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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생지연多生之緣 (67)화 (6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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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사람이라니. 이거 설마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 뭐 그런 걸까. 하람이 미간을 좁혔다.

“만나는 사람? 왜?”

영진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황급히 하람의 옆에 앉았다.

“그게, 같이 일하는 여자애가 있는데 남자친구랑 헤어졌다고 하더라고.”

설마 했는데. 하람이 나오려는 한숨을 삼키며 영진을 보던 고개를 돌렸다.

“됐어.”

대충 거절하고 담배를 주머니에 넣었다. 대신 핸드폰을 꺼냈다.

“아들 있는 사람들은 다 노릴 정도로 애가 진짜 예쁘고, 착해. 부담되면 한 번만 만나 보는 건 어때?”

“내가 왜 만나.”

“네가 연애를 영 못 하는 거 같으니까 그렇지.”

내일 날씨나 확인하는데 담배를 피우는 건 그만두고 날씨를 확인 허무맹랑한 소리가 들린다. 하람이 타박하는 영진을 어이없는 얼굴로 보았다.

“연애를 못 한다니. 누가 그래.”

영진은 모르겠지만 바빠서 연애할 시간이 없는 거지 하면 나름대로 잘했다. 물론 상대를 보여줄 수 없고, 증명할 순 없지만.

하람이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뜬 영진을 두고 다시 핸드폰을 봤다.

“뭐야, 너 만나는 사람 있어?”

영진이 하람의 팔을 덥석 잡아당겼다. 하람이 놀라움과 기대감을 가지고 보는 영진을 보다 한숨 쉬었다.

“……있어.”

여자도, 사람도 아니지만. 아무튼 있다.

지금쯤 사랑채 창턱에 앉아 있거나 정자에 앉아 있을 것 같은 이한을 생각하는데 영진이 비명을 질렀다.

“정말? 누구? 보여 줘!”

이럴 거 같더라니. 빨리, 하고 재촉하는 영진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여상하게 날씨를 확인했다.

“뭐야, 뭐야. 나 드디어 제수씨 생기는 거야?”

“제수씨라니. 결혼 생각 없어.”

“아니, 왜? 아, 혹시 상대가 어려? 아니면 뭐 그 사람이 결혼 생각 아직 없대?”

“뭐…….”

무어라고 하면 또 말꼬리를 잡을 것 같을 것 같아 일부로 말을 길게 끌자 영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곧 하람의 등을 약하게 토닥였다.

“우리 동생, 고생이 많나 보네. 힘내.”

또 무슨 착각을 하는 걸까. 하람이 얼굴을 약하게 구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인데? 말해 봐.”

동생의 연애에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은 걸까. 답지 않게 적극적인 영진을 슬쩍 찌푸린 눈으로 보다가 정면에 펼쳐진 어둑한 풍경을 보았다.

“멋지고, 다정하고, 가끔은 애 같고.”

가장 중요한 잘생기고, 몸도 좋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아쉬움에 한숨을 쉬는데 영진이 킥 웃으며 팔을 툭 쳤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 나올 정도로 좋아?”

“어?”

“아주 웃음이 떠나지 않네.”

웃고 있다니. 하람이 이상함에 제 입가를 만졌다가 웃고 있는 입꼬리에 제가 웃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언제 한번 소개해 줘.”

“알았어.”

이제 다 끝난 걸까. 넣었던 담배를 다시 꺼내려는데 이름이 작게 불렸다.

“할머니 돌아가시면 말이야.”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돌아가시는 걸 생각해.”

무슨 얘기를 또 하나 했더니. 하람이 정색하자 영진이 일단 들어 보라며 닦달했다.

“할머니랑 얘기해 봤는데, 우리 집 말이야. 팔지 않고 식당을 하는 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

“식당? 웬 식당?”

“나라에 넘기자니 혜택 같은 거 딱히 못 받을 거 같고. 그렇다고 팔자니 좀 그렇더라고.”

증명할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연행헌은 왕이 하사한 집이고, 집안 대대로 지내 온 집이었다. 함부로 팔 수 있는 건물이 아니었다. 하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우리 이모님들 솜씨 좋으시잖아.”

“응.”

“할머니 돌아가셨다고 다 그만두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니까 식당을 차리는 건 어떨까 해서.”

지금 집에서 지내는 강원댁과 이모님들은 다 할머니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할머니, 순영이 돌아가시면 일할 것이 딱히 없었다.

영진의 말대로 나이 든 강원댁과 이모님들을 퇴직시키는 것도 예의는 아니었다. 고민하다 담배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왜 식당이야? 너무 외지잖아.”

다른 일 많은데 왜 식당일까. 의아해하며 묻자 영진이 그게, 하고 조심스레 운을 뗐다.

“한옥 스테이도 생각해 봤는데 신경 쓸 것도 많고 또 영어 할 수 있는 사람을 또 고용해야 하잖아.”

“영어? 아.”

생각해 보니 한옥에 외국인도 잘 머문다고 했다. 아, 소리를 내자 영진이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공부하면 되긴 하는데, 시간 걸리잖아. 잘할 자신도 없고.”

확실히 영진 말고는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긴 하다.

그렇다고 영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제가 하자니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 하람이 그렇네, 하며 끄덕였다.

“그렇다고 관광지로 하자니 오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면서 집도 상할 것 같고. 그래서 이래저래 생각하다 아는 사람만 알고 오면서 예약제인 식당을 하는 건 어떨까, 싶어서.”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 돈을 벌고, 이모님들도 다 남고. 영진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어때?”

“나쁘지 않네.”

“그렇지? 혹시 또 생각나는 거 있으면 말해.”

“알았어.”

이제 할 얘기가 다 끝난 걸까. 넣었던 담배를 꺼냈다. 지켜보던 영진이 하람의 팔을 툭 쳤다.

“그래서, 정말 만나 볼 생각 없어?”

“……누나.”

소개는 끝난 줄 알았더니. 참지 못하고 드러내 놓고 귀찮은 얼굴을 하자 영진이 알겠다고 하더니 웃으며 떠났다.

다시 담배를 입가로 가져가는데 생각을 한 탓일까. 괜스레 이한이 보고 싶어졌다.

어떡하지. 별일 없는데 소환해도 되는 걸까.

담배를 손에 든 채로 한참 고민하다 벤치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름 모를 벌레가 우는 소리만 들리는 주변을 살피곤 서둘러 별채로 들어갔다.

운전하느라 고생했다고 작은 별채를 혼자 쓰게 됐다. 하람이 밖이 훤히 보이는 통창 커튼을 모두 쳤다. 그런 다음 소파 앞에 서서 후우, 길게 심호흡했다.

“……이한 님.”

여행 중에 이한을 부르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었다.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아 걱정됐다.

안 오시면 어떡하지. 두 눈을 질끈 감는 것도 모자라 두 손을 모아 간절하게 기도하는데 언뜻 서늘함이 느껴졌다. 눈가에 주름이 질 만큼 질끈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와.”

검은 연기 사이로 이한이 나타났다.

진짜 왔다. 검녹색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한 손에 검을 든 이한을 보는데 주변을 둘러보던 이한과 시선이 부딪쳤다.

“어떻게 된 거지?”

“네?”

“위험해서 부른 게 아닌 건가?”

사방이 너무나 평화롭다. 이한이 미간을 좁혔다. 그런 그를 지켜보던 하람이 아, 하고 슬그머니 달아오른 제 목덜미를 짚었다.

“……위험해서 그런 게 아니라, 이틀 동안 떨어져 있었더니 보고 싶어서요.”

집 주변으로 흔한 귀신 하나 없어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오해하고 있는 이한에게 조심스럽게 말하자 이한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그가 이내 피식 웃었다.

“이틀 동안이 아니라 이틀씩이나 떨어져 있었지.”

이한이 잡고 있던 검을 내던지듯 던지고 하람의 허리를 한 팔로 안았다.

“그래. 보고 싶었다고.”

보고 싶었다고 되뇌는 얼굴이 기분 좋아 보인다. 웃고 있는 이한을 보던 하람이 미소 지었다.

“이한 님은요?”

“보고 싶었다.”

질문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답이 돌아온다. 기분이 좋아져 웃으며 이한의 허리를 안았다.

“그럼 입 맞춰 주세요.”

키스도 해 줄까. 걱정과 기대감에 이한을 빤히 보는데 얼굴이 가까워지더니 입술이 맞닿았다.

입술 틈 사이로 혀가 미끄러지듯 밀려 들어왔다. 그리고 목덜미가 덮였다. 하람이 눈을 감았다.

좁은 입 안을 탐색하듯 곳곳을 유영하던 이한의 혀가 하람의 혀를 사탕처럼 핥다 곧 크게 감쌌다. 가볍게 당기는 힘에 하람이 벅찬 숨을 토해 내며 고개를 조금 젖혔다.

맞붙은 입에서 축축한 소리와 끄응, 앓는 소리가 나왔다.

잠시도 쉬지 않고 쏟아지는 일방적인 키스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어렵게 내쉬는 숨과 타액을 훔쳐 가는 입술에 밭은 숨을 토해 내며 떨던 하람이 이한의 팔을 부여잡았다. 단단한 팔 위를 쓸었다가, 주물렀다. 그동안 이한이 하람이 입고 있는 니트를 젖혀 우미한 허리선을 손으로 덧그리며 내려갔다.

“하…….”

차가운 손이 스치고 지나가는 자리마다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참지 못하고 여린 소리를 내며 허리를 잘게 떠는데 별안간 간신히 서 있는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놀라 눈을 번쩍 떴다. 동시에 이한이 안고 있던 하람의 허리를 바짝 당기며 무너지는 몸을 지탱했다.

“이런.”

웃음기가 느껴지는 말과 함께 입술과 입술 사이로 이어진 투명한 타액이 툭, 끊어졌다.

“다리에 힘이 풀릴 만큼 좋았나?”

호선을 그리는 입술을 보던 하람이 헛숨을 토했다.

“……그러는 이한 님은 쉬지 않고 입을 맞출 만큼 좋았나요?”

“응.”

그럴 리가, 같은 말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긍정한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순간 몸이 훌쩍 들렸다. 갑자기 들린 몸에 하람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이한의 어깨를 짚었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직접 알려 주지.”

엄청난 말과 함께 등에 폭신한 침대가 닿았다. 하람이 헉, 숨을 삼켰다가 다시 맞닿은 입술에 두 팔로 이한의 목을 끌어안았다. 낮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이 사진 멋지지 않아요?”

길게 엎드려 누워 카메라를 보던 하람이 보고 있던 카메라를 바로 옆에 모로 누워 있는 이한에게 보여 주었다. 장죽을 물고 있던 이한이 시선을 돌려 카메라 화면을 보았다.

“여긴 어디지?”

“천안 삼거리 공원이라는 곳이요. 어때요?”

“괜찮군.”

“그렇죠? 능수버들이랑 단풍나무가 많아서 찍는 사진마다 멋지더라고요.”

하람이 다시 카메라를 제 앞으로 가져왔다. 여행 첫날부터 열심히 찍은 사진을 한 장, 한 장 살폈다.

“아, 이거 잘 찍혔다.”

사진을 살피던 중 가족들이 다 같이 웃고 있는 모습의 사진을 발견했다.

크게 뽑아 거실에 걸기 좋아 보인다. 따로 표시하는데 옆에서 흠,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람이 이한을 보았다. 어느새 미간을 좁히고 있는 이한이 턱으로 카메라를 가리켰다.

“네 사진은 없나?”

뭐가 불만인가 했더니. 하람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제 카메라로 저를 왜 찍어요.”

핸드폰으로도 셀카를 안 찍는데 DSLR 셀카라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겨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사람한테 찍어달라고 하면 되지.”

“그럴 시간에 가족들이나 한 장 더 찍을게요.”

옛날에는 사진 찍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불편해졌다.

“아쉽군.”

마지막으로 사진 찍었던 게 언제였더라. 기억을 더듬는데 머리가 쓰다듬어진다. 하람이 옆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던 이한이 어딘가 씁쓸한 얼굴을 하고 있다. 왜 그러나 싶어 바라보자 이한이 쓰게 웃었다.

“내가 사람이고, 옆에 있었다면 가족들의 사진을 찍는 널 찍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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