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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생지연多生之緣 (76)화 (7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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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영혼 회수를 위한 세 번의 부름이 시작됐다. 이한이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홱 돌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월도가 치고 들어왔다.

『갈 수 없습니다.』

감정이 느껴지는 목소리와 함께 붉은 오랏줄이 허리와 두 팔을 휘감았다.

세 번째 부름에 순영의 영혼이 나올 테다. 그 전에 막아야 하는데 오랏줄이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더욱 조여들었다.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겁니다.』

움직임을 따라 포승줄이 조여들다 못해 뜨거워지기까지 했다. 이한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이대로 시간을 끌 순 없었다. 포승줄을 잡고 있는 사자 모르게 검을 천천히 움직였다. 그사이 순영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와 하람의 안 된다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한이 입술을 비틀었다.

“……후회할 것이다.”

『저승의 개께서 하실 말씀이 아닌 것 같…….』

“안 돼!”

검에 포승줄이 잘리는 것과 동시에 하람의 큰 소리가 들렸다. 이한이 놀란 차사를 뒤로하고 황급히 툇마루로 달려갔다.

『이것 풀지 못하겠느냐!』

“할머니, 가면 안 돼요…….”

포승줄에 포박된 성주신 앞으로 하람이 차사의 부름에 빠져나온 순영의 영혼을 끌어안고 버티고 있었다. 이한이 힘겨워하는 하람을 보다 쫓기듯 급하게 순영에 대해 읊고 있는 차사의 등을 베었다.

『헉!』

갑작스레 등이 크게 베인 차사가 단말마를 끝으로 사라졌다.

안내자를 잃은 순영의 영혼이 맥없이 늘어졌다. 하람이 반쯤 넋을 놓은 순영을 재빨리 앉히고 두 귀를 틀어막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성주신을 포박하고 있던 이승차사가 경악했다가 소리를 높이며 이한에게 달려들었다. 이한이 대꾸하지 않고 검을 고쳐 잡았다.

이승차사 또한 적패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승차사의 목을 치기 위해 검을 들어올렸을 때, 별안간 손목이 잡히고, 목에 포승줄이 감겼다. 곧 월도가 검을 쥔 팔을 후려쳤다.

“크윽…….”

팔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검을 놓쳤다. 그도 모자라 목에 걸린 포승줄이 점점 목을 옥죄어 왔다.

이한이 두 손으로 목을 감싸는 포승줄을 뜯어내는데 일그러진 시야에 겁에 질린 하람과 적패지를 주워드는 이승차사가 보였다.

『……오후 열 시 이십일 분. 사인 기력 약화. 생이 다하여…….』

“할머니, 듣지 마세요. 아무것도 듣지 마세요…….”

“하람아!”

이승차사가 오늘 날짜와 시간, 사망 사유를 읊자 순영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려 했다. 하람이 덜덜 떨며 순영의 귀를 틀어막고서 안 된다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차사에게 두 손목과 목이 졸리며 지켜보던 이한이 소리를 높였다.

“내가, 내가 알려 준 대로, 해라!”

천둥처럼 큰 외침에 하람이 움찔, 떨었다. 이내 새어 나온 눈물에 흐릿한 시야로 이한을 보았다.

이한이 알려 준 것? 하람이 차사들에게 붙들려 꼼짝도 하지 못하는 이한을 멀거니 올려다보다 떨리는 입술을 천천히 열었다.

“도, 도, 도와…….”

『……막아!』

이한이 위험할 때 도와달라고 했다. 하람이 더듬더듬 입을 열자, 이한의 팔을 잡고 있던 차사가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도와주세요!”

차사의 손이 하람의 입에 닿기 직전 잔뜩 쉰 목소리가 문장을 완성했다.

어디선가 꼭 쇠사슬이 끌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한을 포박하고 있던 차사들이 마치 강한 바람에 떠밀리듯 나동그라졌다.

『……여, 염라대왕님께 당장 연락해!』

상체를 푹 숙이고 있는 이한의 가슴에서부터 불길할 정도로 검은 실타래가 줄줄 새어 나왔다.

가슴에서 나온 실타래가 바닥에 길게 늘어지는 것과 동시에 짧게 자른 이한의 머리카락도 따라서 길어졌다.

“……아.”

순식간에 처음 만난 날에 보았던, 그만큼 길어진 머리카락이 점점 하얗게 바랬다. 곧 이한이 뚝, 뚜둑 소리와 함께 숙이고 있던 상체를 바로 하며 목에 감긴 포승줄을 풀었다.

『하아…….』

이한이 엉거주춤 섰다. 붉은 기가 도는 두 눈 아래로 흘러나온 검은색 눈물을 느릿하게 닦아 내며 하람을 보았다. 하람이 숨을 삼켰다.

분명 눈에 보이는 얼굴이 제가 아는 그 이한인데, 이한이 아닌 것 같다.

이한의 전신에서 꼭 원귀에게서나 볼 법한 불길한 기운이 넘쳤다. 두려운 가운데 언젠가 이한이 한 말이 생각났다.

‘잘 잡고 있어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널 죽일지도 모른다.’

놀라지 말라고 했던 이유가, 이런 거였나. 하람이 딱딱 부딪치려는 이를 악물며 말을 삼키는 사이 이한이 떨어져 있는 제 검을 집어 들었다. 곧바로 경악과 당혹감이 번진 얼굴로 눈치를 보고 있는 차사들을 보았다.

『염라를 기다리는 건가?』

『네 이놈!』

달라진 이한을 보던 세 명의 차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차사들의 기세가 살벌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이한을 향해 날카로운 날붙이를 휘둘렀다.

이한이 다칠까, 걱정하며 보는데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양손에 쥔 검과 검집으로 세 명의 차사를 몰아붙였다.

포승줄을 잘라 내고, 검집으로 차사의 머리를 치고, 무기를 잡지 못하도록 손을 베고. 계속해서 몰리던 차사가 소리쳤다.

『또 아수라도에 빠질 생각입니까!』

피를 토하는 것 같은 거친 호통에 이한의 몸이 굳었다. 이내 검을 들었다.

『네가,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어처구니가 없다는 목소리와 함께 검은 검날이 차사의 가슴에 박혔다. 차사가 눈을 크게 뜨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이놈!』

남은 차사들의 창백한 얼굴이 달아올랐다. 무심한 얼굴로 검을 털어 내는 이한을 향해 소리치며 검을 휘둘렀다.

잠시 멈췄던 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안방 입구에 주저앉아 앞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피 튀기는 싸움을 보던 하람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 싸움은 언제까지 지속되는 걸까. 이한과 할머니가 죽어야 끝나는 걸까.

피를 흘리면서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매섭게 싸우는 이한을 멀거니 보는데 허공에 떠 있던 문이 떨었다. 곧 또 다른 차사 세 명이 나왔다.

『맙소사, 정말 차사랑 싸우고 있잖아? 이거 놀라운데?』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을 다 보네.』

『잔업 수당도 없는데, 빨리 끝내도록 하지.』

이제 막 문을 넘어온 차사들이 무기를 쥐고 싸움에 합류했다.

그렇지 않아도 혼자서 다수를 상대하던 중이었는데 차사가 더 늘었다. 팽팽하던 상황이 점점 나빠졌다.

『……영혼 하나 회수하겠다고 차사를 이리도 많이 보내다니. 염라의 수준도 알 만하군.』

이한이 사방을 둘러싼 차사들을 훑으며 웃는 낯으로 빈정거리자 차사 한 명이 피식 웃었다.

『꼴이 엉망인 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환도가 이한의 옆구리를, 참수도가 허벅지를, 보검이 머리카락 끝을 베었다. 이한이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아수라들에 비하면 하찮기 짝이 없는 것이 말이 참 많구나!』

이한의 검이 횡을 그리며 앞에 있는 차사 두 명의 가슴을 벴다. 갑작스레 가슴이 베인 차사가 소리 없는 비명을 끝으로 사라졌다.

『둘이 사라졌으니 또…….』

『네 이놈!』

별안간 열려 있는 문에서 큰 노성이 터져 나왔다.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전신이 쪼그라들었다. 하람이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을 웅크리는데 심장이 무섭게 뛰었다.

문 너머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언가가 오고 있었다.

공포심에 순영을 안고 있는 몸이 벌벌 떨렸다. 이러다 순영이 깰까, 떨림을 애써 억누르는데 이한이 다가와 뒤에서 안아 주었다.

『쉬, 괜찮으니 숨 쉬어라.』

등 뒤로 특유의 서늘함이 느껴졌다. 익숙한 감각에 호흡과 떨림이 점차 나아졌다. 저도 모르게 이한의 손을 잡고 떨던 하람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 뒤를 보았다.

“이, 이한 님, 어, 어떻…….”

왜 이러는 건지 몰라 묻는데 이한이 마당을 보았다. 따라서 마당을 보았다가 눈이 크게 뜨였다.

마당에 있는 모든 차사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왜, 하는데 문에서 몇 번 보았던 피곤함과 냉정함이 느껴지는 차사와 양 갈래 머리를 한 차사, 글래머 한 차사가 나왔다. 그리고 무서운 인상에 풍채 좋은 남자가 나왔다.

긴 머리카락과 수염, 관복으로 보이는 옷, 무거운 중압감에 본능적으로 남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염라대왕.”

하람이 입 밖으로 정체를 말하는 것과 동시에 염라대왕이 이한을 보았다.

『천둥벌거숭이처럼 구는 것에도 그냥 두었건만, 이제는 영혼 회수까지 방해하는 것이냐.』

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염라대왕의 말에 이한이 하람을 힐끔 본 뒤 일어섰다. 한 손에 검을 쥔 채로 천천히 염라대왕 가까이 가 섰다.

『저 영혼은 회수할 수 없다.』

『……지금 나를 상대하겠다는 건가?』

염라대왕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이한이 입술 끝을 비틀었다.

『계속 막아선다면.』

『기억을 찾으면서 나아지는 줄 알았더니, 되레 더욱 방자해졌구나.』

순식간에 염라대왕의 얼굴이 굳었다.

『네가 이렇게 막아서면 설수록 저 이순영이란 영혼에 죄가 쌓인다는 걸, 알고 이렇게 막아서는 거겠지.』

염라대왕의 말에 조금 떨어져서 대화를 듣던 하람의 미간이 구겨졌다.

할머니가 죽지 못하도록 잡고 있는 것이 죄라는 게 무슨 말일까.

당황스러운 와중에 이한과 시선이 부딪쳤다. 물어볼까, 하는데 이한이 고개를 돌렸다.

『……이건 내 죄다. 순영은 아무 죄 없다.』

『그건 네 생각이지. 이순영을 위한다면 비켜라.』

염라대왕이 제 뒤에 선 차사에게 턱짓했다. 이 상황이 귀찮다는 낯으로 서 있던 차사가 한 걸음 나왔다. 이한이 기다렸다는 듯이 검을 들어 막아섰다.

『한 발짝 더 다가오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이한 네 이놈!』

지켜보던 염라대왕이 한 걸음, 거리를 좁히는 순간 다시 한번 더 공기가 무거워졌다.

소리를 죽이고 있던 차사들이 허공에 있는 문을 보며 헉하고 숨을 삼키고, 눈을 화등잔만 하게 떴다. 그들을 보던 하람이 따라서 문을 보았다가 놀랐다.

커다란 덩치의 곰 같은 차사와 깐깐해 보이는 낯의 차사, 막내 차사 뒤로 굳은 얼굴의 오도전륜대왕이 나왔다.

『영혼을 회수하는 일에 어찌하여 시왕이 나서는가.』

오도전륜대왕이 이한과 가까이 선 염라대왕을 보았다. 염라대왕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전륜대왕, 여기 왜 왔지?』

오도전륜대왕이 긴장한 차사들과 굳은 얼굴의 이한, 놀란 하람을 훑어보았다.

『명부 문이 계속 열려 있고 또 고작해야 영혼 하나를 회수하는 일에 염라가 나섰다는 말을 듣고 왔네. 차사가 할 일은 차사가 하게 두고 그만 돌아가세.』

『……뭐라?』

꼭 아이 싸움에 왜 어른이 끼어드냐는 것 같은 오도전륜대왕의 말에 염라대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전륜대왕. 저, 이한이라는 자에게 차사가 몇 명이나 당했는지 알고 말하는 건가?』

『한낱 죄인에게 당하다니. 차사들의 실력이 좋지 않았는가 보군. 돌아가서…….』

『전륜대왕. 이한이 자네 아들이라고 감싸는 것 같은데,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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