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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며칠 전. 살아 움직이는 시신이 있다는 장례식장에 갔다가 시신을 움직이게 한다는 송장술고양이를 만났다.
날렵한 고양이답게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송장술고양이를 열심히 쫓던 중 낯선 얼굴의 차사 두 명이 송장술고양이를 잡았다. 그러고는 눈앞에서 처리했다.
『오랜만에 뵙고, 처음 뵙습니다.』
뭐지? 누구지? 하는데 깐깐한 인상의 차사가 오도전륜대왕님이 보내서 왔다고 하며 곁에 서 있는 어린 차사를 앞세웠다.
『대왕님께서 이 신입 차사를 잘 교육한다면 부탁한 것을 들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도전륜대왕에게 구미호의 조건을 말했더니 가슴에 ‘교육 중’ 명찰을 단, 이제 갓 차사가 됐다는 신입 차사 교육을 떠넘겼다.
“이 사연 속의 쌍둥이가 손톱 미신의 그 중서함미라는 건가요?”
하람이 어딘가 뚱한 얼굴의 이한 대신 차사를 보았다. 때마침 바지 주머니에서 막대사탕을 꺼내던 차사가 반색했다.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손톱 먹는 쥐라. 고양이 잡는 것도 힘들었는데 쥐는 얼마나 힘들까.
“어떻게, 이것도 가 볼까요?”
꼭 귀신이라도 씐 것처럼 사람에게 달려들고, 날뛴다는 늙은 개가 있는 마을을 가는 중이다. 늦었지만 쥐덫이랑 단 음식을 준비해야 할까. 쥐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는데 이한이 태블릿 화면을 보았다.
“지금 가기에는 늦은 거 같은데.”
사연 장소가 강원도다. 저녁 시간이 지난 지금 출발하기에는 많이 늦었다. 하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는 데만 세 시간 정도 걸려서, 저 여행 다녀오고 나서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하지.”
내일 아침 가족 여행을 간다. 무리할 수 없어 여행을 다녀온 후에 확인하러 가는 것으로 정해졌다.
쥐 생각을 접고 보고 있던 태블릿을 가방에 넣고 등에 메는데 차사가 막대사탕을 내밀었다.
『하나 드시겠어요?』
하람이 차사가 내민 퍽 익숙한 브랜드의 막대사탕을 보았다.
“이거, 제가 먹어도 되나요?”
제가 아는 그 사탕 같은데 사탕을 주는 자가 사람이 아니라 차사다. 그렇다는 건 차사가 먹는 저승 음식이라는 것. 살아 있는 제가 먹어도 되는 걸까. 의아함과 걱정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선배님들이 저 먹으라고 주신 거예요. 그러니 맘 편하게 드세요!』
우리 신입 차사, 선배 차사들에게 사랑받는가 보구나. 기특한 눈으로 보다가 다시 사탕을 보았다.
이거 진짜 먹어도 되나. 어떡할지 고민하는데 별안간 커다란 손이 사탕을 뺏어갔다.
“그 선배들이 살아 있는 자에게 저승의 음식을 주면 안 된다고 알려주지 않았는가 보군.”
이한이 소리 내어 쯧쯧 혀를 차며 사탕 포장을 벗긴 뒤 입에 쏙 넣었다. 차사가 크게 기겁했다.
『이거 이승 음식입니다!』
“아하.”
그러든가, 말든가. 이한이 얄밉게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린 채로 막대사탕을 먹었다. 차사가 악 소리치며 이한의 팔을 잡아 거세게 흔들었다.
『빨리 뱉으세요!』
그저 사탕 하나 뺏긴 것뿐인데 곧 울겠다. 이한의 팔에 반쯤 매달린 차사를 보던 하람이 정색했다.
“아니, 왜 애 거를 뺏어 먹어요.”
몇백 살이나 드신 분이 차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한테 장난친다. 어처구니가 없어 한 소리 하자 콧방귀를 뀌었다.
“뺏어 먹었다니. 나는 혹시나 저승의 것일까, 널 대신해서 먹은 것뿐이다.”
이한이 꿀릴 것 없다는 듯 여상하게 하람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차사의 얼굴이 더욱 울상이 됐다.
『진짜 너무해! 선배님들한테 다 이를 거예요!』
“그것 참 무섭군.”
이를 득득 가는 신입 차사가 보이지도 않는지 놀리는 이한의 모습에 하람이 다시 한번 더 한숨 쉬었다.
황당해하는 사이 개가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여긴 거 같은데…….”
서울 외곽이고, 시간이 늦은 탓에 사위가 조용했다.
마을 초입에 서서 불 켜진 곳이 하나도 없는 주변을 살피던 하람이 손전등을 꺼내 켰다.
『두근, 두근.』
어쩐지 신난 것 같은 차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발소리 죽여 걸었다.
손전등에서 나오는 불빛을 앞세워 걷길 몇 분. 늙은 개는커녕 동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허탕 친 걸까요.”
“흠.”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이 너무나 여상하다.
문제가 딱히 없어 보여 그만 돌아갈까 하는 그때 크르릉, 음산한 소리가 들렸다.
『어, 저기!』
소리를 쫓아 이리저리 비추던 중 차사가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황급히 손전등을 비추자 더러우면서도 뼈가 드러날 정도로 한껏 마른 대형견이 보였다.
“……너무 말랐는데.”
요즘 말로 시고르자브종, 일명 믹스견이 당장 튀어나올 기세로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하람이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둔갑견 같군.”
“그 홀대하는 주인에게 복수한다는 개요?”
그렇다면 저렇게 더러우면서도 바짝 마르고, 사람에게 달려드는 것이 이해된다. 마른침을 삼킨 뒤 가방을 앞으로 멨다.
이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칼자루를 잡고 검을 빼내다 차사를 보았다.
“네가 잡아라.”
『제가요?』
“그래.”
검을 치우고 대신 장죽을 꺼내 입에 물었다. 차사가 기겁하고, 하람이 한숨 쉬었다.
“어떻게 차사한테 다 맡겨요.”
신입 차사와 며칠 같이 움직였으나 참관에 가까웠고, 차사는 영혼 회수 전문이었다. 이한처럼 귀신을 처리하지 않았다. 하람이 어디 한번 해 보라는 듯 가만 서 있는 이한을 타박하고는 가방을 열었다.
며칠 새로운 시도를 몇 번 했었다. 가방에서 기운을 억누르는 힘이 있는 108 향나무 염주를 꺼내는데 별안간 몸이 뒤로 훅 밀렸다. 동시에 묶여 있는 줄 알았던 개가 달려들었다.
『아잇!』
오직 하람만 보인다는 듯 하람만 본다. 차사가 황급히 옆구리에 달고 있는 붉은 오랏줄을 풀었다. 차사는 하람의 얼굴의 노리는 둔갑견의 몸에 오랏줄을 휘감더니, 크게 우는 둔갑견을 확 당겨 바닥에 내팽개쳤다.
“제법이군.”
『히, 힘이 너무 세요!』
운인지, 실력인지 둔갑견을 한 번에 제압했다. 이한이 오랏줄을 잡고 부들부들 떠는 차사를 의외라는 눈으로 보다 검을 쥐었다.
『주인…… 용서, 할, 수 없다.』
오래 굶었는지 크게 반항하지 않고 힘겨운 숨소리를 내던 둔갑견이 울며 잔뜩 갈라지는 목소리로 저주를 읊조렸다. 혼을 달래 주려던 하람이 아, 탄식하며 앉았다.
“둔갑견 님, 저승에 가면 편할 겁니다.”
순영이 말했다. 무속인은 힘과 주술로 영혼을 쫓아내는 구마사(驅魔師)와 다르게 영혼을 달래 주는 자라고.
주인에게 질릴 대로 질려 복수하려는 둔갑견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목을 바짝 조이는 목줄을 조심스레 풀었다. 그 순간 둔갑견의 몸에 검이 푹 내리꽂혔다.
“너를 묶고, 굶기는 주인 없는 곳에서 편하게 지내라.”
고생 많이 했다. 덤덤한 말과 함께 검이 단번에 뽑혔다. 하람을 보던 둔갑견의 눈이 크게 뜨였다가 스르르 감겼다. 하얀 빛이 번지더니 개가 축 늘어졌다.
『끝났네요.』
차사가 오랏줄을 거뒀다. 하람이 끙 소리 내며 일어났다.
“……단 거 먹을래요?”
어쩐지 속이 답답했다. 시원하면서 단것이 먹고 싶어졌다.
둔갑견이 방금까지 하고 있었던 굵은 목줄을 가방에 조심해서 챙겨 놓고 이한과 차사를 보았다. 이한이 장죽 끝을 입에 물었다. 차사가 두 팔을 번쩍 들며 와! 하고 좋아했다.
시간이 늦어 큰길가에 있는 빵집과 디저트 전문점이 다 닫았다.
카페 거리 안쪽에는 연 곳이 있을까. 카페 거리 입구에 차를 세웠다. 지갑과 휴대폰만 챙겨 내렸다.
“전에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는데, 아까 같은 동물은 저승에 가면 어떻게 돼요?”
동물도 사람처럼 심판을 받고, 환생하는 걸까. 궁금함에 묻자 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동물 또한 사람이 환생한 자일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 똑같이 심판한다.”
『대신 사람보다 죄가 많지 않기 때문에 심판이 빨리 끝나요!』
사람도 모자라 동물까지 심판한다니. 오도전륜대왕이 왜 바쁜지 알 것 같다.
차사들의 얼굴이 핼쑥하고 피곤해 보이는 게 사실은 과로로 인해서 그런 건 아닐까. 진심으로 생각하며 걷던 중 영업 중인 카페를 찾았다.
하람이 친절하게 맞이해 주는 직원에게 웃으며 주문했다. 얼마 있지 않아 주문한 음료와 디저트가 모두 나왔다.
“……저, 궁금한 게 있어요.”
카페에서 조금 벗어나 차사에게 휘핑이 가득 올라간 초코 프라페를 건네던 하람이 움직임을 멈췄다.
“……두 사람은 사람들 눈에 안 보이잖아요. 그럼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 컵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이나요?”
신입 차사는 군것질, 특히 단것을 좋아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 이것저것 챙겨 줬는데 지금은 집이 아닌 밖이었다.
지금 있는 곳이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지만 혹시 모른다. 의아해하며 묻자 차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사람인 척할 수 있어요!』
차사가 자신 있게 외치더니 박수 쳤다.
짝! 소리와 함께 차사가 입고 있는 백색 저고리와 감색 바지, 쾌자가 교복으로 바뀌었다.
『짠! 어때요?』
고등학생 같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교복을 입으니 진짜 고등학생 같다.
교복이 잘 어울리는 게 사람이었으면 인기 많았을 것 같다. 오랜만에 보는 깔끔한 교복을 보다 문득 궁금해졌다.
“다른 옷 많은데 왜, 교복이에요?”
후드티와 청바지, 트레이닝복, 셔츠 면바지. 편한 옷 많은데 왜 교복일까. 호기심에 묻자 차사가 눈을 끔뻑였다.
『선배님들이 저보고 무조건 교복 입어야 한다고, 절대 다른 옷 입지 말라고 하셨어요.』
우리 신입 차사, 선배 차사들한테 과하게 보호받는 걸까.
선배 차사가 과연 누굴까, 설마 첫날 같이 왔던 그 무뚝뚝해 보이는 차사일까. 심각하게 고민하다 앞서 주지 않았던 초코 프라페를 꺼내 차사에게 주었다.
『잘 마실게요!』
차사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질 만큼 환하게 웃으며 두 손으로 받았다. 하람이 뺨을 홀쭉하게 해서 프라페를 마시는 차사를 보다 따뜻한 유자차를 꺼냈다. 조심스레 이한을 보았다.
“……괜찮다.”
지금껏 조용히 있던 이한이 옅게 웃으며 거절했다. 어딘가 씁쓸함이 느껴지는 미소에 거절하는 의미를 알아차렸다. 하람은 더 권하지 않고 따라 웃고 제 입가로 가져갔다. 유자차를 마시며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 차에 탔다. 기묘한 일행이 탄 차는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