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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생지연多生之緣 (74)화 (7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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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 설마 아기를 점지하고 산육을 관장한다는 그 삼신할머니?

얼마나 놀랐는지 입을 벌린 채로 할머니로 보이지 않는 여자를 보는데 삼신이 반갑다며 하람을 두 팔로 와락 끌어안았다.

『이게 얼마 만이야.』

하람이 움찔, 떨자 삼신이 하람을 놓고 양 뺨을 두 손으로 크게 짚었다.

『나도 감은장아기처럼 보러 가려고 했는데, 너무 바빠서 못 갔어.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나한테 잘 지내겠다고 했으면서 얼굴 상한 것 좀 봐.』

삼신이 반쯤 얼이 나간 하람의 뺨에서부터 턱, 어깨, 팔을 짚어 대며 걱정했다.

얼마만? 잘 지내겠다고 했으면서? 뭐지 이 상황은? 삼신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살이 빠진 것 같다고 하며 복부를 짚는 모습에 하람이 화들짝 놀랐다.

“자, 잠시만요!”

『얘가 이렇게 마른 아이가 아니었는데. 정말 속상하네.』

삼신이 한숨을 푹 쉬었다. 앞에 서 있던 감은장아기가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며 팔짱 꼈다.

『저 아래에 있는 놈이 고생시키니 당연히 살이 빠지지.』

『……아, 망할 것.』

감은장아기와 삼신이 동시에 정말 짜증 난다는 얼굴을 했다. 하람이 미간을 한껏 좁혔다.

저 아래에 있다는 놈? 설마 이한을 말하는 걸까? 그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일까.

옥황상제에게 말을 해 볼까, 아직은 아니다 같은 말을 하는 두 신을 보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저기, 죄송한데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여상한 두 신과 다르게 저는 이곳이 어딘지, 왜 오랜만이라고 하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혼란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토해 내듯 묻자 조용히 처리할까? 하던 감은장아기와 옥황상제는 제가 맡겠다던 삼신이 하람을 보았다.

『……우선 우리 아가부터.』

『그래. 아가, 차 마시러 가자.』

감은장아기와 삼신이 하람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꽃밭 사이에 있는 정자로 이끌었다. 하람이 엉거주춤 뒤따랐다.

정자로 가자 초등학생은 됐을까 싶은 아이들이 방석과 다구를 가지고 왔다. 삼신이 아이들의 머리를 일일이 쓰다듬어 주고는 하람에게 앉으라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이네.』

방석에 앉자 등에 아기를 업은 남자아이가 소반에 분홍 꽃이 든 잔을 놓았다. 곧 또 다른 남자아이가 보얀 김이 올라오는 물을 적당히 따랐다. 하람이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한 뒤 삼신을 보았다.

“네.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저는 분명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에게 등이 할퀴어졌고, 치료받던 중이었다.

태어나 처음 본 곳과 삼신을 보는데 별안간 옷이 살짝 당겨졌다. 옆을 보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아기를 업고 있는 여자아이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친구들이랑 조금만 놀면 안 돼요?』

친구들이랑 놀아도 되냐니. 이걸 왜 저한테 묻는 거지? 하람이 눈매를 찌푸리자 지켜보던 삼신이 아이의 어깨를 짚었다.

『대신 꽃에 물 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네!』

아이들이 공놀이하자고 하며 멀어졌다. 떠나는 아이들을 보던 삼신이 저와 같이 아이들을 보고 있는 하람을 보았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자에게 점지했지만 죽어 돌아온 아이들이란다.』

하람이 고개 돌려 삼신을 보았다. 삼신이 꽃차를 한 입 마셨다.

『부모에게 버려지거나 괴롭혀져 어른들을 무서워해. 그래서 윤회를 원할 때까지 내가 돌봐 주고 있단다.』

“……그렇군요.”

하람이 속삭이듯 작게 답하며 꽃이 꺾이지 않게 조심조심 공을 던지고, 받는 아이들을 보았다.

“아이들이 많네요. 혼자 다 돌보기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은 혼자지만, 내가 계속 혼자 돌봤을까?』

아이 한 명이 공을 놓쳤다. 데굴데굴 멀어지는 공을 쫓는 아이를 보던 하람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딘가 속뜻이 있어 보이는 건 제 착각일까.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 보다 불현듯 지금까지 들었던 말과 상황이 떠올랐다.

오랜만, 그동안 잘 지냈냐는 안부, 무척이나 반가워하는 삼신과 아무렇지도 않게 놀아도 되냐고 묻는 아이. 또 언젠가 오도전륜대왕이 했던 윤회를 하다 보면 달라지기 마련인데 어린 주인은 그대로라던…….

“제가, 여기에서 아이들을 돌봤나요?”

설마 하고 조심스럽게 묻자 삼신이 인자함이 느껴지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감은장아기는 피식 웃었다.

『아이들만 돌봤을까. 우리 일을 열심히 돕기까지 했지.』

“……아.”

도대체 왜 저를 반가워하고, 오랜만이라고 인사하는가 했더니.

그럼 이한과 지내던 제가 죽고 윤회 후 감은장아기, 삼신을 도우며 지냈고 이한은 윤회하지 못하고 구천에 남아 있었다는 건가?

『돌아오고 싶지 않니?』

오랫동안 기억을 찾지 못하던 이한이 왜 뒤늦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를 만나 기억을 찾는 건가 했는데. 왜 저인가 했던 이유를 알게 되어 소리 없이 감탄하는데 삼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람이 생각에서 깨어나 삼신을 보았다.

『하람이 네가 바란다면 다시 돌아오게 해 줄 수 있어.』

“네?”

『널 노리는 자와 저주와 고통, 번뇌, 슬픔이 없는 이곳에서 늙지 않고 영원히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삼신이 하람의 팔을 잡았다. 갑작스레 가까워진 거리와 제안에 하람이 굳었다. 동시에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보았다.

따뜻한 온도, 살랑이는 바람, 향기로운 꽃내음, 다정한 신들, 귀여운 아이들.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하지만 이한이 없다.

정신을 잃기 전에 들었던 다정한 이한의 목소리와 당황한 얼굴이 떠올랐다. 하람이 고개를 약하게 숙였다.

“……제안은 너무 감사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화로운 곳이라 해도 이한이 없으면 그저 평화롭기만 할 뿐, 기쁘지 않을 테다. 하람이 죄송하다고 작게 읊조렸다.

『……너는 늘 그렇게 그놈만 생각하고, 바라보는구나.』

팔을 잡은 삼신의 손에서 힘이 빠지더니 천천히 멀어졌다. 하람이 숙였던 고개를 바로 했다.

『그래. 아가, 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감은장아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슬픈 얼굴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삼신의 둥근 어깨를 감쌌다.

『아가,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도 물러나지도 마렴. 끝까지 살아남아 운명을 바꾸고 또 바꾸렴.』

무슨 일이라니. 제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질문하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 곧 울 것 같은 삼신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몸에서 힘이 빠졌다.

* * *

머리와 몸이 무거웠다.

꼼짝도 할 수 없는 가운데 꽃향기가 맡아지지도, 바람도 느껴지지 않았다. 감은 눈을 느릿하게 떴다.

오래 잤는지 시야가 맑았다. 명확한 시야에 안채 안방 풍경과 굳은 얼굴로 불길한 검은 검날을 말없이 닦고 있는 이한이 보였다.

왜 검을 닦는 걸까. 멀거니 보는데 검날을 닦던 손이 멈췄다. 곧 시야가 부딪쳤다. 이한의 눈이 점점 크게 뜨였다.

“……하람아!”

이한이 닦고 있던 검을 버리듯 두고 일어났다. 곧바로 모로 누워있는 하람의 옆에 앉았다. 하람이 힘없이 손을 들었다.

“……이한 님.”

“그래. 괜찮나? 어지럽거나 하지 않나?”

이한이 하람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붕대가 감겨 있는 상체를 조심스레 일으켜 세워 주더니 물잔을 입가에 기울여 주었다. 하람이 감사 인사 후 물을 마셨다.

“……아, 감사합니다. 저 얼마나, 잤어요?”

“사흘을 꼬박 잤다.”

“사흘이요?”

감은장아기와 삼신을 오래 만난 것 같지 않은데 사흘이라니. 예상보다 오래 잤다는 사실에 놀라 말을 잃었다가 숨을 삼켰다.

“사흘 동안 별일 없었나요?”

혹시 제가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걱정스레 묻자 이한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하람이 고개를 끄덕이다 아, 소리를 냈다.

“이한 님 기억은 좀 찾았나요?”

하람의 물음에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던 이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내 느리게 끄덕였다.

“네 예상대로 내가 왕이었던 것 같다.”

“왕, 이요…….”

이한의 입에서 왕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조선 시대사 교수님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살아생전에는 외가에 묻혀 제대로 된 업적과 기록이 없고, 사후에는 능이 도굴돼 남은 게 없고. 이래저래 비운의 왕이죠.’

드디어 기억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건가 싶어 기쁘기도 하면서 그리 좋지 않은 과거에 마음이 복잡하기도 하다.

마냥 기뻐하지 못하고 말을 아끼는데 이한이 이름을 작게 불렀다.

“몸은 괜찮은 건가?”

“네? 아, 상체가 갑갑한 것 외에는 괜찮아요.”

정신을 잃었었다. 그래서 걱정됐으나 큰 문제는 아니었는지 몸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람이 덤덤하게 답하자 이한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이대로 눈을 뜨지 않을까, 얼마나 걱정했는지.”

하람의 이마 위로 이한의 입술이 닿았다. 하람이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뜨며 이한의 뺨을 짚었다.

“걱정 끼쳐 죄송해요. 이한 님은 다친 곳 없어요?”

이한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답답할 정도로 느릿하게 바로 했다.

“나는 별일 없다만 일이 생겼다.”

“일이요?”

일이라니.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생각하는데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한의 말을 기다리는데 무슨 일인지 말을 하지 않는다.

“이한 님?”

의아함에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이름을 부르자 이한이 손을 잡았다.

“……놀라지 말고 들어라.”

이한의 얼굴이, 목소리가 곧 꺼질 듯이 무겁다. 하람이 저도 모르게 이한의 손을 강하게 부여잡았다. 이한이 소리 없이 한숨 쉬었다.

“오도전륜대왕과 이야기가 안 됐다. 그리고 바로 어제, 순영에게 사자들이 왔었다.”

“……네? 사, 사자라니.”

그러니까 죽은 자들에게만 온다는 사자가 할머니에게 왔다고? 하람이 숨을 급하게 몰아쉬는데 이한이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순영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도록 막았으나 계속 올 거다.”

“어, 어떻게…….”

할머니를 아직 보낼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는데 사자가 계속 온다니. 당황스러움에 무어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한을 보는데 별안간 이한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동시에 뚜벅뚜벅, 묵직한 발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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