났다. 빠르게 돌아가서 담벼락 뒷부분을 확인하니 벽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희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문을 당겼다. 문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뭐가 나올까?’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희나는 작게 숨을 들이켜고는 문 건너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느낀 건 이곳이 온통 뿌옇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게 집이야?”

    중얼거리니,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이놈의 시스템은 로딩이 왜 이렇게 길어?”

    희나는 초조하게 손가락을 씹었다. 손가락에서는 풀 맛과 흙 맛이 났다.

    아련한 던전의 향취였다. 절대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소중하디소중한 기억이었다.

    얼마나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는지 모른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려니 1초가 1분 같고, 1분이 1시간 같았다.

    희나의 인내심이 극에 다다랐을 때였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시스템이 조정 완료 메시지를 띄웠다. 희나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대체 뭐가 나올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 순간, 희나의 눈앞에 팡파르가 터졌다.

    「★(경) 홈 스위트 홈 개장! (축)★」

    “으악!”

    화려한 이펙트가 희나의 시신경을 감쌌다. 어찌나 폰트와 색깔이 강렬한지, 눈 뜬 채로 눈알을 그대로 찔린 것 같았다.

    “내 눈!”

    희나는 털썩 쪼그려 앉아 두 손으로 눈을 가린 채 한참을 끙끙댔다. 경축 문구가 주었던 안구 테러의 여운이 오랫동안 남은 탓이다.

    “으으…….”

    얼마 후, 희나는 뻑뻑한 눈꺼풀을 천천히 열었다. 흐릿한 시야에 무엇인가가 비쳤다. 아까 같은 뿌연 배경이 아니었다.

    그랬다. 희나는 지금 실내에 있었다.

    ‘진짜 집이 생긴 건가?’

    집 안을 제대로 살피기도 전에, 눈앞에 시스템 알림 창들이 뿅뿅 생겨났다.

    “낡은 기본형 원룸……?”

    희나는 알림 창을 읽어 없애고는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녀가 지금 서 있는 곳은 3평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원룸이었다.

    작은 싱크대가 한구석에 놓여 있었고, 화장실 입구로 보이는 문이 한쪽 벽에 달려 있었다. 딱 혼자서 겨우 지낼 만한 크기의 방이었다.

    당장 몸 누일 곳이라고는 임시 대피소의 너른 체육관뿐인 희나에게는 과분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뭐 이렇게 더러운 데가 다 있지?”

    희나는 집 안 상태에 경악했다.

    벽지는 누렇게 변색해 있었고, 방 한구석에는 거뭇하게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거미줄도 좀 쳐져 있고, 바닥은 흙발로 나다녀도 전혀 아쉽지 않을 정도로 더러웠다. 차라리 아스팔트 바닥이 더 깨끗할 판이었다.

    엉망진창인 집 상태에 경악하는 희나에게 시스템이 계약 여부를 물어 왔다.

    희나는 시스템 창을 무시하고 화장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부동산 매물을 볼 때 희나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화장실이었다.

    시스템은 원룸을 당장 팔아치우고 싶은 무늬만 공인 중개사처럼 굴었다.

    계속 눈앞에 창을 띄우고 계약 여부를 물어 왔다.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듯 시스템 창이 계속 중복해서 떴다.

    뭐, 이건 거의 반강요나 다름없었다.

    “내가 이런 수작에 넘어갈 줄 알고?”

    희나는 흥, 하고 콧방귀를 끼며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묘한 지린내가 코끝에 서렸다.

    “윽, 이게 무슨 냄새야!”

    몇 달 동안 화장실 청소를 안 한 것 같은 고약한 냄새가 났다. 거기다 바닥 타일 줄눈은 새카맸고, 거울은 물때가 끼어 얼룩덜룩하다 못해 녹슨 것처럼 보였다. 하얘야 할 세면대와 변기도 누렜다.

    “이딴 걸 집이라고 줘?”

    희나는 씩씩거리며 발을 굴렀다. 집 상태가 엉망도 이런 엉망이 없었다. 정말이지 이건 정말 빵점짜리 매물이었다.

    “계약 안 해! 다른 집 보여 줘!”

    희나는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다시 눈앞에 시스템 창이 띡, 하고 떴다.

    ‘Yes’ 뒤에 붙어야 할 ‘No’ 버튼이 사라진 채였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No 어디 있어? No 누를 거야, No! 노! 싫다고!”

    몇 번이고 말을 했지만, 이제 시스템은 같은 말만을 띄웠다.

    “다른 거 보여 줘!”

    “No!”

    “왜 선택지가 하나뿐이야?”

    아마 시스템이 실존하는 무엇인가였으면 당장 머리채를 틀어잡았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시스템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였고, 이러한 상황에서 희나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라곤 단 하나뿐이었다.

    “알았어, 이 사기꾼아! Yes! 그래, 계약할게!”

    씩씩거리며 ‘Yes’를 외치자 시스템은 그제야 만족한 듯했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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