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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생지연多生之緣 (78)화 (78/87)
  • 78

    순영은 부모가 없는 영진과 하람을 늘 걱정했다. 그래서 살아생전에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어울렸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미래를 보는 혜안에 따르는 사람도, 찾는 이도 점점 늘어났다.

    순영의 부고를 전하자 장례식장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하람아, 괜찮아? 너 상태 너무 안 좋다.”

    “……어? 괜찮아.”

    짧게나마 쉬려고 하면 조문객이 오고, 조문객을 보내면 장례식장에 있는 귀신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계속 서 있는 것도 모자라 잠시도 쉴 틈 없는 환경에 피곤함이 쌓일 대로 쌓였다.

    『쯧쯧, 저러다 저 이상한 냄새 나는 손자까지 죽겠어.』

    『그러게.』

    『여기 먹을 게 왜 이리 많대?』

    이한이 잠들어서인지 아니면 기운이 약해졌는지 그의 옥가락지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귀신들의 끊이지 않는 수다와 얼쩡거림이 피곤하고,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불편하고, 그리고 잠든 이한이 걱정되고. 이래저래 상황이 좋지 않다. 지끈거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뜬 하람이 생각을 털어내듯 고개를 힘없이 저었다.

    “……미안한데, 차가운 커피 좀.”

    “커피? 괜찮겠어?”

    순영의 장례를 잘 진행하고, 끝을 내야 명부에서 심판받는 중인 순영에게 좋을 터였다. 하람이 숨을 크게 토하며 똑바로 섰다.

    곱게 잠든 순영의 곁에 그녀가 모은 꼭두(우리나라 전통 장례식 때 사용되는 상여를 장식하는 나무 조각상)를 모두 담아 주었다.

    “우리 할머니, 외롭지는 않겠네.”

    “……그러게.”

    용, 광대, 봉황, 개 등. 저세상으로 떠나는 망자를 지켜 주고, 외롭지 않게 해 준다는 꼭두가 한가득이다. 영진이 뜨거운 불 속으로 점차 사라지는 관을 보다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하람이 오열하는 영진을 안았다.

    순영이 바라는 대로 그녀의 뼛가루를 자주 가던 절 앞에 있는 단풍나무 아래에 묻는 것으로 길고 길었던 장례가 끝났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이한을 보지 못했다. 그가 잘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떠나는 사람들을 훑던 하람이 잠든 다움을 안고서 인사하는 영진에게 다가갔다.

    “누나, 미안한데 나 먼저 집에 가봐도 될까?”

    “응? 그래. 그렇게 해.”

    “……누나, 어디 아파? 얼굴색이 안 좋은데.”

    가까이에서 본 영진의 얼굴색이 눈에 띄게 하얗다. 푸른빛이 도는 입술에 괜찮냐고 물으며 축 늘어진 다움을 대신 안아 들었다. 영진이 눈을 느리게 끔뻑였다.

    “……어? 아아. 괜찮아. 피곤해서 그런가 보네.”

    말을 하는 것도 힘든지 영진이 맥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 냈다. 하람이 걱정스레 영진을 살폈다. 영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집에 있는 그 남자 걱정되잖아. 괜찮으니까, 그만 가 봐.”

    원귀에게 등이 할퀴어진 그 날. 이한이 기억을 일부 찾았는지 순영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도 이한을 볼 수 있게 됐다.

    같이 있는 남자 누구냐는 물음에 얼마나 놀랐는지. 말을 잃어버렸는데 여전히 놀랍다. 하람이 굳었다가 다가온 매형에게 다움을 넘겼다.

    “……알았어. 대신 천천히 와. 매형, 누나 피곤해 보이니 챙겨 주세요.”

    영진이 걱정되지만 이한 역시나 걱정된다. 매형에게 영진을 부탁한 뒤 빠르게 차에 탔다.

    그저 명부 시왕 중 한 명인 줄 알았던 오도전륜대왕이 아버지였다는 사실과 그의 힘에 이한이 정신을 잃었다. 하람은 이한이 그랬듯이 곁을 지켜주고 싶었으나 순영을 떠나보내야 했다.

    『하람아!』

    사랑채로 가자마자 노앵설이 우다다 달려왔다. 하람이 품에 폭 달려든 노앵설을 불안하게 안아 들었다.

    “잘 지내고 있었어?”

    『심심해 죽는 줄 알았어!』

    아이가, 그것도 귀신이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람이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으며 노앵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한 님은? 깨어나셨어?”

    바닥에 내려온 노앵설이 힘없이 고개 저었다.

    『계속 가만히 있어. 꼼짝도 안 해.』

    잠에서 깼을까. 저를 찾고 있지 않을까, 했는데. 노앵설이 이끄는 대로 안으로 들어가는 하람의 어깨가 늘어졌다.

    “아…….”

    이한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 그대로 누워있다. 하람이 입술을 깨물고는 이한의 곁에 조용히 앉았다. 계속 이한을 지키고 있었던 노앵설과 우렁 각시, 도령이 말없이 사라졌다.

    “……이한 님.”

    정말 충격 탓에 잠에서 깨지 않는 걸까. 아니면 기억을 많이 찾은 탓에 그런 걸까.

    왜 이한이 깨어나지 않는 걸까. 하람이 생각하며 조심스레 창백한 뺨을 짚었다가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기운에 깜짝 놀랐다.

    그렇지 않아도 차가웠던 피부가 꼭 죽은 순영처럼 차갑다.

    불길한 오싹함에 전신이 뻣뻣하게 굳었다. 숨도 쉬지 않고 이한을 보다 저도 모르게 다급하게 손을 부여잡았다.

    “이한 님. 저 왔어요.”

    이한은 모르겠지만 할머니 순영을 이제 막 보내고 왔다. 이한까지 보낼 수 없었다.

    “저를, 혼자 두지 마세요…….”

    이한과 하지 못한 것이 아직 너무 많았다. 이대로,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는 걸까. 힘없는 손을 두 손으로 꽉 부여잡고 애절하게 읊조리는데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불안함에 떨며 이한의 손을 부여잡은 손 위로 이마를 기댔다. 그 상태로 눈물을 삼키는데 별안간 잡고 있는 손이 움찔, 떨렸다.

    자칫하면 그대로 지나칠 수 있을 만큼 아주 찰나의 움직임이었다. 혹시나 꿈일까, 하람이 고개를 번쩍 들어 이한을 보았다. 동시에 이한의 감은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 이한 님!”

    이한이 제 목소리를 들으면 깰까. 소리 높여 이름을 외치고 또 외쳤다.

    그렇게 목이 아프도록 몇 번이고 외치길 몇 번. 잘게 떨리던 이한의 눈이 아주 천천히 뜨이기 시작했다. 하람은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소리 죽여 우는 사이 이한이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이내 손을 잡고 있는 하람을 보았다.

    “……하, 람아.”

    “……아, 아아.”

    잔뜩 쉬었으나 분명 이한의 목소리다. 설마 하고 쌓이던 불안감이 탁 풀렸다. 하람이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온몸을 떨며 눈물 흘렸다. 이한이 잡힌 손끝을 움찔움찔 움직였다.

    “……왜, 우는 거지? 울지, 마라.”

    울지 말라는 말과 함께 손끝이 마치 쓰다듬듯 하람의 이마를 톡톡 쳤다. 하람의 눈물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이한에게 왜 이렇게 늦게 눈을 떴냐고, 얼마나 걱정했냐고 말하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눈물만 나온다. 하람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울기만 하는 하람의 모습에 이한의 미간이 좁혀졌다. 곧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세웠다.

    “쉬, 그만 울어라.”

    누가 들을까, 소리를 최대한 억눌려 오열하는 하람을 두 팔로 안았다. 어깨에 얼굴을 기대 오는 하람의 등을 도닥여 주었다.

    토닥토닥. 어딘가 어색하지만 다정하기 짝이 없는 손길에 피곤함과 두려움으로 굳어 있던 몸이 허물어졌다. 하람이 늘어뜨리고 있던 두 팔을 들어 이한을 마주 안았다.

    “깨지 않으실까 봐, 혼자 남을까 봐, 그래서…….”

    “네가 왜 혼자지. 나도 있고 순영과 영진도 있지 않나.”

    여상한 이한의 말에 멈추려던 눈물이 다시 터졌다. 하람이 이한의 몸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할머니, 보내드렸어요.”

    등을 토닥이던 손이 멈췄다.

    “……그렇군. 또, 한 명이 떠났구나.”

    이내 힘 하나 없는 목소리와 함께 다시 등이 토닥여졌다. 하람이 이한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한이 순영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하람이 차가운 품에서 안도감을 찾는데 멀리서 발소리가 들렸다.

    하람이 이한의 품에서 고개 들어 문을 보는 것과 동시에 똑똑, 노크 소리가 울렸다.

    『하람 님, 어떤 여자가 왔어요.』

    우렁 각시의 목소리에 하람이 이한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누나일 거예요. 만나서 얘기하고 올게요.”

    “그래.”

    순영이 남긴 재산과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영진이 변호사가 정리한 것을 받아 얘기하기로 했다. 하람이 걱정 어린 이한을 두고 홀로 방을 나갔다.

    “……어, 하람아.”

    사랑채에서 나가자 이마에서 새어 나오는 땀을 닦던 영진이 아는 체하며 다가왔다. 하람의 얼굴이 약하게 일그러졌다.

    “아니, 얼굴색이 왜 더 안 좋아졌어?”

    영진의 얼굴이 헤어지기 전에 보았던 것보다 더 심각하다. 핼쑥해 보였는데 거기다 식은땀까지 흘려 댔다. 하람이 비틀거리는 영진의 팔을 부여잡고 이마를 짚었다.

    “열은 없는데, 괜찮아?”

    “……응? 으응.”

    영진이 가만 서 있는 것도 힘든지 자꾸만 늘어지려 했다. 결국 사랑채 툇마루에 조심스레 앉히고 부엌에 가 물을 가지고 와 건넸다.

    “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개, 괜찮아.”

    땡볕 아래 서 있는 사람처럼 계속 나오는 식은땀부터 초점이 명확하지 않은 눈, 회색빛이 도는 피부, 맥없는 목소리. 장례 기간 동안 괜찮아 보이던 영진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괜찮다는 말과 달리 심각한 상태에 병원에 데려갈까, 하는데 영진이 숨을 크게 골랐다.

    “하람, 아. 집에, 있는 사람은, 괜찮아?”

    “어? 어. 누나 안 되겠어. 병원부터 가자. 일어날 수 있겠어?”

    숨 쉬는 것도 힘든지 축 늘어져 앉은 영진을 일으켜 세우려는데 영진이 손을 약하게 들었다.

    “괘, 괜찮아. 잠시, 쉬면…… 나아질 거야.”

    병원에 가고 싶은데 본인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영진의 옆에 앉았다.

    “매형은? 매형은 어쩌고 혼자 왔어?”

    “……매, 형?”

    “어, 매형이랑 같이 있었던 거 아니야?”

    말을 하다 보니 어딘가 이상하다.

    영진은 건강을 유별나게 챙겼다. 다움에게 감기를 옮길까, 감기 기운이 있으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는다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약을 먹은 느낌이 아니다. 거기다 영진의 얼굴이 더없이 안 좋은데 곁에 매형이 없다.

    “……어, 그랬나?”

    왜, 매형이라는 존재를 모르는 사람 같아 보이지?

    의아함과 이상함에 슬쩍 영진에게서 조금 떨어져 앉는데 별안간 영진이 팔을 덥석 잡았다.

    “……어디, 가?”

    방금까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늘어져 앉아 있던 사람답지 않게 팔을 잡은 악력이 강하다. 하람의 미간이 와락 좁혀졌다.

    “……누나. 아니, 누나, 맞아?”

    눈에 보이는 얼굴이 분명 영진이 맞다. 맞는데, 영진이 아닌 것 같다.

    결국 입 밖으로 묻자 영진의 고개가 옆으로 조금 기울어졌다.

    “……무슨, 말이야? 난 네, 누나잖아.”

    더듬더듬 말하는 영진의 얼굴을 멀거니 보다 팔을 잡은 손이 벌벌 떨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람이 잡힌 팔을 슬쩍 뒤로 뺐다.

    “……누나.”

    “하, 람아…….”

    “하람아!”

    등골이 서늘해졌다. 다급하게 팔을 빼내는 순간 뒤에서 이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람이 어느새 한손에 검을 든 이한을 보았다.

    “……가.”

    이한이 왜 검을 잡고 있는 거지? 천천히 다가오는 이한을 보는데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앞을 보는 것과 동시에 영진이 가슴을 크게 들썩였다.

    “……어서, 도망, 쿨럭!”

    울먹이는 음성 끝에 영진의 입에서 검은 피가 울컥! 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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